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음악가 - 어느 싱어송라이터의 일 년
김목인 지음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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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때 직업이 뭔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특별한 유대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안부의 기본이 되는 질문일텐데요,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살짝 곤란해집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공무원, 교사, 스튜어디스, 조종사, 기자, 카피라이터 등으로 분류되는 직종으로 대답하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곧바로 질문이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업들처럼 내 직업도 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과장된 이미지, 심지어 실제와 전혀 동떨어진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21쪽

   저자는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라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싱어송라이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명칭에 나의 일이 가장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종 <싱어송>과 <라이터>의 합성어로 오해받는 이 알쏭달쏭한 단어는 <싱어Singer>와 <송라이터Songwriter>를 나란히 붙인 말이다. 즉 노래하는 이와 노래를 만드는 이가 합쳐진 단어이다.
   프랑스에서는 작사가Auteur, 작곡가Compositeur, 해석자Interprete 세 가지로 구분한 ACI라는 단어도 쓰던데 이쯤 되면 싱어송라이터라는 직업의 어깨가 훨씬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21~22쪽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꿈이 싱어송라이터였을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예체능계가 없고 문과와 이과만 있어서 문과에 갔고, 그래서 연극영화과가 아닌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상화해 줄 동아리를 찾았지만, 그가 주로 한 활동은 영화 비평이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2년 동안 단편영화 한 편을 찍어본 적이 없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완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시절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음악을 직접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녹음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았을 뿐이죠.

   집에 와 제대로 작곡을 해보려고 책상에 앉아 노래를 써보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25살이 넘어서였다. 그때 알았다. 나로 하여금 그 모든 준비를 하게 했던 것이 <음악>이었다는 것을. 음악은 내게 그런 먼 길을 돌아오게 해놓고 그사이 서울에 인디 씬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몇몇 선구자들이 클럽 공연을 개척했고, 인디 레이블들을 설립해 두었다.
   몇 년 뒤 홍대 인근에서 일하고 활동하며 나는 천천히 인디 씬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 잡아 갔다. 영화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냐고 하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원래 이걸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때는 영화인 줄 알았다고.
   그러니 어린아이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직업으로 골라 보라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어른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권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옷을 갈아입는 꿈이 뭔지를 자신이 알아보는 것이다. 110~111쪽

   이 책은 제목처럼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직업인 '싱어송라이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가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개인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가게에 가깝고, 다만 그 가게가 투명해 보이지 않을 뿐"(137쪽)이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고 하더라도 가게를 꾸려나가려면 이것 저것 체크할 것들이 많습니다. 저자는 노래를 부르고 만드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그 외의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섭외는 어떻게 당하고, 공연장 체크는 어떻게 하며, 수익은 어떻게 배분하는지. 사실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제가 궁금했던 부분들도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악기 배치와 아티스트 자리 선정, 조명 연출은 누가 담당하는지, 공연 당일에 앙코르 곡은 어디까지 준비하는지, 늘 궁금했는데 저자가 공연용 큐시트와 무대배치도까지 보여주며 알려줍니다.

   사실 많은 공연자들이 앙코르까지 연출에 넣는다. 하지만 자신이 인기가 좋을 걸 예상해서 그런다기보다는 공연에서는 끝마무리가 중요하고, 실제로는 앙코르까지 그 끝마무리에 포함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96쪽

   나는 앙코르가 공연의 들뜬 기분과 공연 후의 허전함 사이를 부드럽게 연착륙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툭 끝나고 바로 퇴장을 하게 되면 관객들도, 공연자도 그 심리적 허기를 안고 나가게 된다. 그러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풀게 된다. 97쪽

   저자는 공연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일화도 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강 건너 북콘서트>. 저자가 잭 케루악의 『다르마 행려』를 번역하기도 해서 초대된 것이라고 하는데, 북콘서트 장소가 처음에 예정되었던 시내의 카페도 아니고 서울 근교의 캠프장도 아닌 강원도 근교의 어느 글램핑장이었다고 합니다. 운전을 못하는 저자가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 강 건너편에 도착하게 돼서 특별히 운행한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넜고, 글램핑이라고 해서 바비큐 파티를 기대했는데 식사로 도시락이 준비되었다는 이야기. 저자는 반나절이나 걸려 도착한 곳인데, 돌아올 때는 다른 작가의 차를 얻어탔더니 1시간 반 만에 집에 도착했다는 것까지. 하나 하나 머리 속에 그려보니 너무 웃겨서, 그 북콘서트가 어디에서 열린 공연인지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3집 앨범 「콜라보 씨의 일일」을 준비하고 있던 2017년의 단상을 담은 작품입니다. 책 속에서 준비하고 있다던 그 앨범은 이미 나온 상태이구요.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든, 저자와 마찬가지로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의 길을 꿈꾸는 사람의 입장에서든, 읽어보시면 몇몇 궁금증들은 확실하게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긴 번민의 시간과 소심한 자아가 작품이 되고, 이제 공동의 것으로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부담감이 밀려온다. 제작진들의 노고는 몇 개의 파일로 압축되어 조그만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있고, 음원은 단 몇 초 만에 웹에서 전송될 것이다. 이 과정의 각 단계들은 해마다 점차 간소해지고, 가벼워지고, 생략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뭔가를 만들고, 주고받고, 들어 보는 기쁨이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 메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되길 기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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