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운다는 건 뭘까?,, 그건 지식의 용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숟가락질'이라는 것을 배운다.

지식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되는 것도 실상은, 몇꺼풀 벗겨내고나면, 우리의 일상과 맞다아 있을 법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식이 '거창하게' 불리는 걸 보면, 그 몇꺼풀이 깨나 두텁기는 한가보다.

그래서 지식인이 존재해왔고,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 몇꺼풀을 쉽게 푸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추상적 담론수준의 문제들을, 집에서 빨래하면서 듣는 라디오의 '여성시대'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예를 들면 비타민에 나오는 의사마냥) 지식인의 역할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은 하나의 'performance'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곧바로 지식인들은 광대로서도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지식인들, 특히 상아탑의 학자라는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 책무들보다, 이따금은 그들만의 세계에 심취해서 빠져서 자신들의 담론들 사이에서만 허우적 거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코는 그런 상아탑 속의 Armchair-philosopher(안락의자에 처박혀서 철학하는 먹물들)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에코는 광대가 되어 춤을 춘다.

분과학문의 경계따위는 허물어 버리고, 해박한 지식의 활용으로 시작도 끝도 정해지지 않은 춤을 춘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끝없는 지식의 질주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적 자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세상에 대한 풍자와, 새로운 영감의 생성이 동시에 춤을 춘다.(사실 에코 역시 니체주의자 중에 하나라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커피이야기부터, 지식인 사회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 따위까지. 그리고 인문학적인 이야기부터 첨단 테크놀로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움베르토 에코와 미셸 푸코를 자꾸 읽다보면 또라이가 된다던데, 이런 또라이라면 나도 그냥 잠시 또라이가 되보는 것도 멋질 듯 싶다.

죽음의 공포에서 빠져나오려면, 세상 모든 이들이 바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에코.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것은 사실 어쩌면 죽음에 대항하는 '삶의 활력' 그리고 삶의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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