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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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 그리움
   참 오랜만에 만난 시집이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손에 들었던 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원태연 시인이 한창 인기일 때 그의 시집을 읽었던 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십년도 훨씬 전이네. 
   점점 스산해 오는 날씨 탓이었을까? 아무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는 그래도 가을이 가장 시에 어울리니까. 너무나도 오랫동안 멀리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친해보려 했으나, 영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쁜 소년'에 이끌렸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나쁜 소년'이라는 단어가 시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읽고 싶었다.

   무언가를 읽고 분석한다는 건 질색이다. 그저 가슴으로 느끼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함축적인 시를 읽으면서 굳이 그걸 콕콕 집어내서 이건 이것이라고 분석해야 하는걸까? 솔직히 그렇게는 절대 못 읽는다.
   시집에 실린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지독한 그리움이었다. 작가는 세월이 모든 것을 잡아 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그 세월의 밥이라고. 그래서 지난 날에 대해 허탈해 하고 있다. 

  오래전 그는 누군가를 지독히도 사랑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랑이 예전처럼 반짝이지 않을 때도 사랑이라고 믿었다. 집착에 가까웠던 사랑,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차마 보내지 못했다. 그 허전함을 견딜 수 없을테니. 하지만 그는 잊었다고 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줬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사랑에 대해 허탈해 하고 있고, 허무함을 느낀다.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외로우면서도 다시 사랑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 마음이 와 닿았다. 나도 한번쯤 경험한 것이기에, 지금의 내 상태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쿨한 척, 아무것도 아닌 듯 내뱉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체념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아프다.

기억처럼 더러운 것은 없다 / 사막까지 따라오는. (p.44)
세월이 가는 걸 잊고 싶을 때가 있다. / 한순간도 어김없이 언제나 나는 세월의 밥이었다. (p.73)

그리움과 함께 깔려있는 것이 바로 푸른빛이다. 흔히 푸른색은 젊음, 청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분명 그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2008/11/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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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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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향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문구를 보는 순간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체취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체취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체취를 모아 향수를 만든다. 향수에 집착하는 남자가 그 말고도 또 있다니. 

   프랑스 정보부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엠므는 40년 동안 '머스크'라는 한가지 향수만 사용했다. '머스크'는 발정기 사향노루의 하복부 분비선에서 뽑아낸 물질로 만든 것으로, 엠므는 그 향만이 자신을 대표할 수 있고 여자들을 유혹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동안 그의 정부로 만나온 이브가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엠므는 늘 사용하던 향수를 썼고, 단지 용기만 바뀌었을 뿐인데 다른 냄새가 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브는 용기가 바뀌면 그 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엠므를 위로한다. 
   집으로 돌아온 엠므는 오늘 아침에 버린 향수병에 새 향수를 붓고 예전의 향기로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문제는 용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향수를 만든 회사에 편지를 보내 냄새가 달라진 이유를 듣게 된다. 오랫동안 향수를 만들던 회사가 대기업으로 인수됐고, 그 대기업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천연 분비물 대신 합성 분비물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엠므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머스크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하루 사용량도 4밀리에서 2밀리, 1밀리로 조절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머스크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에 자신감이 없어진 엠므는, 어느날 아침 예전처럼 머스크를 둠뿍 바르고 몸단장을 한다. 그는 머스크를 확보할 수 없다면, 자신의 수명을 머스크에 맞추도록 결심한 것이다.
   40년 동안 머스크만 쓰며 자신의 몸단장에 한치의 오차도 없었던 엠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냉정하리만큼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유산을 정리하고, 시체 방부처리사를 만나고, 어떻게 하면 깔끔한 모습 그대로 자살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스파이라는 직업 때문이었을까. 그는 매사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말이다. 처음에는 그루누이처럼 자신만의 향수를 제조하러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죽음을 선택하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향수만이 자신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내게도 한 때는 그런 것이 있었다. 나를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됐던 적이 있었다. 어느날 더이상 그것을 잡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나 역시 엠므처럼 엄청난 공황에 빠졌다. 과연 그것 없이 살 수 있을까? 그것 없는 삶은 얼마나 지루할까? 그것과 함께 한 그동안의 내 삶은 무엇이 내는가? 그 허무와 절망, 그래서 더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편안한다. 그것 없이도 잘 살고 있다. 가끔씩 떠오를 때면 허전함 같은 것이 나를 괴롭히지만, 엠므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만큼은 아니다.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덮고나니 결코 재밌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8/11/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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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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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모네, 마그리트, 고흐 등 유명 화가들의 초대전이 국내에서 연이어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설과 드라마의 영향으로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전시되는 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예술 작품을 대하는 관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 했던가. 그만큼 사람들은 예술을 돈과 결부시키려 하지 않았다. 예술을 돈과 바꾸는 것은 저급 취급을 당했고,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순수하게 예술을 지향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이 미술사를 움직인 것이 보이지 않는 경제의 힘이라고 한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들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감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경제학자인 저자가 책으로 펴냈다.

   얼마전 한 그림이 유명세를 탔던 적이 있다. 고흐나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값어치가 있거나 희소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어떤 그림을 모 재벌가에서 수십억을 주고 구매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그만한 값어치의 그림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누구보다 경제 개념이 확실한 사람이 그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경제학으로 다가가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은 소량 혹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다른 재화와는 다르다. 게다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그 그림의 가치는 절대 떨어지지 않고, 유명한 평론가의 입만 빌린다면 천장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살아 생전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해 가난과 싸워야 했던 고흐가 보이지 않는 경제의 힘으로 자신의 그림이 엄청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귀가 잘린 자화상으로 유명한 고흐는 다수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는 왜 자화상을 즐겨 그렸을까?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어서? 아니면 그것이라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어서? 여기에도 경제적인 이유가 따른다. 평소 가난해서 모델을 찾을 수 없었던 고흐는 어쩔 수 없이 모델료가 들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 보며 그릴 수 밖에 없었다. 또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그려주게 되면 화가의 생각보다는 의뢰인의 마음에 들게 그려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 화가 마음대로 그릴 수도 있고, 모델료도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자다. 그래서 미술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을 설명하는데 미술을 빌릴 뿐이다. 즉, 미술이 아니라 경제가 주가 된다. 딱딱하고 지루한 경제를 재밌는 미술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경제 이야기보다는 덜 지루하지만, 아무래도 경제가 주인공이다 보니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모든 분야가 경제를 빼놓고는 설명될 수가 없다. 반대로, 경제를 강조하면서 문화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는 없다. 흔히 문화산업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기서 잠깐,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그동안 2차 산업으로 도시를 먹여살려 왔다. 최근 뮤지컬이나 게임, 육상 등의 축제를 개최하면서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나마 그것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먼저 다가간 것이기에 양과 질에서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어느 것 하나라도 좋으니, 문화적 혹은 경제적인 측면 모두에서 만족할 수 있는 문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한다.

2008/11/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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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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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우리들의 축제, 그리고 세상 속으로!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데, 난 작가 황석영도 인간 황석영도 몰랐다. 그저 『장길산』과 『오래된 정원』의 저자였으며 오래전 TV 뉴스에서 그의 얼굴을 더 많이 봤다는 것, 그래서 정치색이 강한 작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감히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성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길산』이나 영화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오래된 정원』처럼 그저 언젠가는 한번 읽어보겠지, 이렇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개밥바라기별』은 다르다고 했다. 성장소설이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했다. 그동안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대작가와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믿었다.
   때마침 한 오락 프로그램에 이 대작가가 출연했다. 이미 책을 읽은 후였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책을 통해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 속 주인공들처럼 저돌적이지만 유쾌한 한 남자도 만났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외모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만면에 번지는 유쾌한 웃음 소리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필력 뿐만이 아니라 이젠 정말 외모까지 대작가의 면모를 띄고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의 출연은 그를 이해하고 『개밥바라기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 그는 베트남으로 떠나야 한다. 떠나기 전 외출을 허락받은 준은 학창시절 친구들을 떠올린다. 공부보다는 책을 읽고 글 쓰는데 관심이 많았던 '준', 학교를 휴학하고 인호와 함께 무작정 떠난 무전여행, 시위 그리고 자살과 또 한번의 떠돌이 생활. 준은 그 시절 어느 것에도 제대로 몰두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단 준 뿐만이 아니다. 책 속에서 각각의 화자로 등장하는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때론 혼자서, 또 때론 친구들과 함께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물론 이것은 황석영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시대도 다르고, 고민거리도 당연히 다르다. 그러나 그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결코 다르지 않다. 이것이 바로 독자들을 열광케하는 이 책의 힘이 아닐까. 7,80년 대 청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면 재미는 있을지라도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황석영 작가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했던 일이었던 것처럼 소소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마치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우리 한때, 아프고 힘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난날을 '축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젠 어엿한 작가가 된 타블로의 평이다. 과연 내게는 어떤 '축제'가 있었을까, 기억 속을 더듬어 본다.

젊거나 나이먹거나 세월은 똑같이 소중한 거랍니다. 젊은 날을 잘 보내세요. (p.17)
누구나 삶의 고통은 몸 안의 어느 깊숙한 곳에 간직한다. (p.250)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p.270)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p.282)

2008/11/1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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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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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 왜 그리도 제목이 낯설게만 느껴지던지. 엄마를 부탁한다는 제목이 선뜻 와 닿지가 않았다. 사실 살면서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딸인 나를 부탁했으면 했지, 내가 엄마를 부탁할 일은 없었다. 엄마는 나보다 어른이고, 무엇보다도 엄마는 엄마니까. 엄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약한 모습을 한번도 보인 적이 없는 엄마니까. 그러니까 엄마를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는 건 당연히 있을리가 없지. 그래서 제목이 낯설었던 것 같다. 도대체 엄마를 누구에게 부탁한다는 것일까? 엄마를 부탁해야 하는 그 일은 과연 무엇일까?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올라온 엄마가 서울역에서 사라졌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 딸들은 포상금까지 내걸며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아는 곳이라고는 없는 엄마가 자식들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도대체 어디에 계신걸까? 그제서야 자식들과 남편은 엄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젠 살만해진 두 아들과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막내 딸, 꽤 유명한 작가 딸이었지만 아무도 자신의 엄마를 몰랐다. 엄마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엄마의 몸이 얼마나 불편한지, 왜 그토록 아들에게 미안해 했는지, 엄마가 무엇을 갖고 싶어했는지, 엄마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엄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도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다.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돌아왔을 때도, 집 나간 아버지 대신 집안을 책임져야 했을 때도, 이젠 다 커버린 자식들이 더이상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도 언제나 강한 엄마였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다. 엄마의 이름은 '박소녀'. 이름처럼 엄마에게도 가슴 두근거렸던 소녀 시절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외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p.28)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 넘드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 이제 어째야 하나 ……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 …… 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두 같구. 내가 뭘 알았어야 말이지. (p.97)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엄마의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쩌든지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p.274)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참으로 잔인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무 일도 없다, 단지 엄마가 사라졌을 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엄마가 사라진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며칠 지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곧 돌아오시겠지,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이렇게 담담한 이야기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족들이 몰랐던 엄마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고, 굳이 떠올리려하지 않아도 나의 엄마가 떠올라서 목이 메였다. 이야기 속 엄마가 그저 평범한 엄마였기에 더 가슴 아팠는지도 모른다.
  특히, 큰 아들의 모든 것이 엄마의 처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우리 엄마에게 처음이라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첫 애이기 때문이다. 처음이라는 것, 설레임도 있지만 그것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는 기쁘기만 했을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엄마가 느꼈을 두려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엄마, 오늘은 엄마의 손을 잡아줘야겠다.

2008/11/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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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8-12-0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선물해달래서 소녀님한테 땡스투 누르고 가요.
드뎌 한번 갚네요. ㅋㅋ 잘 지내시죠? ^^*

뒷북소녀 2008-12-0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진달래님, 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