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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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라 이야기』를 통해 스페인인 남편 호세와의 기상천외한 신혼기를 그린 싼마오가 두 번째 산문집 『흐느끼는 낙타』를 펴냈다. 뒤늦게 『사하라 이야기』의 독자평을 보고 서둘러 읽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던 참에 『흐느끼는 낙타』를 만나 반가웠다.   표지 속 낙타의 표정은 참 포근해 보이는데, 저 낙타를 흐느끼게 만드는 사연은 무엇일까? 

달빛이 망망대해 같은 모래언덕을 하나 하나 비추었다. 초현실파의 꿈처럼 신비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이런 사막의 밤 풍경 속에 있노라면 나는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p.26)

싼마오, 사막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흐느낌을 달래주다!
   스페인인 호세와 결혼한 싼마오는 서사하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곳은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만났던 사하라 사막처럼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서사하라는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라로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서사하라의 정세는 불안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인 사하라위족과 스페인인 사이가 당연히 좋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싼마오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광산으로 출근하는 남편 호세를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 더위가 작열하는 사막을 힘겹게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태워준다. 다른 사람들은 돼지라며 가까이하는 것조차 꺼리는 벙어리 노예에게 잠시동안 더위를 피하게 해주고, 소박한 음식을 건네준다. 사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담고 싶어 찍은 사진이 영혼을 빼앗는 기계로 오해받자 서슴없이 필름을 태양으로 태워버린다. 모로코의 진군으로 자신 또한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게 됐을 때도 쫓기는 자들을 도와주려 했다. 남편과 이웃들의 걱정에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싼마오, 한마디로 그녀는 오지랖이 너무 넓은 사람이다. 다행인 것은 그 넓은 오지랖으로 그녀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안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하라에 머물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점령하게 되자 싼마오와 호세는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로 옮기게 된다. 카나리아새의 원산지이자 아름다운 화산섬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싼마오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늘 사람에게 있었고,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여기서는 모래 한 알, 돌멩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생한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겠는가? (p.31) 

사막에 처음 왔을 때 내가 품었던 가장 웅대한 포부 가운데 하나는 내 사진기에 이 극도로 황폐한 땅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었다. (p.57) 

   안타깝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남편 호세가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싼마오는 유랑 생활을 마치고 고국 대만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학생을 가르치며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여러 편의 책과 노랫말, 임청하와 장만옥 주연의 영화 《곤곤홍진》의 각본 등을 쓰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녀는 1991년 48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너무나도 멋진 흑백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자살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자살로 알려져있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직까지도 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서 생활하려면 낙타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다. 과거 농경생활에서의 소처럼, 혹은 유목생활에서의 말처럼 말이다. 낙타는 사막을 건너는 이동수단이 되기도 하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고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낙타는 곧 사막 사람들이며, 낙타의 흐느낌은 바로 그들의 흐느낌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서사하라에서는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로 시작된 그들의 흐느낌을 하루 빨리 달래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하라 사막은 단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과 대지로 그의 사랑에 묵묵히 대답한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모두 사하라의 품에서 태어나길 빌어준다. (p125)


09-25. 『흐느끼는 낙타』 2009/03/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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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의 도시 책벌레만 아는 해외 걸작 1
헨리 빈터펠트 지음, 김정연 옮김, 채기수 그림 / 아롬주니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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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없이 살 수 있어?
   어릴적에 부모님이 외출하고 안 계시면 집안은 우리 차지였어요. 엄마 몰래 화장품도 찍어 바르고, 옷장 속에서 옷도 꺼내 걸쳐보면서 즐거워했죠. 아마 모두들 한번쯤은 이런 기억 있을거예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도 마냥 즐겁기만 할까요? 

   팀페틸 마을에는 '해적단' 때문에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는 날이 없어요. 물론 해적단은 진짜 해적단이 아니라 악동들의 모임이죠. 점점 많은 아이들이 해적단에 가입하고, 장난의 수위도 높아지죠. 그러던 어느날, 윌리가 고양이 꼬리에 단 자명종 시계 때문에 온 동네가 엉망진창이 되는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어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어른들은 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결심하죠.
   다음날 아침, 이상하게도 그날은 아무도 '교수'를 깨우지 않았어요. (교수는 안경을 끼고 있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랍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부모님은 보이지 않고, 세수를 하려고 수도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냥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 '교수'는 마을에 어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돼요.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기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난 걸까요? 아니면 숲 속에 숨어 있는 걸까요?
   어른들이 사라진 마을,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해적단이 기다렸다는듯이 마을을 접수해요.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장난감이며 초콜릿이며 그동안 갖고 싶었던 것을 마음대로 가져오죠. '교수'와 마이클은 그들의 횡포에 동조할 수 없었어요. 어른들이 돌아왔다 다시 떠나지 않게 청소도 하고 일도 했죠. 점점 '교수'와 마이클에게 동조하는 친구들이 늘어나 15명이 됐죠. 그들은 발전기를 돌리고, 요리를 하고, 공부도 했어요.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한거죠. 그래요, 아이들도 기회가 되면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아마도 아이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달았겠죠.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지 말이죠.  

   아롬주니어에서 나온 이 책은 "책벌레만 아는 해외 걸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요. 전 이 타이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답니다. 이제 저도 이 책을 읽었으니까 책벌레 맞죠?
   작가 헨리 빈터펠트는 독일의 세계적인 동화작가로 성홍열을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전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의 또다른 동화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 떠올랐답니다. 이 책에도 부모님 잔소리 없이 마음대로 하고픈 아이가 등장하거든요.

09-25. 『아이들만의 도시』 2009/03/0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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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1
스제펑 지음, 차혜정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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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유비의 전략가 제갈량과 손권의 명장 주유가 나선다!
   어떤 이들은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들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삼국지』에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전략들이 담겨있고, 그 전략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3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 전략들을 이용해 사람을 대할 수도 있으므로 경계하라고 한다.
   적벽대전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의 18만 대군을 대파한 전투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전략들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전략들을 펼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전략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적벽대전』의 주인공은 유비도 조조도 아닌 바로 전략가인 것이다.
   영화 《적벽대전》의 주인공으로 양조위와 금성무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양조위가 제갈량 역을 맡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성무가 제갈량 역을 맡고, 양조위는 손권의 명장 주유 역을 맡았다. 『삼국지』를 읽은지 수 년이 지나서인지 주유의 활약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우삼 감독이 제갈량과 주유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지만, 반 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되는 영화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적벽대전2》가 개봉됐고, 동시에 원작소설인 『적벽대전』도 함께 출간됐다. 이제 제갈량과 주유에 대한 궁금증을 풀 시간이 왔다. 

   조조는 승승장구해 세력을 넓히고 있지만, 유비는 겨우 유표에게 의탁해 형주에서 머물고 있다. 비록 유표의 군사를 얻어 조조의 하후돈이 이끄는 군대를 격파했지만, 10년째 신야에서 무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느날 그를 찾아온 한 노인이 유비에게 제갈량을 소개하고, 그를 얻은 유비는 드디어 조조와 맞서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부릴 수 있는 군사는 많지 않다. 
   유비는 조조에게 항복하려는 손권에게 제갈량을 보내 연합작전을 펼치려고 한다. 제갈량은 손권의 명장 주유를 시조로 회유해 연합전선을 구축한다. 그들이 연합한 곳이 바로 적벽이다. 그러나 말이 연합이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18만 대군의 조조군에게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였다. 그들은 어떻게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일까? 

"배의 왼편으로 울창한 숲이 보였는데 빽빽하고 새까만 침엽수가 길쭉하게 자라 있어 한겨울 날씨에도 전혀 시들지 않았다. 오른편에는 핏빛의 절벽이 보였는데 마치 핏빛으로 물든 거대한 병풍 같았다. 절벽 아래에는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눈처럼 흰 모래가 붉은 절벽과 대비되어 붉은색은 더욱 붉게, 흰색은 더 희게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전함이 절벽 아래를 향해 질서 있게 도열한 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2권, p93) 

외모부터 지략까지 모자람이 없는 주유, 그도 F4?!
   본래 주유는 손책의 사람으로, 조조가 아끼는 교씨 자매를 데려와 손책과 주유가 나란히 나눠 가질 정도로 두터운 사이였다. 손책이 죽고 동생 손권이 즉위하자 주유는 어쩔 수 없이 손권을 모신다. 이런 사정을 아는 손권도 주유가 늘 못마땅하지만, 모자람이 없는 주유를 어찌하랴. 그러므로 조조에게 맞서야 하는 주유의 이번 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칫하면 손권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 있고, 사랑하는 소교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유 또한 제갈량 못지 않게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조조는 수전에는 약한 자신의 군사를 보완하기 위해 투항해 온 채모와 장윤에게 수군 훈련을 맡긴다. 그들이 투항하면서 데려온 군사들은 수전에 강했다. 유비- 손권 연합군이 조조군을 이기려면 채모와 장윤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주유는 사신으로 온 장간을 이용해 반간계로 조조 스스로 채모와 장윤을 처단하게 만든다.
   한편, 주유는 자신의 계략을 모두 알아차린 제갈량을 살려둔다면 장차 자신의 나라에 해가 될 것을 염려해 그를 죽이려 한다. 손을 잡은 마당에 명분 없이 제갈량을 죽이면 어려움에 빠질 수 있으니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 낸다. 그는 제갈량에게 전쟁에 필요한 10만 개의 화살을 열흘 안에 구해오라고 한다. 만약 지키지 못할시 군령에 따라 처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유보다 제갈량이 한 수 위였다. 

제갈량, 10만개의 화살도 한 겨울의 동풍도 문제없다!
   유비의 전군이 두 달을 꼬박 만들어도 채울 수 없는 10만 개의 화살을 제갈량은 열흘이 아닌 사흘 만에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다. 어차피 해낼 수 없는 일이니, 큰소리라도 쳐본 것일까. 사실 제갈량이 10만 개의 화살을 구해낸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제갈량은 안개가 자욱한 날 짚을 실은 배를 타고 조조의 진영으로 가 화살을 얻어온다.
   뿐만아니라 화공을 이용하려는 유비 - 손권 연합군이 제때에 바람이 불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 동풍까지 몰고 온다. 그저 전략가뿐인 제갈량에게 바람까지 부리는 신기가 있었던 것일까. 사실 제갈량이 한 것은 쇼맨십 뿐이었다. 어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지금쯤이면 동풍이 불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재단을 쌓고 바람을 불러오는 척 했던 것이다. 
   이를 본 주유는 제갈량을 죽이려 더욱 혈안이 됐지만, 이번에도 주유의 속마음을 간파한 제갈량은 유유히 벗어난다.

   그동안 『삼국지』의 두 주인공인 유비와 조조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제갈량과 주유가 주인공인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덕을 모르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유비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백성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답답한 군주로 그려진다. 그래서 제갈량과 주유의 활약이 더욱 부각됐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덮으면서 읽은지 오래돼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삼국지』를 다시 한번 들춰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유비와 조조가 아닌 제갈량과 주유에게 주목하며 읽어 보리라.

09-24. 『적벽대전』 2009/03/0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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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서부 2015-07-17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비.참 형편없는 존재로 세월만 허송한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공짜로 형주를 받고 세력을 점차 키웠다면 그 후엔 더 나아졌을텐데 말이죠...
제갈량의 선두로 삼국을 촉으로 통일시키는걸 보고 죽었을거 같은데............
 
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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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황,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현상으로 이해하라!

   책을 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환한 미소였다. 불황(depression)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서는 우울(depression)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책을 읽기도 전에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모두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늪이라며 비관하고 있을 때, 금세기 최고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낙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인은 미래로 가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믿습니다. - 앨빈 토플러


    정치인, 경제학자, 시장분석가, 일반 시민 등 수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1930년대 대공황을 모델로 삼고, 각종 정책에는 '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는 지금처럼 불황에 대처한다면 절대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위기는 과거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는 지금처럼 경제와 사회가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제3의 물결 이후 경제와 사회가 움직이는 속도는 급속하게 빨라졌고, 그것을 통제해야하는 공공부문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탈동시화(de-synchronization)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 오늘날은 예전의 획일화된 산업 사회와는 달리 지식이 기반이 된 다원화 사회이며,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 기업도 많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단순히 1930년대 대공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중앙 정부에서 정책을 결정해 모든 부분에 적용하는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정책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한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사회인만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지식과 정보를 통합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 인간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활용해 모든 이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미래예측을 통해 문제를 최소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위기의 비관적인 전망만 강조하고 있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며, 새로운 문명의 설계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향후 몇 년 동안 의심의 여지없이 지독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해보아도 퇴보하게 될 거라는 걱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발전하게 될 거라는 믿음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 앞에 높여 있는 세상은 단지 "새롭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한 세상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고 더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p206~207)


   역시 그는 우리 경제를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몇 년 후면 우리도 그처럼 환한 미소를 지을 날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제1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5년에 출간됐다. 그는 지금의 경제 위기가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경제 상황은 출간 당시와 비슷하다. 출간된지 30년이 지났지만 그의 주장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도 이런 통찰력 때문에 그를 금세기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는 것이리라.

 

09-23. 『불황을 넘어서』 2009/02/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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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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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때론 제목만으로도 읽는 이를 설레게하는 책이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 물론 책은 조용히 혼자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책 읽는 것마저 피곤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누군가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침대에서 잠드는 일, 생각만해도 멋지지 않은가.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나란히 누워 있기...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이 멋진 일을 하고 있는 한 남자를 소개한다. 아쉽게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겨우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감염에 걸린 미하엘은 길을 가다가 심한 구토 증세를 보였고, 우연히 이를 지켜본 한 여인이 소년을 도와준다. 며칠 후, 미하엘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그녀를 다시 찾는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 서른여설 살이며 전차 차장 일을 한다. 미하엘은 외출하기 위해 스타킹을 신고 있는 한나의 몸짓을 보고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미하엘의 첫 사랑은 시작됐다. 그녀로 인해 활기를 찾고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미하엘은 매일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나란히 누워 있기.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사라졌다. 미하엘은 자신이 그녀를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8년 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된 미하엘은 법정에서 우연히 한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나치 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하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미하엘은 한나가 그동안 꼭꼭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된다. 그 비밀만 이야기한다면 한나는 주범에서 단순 가담자로 처벌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는 종신형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비밀을 지키려 하고, 미하엘 또한 그 비밀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 

   다시 세월은 흐르고, 미하엘은 이혼 후 혼자 살게 된다. 법학자로서 일은 하고 있지만 일상은 시들시들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다시 책을 펼쳐든 미하엘은 소리내어 읽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한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미하엘은 카세트테이프에 자신의 책 읽는 목소리를 녹음해 그녀에게 보내기 시작한다. 이 일은 그녀가 수감된지 8년째부터 시작해서 18년형으로 사면 받을 때까지 꼬박 10년동안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한나는 스스로 글을 읽고 편지를 쓸 수 있게 됐지만, 미하엘은 그저 카세트테이프만 보낸다.
   드디어 그녀의 석방 날, 미하엘은 그녀의 출소 소식 대신 자살 소식을 듣는다. 

혼자 짊어지게 해서 미안해요, 대신 책을 읽어줄게요! 

   "사형집행인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거요. 그는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신한테 방해가 되거나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공격하려고 해서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지요." (p163)  

   한나가 종신형을 감수하면서까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비밀은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이었다. 글도 모르는 그녀가 어떻게 보고서를 작성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만 밝혔다면 그녀는 종신형을 받지 않아도 됐다. 죄의식보다 수치심이 더 컸던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다. 그저 글을 몰랐기 때문에 감시원 일을 했고,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고, 달리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저는 …… 제 말은 …… 하지만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습니까?" (p119) 그래서 그녀는 재판장에게 되묻는다. 

   전후 세대인 미하엘은 전범이자 그들의 부모 세대인 그녀를 비난하지도 못하고, 도와주지도 못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나, 즉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p183)이었기 때문이다. 나치 시절, 그들이 행했던 일들은 어느 한 개인을 처벌한다고 해서 면죄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닌 전 세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십자가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나에게 모든 짐을 짊어지게 한다. 미하엘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 것도 그녀에게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실 한나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한나에게 한 손가락질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녀를 선택할 당시에는 그녀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하려고 해보았다. 나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를 사랑할 때의 그 순진무구한 상태 속으로 나를 위치시켜보려고 했다. (p182) 

   한나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워서 그토록 꼭꼭 숨겨뒀던 비밀을 드러내면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책을 펼쳐놓고 미하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글을 배웠고, 미하엘에게 공들여 편지까지 썼다. 그랬던 그녀가 석방을 앞두고 자살한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미하엘의 책 읽어주는 행위가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글을 모르는 그녀는 미하엘의 졸업식 모습이 담긴 신문까지 힘들게 오려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미하엘은 죄책감 이상으로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 제목에 반해 이 책을 처음 읽었고,  조만간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새 옷으로 갈아입은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울림은 여전했다. 미하엘과 한나의 끝을 알고 읽었는데도 한나의 자살 소식에 가슴이 철컥거렸다. 한나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은 이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졌다고 한다. 소설에서 느꼈던 울림을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09-21.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9/02/2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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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2009-03-0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에서도 뒷북소녀님을 만났네요.. 더구나 이주의 리뷰까지.. 축하드립니다^^

뒷북소녀 2009-03-09 17:44   좋아요 0 | URL
어머, 전 뽑혔는지도 몰랐어요. 오우아님, 감사합니다. :)

다윗 2009-03-09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이주의 리뷰 축하드립니다. ^^

뒷북소녀 2009-03-09 17: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윗님도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