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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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설집을 읽는다는 건 작가에게 좀 더 다가가는 일.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지고 작가가 추구하는 생각의 깊이에 빠지는 일. 짧은 소설이라 여운이 깊어 좀처럼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책이었다. 김혜나라는 작가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시간이었다.

 


일곱 편의 단편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했다. 같은 인물은 요가를 하는 인물일 테고, 한국을 떠나 밖에서 생활하는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을 그리워하지도 않은, 자신의 생각에 침잠해 있는 인물들이었다. 아빠가 없는, 레즈비언인, 요가 강사로 일하는 인물들의 세계에서 우리가 가진 다양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기도 했다.

 





우리는 줄곧 내 생각에 빠져있는 듯하다. 내가 가진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깥의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물론 나의 존재, 타인의 존재에 대하여 탐구하는 인간에 가깝다. 시선의 확장, 사고의 전형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독서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서 발생한 게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속해 있지도 않았어.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 마치 그날 바라본 친어머니의 눈처럼, 그 속에 담긴 하나의 영혼처럼, 나도 그저 존재하고 있어. 내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나의 친부도 친모도 아닌, 나 자신이었어. 내가 찾아야 할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 (139페이지, 아버지가 없는 나라중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저녁은 포기해도 요가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명상 음악을 들으며 몸의 이완을 위해 무념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 물론 어설프지만, 점점 유연해지는 신체의 변화에 즐거움을 느낀다. 실제 요가 강사로도 활동하는 저자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요가하는 인물이다.

 


탁주를 빚는 수업에서 만난 민서의 남자 친구 진수와 함께 셋이서 헤어지기 싫어 서울의 거리를 걷는 여경. 여경이 부다페스트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진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 지구적 팬데믹 때문에 서울에 들어오지 못하여 집 밖에 나가기도 벅찼던 시기에 탁주를 빚어 진수에게 주고 왔던 기억.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여경의 본심에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민서는 어떤 마음으로 여경을 바라보고 있는지, 진수는 여경에게 어떤 마음인지. 마음을 숨기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저절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코너스툴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호산 씨와 통하는 게 많아 친해지고 싶다.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하면 막힘 없이 대화했다. 이오진 작가는 자기가 쓴 소설을 호산 씨에게 보내고, 호산 씨의 습작을 오진 작가에게 보내 평가받고자 한다. 이성 간의 관계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보낸 편지에 답장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관계의 차단에는 당황하고 만다. 코너스툴에서도 그렇고, 레드벨벳에서도 그렇다. 레드벨벳에서도 주인공은 토론식 영어 수업하는 해럴드와 중국식 찻집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해럴드는 아내가 있어 더 이상의 만남은 불가하다고 했다. 연애를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선을 넘기려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불편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관계의 정의는 누가 하는 것인가. 물론 호산 씨의 아내나 해럴드의 아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입장에 따라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의 정체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설 속 인물을 대입하여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가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독자이므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김혜나 작가의 이름은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에서 알게 되었다. 궁금하던 차였는데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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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9-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 속 김혜나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불발탄 같은 것이라서.... 이 책도 좀 그런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역시 좀 야~한가요? -_-;;
 
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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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거 같다. 우리가 몰랐을 뿐. 내 가족이나 지인에게 일어나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았나 보다. 놀랍다. 작가의 상상력이라 하지만 어딘가에서 꼭 일어난 일인 것만 같다.


 

마법소녀 퓨트를 불러와 사라지기 마법을 배우는 소녀를 생각해보라. 겨우 열한 살. 가족 중 누구도 소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빠는 무관심하고, 엄마는 나쓰키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이다. 부모가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자기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푼다는 거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에게 감정을 풀고 미안해하는 일을 반복한다. 아이가 받을 상처나 고통을 모른 척한다.





 

나쓰키를 이해하는 사람은 사촌 유우 뿐이다. 일 년에 한 번 백중절에만 볼 수 있는 고모의 아들이다. 유체 이탈할 수 있는 마법소녀라고 칭하는 나쓰키와 외계인이라고 믿는 유우는 어린 연인이다. 한때 어린이의 치기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게 문제다. 학원 특강 중 나쓰키에게만 공부를 가르쳐주겠다는 이가사키 선생의 행동은 경종을 울릴 만하다. 엄마에게 학원 선생의 성폭행을 말하지만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처음엔 SF 판타지 소설인가 싶었다. 나쓰키가 왜 유체 이탈하는 마법소녀라고 생각하고, 유우가 외계인이라고 믿는 건지. 어른들의 행동이 문제였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어른들만 모른다.

 


작가는 소설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가하는 성폭행, 여성의 자궁을 아이 낳는 공장 혹은 도구로 보는 점, 외계인이나 마법 소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폭로하고자 했다. 어린 상태의 나쓰키의 모습이 소설 전반에 걸쳐 있을 거로 생각했으나 나쓰키는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한 상태였다. 필요에 의해 계약 결혼 중이었다.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쓰키와 유우 그리고 도모오미가 타인의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인물인 줄 알았다. 관심과 애정을 주는 인물이 있다면 충분히 타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거로 보았다. 아키시나의 산속에 가면 우리가 말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들 줄 알았던 거 같다. 모든 걸 버리고 그들만의 세상을 살 줄은 몰랐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제도에 순응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이 있다. 제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무심코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자기의 삶을 살면 되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자고 했던 맹세가 이런 거였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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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의 소설
정세랑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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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라는 이름이라. 경쾌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질 듯하다. 아라는 여러 편의 단편에서 마치 연작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타난다. 때로는 소설가로, 스키 강사로도 나타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라의 이름에 집중하며 또 한 번 아라가 나타나려나 기다리기까지 한다. 어쩐지 아라는 정세랑 작가를 닮은 듯도 하다.

 


말을 잘하고 싶은 아라를 본다. 한빛의 밝은 에너지가 부러운 아라는 그녀에게서 매력적인 스위치를 건네받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온 저녁이면 허전하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후회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에너지를 빼앗긴 느낌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타인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말하게 놔두지 않았다는 거다. 다음에 만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후회의 횟수가 늘어난다. 한빛이 아라에게 하는 말 중에 불안해서 말의 여백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 웃기려다가 무신경하지 않았나,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생각을 엿보며 나의 마음 저편의 것을 인식한다. 때로는 동질감을 느껴 공감하는 것 같다.


 


 

둘째 아이를 낳고 잠시 직장을 쉬던 때였다.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이사 오며 친구들 하나 없이 육아에 치이던 때였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옆집 사람과 친구로 지냈다. 육아 스트레스를 맥줏집에 가서 생맥주 한잔 하는 걸로 풀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힘든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 있다. 지나와 유경처럼 밤 열 시 이후에 드라이브하는 사람도 있겠고 나처럼 옆집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2, 기적의 취객 사파리를 읽는데 문득 오래전 일들이 떠올랐다. 직장 생활할 때보다 더 힘들었던 육아에 지쳤던 나를. 그때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추억에 잠겼다.


 

아주 좋아했던 우산이 있었다. 노란색 바탕에 흰색 도트 무늬, 우산 살 아래쪽에는 흰색 프릴이 있어 비가 오기를 기다렸던 거 같다. 미니멀리즘과 친환경 제품 사용에 대한 내용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하고 싶은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랑 이야기를 써야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쉽다고 표현했던 게 생각났다.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은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비춘다. 마치 거울처럼 드러나는 우리의 민낯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해서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기다렸었다. 그게 현정의 일이었다. 기다리는 것. 다음 책을, 다다음 책을. 새로운 작가를 만나기 위해 모험하고 실패도 하면서.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매년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계산해가며. (205페이지, 현정중에서)


 

 


 

단편 현정을 읽다가 드는 생각이다. 만약 지진으로 서점에 갇혔다면, 휴대전화 신호는 잡히지 않고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고 있다면, 활자중독에 가까운 나도 서가 밑에 떨어진 책들을 주워 읽고 있을까. 현실과 어울리지 않은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는 것밖에 없을 때 우리는 현정처럼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갇힌 현실을 잊으려 책을 찾을 것이고, 읽고 싶었던 책이 보이면 그 시간을 견딜 수도 있지 않을까. 절망에 사로잡히기보다 독서를 함으로써 기다릴 수 있었다.

 


책이 주는 힘,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표현한 글이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라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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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매년 다음 해 어떤 책을 읽을까 목록을 추려보면 시집은 꼭 들어간다. 아마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겠다는 다짐이겠다.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0번에 들어간 김수영의 산문은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었다. 다만 책을 폈더니 시인의 날카로운 시의 사유에 덜컥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책을 다시 덮었다가 한겨레에서 출판된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읽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다소 어렵지 않게 읽었다. 다만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라는 책은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김수영의 작품 중에서 26개의 화두로 글을 썼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수영 시인의 뿌리가 되는 시론과 문학론이 망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詩作)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10페이지, 시여, 침을 뱉어라중에서)

 


이 문장은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온몸이라는 제시어로 쓴 글에서 인용했다. 평론가의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김수영 시인이 하고자 하는 뜻을 알겠다. 시를 대하는 태도가 경건하기조차 하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하자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서 시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남다른 시선으로 시를 표현하고 짓는 거라 여겼는데, 시란 작은 목소리처럼 우연히 다가오기도 하는가 보다.

 


건방진 소리 같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시인다운 시인이나 문인다운 문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니 세상의 지론이라고 본다. (18페이지, 시의 뉴 프런티어중에서)

 


김수영 시인을 논할 때 거대한 뿌리시의 뉴 프런티어는 그의 상징과도 같다. 사실 시는 쉽지 않다. 읽은 사람의 뜻대로 해석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시인의 뜻대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이다. 옹졸한 문화 정책을 지양하고 자유롭게 논할 수 있어야 하며, ‘시의 무용을 실감할 수 있을 때까지 무()로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언어는 과오다. 나는 시 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최고의 상상이다. 그리고 시간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과오다. 수정될 과오. 그래서 최고의 상상인 언어가 일시적인 언어가 되어도 만족할 줄 안다.

(중략)

지금의 언어도 좋고 앞으로의 언어도 좋다. 지금 나도 모르게 쓰는 앞으로의 언어. (71~72페이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중에서)

 


거대한 뿌리초고 뭉치를 읽다가 남긴 메모를 언어론으로 고쳐 썼다. 타인의 시를 날카롭고도 비평적인 시선으로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본인의 시도 읽어보며 고칠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시작도 소설작업도 작가에게 수정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인가보다.

 


시인이라는, 혹은 시를 쓰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큰 부담이 없다. 그런 의식이 적으면 적을수록 사물을 보는 눈은 더 순수하고 명석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이 의식을 없애는 노력이란 똥구멍이 빠질 정도로 무척 힘이 드는 노력이다. (171페이지, 시작 노트 2중에서)

 


시인이면서 타인의 시를 평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평가를 받은 시인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했을 거로 보이는 지점이다. 그걸 알면서도 신랄하게 평했다. 김수영의 문장은 시보다 산문이나 비평에서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날카롭고도 첨예한 비평을 했던 이유로 신문이나 월간지에 실명을 거론하며 평을 했을 때의 불편함으로 기피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 (226페이지, 모더니티의 문제중에서)

 


이달의 작품 중 급제점에 달하는 작품은 겨우 한 편이라고 김현승의 파도를 칭찬했다. 그가 칭찬한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런 까닭에 그 시와 다른 시를 비교하게 만든다. 평가에 거침이 없고 날카롭다. 김수영의 시론과 문학론이 빛난다.


 

우려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술술 읽혔다. 김수영의 평가를 받은 시인들의 고충에 슬며시 미소도 지었고, 확고한 언어를 다듬었던 그의 독창적인 시론과 문학론을 읽을 수 있어 아주 즐거웠다. 이렇게 또 한 작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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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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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소설에서 만난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길지라도 소설 속 상황을 내 삶과 대비해보며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언제 나한테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내 주변에서 혹은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무시하지 못한다. 우리가 범죄에 가담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어떤 것도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8년 전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데이비드 벡은 죽은 아내와 자신만 알 수 있는 암호로 된 이메일을 받는다. 아내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 그리고 기념일. 아내는 8년 전에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되었고, 아직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벡이었다. 메일을 확인해 볼 문제의 시간. 메일을 열었을 때 기억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엘리자베스의 움직이는 모습이 있었다. 누군가의 잔인한 장난인지, 정말 아내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아내가 건넨 문장,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는 당부 때문에 그는 직접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내가 살해되었던 장소, 샤르메인 호수에서 두 남자의 오래된 사체가 떠오르며 데이비드 벡은 그들을 살해했다는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더불어 죽은 아내도 살해했을 거라는 경찰의 의심에 벡은 8년 전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지나고 보니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그때의 벡은 슬픔에 빠져 진실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의 시신은 그녀의 아버지가 확인했다. 그의 장인 호이트는 FBI였으므로 당연하게 알아보았을 거로 생각했다. 8년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철저한 준비였다. 탁월함과 위대함은 바로 그 부분에서 갈린다. 위대한 사기꾼은 자신의 자취를 완벽히 감출 수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준비하는 법이다. (56페이지)

 


2001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제프리 디버를 포함하여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데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전개되는 스토리에 심장이 쫄깃했다. 그들의 과거, 깊이 숨겨두었던 진실 한 조각. 사랑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부유했다.


 

악인은 확실한 악인으로 그린다는 점. 용서를 구하는 설정으로 두지 않았다. 래리 갠들은 악인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인물로, 두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북한 출신의 살인병기 에릭 우는 단 한 번의 시선에서도 공포심을 자극한다. 헤스터 크림스타인 변호사는 홀드타이트, 용서할 수 없는에도 활약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중간에 헤스터가 벡의 변호를 더 이상 맡지 않겠다고 했을 때 실망스러웠는데 사람에게는 신뢰가 중요한 법이므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누구를 탓하랴. 정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타이리스처럼 티제이를 보살펴 주는 의사 벡을 위해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저돌적인 아버지도 발견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도 있으며 그로 인해 새 생명을 얻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소설을 읽게 되면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주인공이 불법을 저질러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로 여기는 게 문제다. 지극히 도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도 주인공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활력소처럼 여기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까. 심심하게 사는 것 같은 나보다는 적극적인 삶을 사는 주인공을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스릴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박진감 있는 전개, 감춰두었던 비밀과 드러나는 진실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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