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요시다 에리카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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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화제의 드라마 오리지널 소설화!

『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

요시다 에리카 소설 / 아르테






저랑 연애 감정 빼고

가족이 되지 않으실래요?



흔히 사람들은 "어떻게 남녀 사이가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보통은 얘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보통이 아니기에 친구사이가 가능할거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어쩌면 보통의 삶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살고 싶으나 가끔은 외로움에 몸서리 칠 경우도 있으니 사랑이란 감정을 배제하면 친구까지는 가능하겠으나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에선 가족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은 '도라마코리아'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로 배우 타카하시 잇세이 주연으로 상당히 호평을 받는 드라마다. 그러한 이유로 드라마 각본가가 세세한 내용들을 담아 책으로 출간한 것인데 일본소설답게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스토리였다.





가족이란 말이야.

가족 한 명 한 명의 '어떻게 하고 싶다'와 '어떻게 해주고 싶다'가 항상 부딪치는 관계라고 엄마는 생각해.

실은 부딪칠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부딪치기 십상이지.



대형 슈퍼마켓 본사 영업전략과 소속인 고다마 사쿠코는 프랜차이즈 슈퍼 마루마루의 진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특히 그곳의 채소코너가 눈에 띄는데, 제철 채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배치하고 색감도 어우러지게 진열했다는거... 우연히 마주친 진열담당 다카하시 사토루에게 듣는 이도 무안할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는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후배는 사실 사쿠코에게 마음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만다.

문제는 사랑이란 감정이 너무나 어려운 사쿠코... 남자친구도 사귀어 봤고 키스도 해봤지만 그저 불편한 행위였기에 자신을 좋아하는 타인의 감정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당연스러우면서도 삶의 경계를 침범하면 그저 이 이야가 빨리 중단되길 바랄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내가 별난 사람인가 싶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날개빛 양배추란 블로그에서 '에이로에이섹'에 관한 글을 발견하게 된다. 에이로에이섹이란 연애 감정을 품지 않는 에이로맨틱과 남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에이섹슈얼의 줄임말로 사쿠코 본인 외에 다른 이들도 존재하고 있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렇게 찾아낸 날개빛 양배추의 정체는 다카하시... 사쿠코는 그에게 사랑 없는 동거를 제안했고 둘은 임시가족으로 함께 살게 된다. 과연 두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삶의 궁극적 목표는 진정한 행복임을 의심치 않게했던 소설이었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어쩌면 나도 이러한 삶을 희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뿌듯하며 만족스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이 최고의 날... 만약 그런 인생을 산다면 그 누구가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나는 마음껏 응원할 것 같다. 보통의 삶이 아닌 내 진정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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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이디스 워튼 지음, 최현지 옮김, 하성란 추천 / 엑스북스(x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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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이디스 워튼 / 엑스북스






'영혼'이 있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디스 워튼이 안내하는

작가의 내면과 소설 쓰기의 본질



먼저 원제 'The Writing of Fiction'이란 소설쓰기가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을까?란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자 이디스 워튼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과 작가로서의 집요한 야심이 투영되어 끝없는 고군분투로 성장한 그녀의 삶과 연결지어진게 아닐까 싶다. 버들치 같은 천적이 있었음에도 피부로 호흡하며 일생을 땅 위에서 보내며 놀랍도록 다시 살아나는 재생능력을 가진 도롱뇽처럼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만한 소설쓰기...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은 변화무쌍한 작가의 색채로 반복적으로 쓰는 행위를 통해 습관적으로 인물을 탐구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어떻게 영혼을 불어넣을지에 관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애정했던 작가 발자크, 스탈당 등의 통찰 또한 보여주고 있어 읽는내내 흥미로운 자극을 받게 되었다.





소설의 관행을 다룬다는 것은

가장 새롭고, 가장 변화무쌍하며,

가장 덜 공식화된 예술을 다루는 일이다.

기원에 관한 탐구는 언제나 매혹적이지만,

현대소설을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온전히 역사적인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소설이 소설 속 '행위'가 영혼으로 옮겨왔을때 시작되었으며 인간적인 관심을 이끄는 일관성있는 재료선택으로 작품이 탄생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인물의 성격 묘사가 중요하지만 작품 속 인물은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미숙함도 드러내기에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큰 그림보다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특정 주제를 섬세히 착수하는 것이 첫걸음이며 새로운 시각의 진정한 독창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단편소설쓰기에 대한 에세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편에서의 좋은 주제는 장편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들이어야하며, 스토리에 안정감을 주어 모든 구절에 이정표가 존재해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소설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단편의 의무라고... 어쨌든 소설은 인물을 경험으로 성장시키고 실제 우리들의 삶에 공감되는 기복으로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거... 그렇게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에서는 소설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소설을 가능케하는 잣대를 보여준다.





"생각이 아름다울수록 문장이 갖는 소리는 더 맑게 울린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마치 나와 연결되어 있는 듯 소설은 독자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 속의 삶들이 가끔은 내 마음속에 흩어져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 감정의 이입 또한 적지않기에 소설쓰기는 어쩌면 보이지않는 공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소설쓰기를 갈망하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을 통해 영혼이 깃든 소설쓰기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고 내면의 본질을 찾게 되면 가능케 될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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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미아우 지음 / 마카롱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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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 편지'를 둘러싼

또 하나의 미스터리

『 낭패 』

미아우 장편소설 / 마카롱






언(言)이 행(行)을 뒤따르면 신뢰를 주고,

언이 행을 앞서면 의심을 받는 법이다.



모든 인간은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무릇 보통의 사람들은 악행의 마음을 이성으로 억누르며 옳은 길을 찾으려 하지만 사악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기도 한다. 

<낭패>는 조선의 임금 중에 소통의 달인이라 불렸던 정조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미스터리한 역사소설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의 신원을 위한 아들 정조의 모습도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는 주인공 재겸이 왕의 팽례가 되어 과연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본시 사람의 마음이란

감추고 감추어도 터럭 같은 감정이 돋아나기 마련입니다.

(중략)

저에게는 그 찰나에 스쳐 가는 표정들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좋은 눈썰미가 있사옵니다.



5대째 가업을 이은 개성 최대의 상단... 

어째서인지 대행수 길평은 임시 서기 자리를 내어주며 청나라로 갈 인삼의 수송을 맡으라고 재겸에게 지시한다. 뭔가 석연치 않았음에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재겸과 동생 서조의 노비문서를 파기해준다고 약조하여 거부할 수 없었다. 문제는 청나라로 가던 중 도적의 습격을 받았고 도망중에 짐수레를 확인한 재겸은 인삼이 아닌 지푸라기와 조삼이 실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상황을 알리려 상단으로 돌아온 재겸은 단주 내외의 죽음과 거대한 불길을 마주하게 되었다는거... 길평의 새치혀에 누명까지 쓰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만다.

복수를 위해 시전 놀음판을 돌아다닌지 언 10년...

투전꾼을 잡으러 온 관군에게 붙잡힌 재겸은 형조참의 정약용 앞으로 끌려가 죄값대신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라는 명을 받게 되고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않아 은밀히 조선의 왕 정조와 대면하게 되는데...

시파와 벽파로 나뉜 조정, 세간의 사람들은 시파가 정조의 사람이라 말하지만 실제는 누군가를 믿고 자신의 속내를 내비칠 사람이 없다는 왕의 외로움이 묻어난 목소리에 왕의 팽례가 되어 비밀 편지를 전달하기로 결심한 재겸은 사헌부 심환지의 진실을 밝혀내기로 하는데... 찰나의 표정으로 마음을 읽는 재겸은 과연 모든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내려 볼 수 있는 용좌의 이면은 그저 외로움뿐이었다. <낭패>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과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면의 의지를 보여주는 미스터리 역사소설이다. 어쩌면 경쟁사회 속 누구를 밟아야만 오를 수 있는 이기적인 면모도 보여주는듯 했다. 제목처럼 그의 마지막은 실패였을까?... 아니면 반전의 엔딩을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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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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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 한밤중의 아이 』

츠지 히토나리 / 소담출판사








나카스 사람들은 그를

'한밤중의 아이'라고 불렀다.



무관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사각지대의 아이들...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태어나는 순간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된다. <한밤중의 아이>라는 제목에 가슴이 무너지고 혹시 내가 생각하는 학대나 방관에 대한 이야기일까싶어 덜컥 겁이 났다.

가끔 영화를 보고 싶을 때마다 전원을 켜긴하지만, TV리모컨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물거릴 정도로 우리집TV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TV를 켰다하면 각종 사건사고는 둘째치고 갈수록 잔혹해지는 아동학대사건때문에 가감없이 방송되어지는 추악함을 아이들에게 노출시키기 두렵다는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란 전염병으로 음지에 숨겨진 더 많은 학대가 수면위로 올라왔다는거... 보여지는 것보다 보여지지않는 것들이 여전히 더 많을것이라는 생각때문에 밤잠을 못이루기도 했다.

<한밤중의 아이>는 처참한 현실 속에 버려진 호적이 없는 아이 렌지의 이야기다. 일본소설에서 느낄수 있는 잔잔한 감동때문에 이 스토리가 미화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읽어내기 전까지 아픈 마음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어떤 현실과 맞닥뜨리더라도 아이는 성장한다는 말이 아마도 한밤중의 아이 렌지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안 좋은 건 익숙해진다는 것이죠.

아동 학대에 대한 것도 업무 효율을 따져서

가장 심한 케이스부터 처리하게 되거든요.

순위를 매기는 거예요.

그나마 이 케이스는 아직 어떻게든 헤쳐 나갈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라고 넘겨 버리는 겁니다.



경찰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나카스 파출소에 부임한 히비키는 당시 스무 살이었다. 그가 한밤중의 아이 렌지를 만난건 늦은 밤 공원을 순찰하던 때였다. 그곳은 어린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 요정이 즐비해 있는 그곳에 다섯살 어린이가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니 히비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아카네는 클럽에서 호스티스를 그리고 아빠 마사카즈는 호스트로 밤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렌지는 이곳 나카스에서 태어나 한밤중에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굶주린 배를 채우고 다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파출소로 데려와 음식을 시켜준 히비키는 렌지의 몸에서 멍자국을 발견한다. 아동 상담소에 데려갔으나 호적조차 없는 렌지는 보호받기 어렵다는 막막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세상인 '나카스국'을 만들며 희망을 쌓아갔던 렌지... 공원에 텐트를 치고 사는 겐타와 변함없는 마음으로 기다려준 히사나 그리고 부모를 제외한 나카스 사람들의 온정은 어린 소년을 희망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게 하였다. 



아팠지만 감동이었고 위태로운 현실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왜 그렇게밖에 못사느냐고 따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어른은 지켜야할 소중한 존재를 쉽사리 놓아버려선 안된다는 것이 독자의 생각이다. 

<한밤중의 아이>를 읽고 내 아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는데 앞서가지 못한다며 꾸짖었던 나를 혼내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아무 잘못없는 세상의 모든 아이가 행복했음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가졌던 오늘이었다. 

그러네... 결국엔 나도 희망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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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파란만장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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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명창 이날치,

21세기 소설로 되살아나다!

『 이날치 : 파란만장 』

장다혜 / 북레시피








쫙 빼입고, 부채 들고, 노래 부르는 거!

느가 허고 잡다 혔냐, 안 혔나?

동헌마루서 소리허던 아재 기억나제?

명창 송방울?

여를 나가면 느가 그리될 수도 있당께.



"살아만 있다면 하고 싶었던 모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간절한 메세지조차 사는 내내 절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신분이 미천한 자들은 이름 석자 기록되지 않을 뿐더러 한낱 비루한 몸인지라 거적대기 하나 입혀 죽임을 당해 버려진다해도 어느 양반댁 천것이거니 하고 팔자타령만 하고 끝난다.

<이날치 : 파란만장>은 무엇 하나 내 것으로 만들 수 없고 연모의 마음조차 마음껏 품지 못한 절규를 그려내고 있다. 아름답기만 해야 하는 사랑이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매듭짓지 못한 아픈 사랑... 애초부터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이날치가 어쩌다 줄꾼이 되었으며 쉼없는 좌절 끝에 바로 설 수 있었는지 그 애달픈 목소리가 이 속에 들어 있었다.







진탕 원망하고, 실컷 증오하고,

목구멍이 찢어져라 아르렁대야

비로소 앞을 향해 걷는 게 가능하다는 걸,

그것만이 이 거지같은 삶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도라는 걸

천것이면 누구나 아는 때문이었다.



역병에 가뭄 그리고 거듭된 흉작은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역귀로 의심되는 천것들을 모조리 태워 없애라는 명이 떨어졌다. 자식 하나 살리고자 험한 욕지거리를 내뱉던 억삼은 아들 계동에게 열 살도 안된 아그는 저승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구천에서 혼자 떠돌아 다녀야하니 역병에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을 기회로 삼아 부채들고 노래를 부르라며 아들의 등을 떠민다. 이제 계동이 아니라 경숙이니 북쪽 한양으로 가서 신분갈이를 하라고... 이리저리 치인 끝에 남사당패의 최고의 줄꾼 이날치가 탄생한다.

조선 후기의 장터... 도포 자락 휘날리며 쥘부채를 들고 줄위에서 아랫것 내려다보듯 미소짓는 이 훤칠한 남자 이날치는 줄순이라 불리는 추종녀들에게 인기만발이었다. 겉으로는 호색한처럼 보이지만 그는 국창 송방울의 제자가 되어 임금 앞에 서는 것... 문제는 화정패의 꼭두쇠가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노름패를 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묵묵히 저를 아들처럼 아껴주던 묵호가 있어 이 지긋한 상황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용두재의 채상록의 생가에 자리잡은 사당패... 채상록은 공주의 부군으로 일찌감치 요절한 공주의 상을 치르며 의빈으로 죄스럽게 살고 있었으나, 과거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여인과 닮은 백연을 그 집에 들여 시끄러운 사당패 틈에 숨겨 두었다는거... 백연은 눈 맞으면 삼 년이 재수없다는 곡비로 앞도 볼 수없는 처지의 가련한 여인이었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처절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거... 16부작 드라마를 보듯 머릿속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필력은 과연 대단하다란 말로도 부족한듯 하다. 읽는내내 제발~ 제발~ 이란 말들이 수없이 내뱉어지는 <이날치 : 파란만장>... 저자의 전작 <탄금>을 기억한다면 이 책 또한 애달프고 아팠다 말하고 싶다.



이날치에 대한 변변한 문헌을 찾을 수 없었다던 저자는 역사소설이지만 철저하게 문학적으로만 다가갔다고 한다. 거적거리 장터라도 줄 위에 서면 모두가 환호하지만 줄 아래 내려서면 이 땅에 설 자리가 없었던 천하디천한 광대들일 뿐이었음을... 가슴에 한을 품고 소리꾼으로 변모하기 위한 이날치의 위태로운 삶은 그저 사는게 고통이었다는 점에서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날치 : 파란만장>은 밤에 홀로 나는 새와 같고 조용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같은 외로운 역사소설이었다. 살아있으니 세상을 향한 소리는 멈추지 못했고 아직 이뤄야 할 것이 남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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