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작년에 읽었던 박향 작가의 『에메랄드궁』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모텔이나 호텔이나 격만 조금 다를 뿐,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고 느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 각자 나름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고 방문하지만, 그걸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있다는 것.

 

이곳에도 사람사는 곳이니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많은 없는 곳이 호텔이란 곳이다. 호텔 로열의 사장이 되면 호텔 로열의 안주인이 되면,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혹은 행복해 질거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많은 러브 호텔이 생기고,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던 호텔들은 조금씩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곳 호텔 로열에도 『에메랄드궁』에서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한다. 호텔 로열을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쓴게 『호텔 로열』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직접 호텔 로열을 경영해 십대때부터 호텔을 청소하는등 호텔 일을 도왔던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경험이 묻어나왔다. 작가는 말한다. 서서히 성에 대해서 알아야 할 시기에 결과부터 알게 되었다는 말을. 그래서인지 작가는 성에 대해 거침없이 묘사하는 소설을 썼다고도 했다.

 

자, 일곱편의 연작 소설들의 내용들을 볼까. 「셔터 찬스」사진 잡지에 투고할 누드 사진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남자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스무살 차이나는 주지 스님의 아내가 되어 절을 이끌어나간 이야기인 「금일개업」, 아버지의 호텔 접수처에서 청춘을 보낸 여자와 의부증에 걸린 아내를 둔 사람의 이야기 「쎅군」, 「거품 목욕」에서는 좁은 임대아파트에서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통에 남편과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쌤」에서는 부모가 가출해버려 있을데가 없는 여고생과 아내의 불륜때문에 힘들어하는 교사의 이야기가, 「별을 보고 있었어」는 열살 연하의 남편과 살아가며 호텔 로열에서 청소하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선물」에서는 호텔 로열을 짓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일곱 편의 작품들은 각자의 작품으로 읽혀지고, 또한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각각의 연작 단편 속의 사람들은 호텔 로열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었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애인과 남편과 혹은 절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기 보다는 그들의 행동에 순응하게 된다. 남편과 관계를 가질 수 없어 호텔 로열에서 거품 목욕을 하며 한 번의 정사를 나누는 부부나, 호텔 청소를 마치고 늦은 퇴근을 한 뒤에서도 열 살 아래의 남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듯 읽었다. 호텔 로열을 거쳐갔던 사람들은 몰락한 호텔 로열의 모습과도 닮았다. 세상과 마지막 조우를 하듯 호텔 로열을 찾았다. 그들의 모습은 공허해 보였고 어딘지 모를 우울함을 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우리들의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가정도 집안을 들여다보면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어느 것이 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 꽤 괜찮다.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의 황혼기,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어쩌면 겨울이라고 해도 좋을 계절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11월, 전 같으면 나는 겨울이라고 우겼겠지만, 이제는 가을이라고 우길련다. 가을이 참 좋다는 것을 나는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높다란 파란 하늘과 그에 대비되는 울긋불긋한 단풍들 때문에 그저 가는 가을이 아쉬울 뿐. 내가 느끼는 계절의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참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시간들 속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탓일게다. 어느 순간이라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최근의 나는 더욱 이러한 감정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한때 나의 삶에 비관적인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독서로, 여행으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견뎌왔다. 책은 나의 벗이자 친구가 되었고,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때는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와야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덧없고, 하찮은 인생같지만, 우리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책 속의 문장에서처럼 인간은 덧없고 하찮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계속되고 있다.

 

황정은 작가의 단편 몇 편과 장편 두 편을 읽었다. 계절의 영향 탓인지, 황정은 작가의 글에 적응을 한 탓인지 황정은의 소설이 몹시 좋았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말은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끊긴 뒤 이어가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이 한 마디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시선을 한 곳에 모아주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삶에 지칠때, 그만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계속 살아보겠다, 라는 의미를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이런 의미로 읽혔다. 책 속의 주인공 소라 나나 나기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삶을 살기 보다는 아웃사이더처럼 살아가는 것도 같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보다는 그들끼리만 뭉쳐있다고 해야겠다. 이들은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 본인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소라와 나나, 나기가 그들이다. 이들 이름이 한글 이름 같지만, 모두 한자로 된 이름을 갖고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한자 이름에 대한 뜻풀이부터 시작한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자매에게는 애자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가 있다. 엄마에게는 금주라는 남편이 있었다. 금주 씨가 일하던 공사장에서 죽었다. 아빠 금주가 죽은후 엄마 애자는 삶의 방향을 잃었다. 소라와 나나가 있었지만, 엄마 애자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보다는 남편 금주가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이런 엄마 애자를 소라와 나나는 '애자씨' 라고 부른다. 나나는 자신을 가리켜 '나' 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인 '나나'라고 부른다. 언니 소라에게도 마찬가지. 아주 절박할 때만 언니라고 부를 뿐, 평소엔 늘 소라다.

 

 

이 두 자매인 소라와 나나의 곁에서 마치 세 개의 물방울이 하나의 물방울로 뭉쳐지듯, 때로는 다정한 오빠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는 나기가 있다. 이들은 펼쳐진 나비의 날개 혹은 데칼코마니처럼 활짝 펼쳐진 듯한 집에서 처음 만났다.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227페이지)

 

 

소라, 나나, 나기의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에 나나의 짧은 이야기를 한다. 덧없고 하찮은 인간이더라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나나의 말처럼,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더 힘든 일이 찾아와도 우리는 견뎌낼 수 있으며, 괜찮아, 괜찮아, 잘 할수 있어, 라고 말할수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나의 속삭임에 우린 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 나나가 계속해보겠다고 읖조리는 때부터 나나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어떻게든 견딜 것이고, 어떻게든 버틸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소라 나기와 함께. 소라나나나기나비바가 되어. 하나의 물방울처럼. 그렇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에 2박3일동안 짧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여행이라기 보다는 올레길 걷기라고 해야 더 맞겠다. 규슈에 있는 올레길을 가게 되면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규슈편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책을 다시 읽을 시간이 부족해 아쉽게도 그냥 출발했다. 일본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배에서 시간이 날때 교토편 두 번째 편을 읽었더니 일본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친숙했다.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 있지만,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많이 알지 못하는데서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은 우리와 역사를 같이 한 부분이 많지만, 정작 일본 역사에는 무지하다는 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피해의식만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총 4권으로 나뉜 일본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면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알았다. 우리에게서 건너간 문화유산도 자기들 식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일본 문화를 형성한 것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유홍준 교수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은 그 첫 번째로 규수편을 엮었고, 두 번째가 아스카, 나라편이었다. 세 번째 편이 교토의 역사 였고 이번 네 번째 책이 교토의 명소를 다루었다.

 

 

일본편 네 번째 권인 이번 책에서는 교토의 명소 중에서도 주로 일본의 정원을 다루었다. 일본 정원의 모습을 일본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과정들을 알수 있었다. 일본에 관한 사진에서나 실제로 본 일본의 정원은 우리나라의 정원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정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일본 정원은 우리나라 정원과는 좀 다른 면을 보였다.

 

제1부는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인 기온 지구의 건인사와 동시대의 정토종 사찰인 지은원을 답사했다. 제2부에서는 무로마치시대가 열리게 된 역사적 배경과 함께 상국사, 금각사, 은각사, 용안사, 남선사를 답사했다. 제3부는 다도의 본가인 우라 센케와 대덕사를 답사했고, 센노 리큐에 의해 일본의 다도가 완성되는 과정등을 답사했고, 제4부에서는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별궁인 가쓰라 이궁 등의 일본 정원들을, 제5부에서는 느긋하게 교토 시내를 거닐면서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것들을 엮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여행지에 관련 된 책을 읽거나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려 여행기를 읽고는 하는데,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읽는 일은 우리의 문화 유산과 함께 역사를 알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한 책이다. 우리나라 답사기를 읽을 때는 우리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문화 유산을 더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졌다. 반면 일본편을 읽을 때는 생소한 일본의 역사를 접하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일본 역사를 알고 난후의 문화 유산은 더 이해하기 쉽고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좌, 뒤를 돌아보는 불상 우, 수월관음도

 

대부분의 불상이 정면을 향하는데 반해, 위 왼쪽 사진의 불상은 뒤를 돌아보는 불상이다. 저자는 이 불상의 모습을 가르켜 아미타여래가 극락으로 돌아가면서 중생들이 잘 따라오나 걱정되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오른쪽의 사진은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이다.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국보 중의 국보가 되었을텐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한다. 우리가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수월관음도」의 사라를 시스루 패션이라고도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대덕사의 「수월관음도」는 용왕과 용녀가 등장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어 더욱 특별하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아름답다.

 

스토리텔링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일본은 은각사의 비와호 소수 수로를 따라 남선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길은 일본 근대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산책하던 곳이라 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한다. '철학의 길'을 걸을 때는 왠지 사색하며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쓰라 이궁의 연못 풍경

 

우리나라의 정원이나 일본의 정원이나 정원을 바라보거나 거닐면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낀다. 자주가는 담양 소쇄원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유도 소쇄원을 밖에서 감싸고 있는 대나무들과 돌로 된 담벼락, 자연스럽게 흐르는 연못의 물과 고요하게 앉아있는 듯한 정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본 정원은 자연을 재현한 인공적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한국 정원은 자연공간 안에 인공적인 건물이 배치되고 나무가 심어지고 화단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정원의 나무에 철저히 가위질을 하여 인공이 가미된 자연으로 경영하면서 어쩌다 잘생긴 소나무나 흐드러진 수양벚나무를 자연 그대로 맡겨둔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원에서는 자연의 멋을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무성한 곳을 다듬거나 빈 공간에 멋진 나무 한 그루를 배치하면서 정원을 조성한다. (......) '돌 10개를 놓으면 일본 정원사는 9개를 반듯이 놓고 나서 1개를 약간 비스듬히 틀어놓으려고 궁리하는데, 한국 정원사는 9개는 아무렇게 놓고 나서 1개를 반듯이 놓으려고 애씁디다.' (243페이지)

 

마루야마 공원의 벚꽃

 

 

어떤 곳을 가게 되면 늘 처음 찾는게 박물관을 먼저 찾게 되는데, 유홍준 교수 또한 박물관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교토국립박물관은 주로 헤이안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교토에서 생산된 문화재를 수집, 보관,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은 특히 사찰의 소장품이 많다고 한다. 교토에 가게 되면 꼭 방문해서 보고 싶다. 벚꽃이 활짝 필때 가면 더욱 아름다운 공원이나 가모강변의 산책길도 추천했다. 평소에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딱 좋을 산책길이기도 할 것 같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 일본편을 읽으면서 일본에 대해 무지했었다는 걸 알았고, 일본의 문화유산과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의 연관성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를 알고 난 뒤에 일본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일도, 그곳에 스며든 사연까지 알고 나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최근 가을을 제대로 느끼면서 시집, 에세이집, 일반 순수문학 류의 책을 자주 읽었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추리소설이 몹시 읽고 싶어지는 감정을 갖게 된다. 추리소설에 대한 목마름이랄까. 같은 문학 종류 중에서도 골고루 읽기를 좋아하는데 추리소설이야말로 생활의 활력을 주기 때문인것 같다.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단단히 쪼이게 만드는 역할 때문이겠다. 긴장으로 인해 온 신경이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프리 디버의 소설에 가장 강한 매력을 느낀 작품이 캐트린 댄스 시리즈인 『잠자는 인형』이었다. 사람의 동작을 보고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동작학 전문가인 캐트린 댄스의 활약에 굉장히 좋아하게 되어서이다. 제프리 디버의 신작 소식에 캐트린 댄스 시리즈이길 바란 점도 그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번 신작은 링컨 라임 시리즈도 캐트린 댄스 시리즈도 아닌 별도의 작품이었다.

 

제목과 함께 노란 바탕에 권총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에서부터 굉장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살짝 짧은 책이었다. 내용 또한 역순으로 진행된다. 세라라는 딸을 유괴당한 가브리엘라가 자신을 보호하는 샘과 함께 몸을 숨기고 있다. 딸을 유괴하고 옥토버리스트와 함께 미화 50만달러를 내놓으라는 조셉이 찾아와 권총을 발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글의 순서를 볼까. 처음 시작한 부분이 순서의 맨 마지막이다. 내용이 전개될수록 뒷걸음치는 듯 뒤에서부터 앞부분으로 순서가 올라오고, 내용은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된다. 결과가 있고, 사건이 있던 날로 돌아가는 형식이다.

 

가브리엘라의 딸을 유괴한 조셉이 권총을 발사해 누가 죽었는지, 가브리엘라의 딸 세라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알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되면서 어떻게 가브리엘라가 경찰의 추적을 받고, 가브리엘라를 도우는 대니얼 리어든과 대니얼의 동료 앤드류나 샘의 정체는 과연 어떻게 된건지 책의 뒷장으로 갈수록 우리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읽다보면, 가브리엘라의 정체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를 도우는 대니얼이나 그의 동료들의 정체도 수상하고,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지만, 경찰의 추적을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 가브리엘라의 정체가 제일 궁금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잃은 엄마답지 않은 점이 수상했다. 아이를 잃은 엄마라면 이렇게 행동할 수 없을텐데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책의 뒷부분, 즉 사건의 시작을 향해 갈수록 이들의 정체를 더 알수 없었다. 책의 뒷장으로 갈수록 반전의 반전이 전개되는 통에 머릿속으로 사건을 점검해보고, 메모지에 나의 의문점들을 적어가며 책을 읽게 되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특성이 유괴범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주고, 왜 유괴를 저질렀는지, 왜 살인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그에 반해 『옥토버리스트』는 왜 이런 사건이 생겼는지 사건의 처음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때문에 조바심이 생길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영화로 제작되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 책의 제1부 첫장에 가까워올수록 드러나는 가브리엘라의 정체라니. 새로운 시리즈 가브리엘라의 탄생일수도 있겠다. 책의 앞장에서부터 다 읽고나면, 거꾸로 된 순서 때문에라도 책의 뒷장에서부터 앞장으로 다시 읽어야만 한다. 그래야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드러나게 되므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식의 제프리 디버의 소설도 참 좋구나 하고 느꼈다. 자, 다시 책의 맨 뒷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자전거여행 - 전2권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하지만,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작가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함이다. 작가의 마음속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이기에.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가 나오면 대부분 구입해서 읽고는 한다. 그동안 김훈 작가는 나에게 어려운 작가, 꼼꼼하고도 날카로운 필치로 글을 쓰는 작가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자전거 여행』이라는 에세이집을 알게 되었다. 책은 품절이었다. 아마도 출판사 '생각의 나무'의 사정이 생겨 품절이 되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편집으로 거듭났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겠지만, 멀리 하는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란 너무 힘든 일이 될 것이므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은 쉽게 책장을 넘기며 읽을 수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는다. 짧은 문장들이 이어지는 그의 문장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문장 속 깊은 의미를 파악하느라 나는 김훈의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천천히 읽어도 책을 읽는 기쁨이 컸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을 보라. 너무 아름다운 문장에 나는 이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스미는 풍경은 머무르지 않고 닥치고 스쳐서 불려가는데, 그때 풍경을 받아내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풍경은 바람과도 같다. 방한복을 벗어버리고 반바지와 티셔츠로 봄의 산하를 달릴 때 몸은 바람 속으로 넓어지고 마음은 풍경 속으로 건너간다. 나는 몸과 마음의 풍경이 만나고 또 갈라서는 그 언저리에서 나의 모국어가 돋아나기를 바란다. (2권, 12페이지)

 

 

 

저어기, 전남 여수의 돌산도에서부터 강원도 고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자전거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곳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마치 그의 육성으로 듣는 듯, 그가 설명하는 역사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듯 그의 문장들을 읽는다. 위의 글에서처럼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그 곳의 풍경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듬을 느끼는 것이다. 스미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김훈 작가도 자전거 여행을 하며 가슴속에 스미는 풍경들을 느꼈던 듯 하다.

 

양수리의 두물머리 물가에서 태어났던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매부 등의 숨결이 묻혀있는 곳의 이야기를 할때 우리는 저절로 김훈 작가가 쓴 작품 『흑산』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다산의 치욕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한평생 간직했던 침묵이다. 치욕은 생애의 중요한 부분이고, 침묵은 역사의 일부다. (1권, 172페이지)

 

전북 군산 옥구 염전에서 소금을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가 소금에 대해 말하는 문장을 보면,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 알 속에서 고요해야 한다. 대체로 알이 굵은 소금이 고요한 소금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염전의 물이 흔들리는 날에는 좋은 소금을 거둘 수가 없다. 소금의 안정이 흔들려서 소금 알이 잘아지고 쓴맛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는다. (1권, 213페이지) 염전 근처에 여행을 가면 30킬로그램 소금을 한 포대씩 구매해 오곤 하는데, 소금 알이 굵은게 좋은 소금인줄 몰랐다. 소금은 크기와 상관없이 다 좋은 소금인줄 알았지.

 

 

 

남도의 여행지중 내가 방문 했던 부분을 읽을때는 반가움이 앞섰고, 내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 부분을 읽을때는 메모를 해 가면서 읽었다. 책은 새로운 곳으로의 안내자다. 여행서적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동경을, 여행을 계획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계획서가 된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지역을 다시 꼽았다. 메모지에 메모해놓고 책 맨 앞장에 붙여놓았다. 메모해 놓은, 내가 올 겨울에 가고 싶은 여행지는 안동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부석사 무량수전 등이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일정이 맞지 않아 늘 미뤄두었던 곳인데 올해에는 꼭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파주부분에서는 오랜만에 이승복 동상을 보고는 감회에 젖었다. 초등학교 다닐때 어느 초등학교난 이승복 동상이 운동장 쪽에 있어서 북한의 잔혹성에 대한 반공교육을 일깨우곤 했었다. 요즘엔 북한과의 사이가 좋아져 이승복 동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또한 아픈 과거이리라.

 

『자전거 여행』은 김훈 작가와 사진작가 이강빈이 함께 자전거로 여행한 곳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된 글은 김훈 작가가 썼지만, 책 속의 풍경 사진은 이강빈 사진작가의 솜씨이다. 산악 자전거를 끌고 피곤함을 무릅쓰고서 자전거로 달렸을 그 거리에서 수많은 땀을 흘렸을 것이다. 그의 땀내 물씬 나는 글을 읽었다. 그의 땀방울이 여러 문장으로 되어 우리에게 책으로 다가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