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뿌리들 1 - 개념사 1
이정우 지음 / 철학아카데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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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차분히 책상에 앉아서 사유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어떠한 문제에 대한 더욱더 폭넓은 해석을 위해서, 그리고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읽어내기 위해서 철학을 도구적으로 활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여러가지 개념들을 갖다 붙이면서 논쟁을 했었지만, 사실 그 개념들의 출발점이 어딘지, 그 역사적 맥락은 어떻게 검토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단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우리학교 철학과에 한철연(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의 강사들이 많은 관계로 그들이 만들어 낸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라는 곳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같은 현상학의 대가에게 '미디어 철학'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를 4학년 2학기 때에는 갖기도 했었다.

 이 책은 철학 아카데미의 좌장격이라 할 수 있는 소운 이정우 선생의 철학 기초강좌를 녹취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다. 2학기의 강좌가 있었기에 책은 두권이다.

 '개념-뿌리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지만 그 맥락은 전혀 검토되지 않는 개념들과, 그것들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검토한다.

 첫번째 권은 본질, 질료, 형상, 무한, 등등의 이론적 전제가 될 수 있는 개념들에 대해 살펴보고,
 두번째 권은 국가, 기예등의 실천적 문제들에 대해서 검토한다.

 이정우 선생은 끊임없이 철학사에 대한 이해와, 원전에 대한 꼼꼼한 독해(원어로 된 철학책에 대한 강조!)를 강변한다. 그것이 없이 철학을 이해하려들기 때문에, 빈곤한 번역들이 쏟아지고, 그것들이 작위적인 해석과, 철학적 빈곤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빈곤함은 소모적인 논쟁들을 일으킬 따름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어떠한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적인 호기심이 늘어났다는 점, 그리고 좀 더 엄밀하게 칼을 벼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아니, 가치가 있는 책이다.

 참 공부할 것은 미어터진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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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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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는 건 뭘까?,, 그건 지식의 용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숟가락질'이라는 것을 배운다.

지식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되는 것도 실상은, 몇꺼풀 벗겨내고나면, 우리의 일상과 맞다아 있을 법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식이 '거창하게' 불리는 걸 보면, 그 몇꺼풀이 깨나 두텁기는 한가보다.

그래서 지식인이 존재해왔고,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 몇꺼풀을 쉽게 푸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추상적 담론수준의 문제들을, 집에서 빨래하면서 듣는 라디오의 '여성시대'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예를 들면 비타민에 나오는 의사마냥) 지식인의 역할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은 하나의 'performance'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곧바로 지식인들은 광대로서도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지식인들, 특히 상아탑의 학자라는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 책무들보다, 이따금은 그들만의 세계에 심취해서 빠져서 자신들의 담론들 사이에서만 허우적 거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코는 그런 상아탑 속의 Armchair-philosopher(안락의자에 처박혀서 철학하는 먹물들)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에코는 광대가 되어 춤을 춘다.

분과학문의 경계따위는 허물어 버리고, 해박한 지식의 활용으로 시작도 끝도 정해지지 않은 춤을 춘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끝없는 지식의 질주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적 자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세상에 대한 풍자와, 새로운 영감의 생성이 동시에 춤을 춘다.(사실 에코 역시 니체주의자 중에 하나라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커피이야기부터, 지식인 사회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 따위까지. 그리고 인문학적인 이야기부터 첨단 테크놀로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움베르토 에코와 미셸 푸코를 자꾸 읽다보면 또라이가 된다던데, 이런 또라이라면 나도 그냥 잠시 또라이가 되보는 것도 멋질 듯 싶다.

죽음의 공포에서 빠져나오려면, 세상 모든 이들이 바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에코.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것은 사실 어쩌면 죽음에 대항하는 '삶의 활력' 그리고 삶의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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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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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가 희대의 사기극으로 밝혀지면서. 어느날 불현듯.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이런게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과학적 인식론(과학적 진리에 대한 작업들)에 관심을 갖고 몇권의 책을 만지작 거렸지만, 뭔가를 얻었다는 기분보다는, 뭔가를 모르고 있다는 기분에 짜증을 부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간만에 과학책 중에서(가장 가까이 그런 책으로는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정도?) 좋은 책을 하나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줄기세포' 사기극이 온 국민을 황당하게 만든 뒤, 익숙해져버린 생물학의 개념들, 그리고 인간과 맞닿는 문제들에 대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다시금 우리의 문제와 과학이라는 왠지 모를 거대한 주제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대담이다. 따라서 쉽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실 자연과학적(특히 생물학적) 마인드가 갖춰지지 않은이에게 그리 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토대로, 더 많은 깊은 독서를 요구한다. 그래서, 나같은 할일 없는 서생놈들에게는 참 많은 도움이 더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도정일보다는 이정우/이진경 이었으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 왜냐하면 도정일 선생이 보여주는 논의는 일견 '인문학' 전체를 포괄하는 것 같으나, 기실 그의 입장도 한정적 범위의 이성주의자일 따름이다. 오히려 그것들을 너머서려는 시도들을 하는 이정우/이진경의 후기구조주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었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한다.

예컨대/ 정재승 vs 이진경 / 최재천 vs 이정우 뭐 이런식으로?

한가지 더 느낀건,, 한국에도 최재천 같은 자연과학자도 있구나 하는 생각. 하지만 오히려 씁슬하다.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무드 하에서는 '이상한 것'으로 인식해야만 하는 나의 서글픔이란.....

자신의 컴퓨터 안에 연구주제가 산더미지만, 자기 제자의 자립을 위해서 공개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연구주제를 주는 순간에, 그 제자도, 그리고 자신도 "그렇고 그런 인스턴트 지식인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멋진 과학자.

여러 단상을 주면서, 활력을 또한 주는 귀중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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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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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좋아한다는 것

어렸을 때, 책이라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극복해야 하는 것'에 가까웠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는 녀석들에게 지독하게 시샘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책을 많이 읽는 다는 사실 그 하나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점점 책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로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책이 없으면 허전하다. 물론 집에 쳐박혀 있으면 아무 것도 안하고, PC와 TV를 켜놓고 소일하는 것에는 별차이가 없지만, 그 순간이 즐거워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고 싶어서 밖에 나가는 편이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실 내가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장소는 침대 머리맡이 아니라 오히려 버스의 좌석이고, 지하철의 구석자리이다(물론 가장 책이 잘 읽히는 장소는 도서관 열람실이나, 학교에서 잔디가 보이는 벤치 앞이다.).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은 도대체 책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지난번에 읽었던 이정우의 <<탐독>>(http://blog.aladin.co.kr/hendrix/1718148) 의 경우는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것이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궁금증이 풀렸던 것은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에는 책 그 자체와 생활하는 것의 질감과 향기도 있었다. 어쩌면 냄새도.

한량한 탐서주의자의 도서기행기

표정훈의 <<탐서주의자의 책>>은 그런 책과 함께 밀접하게 생활하는 '생활인'의 느낌을 전달해 준다. 그는 학자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전업 교수가 아니고, 출판인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그 작업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자신의 직업을 규정하는 데에 의외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간단하게는 '매문가'라고 규정하고, 그의 아내는 첫째 아이의 생활기록부에 올라갈 기록에 '번역/저술가'라고 기록했지만......

이 책은 꽉 짜여진 얼개에 맞춰서 조립하듯이 써있는 체계적인 글은 아니고, 그가 한편 한편 출판사에 부친 글들을 엮은 느슨한 책이다. 요즘 계속 느슨하게만 책을 읽는 나에게는 오히려 절묘하게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게 가볍게 쓰여져 있었다.

근데 '탐서주의자'라는 말이 낯설다. 책을 탐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탐서주의자는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과 선 위에 두는 사람'이 된다."(p.28)

이정도는 돼야 '탐서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자신을 딱히 규정하지는 않는 듯 싶으나, 우회적으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빌려준 책 돌려받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중략)... 친한 친구나 친척이라면, 아니 빌려간 사람이 그 누구라 하여도 돌려달라하기 어색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자니 백년하청이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빌린 사람은 잊어버리고 빌려준 사람의 속은 타들어간다."(pp.125-126)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부패방지나 공명선거 캠페인 표어로 적합할 듯한 이 말을 책에도 적용해야 하는 걸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철저하게 적용하고 싶다."(p.128)

이런 사람이니 장서 욕심이 대단한 것도 사실이고, 나도 이 사람의 책에 대한 욕심에 시샘마저 느끼기도 했다.

"책은 일사불란한 서가 풍경을 자아내는 수집과 소장 취미의 소중한 대상이어도 좋다. 난장 풍경을 자아내는 마구잡이 잡독가의 남획물이어도 좋다. 단 한 줄도 읽지 않고 서가에 고이 모셔둔 채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거실을 장식하여 한껏 뽐낼 요량으로 구입해도 좋다. 책의 오용과 남용을 꾸짓는 모랄리스트의 훈계 따위는 무시할지니, 책을 구하거나 소유하거나 읽거나 사용하는 모든 사람, 모든 경우에 대하여 책의 이름으로 다만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질 일이다."(p.232)

나 역시 내 방의 서재를 보면서 흐뭇해지고, 책을 살 때의 잠깐의 카드값 걱정은 책 보따리를 펼친 순간 잠시나마 사라져버리곤 한다. 이건 어떤 목적으로의 독서만 하는 이는 절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또 이정도가 되면 책과의 교감도 자주 느끼곤 하는 데, 이는 어쩌면 성적 쾌감과도 비견할 수 있을 듯 하다.

"2001년 7월 19일자 로이터통신 보도를 보면, 대영도서관 화장실에서 갖다가 발각된 용감한 커플이 있다. 20대 중반의 이 커플은 귀중본 도서 섹션과 인문학 열람실 사이 남자 화장실에서 일을 벌였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제의 여성을 목격한 열람자들이 그 사실을 도서관 직원에게 알렸고, ...(중략)... 그 커플은 현행범이 되었다. ...(중략)... 대변인의 말이 사뭇 걸작이다. "국립 도서관에서 희귀 귀중본 도서를 열람하며 연구에 몰두하다가 함께 일어서 화장실로 향해 일을 벌인 그들이 결코 놀랍지는 않습니다. 그 커플을 성적으로 흥분하게 만들기 충분한 내용의 자료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사실 우리 도서관에는 섹스가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p.156)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과 함께하는 생활. 너무나 저자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이없을 수 있는 생활일 수 있지만.

책과의 기억의 부재에 대응하기

또 한편으로 이런 책에 대한 기억들의 부재가(실은 유년기/청소년기의 책임이 아닐까라고 강한 심증을 갖고 있다.) 책 읽는 문화를 붕괴시키고 지성을 위축시키고 지식인의 양산을 막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했다.

대다수의 독서가로 출발한 석학들의 이야기는 귀감을 준다. 그들에게는 '아버지의 서가'가 있었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과학책들도 드문드문 있었는데, 날씨가 나빠서 새를 관찰할 수 없을 때 내가 독파한 것들은 바로 그 책들이었다. 진화를 다룬 책들은 내 상상을 사로잡았고,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처음 박물관에 갔을 대 나를 흥분시켰던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제임스 왓슨, p.162)

"아버지의 서가나 서재가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겨보면 이렇다. 우선 그것은 새롭고 넓고 다양한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관문 구실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금단의 영역처럼 느껴지던 어른들의 세계로 간접적으로나마 첫 발을 내디뎌보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가보지 못한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통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는 마법의 창문,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일단 의지해야 할 거인의 어깨. 내 아버지의 서가가 그러했듯이 나의 서가도 아이에게 그런 곳이 될 수 있기를!"(pp.163-164)

나 역시 그런 서가를 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서가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어머니 역시!).

하지만 서가를 누릴 수 없는 이들에겐 그 문제가 해결이 나지 않는데 ,그 때는 공공도서관의 필요성이 절실해 지는 것이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실말이다. 주인공 소녀는 짝꿍 복순이와 함께 식민지 시대 서울의 공공도서관, 즉 경성 공립도서관과 경성 부립도서관을 방문하여 어린이 열람실로 안내됐다."(p.165)

그리고 책 읽는 방법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아이들에게 줄 것. 사실 독서는 그 자체만을 마음껏 누리기에 오로지 시간이 필요하니까. 마지막으로 서평이 필요하겠다. 표정훈의 서평의 정의를 보자.

"책 내용을 정리, 전달, 평가하는 글이나 말로서, 책의 물질적, 형식적 상황이나 책의 기획, 제작, 유통 측면에 대한 평가도 포함할 수 있다. 또한 필자나 발언자 이외의 1인 이상의 수용자가 있어야 하고, 다수의 공중이 접근할 수 있는 매체나 제도를 전제로 한다."(p.250)

결국 중요한 것은 책과 접할 시간과, 그것을 보조할 환경, 그리고 그것들을 읽고나서 소화의 결과로 무언가를 산출할 공간인데.... 현대인에게, 특히 그 새싹인 청소년기에 이 세가지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문은 아니지만, 책에 대한 달콤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자신의 독서경험을 보여줌으로 자꾸 무엇이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준 책이다. 다만 한가지 아쉽다면, 좀더 강하게 번역을 하는 이들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책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탐서주의자의 책'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런 류의 기대까지는 과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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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2007-12-2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앞서 소개해주신 탐서주의자의 정의를 보고 확 끌려서 샀던 책인데, 부분부분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도 많았던 것 같아요. 책꽂이에 아직 읽지 못한 책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미안함이 조금 덜해졌다고 해야하나요 ㅎㅎ

양승훈 2007-12-29 02: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미안함이 덜해졌죠.. ^^
 

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절판


끝으로 대가를 대가이게 하는 요소에 대한 그의 통찰 하나.
그는 아도르노와의 대담을 마치고 이렇게 쓴다. "아도르노에게 이렇게 어린애처럼 뽐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의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작가들의 '자아현시욕'에 대한 이야기들과 같은 맥락에 놓인 이 판단은 학적 탐구의 근원적인 추동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로잡힌 영혼>>(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에 대한 서평 中-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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