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그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향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문구를 보는 순간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체취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체취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체취를 모아 향수를 만든다. 향수에 집착하는 남자가 그 말고도 또 있다니. 

   프랑스 정보부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엠므는 40년 동안 '머스크'라는 한가지 향수만 사용했다. '머스크'는 발정기 사향노루의 하복부 분비선에서 뽑아낸 물질로 만든 것으로, 엠므는 그 향만이 자신을 대표할 수 있고 여자들을 유혹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동안 그의 정부로 만나온 이브가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엠므는 늘 사용하던 향수를 썼고, 단지 용기만 바뀌었을 뿐인데 다른 냄새가 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브는 용기가 바뀌면 그 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엠므를 위로한다. 
   집으로 돌아온 엠므는 오늘 아침에 버린 향수병에 새 향수를 붓고 예전의 향기로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문제는 용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향수를 만든 회사에 편지를 보내 냄새가 달라진 이유를 듣게 된다. 오랫동안 향수를 만들던 회사가 대기업으로 인수됐고, 그 대기업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천연 분비물 대신 합성 분비물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엠므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머스크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하루 사용량도 4밀리에서 2밀리, 1밀리로 조절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머스크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에 자신감이 없어진 엠므는, 어느날 아침 예전처럼 머스크를 둠뿍 바르고 몸단장을 한다. 그는 머스크를 확보할 수 없다면, 자신의 수명을 머스크에 맞추도록 결심한 것이다.
   40년 동안 머스크만 쓰며 자신의 몸단장에 한치의 오차도 없었던 엠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냉정하리만큼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유산을 정리하고, 시체 방부처리사를 만나고, 어떻게 하면 깔끔한 모습 그대로 자살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스파이라는 직업 때문이었을까. 그는 매사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말이다. 처음에는 그루누이처럼 자신만의 향수를 제조하러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죽음을 선택하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향수만이 자신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내게도 한 때는 그런 것이 있었다. 나를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됐던 적이 있었다. 어느날 더이상 그것을 잡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나 역시 엠므처럼 엄청난 공황에 빠졌다. 과연 그것 없이 살 수 있을까? 그것 없는 삶은 얼마나 지루할까? 그것과 함께 한 그동안의 내 삶은 무엇이 내는가? 그 허무와 절망, 그래서 더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편안한다. 그것 없이도 잘 살고 있다. 가끔씩 떠오를 때면 허전함 같은 것이 나를 괴롭히지만, 엠므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만큼은 아니다.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덮고나니 결코 재밌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8/11/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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