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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의 소설
정세랑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아라, 라는 이름이라. 경쾌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질 듯하다. 아라는 여러 편의 단편에서 마치 연작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타난다. 때로는 소설가로, 스키 강사로도 나타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라의 이름에 집중하며 또 한 번 아라가 나타나려나 기다리기까지 한다. 어쩐지 아라는 정세랑 작가를 닮은 듯도 하다.
말을 잘하고 싶은 아라를 본다. 한빛의 밝은 에너지가 부러운 아라는 그녀에게서 매력적인 스위치를 건네받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온 저녁이면 허전하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후회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에너지를 빼앗긴 느낌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타인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말하게 놔두지 않았다는 거다. 다음에 만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후회의 횟수가 늘어난다. 한빛이 아라에게 하는 말 중에 불안해서 말의 여백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 웃기려다가 무신경하지 않았나,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생각을 엿보며 나의 마음 저편의 것을 인식한다. 때로는 동질감을 느껴 공감하는 것 같다.

둘째 아이를 낳고 잠시 직장을 쉬던 때였다.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이사 오며 친구들 하나 없이 육아에 치이던 때였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옆집 사람과 친구로 지냈다. 육아 스트레스를 맥줏집에 가서 생맥주 한잔 하는 걸로 풀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힘든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 있다. 지나와 유경처럼 밤 열 시 이후에 드라이브하는 사람도 있겠고 나처럼 옆집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2시, 기적의 취객 사파리」를 읽는데 문득 오래전 일들이 떠올랐다. 직장 생활할 때보다 더 힘들었던 육아에 지쳤던 나를. 그때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추억에 잠겼다.
아주 좋아했던 우산이 있었다. 노란색 바탕에 흰색 도트 무늬, 우산 살 아래쪽에는 흰색 프릴이 있어 비가 오기를 기다렸던 거 같다. 미니멀리즘과 친환경 제품 사용에 대한 내용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하고 싶은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랑 이야기를 써야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쉽다고 표현했던 게 생각났다.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은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비춘다. 마치 거울처럼 드러나는 우리의 민낯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해서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기다렸었다. 그게 현정의 일이었다. 기다리는 것. 다음 책을, 다다음 책을. 새로운 작가를 만나기 위해 모험하고 실패도 하면서.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매년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계산해가며. (205페이지, 「현정」중에서)

단편 「현정」을 읽다가 드는 생각이다. 만약 지진으로 서점에 갇혔다면, 휴대전화 신호는 잡히지 않고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고 있다면, 활자중독에 가까운 나도 서가 밑에 떨어진 책들을 주워 읽고 있을까. 현실과 어울리지 않은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는 것밖에 없을 때 우리는 현정처럼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갇힌 현실을 잊으려 책을 찾을 것이고, 읽고 싶었던 책이 보이면 그 시간을 견딜 수도 있지 않을까. 절망에 사로잡히기보다 독서를 함으로써 기다릴 수 있었다.
책이 주는 힘,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표현한 글이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라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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