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매년 다음 해 어떤 책을 읽을까 목록을 추려보면 시집은 꼭 들어간다. 아마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겠다는 다짐이겠다.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0번에 들어간 김수영의 산문은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었다. 다만 책을 폈더니 시인의 날카로운 시의 사유에 덜컥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책을 다시 덮었다가 한겨레에서 출판된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읽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다소 어렵지 않게 읽었다. 다만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라는 책은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김수영의 작품 중에서 26개의 화두로 글을 썼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수영 시인의 뿌리가 되는 시론과 문학론이 망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詩作)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10페이지, 시여, 침을 뱉어라중에서)

 


이 문장은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온몸이라는 제시어로 쓴 글에서 인용했다. 평론가의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김수영 시인이 하고자 하는 뜻을 알겠다. 시를 대하는 태도가 경건하기조차 하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하자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서 시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남다른 시선으로 시를 표현하고 짓는 거라 여겼는데, 시란 작은 목소리처럼 우연히 다가오기도 하는가 보다.

 


건방진 소리 같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시인다운 시인이나 문인다운 문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니 세상의 지론이라고 본다. (18페이지, 시의 뉴 프런티어중에서)

 


김수영 시인을 논할 때 거대한 뿌리시의 뉴 프런티어는 그의 상징과도 같다. 사실 시는 쉽지 않다. 읽은 사람의 뜻대로 해석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시인의 뜻대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이다. 옹졸한 문화 정책을 지양하고 자유롭게 논할 수 있어야 하며, ‘시의 무용을 실감할 수 있을 때까지 무()로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언어는 과오다. 나는 시 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최고의 상상이다. 그리고 시간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과오다. 수정될 과오. 그래서 최고의 상상인 언어가 일시적인 언어가 되어도 만족할 줄 안다.

(중략)

지금의 언어도 좋고 앞으로의 언어도 좋다. 지금 나도 모르게 쓰는 앞으로의 언어. (71~72페이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중에서)

 


거대한 뿌리초고 뭉치를 읽다가 남긴 메모를 언어론으로 고쳐 썼다. 타인의 시를 날카롭고도 비평적인 시선으로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본인의 시도 읽어보며 고칠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시작도 소설작업도 작가에게 수정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인가보다.

 


시인이라는, 혹은 시를 쓰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큰 부담이 없다. 그런 의식이 적으면 적을수록 사물을 보는 눈은 더 순수하고 명석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이 의식을 없애는 노력이란 똥구멍이 빠질 정도로 무척 힘이 드는 노력이다. (171페이지, 시작 노트 2중에서)

 


시인이면서 타인의 시를 평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평가를 받은 시인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했을 거로 보이는 지점이다. 그걸 알면서도 신랄하게 평했다. 김수영의 문장은 시보다 산문이나 비평에서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날카롭고도 첨예한 비평을 했던 이유로 신문이나 월간지에 실명을 거론하며 평을 했을 때의 불편함으로 기피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 (226페이지, 모더니티의 문제중에서)

 


이달의 작품 중 급제점에 달하는 작품은 겨우 한 편이라고 김현승의 파도를 칭찬했다. 그가 칭찬한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런 까닭에 그 시와 다른 시를 비교하게 만든다. 평가에 거침이 없고 날카롭다. 김수영의 시론과 문학론이 빛난다.


 

우려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술술 읽혔다. 김수영의 평가를 받은 시인들의 고충에 슬며시 미소도 지었고, 확고한 언어를 다듬었던 그의 독창적인 시론과 문학론을 읽을 수 있어 아주 즐거웠다. 이렇게 또 한 작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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