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의 황혼기,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어쩌면 겨울이라고 해도 좋을 계절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11월, 전 같으면 나는 겨울이라고 우겼겠지만, 이제는 가을이라고 우길련다. 가을이 참 좋다는 것을 나는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높다란 파란 하늘과 그에 대비되는 울긋불긋한 단풍들 때문에 그저 가는 가을이 아쉬울 뿐. 내가 느끼는 계절의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참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시간들 속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탓일게다. 어느 순간이라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최근의 나는 더욱 이러한 감정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한때 나의 삶에 비관적인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독서로, 여행으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견뎌왔다. 책은 나의 벗이자 친구가 되었고,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때는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와야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덧없고, 하찮은 인생같지만, 우리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책 속의 문장에서처럼 인간은 덧없고 하찮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계속되고 있다.

 

황정은 작가의 단편 몇 편과 장편 두 편을 읽었다. 계절의 영향 탓인지, 황정은 작가의 글에 적응을 한 탓인지 황정은의 소설이 몹시 좋았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말은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끊긴 뒤 이어가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이 한 마디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시선을 한 곳에 모아주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삶에 지칠때, 그만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계속 살아보겠다, 라는 의미를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이런 의미로 읽혔다. 책 속의 주인공 소라 나나 나기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삶을 살기 보다는 아웃사이더처럼 살아가는 것도 같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보다는 그들끼리만 뭉쳐있다고 해야겠다. 이들은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 본인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소라와 나나, 나기가 그들이다. 이들 이름이 한글 이름 같지만, 모두 한자로 된 이름을 갖고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한자 이름에 대한 뜻풀이부터 시작한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자매에게는 애자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가 있다. 엄마에게는 금주라는 남편이 있었다. 금주 씨가 일하던 공사장에서 죽었다. 아빠 금주가 죽은후 엄마 애자는 삶의 방향을 잃었다. 소라와 나나가 있었지만, 엄마 애자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보다는 남편 금주가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이런 엄마 애자를 소라와 나나는 '애자씨' 라고 부른다. 나나는 자신을 가리켜 '나' 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인 '나나'라고 부른다. 언니 소라에게도 마찬가지. 아주 절박할 때만 언니라고 부를 뿐, 평소엔 늘 소라다.

 

 

이 두 자매인 소라와 나나의 곁에서 마치 세 개의 물방울이 하나의 물방울로 뭉쳐지듯, 때로는 다정한 오빠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는 나기가 있다. 이들은 펼쳐진 나비의 날개 혹은 데칼코마니처럼 활짝 펼쳐진 듯한 집에서 처음 만났다.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227페이지)

 

 

소라, 나나, 나기의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에 나나의 짧은 이야기를 한다. 덧없고 하찮은 인간이더라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나나의 말처럼,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더 힘든 일이 찾아와도 우리는 견뎌낼 수 있으며, 괜찮아, 괜찮아, 잘 할수 있어, 라고 말할수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나의 속삭임에 우린 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 나나가 계속해보겠다고 읖조리는 때부터 나나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어떻게든 견딜 것이고, 어떻게든 버틸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소라 나기와 함께. 소라나나나기나비바가 되어. 하나의 물방울처럼. 그렇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