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분단사연구 1943∼1953 (양장)
신복룡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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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은사이신 신복룡 교수가 쓰신 책이다. 한때는,, 동학에 미쳐서,, 동학에 대한 연구를 10여년 하고,, 또 한때는,, 이래저래 민속학에 미쳐서 ,, 연구하고 86년 애학투련 사건을 바로 옆에서 밀착되어 느꼈던 신교수는,, 학생들이 입으로 되뇌이고 있던 '통일'의 의미,, 그리고 거기에 깔려 있는 허상들을 깨기 위해서 이 책을 90년대 내내 연구한 결과로 집필하였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나, '전통주의'의 맥락을 넘어서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재수정주의'라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그는 한국전을 '내전'으로 규정하며, 이합집산되었던 우리 자신의 분열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또한 결국 통일은 민중의 염원을 담지하는 것이 아닌 정권의 내수용으로 전락되어 왔던 현실을 비판하며, '결단'을 요구하는 하나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신교수의 노작이며, 고집스러운 이 책.. 한번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물론 문체도 할아버지가 집에서 손주들 앉혀 놓고 하는 이야기 마냥,, 읽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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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2007-11-2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서평
 
강좌 한국근현대사
역사학연구소 / 풀빛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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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였던 2001년,, 선배들은 나에게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를 읽으라 했었다.. 그 책에서 느꼈던 충격만큼이나, 내 스스로 잡게 된 이책에서 느낀 '충격' 또한 짜릿했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현대사'는 과연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 리영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동굴 속의 우상'에서 우리는 허우적 대었던 것은 아닌가? 다현사의 어느정도는 '친북적'시각과는 다르며,, 당연히 체제 사학의 '식민지성'을 극복한 책이라 볼 수 있다. 정말,,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특히 대학 새내기들, 그리고 기존 사학에서 염증을 느꼈을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볼 만 하다..

(2002년 12월)

-2007년 현재 "함께보는 한국근현대사"로 개정판이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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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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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구에 대한 관점은 어떠한가? 서구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편견(오리엔탈리즘)외 에도 우리가 서구인들에 대한 편견(사실 이러한 편견을 버릴 수는 없다해도, 그 편견이 우리의 어떠한 사회적 환경에서 주어졌는 지는 이야기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은 없는가?

서구 = 합리성, 이성, 진보, ......

우리는 사실 서양이 우리를 보는 것 만큼 이상이나 서양, 특히 유럽에 대한 색안경을 덧씌우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실 그것이 반드시 우리의 책임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200여년간 동양의 사유에 대해서 제국의 시선을 강요해온 열강의 사유의 책임이기도 하다. 다만 그들 관점을 우리가 내면화 한것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폰타나는, 스페인의 맑스주의 역사학자이다. 경제사를 통해서, 지금까지 유럽에서 '정통'을 입증하기 위해 구축해온 관점들을 한데 모아서 그는 '유럽'을 상상하는 '거울'이라고 보며, 사실 '유럽'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한 사유를 '유령의 집'인냥 보여준다.(후기 中)

그는 야만의 거울,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악마의 거울, 촌뜨기의 거울, 궁정의 거울, 미개의 거울, 진보의 거울, 대중의 거울 등을 통해서 그들이 상정하는 기준들 9가지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실상을 보여준다. 사실상 그들이 상정하는 기준들은 그들이 그들을 옹호하기 위한 거울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외부는 그들의 약점을 덮기 위한 기제일 따름이다. 푸코의 계보학적인 접근 처럼, '복수성과, 적자가 아닌 서자'인 유럽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여겨 보았던 부분은, 기독교에 대한 사유였는 데, 초기 기독교가 다양성을 담보하고, 꼬뮨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임에 반해 그것이 권력화 되면서 일원화 되고, 다양성에서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억압의 기제로 작용했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단 사냥'과 '반공 열풍'에 휩싸이는 것도(현재 2004년 10월의 시점에서) 한국의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하나의 권력화 되었다는 징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외에도 여러가지 '수정주의'라 불리는 그의 시각은 우리의 눈에서 '색안경'을 벗겨주고, 우리의 사유에서 갖고 있는 '도그마들'에 대한 '수정'을 가한다.

이 책의 시리즈들을 읽고 싶은 욕망을 마구마구 불러일으키는 멋진 저작이다. 그리고 번역도 이 정도 수준이면 매우 명쾌하게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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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세미나리움 총서 12
에릭 홉스봄 지음, 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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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Uncommon people"(1998)이다. 평범하지 않은 민중 혹은 인민이 되겠다. 위로부터의 역사 기술에 익숙해져온 한국 사회의 역사관에 있어서, 이러한 시도는 흔히 아래로부터의 역사 기술에 해당하는 역사관에 입각해있다. 영국의 위대한 맑스주의 역사가인 E. P.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기술되었던 능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영국 노동계급의 생활상을 이해 한다면, 이 책도 그러한 입장에 서서 기술되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E. 홉스봄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자본주의 전체의 역사'를 써온 역사가이다. 좌파 역사관의(사실상은 근대적 관점의 좌파 역사관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가로서 홉스봄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를 써오면서 엄청난 사료들을 토대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써왔다. 지금 그의 나이가 2004년 우리나이로 현재 88세라는 것을 감안할 때, 아직도 왕성한 강의와 저술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학자로서의 성실함과 또 한편으로는 자기 관리에 투철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그에 대한 탈 근대적 맑스주의자들의 '너무 완고하다'라는 비판도 그러한 그의 생활상에 비추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의 거시적인 '~시대 시리즈'의 정치, 경제에 입각한 저술과는 조금 다르게, 기존의 영국 노동계급과, 미주 대륙의 농민 운동, 정치적 사건들, 재즈라는 독특한 관심사에 대해서 쓰여진 글들의 모음이다. 좀 두꺼운 책들에 대한 공포가 늘상 어렵거나 쉽게 읽을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증폭시키지만, 이 책에 있는 다양한 주제들(나는 이책을 통해서 재즈 아티스트들을 재 발견했고, 그것들이 흑민들의 애환에서 출발한 '아래로 부터의 문화'라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재즈를 단순한 상층 계급의 엘리트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은 머리 맡에 두고 읽어도 될만한 책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가 견지해온 뚜렷한 입장은 여기서도 일관되게 주장되는 데, 그것은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다음과 같다.

1. 민중의 역동성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석해온, 수동적이고 mob이라고 폄하될만큼 단순무지한 사람들로 느껴온 하층민들의 역사는 이 글의 서두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훨씬 더 역동적이며 다양하며 나름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에 돌출된 문화의 양상에도 상층계급의 엘리트 문화가 아닌 Uncommon people에 의해서 나타난 Jazz 같은 것을 볼 때 지금까지의 선입견은 정말로 오해였음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농민들의 운동에 대해서 단순하게 봉기와 '여촌야도'식의 이미지로 그들을 바라보았던 것에 대해서도 나름의 대응방식으로 지속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농민운동'을 보여줌으로 반박한다.

2. 사회운동 혹은 정당의 몫이다.

그가 숱하게 비판하는 것들을 돌아본다면, 영국 노동당, 그리고 영국 좌파 정당의 나름의 능동적 대응 부재에 대한 것들이다. 항상 어떠한 도그마에 빠지고 그것을 확인하는 수준의 실천만을 강조해왔던 좌파 정당과 사회운동의 역사에 대해 홉스봄은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다만 그에게 조금더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은 어떠한 관계에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 가를 조금 더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68혁명에 대한 평가는(그가 후에 평가가 온당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단순하게 공산당의 무능만을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고, 그 폭발력을 간과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중요한 정당과 사회운동의 나름의 몫의 중요성은 어떤 조직에 도입하여도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덮을 때, 한국의 좌파 역사학 책들을 생각해 보았다. 최근의 역동적인 아래로부터의 역사 구성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들(구해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비는 대표적인 저작일 것이다.)이 어느 정도의 만회를 하고 있지만, 기실 입장을 제외한다면 실상 생활의 측면에서 보여지는 평범하지 않은 다양성을 가진 우리나라의 아래의 역사는 아직도 시작 단계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단순히 대중을 '변혁 주체'의 단일성에 엮거나, 전위에 의해서 이끌려 와야 하는 '대상'으로만 설정해왔던 것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는 단순히 좌파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 근저에 깔려있는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잔재가 아닐런지?

[인상깊은구절]
이로부터 나의 마지막 논점, 즉 계급의식에 이르게 된다. 나는-우리가 아는 한에서-노동자 대중의 감성과 견해를 활동가 및 투사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것을 피해 왔다. 왜냐하면 양자는 분명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 활동가들은..... 새로운 노동계급의 삶의 방식-특히 축구 문화-대부분을 극히 싫어했다.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의 우둔함과 나태함에 대한 증오, 조롱, 멸시를 표하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수많은 저서들도 있다. 투사들이 지닌 계급의식의 함의가 무엇이든, 대중들은 그들의 기대에 맞추어 살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단순히 비정치적이고 금욕적인 하층민이나 국민 대부분을 이루는 빈민 혹은 기껏해야 자신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데에만 동원될 수 있는 잠재적 혹은 실제적 노동조합주의자들로 보는 것 또한 분명 잘못이다. 그들 역시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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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론 현대사상의 모험 10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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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과의 유쾌한 대화?

"저항 반역 그리고 재즈"라는 책을 읽었을 때 홉스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사랑방에서 손주를 머리맡에 앉혀두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이야기들의 역사였다면, 이 책 "역사론"은 그동안 그가 기술해온 '역사 방법론'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난해한 감이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의 문체에 젖어서 익숙하게 될 때 쯤에는, 동네 어귀에서 앉아있는 현인인 한 어르신과의 대화로 이 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홉스봄에 의해서 비판받는 역사가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부류이다.

먼저 속류 맑스주의 역사가들이다. 맑스의 인식을 단순한 '토대-상부구조'론으로 환원하고, 단선적인 역사관 (원시 공산제 ->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제 -> 사회주의 사회구성체)로 역사를 환원하려는,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근대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홉스봄은 먼저 수행한다.

두번째는 주류의 계량사가들이다. 모든 역사현상을 수치로 환원하고, 칸트주의자들의 '의심할 수 없는 전제'에 입각한 실증주의적 방법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그들은, 실제 역사가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홉스봄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세번째가 상당히 논쟁적인 부류인데, 그들은 바로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이다. 그들은 중심에 대한 해체, 니체적인 상대주의를 통해서 역사를 파악하고, 생생한 구술사와 그들 나름의 계열화를 통해서 역사를 파악하려 하는데, 홉스봄은 그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사실관계의 측면을 그들이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홉스봄이 지나치게 완고한 나머지, 이 부류의 사람들의 장점을 간과한 것일 수있다. 중심과 결정론에 대한 부정이 의미하는 것이, 새로운 진리작용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역사의 움직이는 동적 측면을 강조하는 홉스봄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상당부분에서 홉스봄은 아직 이론적 입장이 완성되지 않은 '약한 고리'에 대해서만 비판을 가하는 측면도 나에게는 반비판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시기와 그의 지적사유의 풍토를 살펴보건데, 그의 저작은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학문에 천착하고 다른 사유와의 접속을 지금까지 끊어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다시한번 그의 저작들의 위대한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시 이 책을 다 덮고나서 느끼기도, '어르신 한 수 잘 배웠습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단단하고 고집스럽지만 상당히 많은 '지혜'가 들어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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