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 파란만장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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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명창 이날치,

21세기 소설로 되살아나다!

『 이날치 : 파란만장 』

장다혜 / 북레시피








쫙 빼입고, 부채 들고, 노래 부르는 거!

느가 허고 잡다 혔냐, 안 혔나?

동헌마루서 소리허던 아재 기억나제?

명창 송방울?

여를 나가면 느가 그리될 수도 있당께.



"살아만 있다면 하고 싶었던 모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간절한 메세지조차 사는 내내 절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신분이 미천한 자들은 이름 석자 기록되지 않을 뿐더러 한낱 비루한 몸인지라 거적대기 하나 입혀 죽임을 당해 버려진다해도 어느 양반댁 천것이거니 하고 팔자타령만 하고 끝난다.

<이날치 : 파란만장>은 무엇 하나 내 것으로 만들 수 없고 연모의 마음조차 마음껏 품지 못한 절규를 그려내고 있다. 아름답기만 해야 하는 사랑이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매듭짓지 못한 아픈 사랑... 애초부터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이날치가 어쩌다 줄꾼이 되었으며 쉼없는 좌절 끝에 바로 설 수 있었는지 그 애달픈 목소리가 이 속에 들어 있었다.







진탕 원망하고, 실컷 증오하고,

목구멍이 찢어져라 아르렁대야

비로소 앞을 향해 걷는 게 가능하다는 걸,

그것만이 이 거지같은 삶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도라는 걸

천것이면 누구나 아는 때문이었다.



역병에 가뭄 그리고 거듭된 흉작은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역귀로 의심되는 천것들을 모조리 태워 없애라는 명이 떨어졌다. 자식 하나 살리고자 험한 욕지거리를 내뱉던 억삼은 아들 계동에게 열 살도 안된 아그는 저승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구천에서 혼자 떠돌아 다녀야하니 역병에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을 기회로 삼아 부채들고 노래를 부르라며 아들의 등을 떠민다. 이제 계동이 아니라 경숙이니 북쪽 한양으로 가서 신분갈이를 하라고... 이리저리 치인 끝에 남사당패의 최고의 줄꾼 이날치가 탄생한다.

조선 후기의 장터... 도포 자락 휘날리며 쥘부채를 들고 줄위에서 아랫것 내려다보듯 미소짓는 이 훤칠한 남자 이날치는 줄순이라 불리는 추종녀들에게 인기만발이었다. 겉으로는 호색한처럼 보이지만 그는 국창 송방울의 제자가 되어 임금 앞에 서는 것... 문제는 화정패의 꼭두쇠가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노름패를 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묵묵히 저를 아들처럼 아껴주던 묵호가 있어 이 지긋한 상황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용두재의 채상록의 생가에 자리잡은 사당패... 채상록은 공주의 부군으로 일찌감치 요절한 공주의 상을 치르며 의빈으로 죄스럽게 살고 있었으나, 과거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여인과 닮은 백연을 그 집에 들여 시끄러운 사당패 틈에 숨겨 두었다는거... 백연은 눈 맞으면 삼 년이 재수없다는 곡비로 앞도 볼 수없는 처지의 가련한 여인이었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처절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거... 16부작 드라마를 보듯 머릿속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필력은 과연 대단하다란 말로도 부족한듯 하다. 읽는내내 제발~ 제발~ 이란 말들이 수없이 내뱉어지는 <이날치 : 파란만장>... 저자의 전작 <탄금>을 기억한다면 이 책 또한 애달프고 아팠다 말하고 싶다.



이날치에 대한 변변한 문헌을 찾을 수 없었다던 저자는 역사소설이지만 철저하게 문학적으로만 다가갔다고 한다. 거적거리 장터라도 줄 위에 서면 모두가 환호하지만 줄 아래 내려서면 이 땅에 설 자리가 없었던 천하디천한 광대들일 뿐이었음을... 가슴에 한을 품고 소리꾼으로 변모하기 위한 이날치의 위태로운 삶은 그저 사는게 고통이었다는 점에서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날치 : 파란만장>은 밤에 홀로 나는 새와 같고 조용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같은 외로운 역사소설이었다. 살아있으니 세상을 향한 소리는 멈추지 못했고 아직 이뤄야 할 것이 남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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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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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가 인간이다

『 김장 』

송지현 소설 / 교유서가








나의 가난한 어린 시절 또한 먹고 살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버텨냈던 계절 중에 겨울은 시리도록 힘들었던 기억들로 가득차 있었고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농담을 던지듯 곰처럼 겨울잠을 잘거라 선포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말이지 시린 바람이 불어올때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나...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마음껏 느끼지 못한 채 중년이 되어버렸다.

두 계절을 가로지르는 청춘의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김장>이란 제목이 무척 인상깊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는 지긋지근한 일 일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나는 연례행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이 소재로 이시대의 청출을 그려냈다니 요즘 읽을만한 책으로 제격인듯 싶다.







저멀리 자그맣고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점방인지 아닌지,

맥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그곳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보면 나는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유년 시절 방학만 되면 할머니 댁을 찾았다. 동네 언니 오빠들과 아이 엠 그라운드를 하고 엄마와는 산딸기를 땄던 추억도 있었다. 삼촌 장롱엔 야한 잡지와 김전일을 보면서 지냈던 기억도... 잊고 있었는데 간만에 할머니 댁으로 오니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할머니가 우리집에 계실 적엔 늘 김장을 했다. 우리만 먹을 게 아니라 이모와 삼촌네꺼까지... 병환으로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는데 올해는 혼자 김장을 하기 힘드시다며 우리를 불렀다. 성인이 된 지금 옛 추억을 떠올려보니 나의 길을 가느라 점점 늙어지는 내 곁의 사람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거...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김장을 시작으로 산딸기를 수확하는 여름까지, 두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나는 여전히 어디로 향하는지...



<김장>은 과거로 흘러간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청춘의 이야기다. 김장이란 핑계로 할머니댁을 찾았던 나는 깊었던 강이 작은 시내로 변모한 것을 보았고 갈라진 물줄기에 내 삶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여전히 갈래길에 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알던 이들도 예전과는 달랐고 이미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으니 나의 삶 또한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혼란한 세상에 갈팡질팡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 <김장>은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지금 내 자신이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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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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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지극한 위로

『 십분 이해하는 사이 』

김주원 소설 / 교유서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마냥 죽고 싶다는 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살아남으라 전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삶의 굴곡이 생기기 마련이고 너무나 힘들어 지쳐 쓰러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견뎌내는 힘을 기른다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십분 이해하는 사이>는 삶의 기로에서 하염없이 흔들리는 청소년도서이지만 책 제목 그대로 십분의 이해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찬란한 봄날의 빛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삶의 끈을 놓지않게 만든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은 존재라도...







잘못된 선택이라고는 안 할게.

하지만 최선의 결정도 아니야.



체육시간 운동장에는 시끄럽게 농구하는 친구들이 있다. 학교 5층 옥상의 난간에 서 있는 나를 보지 못한채... 투신하려는 나를 두고 누군기 뒤에서 말을 걸며 만류를 하지만 그의 말에 대답할 이유도 그리고 뒤돌아볼 여유도 없다. 

지금의 나는 아무생각도 없이 아래만 쳐다보고 있지만 뒤에서 쉼없이 떠들어대는 누군가의 '이해'가 나를 붙잡는 듯 했다. 그렇게 거리를 좁혔던 그와 나는 난간에 걸터앉아 쓸모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사실... 그와 나는 그때는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는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여전히 끔찍한 곳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고작 십분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십분 이해하는 사이>는 학교폭력의 폐해를 얘기하면서 대화의 단절이 가져오는 아픔을 말하는 듯 했다. 투신을 결심한 친구 뒤에서 이를 만류했던 친구 사이에 나눴던 대화는 고작 십분... 어쩌면 이 소설은 짧은 시간조차 대화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으려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던게 아닐까? 흔들리는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나약한 어른의 실상을 말이다.

책 속의 '나'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고 위로의 말을 건네줄지 몰라고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되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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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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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가장 싱싱하게 일렁이는

시인 열세 명의 신작 시 모음

『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 고유서가







어쩌면 인간은 이차원의 세계 속에서 이중적 가면을 쓰고 공존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냥 지나치거나 발견되거나... 혹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존재하는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도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는 오늘의 시인 13인의 작품으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마치 이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나를 투시하듯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통증은 성격 같아서 제각각이고

언젠가는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어서

간병인은 곁을 지키는 파수면서

주치의에게 전달하는 파발이다



앤솔러지 시집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중에서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전영관의 간병인은 공허함을 느끼게 해 준 좋은시였다. 아픈 사람의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라고나 할까? 가족 대신 손을 잡아주며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남겨두는 마치 마지막을 위해 남겨두는 보험처럼 말이다. 

의사처럼 병을 고치는 능력은 없지만 아픔을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이며 삶의 마지막에도 유일하게 함께 하는 이가 간병인이라는 사실... 그래서 간병인은 신음과 통증을 번역하는 사람이라는 글귀가 무척이나 아프게 다가왔다.

오늘의 시인 13인이 저마다의 색으로 보여주는 빛나는 언어들은 어느 세기를 살고 있던간에 결코 굽히지 않을 희망을 선사하고 있었다.



시는 그때의 감정에 따라 전해오는 느낌이 무척이나 색다르다.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또한 저마다의 시인이 투영해 오는 색이 달랐는데,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이 살아내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억의 적층을 투과한 섬광의 순간들이 모두 빛나고 있다고... 노래하듯 들려준 시인들의 앤솔러지는 선물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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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버지니아 울프 -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수사네 쿠렌달 지음, 이상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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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인생이 되기까지

『 나, 버지니아 울프 』

수사네 쿠렌달 / 어크로스







버지니아 울프가 건네는

계속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만나면서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시대적 불평등이 서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성이기에 차별받아야 했던... 아니, 그것이 차별인지도 모르고 원래 그것이 옳은 것인줄 알았던 시대에 자기만의 온전한 삶을 위한 그녀의 고군분투를 옅보았습니다.

<나, 버지니아 울프>는 계속 쓰기위한 갈망을 거침없이 보여준 그래픽 전기로 모든 연령이 만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영혼의 의지가 흔들리고 존재의 가치가 무너졌던 그녀는 오직 글을 쓰는 것에 온 힘을 바쳤으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작품으로 드러내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요. 그런 그녀의 일생을 만나볼까요?






나는 글을 다 끝냈습니다.

그보다 훨씬 나은 것은 바로 침묵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강렬한 메세지는 이 책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혼동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그녀의 인생은 차별과 폭력이 있었지만 그녀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거든요. 그랬던 그녀가 침묵을 얘기하다니... 

버지니아 울프의 일대기를 그려낸 <나, 버지니아 울프>는 불행 가운데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삶의 원천... 바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난 버지니아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릴때 거울 앞에서 당한 성추행으로 가슴 깊은 곳에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지요. 그녀의 글쓰기는 여섯 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열다섯 살때부터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계기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됩니다.

우정으로 그녀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친 사람도 있었지만, 오랜시간 겹겹이 쌓였던 정신적인 문제로 병과 싸워야 했지만 그녀의 삶과 연결된 작품은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더 만나보고 싶지 않나요?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 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말합니다. 책 속에 들어있는 그림을 통해 그녀의 삶과 감정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이란 굴레와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차별...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자했던 그녀의 모습에 독자인 저 또한 투영하게 만들었던 <나, 버지니아 울프>는 작품으로 남아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돈이 있어야한다는 솔직담백한 말을 했던 그녀의 소용돌이와 같은 삶의 마지막은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답니다. 여전히 작품으로 남겨져 있으니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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