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에 읽은 책들

나름 열심히 읽은 11월의 독서 기록들.
주말마다 등산 가고, 사람들 만나느라 바빴지만 평일에는 책을 놓지 않았다.
출근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꾸벅꾸벅 졸면서도 열심히 읽었는데,
이 중 가장 고전(!)했던 책은 역시 '고전' 중에서도 손꼽히는 『파우스트』.
하지만 이젠 괴테도 읽었다는 문학적 허세를 부릴 수 있을듯.

한달에 12권을 읽으니, 사진도 질서정연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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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6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와 <파우스트>의 위용이 멋집니다 참.말.로.

뒷북소녀 2018-12-06 21:32   좋아요 0 | URL
아, <토지>는 네 권 정도는 읽었어야 했는데... 한동안 멈춘 상태랍니다.ㅠㅠ

빨강앙마 2018-12-1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지금 토지2권 읽고 살짜기 멈춘 상태..ㅠ.ㅠ;;;;
다른책 좀 읽느라고.. 뒷북양 어여 따라 잡아야하는데..ㅠㅠ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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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

   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령에게 도착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가 10월이었다. 7쪽

   벌써 15년째. 대령은 금요일마다 편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9년 전, 56년 전에 일어난 천일전쟁(1899년부터 1902년까지 콜롬비아의 집권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국지전에서 전국적 양상으로 번져 약 10만 명이 사망하고 전 국토가 유린되었다.)에 참전했던 군인들에게 '참전 군인 연금'을 지급한다는 법령을 의회가 공포했고, 8년 동안 자격 인정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수혜자 명단에 대령이 포함되었다는 편지를 받기까지 6년이 걸렸으며, 5년 전에 받은 그 편지가 대령이 받은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대령은 금요일마다 우편선이 들어오는 항구로 나가 자신에게 지급된 연금 통지서를 기다리지만, 언제나 그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선거도 하지 않고, 언론은 통제되고, 철저하게 검열된 영화만 볼 수 있는 시대. 9개월 전 하나뿐인 아들 아구스틴이 투계장에서 비밀문서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총탄을 맞고 죽었습니다. 부부는 아들이 남긴 유산인 수탉을 정성스레 키우며 일년마다 열리는 투계판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투계판에서 이기면 부부는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식은 물론이고 커피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졌습니다.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팔만한 것은 모두 팔아서 먹고 사는게 걱정입니다. 이와중에 수탉에게 줄 옥수수까지 사야합니다. 급기야 아내는 수탉을 팔자고 대령에게 제안합니다.
   하지만 대령에게 수탉은 수탉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부당한 정권에 맞서 싸우다 죽은 아들의 대신이기도 하고, 그의 명예이기도 합니다. 사실 수탉은 대령뿐만이 아니라 아구스틴을 알고 있는 친구, 마을 사람 전부의 희망이자 명예이기도 합니다. 수탉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그것은 그들 모두가 추구하는 (정치적) 정신의 승리이기도 한 것. 그들은 수탉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팔 수 없으면 어쩔 거예요." 아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1월 20일까지 기다려야 하오." 대령이 완전히 의식을 되찾고 말했다. "그날 오후에 20퍼센트를 지불하오."
   "그건 수탉이 이길 때 이야기죠." 아내가 말했다. "만일 진다면, 수탉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요."
   "절대 질 수 없는 수탉이오." 93쪽

   참다못한 아내가 이제 무엇을 먹고 살거냐고 대령에게 묻자 대령은 '똥'이라고 대답합니다. 차라리 똥을 먹을지언정 그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대령은 변비에 걸려 있습니다. 먹고 살 똥도 없다는게 대령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아내는 절망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죠." 아내는 이렇게 물으면서 대령이 입은 티셔츠의 칼라를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
   "말해 봐요. 우리는 뭘 먹죠."
   대령은 이 순간에 이르는 데 칠십오 년의 세월이, 그가 살아온 칠십오 년의 일갈일각이 필요했다. 대답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았고 솔직하며 무적이라고 느꼈다.
   "똥." 95쪽

   도착하지 않는 참전 군인 연금을, 대령은 어떻게 15년동안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물론 아들이 살아있었던 9개월 전까지는 지금보다 덜 간절했을테고, 그 후 9개월 동안은 아들의 재봉틀을 팔아서 산 양식이 있어서 견딜만 했겠지만,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연금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대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커다란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작은 것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41쪽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일상, 이 일상만 도착한다면 '참전 군인 연금 정도'야 똥을 먹으면서도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들이 없는 일상을 견딘다는 건, 똥을 먹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일테니까요. 적어도 그들에게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연금도, 자유도, 일상도 여전히 도착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59

   이야기의 끝은 94쪽인데 무려 해설이 132쪽까지 있는 책입니다. 역자는 정말 정성스럽게 쓴 해설이겠지만, 원래 남이 해주는 해설을 싫어하는데다가 읽다가 지쳐서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끝까지 읽었더라면 이 작품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그만큼 재미도 반감시켰을 겁니다. 마르케스의 문장과 해설을 쓴 번역자의 문체가 너무나도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마르케스는 헤밍웨이와 비슷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해설을 잠깐 읽어보니, 마르케스도 헤밍웨이처럼 신문에다 글을 썼으며 헤밍웨이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문장 속에 뼈가 있는 문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문장. 짧지만 메시지는 강렬해서, 지금부터 마르케스를 좋아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의 고아예요. 19쪽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옥수수 죽을 즐기는 거예요.
   인생이란 지금껏 발명된 것들 중에서 최고라오. 60

   당신은 배를 곯아 죽어 가고 있죠.
   체면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은 깨달아야 해요.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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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5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단가를 비교해 볼 때, 불필요하다고
사료되는 역자 해설 부분을 독자는 강제
로 3,000원 정도 더 주고 산 셈입니다.

비슷한 분량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의 경우
단가가 7,000원이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출판사의 꼼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습니다.

오래 전에 번역되었지만 시장에서 사라
진 마르케스의 다른 책들의 소개도 기대
해 봅니다, 이번에는 젭알 바가지 없이.

뒷북소녀 2018-12-05 22:03   좋아요 1 | URL
저는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굳이 한국까지 끌어와서 해설 쓴게 너무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장황한 해설 없이도, 이 짧은 소설만으로도 마르케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요즘엔 물가인상분이 반영됐는지, 문학전집에 만원 이하 책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 어느 싱어송라이터의 일 년
김목인 지음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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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때 직업이 뭔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특별한 유대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안부의 기본이 되는 질문일텐데요,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살짝 곤란해집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공무원, 교사, 스튜어디스, 조종사, 기자, 카피라이터 등으로 분류되는 직종으로 대답하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곧바로 질문이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업들처럼 내 직업도 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과장된 이미지, 심지어 실제와 전혀 동떨어진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21쪽

   저자는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라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싱어송라이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명칭에 나의 일이 가장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종 <싱어송>과 <라이터>의 합성어로 오해받는 이 알쏭달쏭한 단어는 <싱어Singer>와 <송라이터Songwriter>를 나란히 붙인 말이다. 즉 노래하는 이와 노래를 만드는 이가 합쳐진 단어이다.
   프랑스에서는 작사가Auteur, 작곡가Compositeur, 해석자Interprete 세 가지로 구분한 ACI라는 단어도 쓰던데 이쯤 되면 싱어송라이터라는 직업의 어깨가 훨씬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21~22쪽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꿈이 싱어송라이터였을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예체능계가 없고 문과와 이과만 있어서 문과에 갔고, 그래서 연극영화과가 아닌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상화해 줄 동아리를 찾았지만, 그가 주로 한 활동은 영화 비평이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2년 동안 단편영화 한 편을 찍어본 적이 없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완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시절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음악을 직접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녹음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았을 뿐이죠.

   집에 와 제대로 작곡을 해보려고 책상에 앉아 노래를 써보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25살이 넘어서였다. 그때 알았다. 나로 하여금 그 모든 준비를 하게 했던 것이 <음악>이었다는 것을. 음악은 내게 그런 먼 길을 돌아오게 해놓고 그사이 서울에 인디 씬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몇몇 선구자들이 클럽 공연을 개척했고, 인디 레이블들을 설립해 두었다.
   몇 년 뒤 홍대 인근에서 일하고 활동하며 나는 천천히 인디 씬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 잡아 갔다. 영화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냐고 하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원래 이걸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때는 영화인 줄 알았다고.
   그러니 어린아이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직업으로 골라 보라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어른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권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옷을 갈아입는 꿈이 뭔지를 자신이 알아보는 것이다. 110~111쪽

   이 책은 제목처럼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직업인 '싱어송라이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가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개인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가게에 가깝고, 다만 그 가게가 투명해 보이지 않을 뿐"(137쪽)이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고 하더라도 가게를 꾸려나가려면 이것 저것 체크할 것들이 많습니다. 저자는 노래를 부르고 만드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그 외의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섭외는 어떻게 당하고, 공연장 체크는 어떻게 하며, 수익은 어떻게 배분하는지. 사실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제가 궁금했던 부분들도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악기 배치와 아티스트 자리 선정, 조명 연출은 누가 담당하는지, 공연 당일에 앙코르 곡은 어디까지 준비하는지, 늘 궁금했는데 저자가 공연용 큐시트와 무대배치도까지 보여주며 알려줍니다.

   사실 많은 공연자들이 앙코르까지 연출에 넣는다. 하지만 자신이 인기가 좋을 걸 예상해서 그런다기보다는 공연에서는 끝마무리가 중요하고, 실제로는 앙코르까지 그 끝마무리에 포함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96쪽

   나는 앙코르가 공연의 들뜬 기분과 공연 후의 허전함 사이를 부드럽게 연착륙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툭 끝나고 바로 퇴장을 하게 되면 관객들도, 공연자도 그 심리적 허기를 안고 나가게 된다. 그러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풀게 된다. 97쪽

   저자는 공연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일화도 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강 건너 북콘서트>. 저자가 잭 케루악의 『다르마 행려』를 번역하기도 해서 초대된 것이라고 하는데, 북콘서트 장소가 처음에 예정되었던 시내의 카페도 아니고 서울 근교의 캠프장도 아닌 강원도 근교의 어느 글램핑장이었다고 합니다. 운전을 못하는 저자가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 강 건너편에 도착하게 돼서 특별히 운행한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넜고, 글램핑이라고 해서 바비큐 파티를 기대했는데 식사로 도시락이 준비되었다는 이야기. 저자는 반나절이나 걸려 도착한 곳인데, 돌아올 때는 다른 작가의 차를 얻어탔더니 1시간 반 만에 집에 도착했다는 것까지. 하나 하나 머리 속에 그려보니 너무 웃겨서, 그 북콘서트가 어디에서 열린 공연인지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3집 앨범 「콜라보 씨의 일일」을 준비하고 있던 2017년의 단상을 담은 작품입니다. 책 속에서 준비하고 있다던 그 앨범은 이미 나온 상태이구요.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든, 저자와 마찬가지로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의 길을 꿈꾸는 사람의 입장에서든, 읽어보시면 몇몇 궁금증들은 확실하게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긴 번민의 시간과 소심한 자아가 작품이 되고, 이제 공동의 것으로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부담감이 밀려온다. 제작진들의 노고는 몇 개의 파일로 압축되어 조그만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있고, 음원은 단 몇 초 만에 웹에서 전송될 것이다. 이 과정의 각 단계들은 해마다 점차 간소해지고, 가벼워지고, 생략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뭔가를 만들고, 주고받고, 들어 보는 기쁨이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 메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되길 기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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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뒷북소녀 >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춤으로 표현해 보세요!

몇 번의 실패 끝에 완독한 조르바.
지금 다시 읽으면 또다른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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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3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못 읽고 있답니다...

문제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샀더라는.
이번에 문지에서 나온 것도 샀어요.

그런데 번역은 확실히 문지 게 낫더라는.
마저 읽어야겠죠 그나저나.

뒷북소녀 2018-11-30 10:47   좋아요 0 | URL
어머, 저 또 찾아봤잖아요.ㅋㅋㅋ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좀 더 잘 읽힐까 싶어서요.
 

 

 

'아버지'라는 역할에 충실했던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 : 당신의 가출이 승인되었습니다!
단편소설 「가출」, 조남주

   아버지가 가출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나는 순간 가출을 출가로 착각했다.
   "응? 아버지 절에도 안 다니잖아."
   "가출하셨다고. 가, 출. 집 나갔단 말이다."
   차라리 출가했다고 하면 믿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일흔 둘. 치매 같은 정신 질환은 없다.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아버지. 그렇지만 엄마가 숟가락과 젓가락과 마실 물까지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아야 식탁에 와 앉는 아버지.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 장례 이외에는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는, 삼 남매가 태어나던 날도 출근했다는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며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고 자동이체도 하지 않고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가출을 했단다. 조남주, 「가출」, 61쪽

   평생 성실하게 살았던 일흔 둘의 아버지가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이제라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 저축은행 160만 원은 가져간다. 미안하다.'(66쪽)는 내용의 쪽지를 남기고 가출을 했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한 달 전쯤 가출을 했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뒤늦게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더이상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아버지 집에 모여서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눕니다. 실종 신고를 하고, 전단지를 돌리거나 흥신소를 통해 찾아보자는 식의 의견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가출한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없어서 당장 처리해야 되는 일들의 어려움을 막내딸에게 호소합니다. 사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이라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은행 업무 정도는 출근하지 않는 엄마가 해도 될텐데, 굳이 짧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처리합니다. 두 번이나 대입에 실패한 큰오빠가 대학은 포기하고 취직해서 동생들 학비를 벌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일이라며 말립니다. 회사가 어려워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았을 때도,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모두 아버지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 집에는 평생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맡아온 크고 작은 일 들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 조남주, 「가출」, 72쪽

   이런 아버지가 가출하고 나니, 어머니가 해야 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껏 한번도 하지 않은 은행 업무를 봐야하고, 공과금을 내야 합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도 가져가지 않았고, 경찰은 단순가출이라며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가족회의를 마친 다음 날, 일요일 아침에 카드사로부터 승인 문자메시지가 옵니다.

   'web발신 카드 승인 4,500원 일시불 12/11 09:11 삼거리식당 누적 4,500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았던 아버지에게는 막내딸인 '나'가 쥐어준 신용카드가 한 장 있었는데, 가출하면서 그 카드를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카드를 사용하면 '나'에게 카드사용내역이 날아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아버지. 나는 카드 도난 신고를 할까 고민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아버지가 카드를 사용한 곳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한번도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허탕을 친 후에는 더이상 달려가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고는 며칠 만에 또 카드를 사용하셨다. 이번에도 분실이나 범죄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에게 문자메시지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삼거리식당에서 4천 5백 원짜리 아침밥을 사 먹고 카드로 결제한 아버지. 왜그러셨을까. 조남주, 「가출」, 78쪽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아버지가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좋구나. 너무 걱정 마라. 엄마에게 말하지 마라. 지리산을 오르고 제주 바다를 구경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조남주, 「가출」, 85쪽   

   「가출」 속 아버지는 또다른 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그 아버지 역시 평생 가족들을 위해 모범적으로 살다가 마흔에 집을 떠납니다. '나'의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빈몸으로 집을 나갑니다. 그는 바로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출한 상황, 그들의 부재만 생각하고 그들이 가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살면서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웠을까요? '아버지'라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에 내색 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가출'을 승인합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68~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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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28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돈 워리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니었을
까요.

신세대스러운 풍경이네요.

아버지의 출.가.

뒷북소녀 2018-11-30 10: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거죠. 가끔씩.
사실 요즘 젊은 작가들... 문체가 별로여서... 안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좋았어요. 아무튼 젊은 작가들 중에서는 나름 연륜이 있는 작가라서 그런지.

빨강앙마 2018-11-29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도 ㅜㅜ

뒷북소녀 2018-11-30 10:49   좋아요 0 | URL
토닥토닥! 남편분께 시그널을 보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