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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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

   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령에게 도착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가 10월이었다. 7쪽

   벌써 15년째. 대령은 금요일마다 편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9년 전, 56년 전에 일어난 천일전쟁(1899년부터 1902년까지 콜롬비아의 집권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국지전에서 전국적 양상으로 번져 약 10만 명이 사망하고 전 국토가 유린되었다.)에 참전했던 군인들에게 '참전 군인 연금'을 지급한다는 법령을 의회가 공포했고, 8년 동안 자격 인정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수혜자 명단에 대령이 포함되었다는 편지를 받기까지 6년이 걸렸으며, 5년 전에 받은 그 편지가 대령이 받은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대령은 금요일마다 우편선이 들어오는 항구로 나가 자신에게 지급된 연금 통지서를 기다리지만, 언제나 그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선거도 하지 않고, 언론은 통제되고, 철저하게 검열된 영화만 볼 수 있는 시대. 9개월 전 하나뿐인 아들 아구스틴이 투계장에서 비밀문서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총탄을 맞고 죽었습니다. 부부는 아들이 남긴 유산인 수탉을 정성스레 키우며 일년마다 열리는 투계판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투계판에서 이기면 부부는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식은 물론이고 커피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졌습니다.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팔만한 것은 모두 팔아서 먹고 사는게 걱정입니다. 이와중에 수탉에게 줄 옥수수까지 사야합니다. 급기야 아내는 수탉을 팔자고 대령에게 제안합니다.
   하지만 대령에게 수탉은 수탉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부당한 정권에 맞서 싸우다 죽은 아들의 대신이기도 하고, 그의 명예이기도 합니다. 사실 수탉은 대령뿐만이 아니라 아구스틴을 알고 있는 친구, 마을 사람 전부의 희망이자 명예이기도 합니다. 수탉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그것은 그들 모두가 추구하는 (정치적) 정신의 승리이기도 한 것. 그들은 수탉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팔 수 없으면 어쩔 거예요." 아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1월 20일까지 기다려야 하오." 대령이 완전히 의식을 되찾고 말했다. "그날 오후에 20퍼센트를 지불하오."
   "그건 수탉이 이길 때 이야기죠." 아내가 말했다. "만일 진다면, 수탉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요."
   "절대 질 수 없는 수탉이오." 93쪽

   참다못한 아내가 이제 무엇을 먹고 살거냐고 대령에게 묻자 대령은 '똥'이라고 대답합니다. 차라리 똥을 먹을지언정 그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대령은 변비에 걸려 있습니다. 먹고 살 똥도 없다는게 대령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아내는 절망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죠." 아내는 이렇게 물으면서 대령이 입은 티셔츠의 칼라를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
   "말해 봐요. 우리는 뭘 먹죠."
   대령은 이 순간에 이르는 데 칠십오 년의 세월이, 그가 살아온 칠십오 년의 일갈일각이 필요했다. 대답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았고 솔직하며 무적이라고 느꼈다.
   "똥." 95쪽

   도착하지 않는 참전 군인 연금을, 대령은 어떻게 15년동안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물론 아들이 살아있었던 9개월 전까지는 지금보다 덜 간절했을테고, 그 후 9개월 동안은 아들의 재봉틀을 팔아서 산 양식이 있어서 견딜만 했겠지만,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연금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대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커다란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작은 것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41쪽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일상, 이 일상만 도착한다면 '참전 군인 연금 정도'야 똥을 먹으면서도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들이 없는 일상을 견딘다는 건, 똥을 먹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일테니까요. 적어도 그들에게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연금도, 자유도, 일상도 여전히 도착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59

   이야기의 끝은 94쪽인데 무려 해설이 132쪽까지 있는 책입니다. 역자는 정말 정성스럽게 쓴 해설이겠지만, 원래 남이 해주는 해설을 싫어하는데다가 읽다가 지쳐서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끝까지 읽었더라면 이 작품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그만큼 재미도 반감시켰을 겁니다. 마르케스의 문장과 해설을 쓴 번역자의 문체가 너무나도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마르케스는 헤밍웨이와 비슷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해설을 잠깐 읽어보니, 마르케스도 헤밍웨이처럼 신문에다 글을 썼으며 헤밍웨이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문장 속에 뼈가 있는 문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문장. 짧지만 메시지는 강렬해서, 지금부터 마르케스를 좋아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의 고아예요. 19쪽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옥수수 죽을 즐기는 거예요.
   인생이란 지금껏 발명된 것들 중에서 최고라오. 60

   당신은 배를 곯아 죽어 가고 있죠.
   체면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은 깨달아야 해요.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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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5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단가를 비교해 볼 때, 불필요하다고
사료되는 역자 해설 부분을 독자는 강제
로 3,000원 정도 더 주고 산 셈입니다.

비슷한 분량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의 경우
단가가 7,000원이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출판사의 꼼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습니다.

오래 전에 번역되었지만 시장에서 사라
진 마르케스의 다른 책들의 소개도 기대
해 봅니다, 이번에는 젭알 바가지 없이.

뒷북소녀 2018-12-05 22:03   좋아요 1 | URL
저는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굳이 한국까지 끌어와서 해설 쓴게 너무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장황한 해설 없이도, 이 짧은 소설만으로도 마르케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요즘엔 물가인상분이 반영됐는지, 문학전집에 만원 이하 책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