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탐정의 데이터 분석 입문
이시다 모토히로 지음, 김완섭 옮김 / 길벗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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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에 겁먹지 않게 해주는 실용적인 교본! R을 만지는 데 겁먹지 않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실제 실무에서 더 복잡한 자료도 어떻게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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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해양공학개론
대한조선학회 엮음 / GS인터비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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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너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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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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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ould 그를 만나다.

2003년 2학기였나?

한동안 경제학에 미쳐있을 때로 기억된다.
경제학을 공부했던 이유는  "맹신적인 수량화의 기술자들이 무슨생각으로 그러고 있을까"가 궁금해서였다.

그 때 나에게 주류 경제학의 마법을 명쾌한 근거로 풀어줄 수 있는 수업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과학철학이라는 과목이었다.

그 때는 엄밀한 의미를 잘 몰랐으나, 기실은 그 수업은 근대 과학의 기초라 상정되는 인식론적 문제들(연역법, 귀납법, abduction(유추법?))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깨주는 역할을 했었다.

예를 들면, 귀납법 같은 경우야, 아무리 많은 사례가 있더라도, 그것의 인과관계를 해석하는 이론적 틀이 없으면, 확증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반대로 연역적 방법을 통해서 고안된 이론이라하더라도, 그 것이 현실에서 유의미하게 투영되지 않는 이상은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러면서 매우 한정적인 경우에만 통계가 이론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도! 미친 기술자들이 판치는 현재의 정치학/경제학자들은 마치 통계적으로 상관관계(coherent)가 성립되는 경우, 그 자체를 인과관계(causal)가 성립하는 것으로 가정하지만, 실제로 수학적인 계산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도출할 수 없다.

그 수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었던 것은 찰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굴드의 그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전에 서점에서 미국에서 왜 4할타자가 없었는 지 등의 주제등을 통해서 대중적 과학서를 써냈던 제이굴드를 기억했던 나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느꼈었다.

그리고 까먹고 있던 도중 4학년이 지나, 어느날 갑자기 어떤 신문의 서평에서 '굴드 - 사회주의자이자 진화생물학자'라는 그에 대한 평가와, 그의 저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 한명에 선정된 그를 알게 되었을 때, 난 주저없이 그를 알고 싶어졌고, 이 책을 집게 되었다.


2.

굴드는 진화생물학자이다. 그의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난 사회/과학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 두가지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순수한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지능테스트와 순수하게 인간을 서열화시킬 수 있는 속성인 g에 대해서 연구한다. g(general intelligence)는 순수한 IQ 테스트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를 토대로 통계화되어서 나타난 속성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는 아무런 실재적 물질로 물화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를 고안해 낸 스피어맨이나, 버트 같은 이들은 이 자체를 하나의 물질적 속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 지능이라는 것이 인간의 선천적 속성이 되고,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개화될 여지가 없는 이들에게는 '배제'의 속성이 부여된다.(이는 마치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범죄자들을 다루는 방법과 같다.) 영국의 11+ 시험(초등학교에서 직업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분리했던(!) 시험)이 그러한 맥락에서 시행된다. 하지만 통계적 상관성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g라는 개념은 미분할 경우, 여러가지 다양성으로 표현될 수도 있으며, 이는 미국의 교육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견지의 방향성을 갖추어 주었다. 이른바 지능과학에서의 '평등주의'라고나 할까?

 굴드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두가지 입장 모두를 해체시켜버린다. 통계적 상관만을 갖는 속성인 g라는 것 자체가 어떠한 물질적인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다양성으로 보거나 일반지능으로 보는 가는 상관없이, 그것은 환경의 요인과 선천적 요인의 '변이'를 언제나 간직할 수밖에 없는 '잠재성'인 것이다. '결정적'인 무언가는 될 수없는 것이다.


3. beyond Biology and Evolution Science

 "만약 빈곤의 책임이 선천적인 것에 있지 않다면, 우리의 책임은 막중하다." -찰스 다윈

 현재 내가 평생 공부하겠다고 덤빈 정치학을 비롯한, 여타의 사회과학은 통계와 계량분석, 그리고 그 잘난 경험과학의 메타포와 게임이론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회적 관계라는 것은 수학적 함수로 셋팅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R 값이 0.4 미만인 어이없는 상관성도 엄청난 결과처럼 여겨지고 있고, 모든 것은 수학적 상관성을 갖고 있는 다음에야 존중받는다. 그런 작자들이 기껏한다는 짓거리는 60년대 근대화이론가들이 "경제성장률과 정치적 민주화 지수에 양의 상관관계(!)가 발견되기 때문에 경제만 성장하면 정치가 민주화될 거다"라는 헛소리를 삐약삐약하게 했던 것의 재판 삼판만 계속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복지정책과 경제성장이 음의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에, 복지를 줄이라는 주장등등....

 2001년 미국 정치학회보에는 Mr. Perestroika라는 사람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왜 양적 방법을 쓰지 않는 이들은 미국 정치학회보에 글을 쓸 수 없으며, 왜 교수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이가 경험과학을 공부해야만 하는 지였다. 그 후 역사적 연구의 대가였던 Theda Skocpol(하버드 정치학과)가 미국정치학회장이 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예를 들어 내가 미국에 유학가서 질적방법과 역사적 연구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비수량적 방법'을 쓰는 이상, 나는 미국에서 교수가 되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해야하며, 내가 갈 곳은 길거리에서 데모하고, "New Left Review"나 "Monthly Review", "Politics & Society"에나 기고하는 천덕꾸러기 '급진주의자'로 낙인찍힐 따름 아닌가?

 만약 그러한 양적 방법론과 통계 그리고 게임이론으로 거대한 정치현상의 총체적인 면을 구상할 수 있다면 내 기꺼이 그 길로 가겠지만, 사실 커다란 관계의 조망이라는 건, 애시당초 통계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며, 동시에 그들은 '거시적 예측' 따위는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거대한 계량 방법의 이데올로기는 후쿠야마 같은 미친 새끼들이 '역사의 종언'을 외치는 배경과 그리 멀리 있지는 않다. 역사적 조망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심층적 연구, 여러가지 초학제간 연구를 가로막는 것은, 그 이면에 자신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상관성'이라는 것의 허구성이 드러날까봐 노심초사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실제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표면적 주제보다, 안도의 한숨이자, '새로운 꿈'을 빨갱이들이 꾸지 않았으면 하는 조바심인 것 처럼 말이다.


4. re-thinking Gould

 re-thinking marxism이라는 저널을 보면, 그 마지막 호(2003)에 특집으로 굴드에 대한 기사를 싫었다. 그의 실천적 삶과, 언제나 말하기는 꺼려했던 그의 사상적 배경을 보여준 저널...

 그의 업적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은 나로써 무리다. 다만 그의 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사회과학의 현재 작태가 얼마나 한심하고 터널 시야에 갖혀있는 지는 명백하게 알 수 있지 않나?

 경제학/정치학 방법론 시간에 어김없이 과학철학의 논의를 살펴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Karl Popper와 Thomas Kuhn의 논쟁, 그리고 J.S. Mill의 방법론 수준에서 끝났고, 그 이후는 통계와의 지리한 싸움으로 끝이나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대안적이라 할 수 있는 Alexander Wendt의 사회구성주의라던가, 들뢰즈-가타리/푸코를 위시한 프랑스 철학의 탈구조주의 논의 그리고 바슐라르 가스통의 과학에 대한 문학적 메타포는 고려되지 않았다. 물론 그것들을 그들이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을 물을 때, "그건 난 잘 모르는 데" 수준으로만 해줘도 고맙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건 내 논의와 전혀 상관없다. 쓸데 없는 소리는 하지마라"라고 입을 가로막곤 한다.

 '신'이 의심되지 않는 시절 신 자체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신성모독이고 화형이 지극히 당연했고,
 '성리학'의 진리가 국가 이데올로기인 조선시대에서 유교에 대한 탄력적 이해조차 '사문난적'으로 찢어 죽임을 당하고, 모든 가족이 노비가 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당당하게 '에티카'를 통해서 '신'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해체했고, 우리가 믿는 상징적인 '신'에 대해 비웃음으로서 새로운 장으로 진입할 토대를 제공했다.

 정약용도, 박지원도, ..........

 '통념'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은 언제나 '꿈'꾸는 자에게서 나온다는 거.. 굴드가 나에게 준 또 하나의 교훈이었다. 

*조금 더 보태자면, 그의 연구 방법은 엄밀하게 푸코식의 '계보학'적 접근과 연장선상에 있다. 어떤 대상의 원류를 찾아서 그 위대함을 밝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어떤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것의 꼭대기까지 추적해서 그 '쭉정이' 같은 성질을 폭로하고야 마는 방법.

 그리고 그의 존재론적인 토대는 사회적 관계라는 맑스적 테제에 가장 깊이 간직되어있는 양식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의 맑스주의자가 할 일은 이런 일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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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수학 - 개념으로 읽는 수학의 역사
야노 겐타로 지음, 정구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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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2까지 선행학습을 통해서 배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수학은 나에게 '짜증'나는 적에 불과했다. 최소한 19살까지는.

증명과정을 통해서 공리와 정리를 알아내는 일들은 굉장히 즐거운 것이었지만, 응용 문제와 실력 정석 따위의 유제와 연습 문제는

나를 괴롭히는 괴물들이었을 따름이다.

그래서 난 문과였고(사실은 물리가 싫어서가 더 강했다) 대학도 문과로 왔고,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도 문과로 갔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건데, 내가 수학을 싫어했던 건 아니다.

수학적 사고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계속 선망했고, 양적으로 뭔가를 사고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게 된것도 어쩌면 수학을 못했던 자책감에서 나온 시샘이었을 지도 모른다.

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강박관념을 갖기 시작한 건, 학부 3학년 이후였던 것 같다.

그 단초는, 경제학과 다전공을 들을 때 주류 경제학을 밟으려면 수학을 더 잘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었을 테고,

4학년 때, 국제정치경제(내 현재 전공)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어쨌거나 수학은 넘어야 할 산으로 보였다.

기실,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한 수학은, "경제,경영 수학" 정도에 미적분학의 기초와 통계를 굴릴 수 있을만큼의 능력이면 되겠지만,

그 전제들을 뒤집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고, 수학적 전제가 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

여튼,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은 지 꽤 되었으나, 여러가지 사정과 핑계들로,,, (결정적으로는 군입대로)

한동안 수학과 조우해보자는 생각은 접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경제학을 전공한 군대 동기 방에서, 대학 수학책을 뺏어와서는, 방에서 풀고 있다가,

더 근본적인 논의들을 살펴보자는 생각을 했다(사실 내 고질병이다. -_-).

그래서 좀 가볍지만, 폭 넓게 수학을 어루만질 수 있는 저작을 찾고자 했고, 쉬우면서도 간결한 야노 겐타로의 "생각하는 수학"을 집어들었다.

도서관에서 피로에 쩔어서 졸면서 수면제로 활용하려했으나, 생각보다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우던 수학들의 현재적 입지와 왜 그것들을 배우는 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내가 알고 있던 철학자들이 어떤 수학적 포지션을 갖고 있었는 지에 대해서 깨달았다. 예를 들면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물론 이 책이 나에게 수학적 사고를 순식간에 끌어올려주었다 믿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시작이었던 건 썩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시금 수학을 시작하면서, 지치지 않을 약간의 이유를 얻은 것 같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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