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1 | 112 | 11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삼성 vs LG, 그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박승엽.박원규 지음 / 미래의창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에서 언론과 광고를 전공한 나는 과제로 기획서를 만들어야 할 기회가 많았다. 기업 자체나 브랜드, 개별 제품 등 다양한 주제의 기획서를 만들었고, 그럴때마다 경쟁사나 경쟁 제품에 대한 분석을 빠뜨리지 않고 보태야만 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지 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삼성'과 'LG'였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히트를 치고 있던 삼성의 기업이미지 광고를 분석할 때는 '사랑해요, LG'를 외치는 LG의 이미지광고를 함께 비교해야만 했다. 당시 주부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디오스' 냉장고에 대한 광고를 만들 때도 경쟁제품인 '지펠'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리집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온 집안이 삼성 브랜드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간혹 '에어컨은 휘센'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세트로 나오는 가전제품 중에서 에어컨만 LG 제품을 구매한다던가, 'CD-RW는 LG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삼성 컴퓨터에 그것만 LG 제품으로 장착을 하긴 했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삼성 제품을 사곤 한다. 게다가 충성도 또한 뛰어나서 휴대전화가 100만원을 웃돌던 시절 샀던 애니콜 덕분에 재구매를 해야할 때마다 여전히 애니콜만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삼성의 경쟁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LG 말고 또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그렇지 않다면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전자, 통신, 화학, 금융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두 기업의 경쟁 이야기. 비록 전공 때문에 관심은 많았지만 경제나 시장 상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생활 깊숙이 삼성과 LG가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소한 기술 이야기가 나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그들의 경쟁 구도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조금씩 접해 왔던 것이었고, 이전에 우리가 접한 것이 작은 나무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 큰 숲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기술 개발 측면에서의 그들의 경쟁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제품 이미지나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삼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 측면에서도 삼성의 승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술 개발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크기 전쟁, VCR과 광디스크 시장에서의 속도 전쟁은 유치할 정도로 심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유치한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맞불 작전으로 부딪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우의 '공기방울 세탁기'가 히트를 쳤을 때처럼 자신들을 위협하는 제3자가 등장하면 합세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아들과 딸을 교환한 사돈지간이었다. 초창기에 뛰어들었던 방송 사업에서는 함께 출자하여 TV,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기도 했다.

 

좋은 라이벌은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서로의 장점들을 모방하며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전세계 1위라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던 '소니'를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은 '소니'를 견제할만한 경쟁 상대가 없었고 그로인해 '소니'를 자만에 빠지게 만든 '소니' 자신이었다. 반면에 삼성과 LG는 서로를 견제하며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추구하였고, 덕분에 오늘날은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지나친 경쟁으로 제 살들을 깎아먹는 과오를 범하며 함께 추락해 갔다. 삼성과 LG는 함께 경쟁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2007/10/07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91년 『여섯번째 사요코』로 데뷔한 온다 리쿠는 불과 2년 전에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지금은 총 19권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은 훨씬 많다고 하니, 올해로 데뷔 17년째인 그녀는 분명 다작을 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 출간된 네 편의 작품 (『구형의 계절』, 『불안한 동화』, 『도서실의 바다』,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앞도 뒤도 보지 않고 그냥 사버린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특별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졌다. 과연 나는 이 작가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 보통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지 알기 때문에 다음에 읽는 작품은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그녀의 작품을 열 권 이상 읽고 났을 때, 나는 그녀를 잘 아는 독자라고 자신하며 읽었던 책에서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방심했던 탓일까? 한 50페이지 정도를 읽었음에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아 마음을 다잡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했다. 덕분에 지금은 결코 만만한 마음가짐으로 그녀의 작품을 시작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도입부의 부적응은 어쩔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을 꺼린다.
내내 한 사람의 시점에 갇히는 것이 잘 맞지 않는다." (온다 리쿠의 인터뷰 중에서)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 소설을 배울 때면 항상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 소설의 시점은 무엇인가?'. 보통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던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고, 특이하게 2인칭 시점이 한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즉 대개는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고, 어쩌다가 시점이 변화하는 부분이 등장하면 반드시 시험 문제로 출제되곤 했었다.
온다 리쿠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시점의 다각화'를 여러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다. 『삼월은 붉은 구렁』, 『라이온 하트』,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등은 다양한 사건과 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시점을 바꾸고 있다. 앞서 나열한 작품들이 시도였다면 『유지니아』는 그런 시도들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오랫동안 시점이 고정되어 있는 작품을 배우면서 익숙해져 버린 독자들은 그녀의 이런 작품들을 읽을 때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온다 리쿠가 시점의 다각화를 시도하는 이유?
『유지니아』는 오래전에 일어난 대량 독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에는 이 사건을 소설로 출판한 작가도 있고, 그 작가가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 할 때 옆에서 도와주었던 후배도 있다. 그 작가와 후배가 증언한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논픽션? 난 그 말 싫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해도, 사람이 쓴 것 중에 논픽션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눈에 보이는 픽션이 있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것조차 거짓말을 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손에 만져지는 것도. 존재하는 허구와 존재하지 않는 허구, 그 정도 차이라고 생각해요." (p. 23)

"사실은 어떤 한 방향에서 본 주관에 불과합니다." (p. 82)
 
그렇다.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본 것일테고, 똑같은 사실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이해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온다 리쿠가 시점을 다각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지니아』에는 결론이 없다. 사건도 있고,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 범인은 자살했지만 진범은 따로 있다고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진범을 지목하지만 확실하게 그녀가 진범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증언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아직 내 머릿속에는 <The End>라는 자막이 올라가지 않았다.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오픈하고 보여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복선과 단서는 던져주되 그 이후의 상상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있다. 때론 확실한 결말이 궁금하기는 하고 결말이 없어 허무하기도 하지만,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결론을 상상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온다 리쿠는 독자들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아직 읽지 않은 그녀의 최근작들은 나에게 어떤 긴장감과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해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2007/10/03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유괴단에게 납치된 노인이 스스로 유괴단의 리더가 돼서, 범인들을 자기 수족처럼 조종하여 막대한 몸값을 자기 자식들한테 빼앗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요." (p380)
 

워낙 심약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완전히 물러갈 때까지는 절대 극장가를 서성이지 않는다. 덕분에 개봉한지 꽤 된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이라는 영화를 책에 둘러져 있는 띠지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통 유괴라고 하면 당연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의 제목으로 추측을 해보면 유괴의 대상은 권순분 '여사', 즉 어린이가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유괴'가 아닌 '납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소설 속 유괴의 대상도 어린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도대체 어떤 인물을 유괴했길래 '대유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일까.

 

큰집 동기동창인 겐지와 마사요시, 그리고 헤이타는 같은 시기에 출소를 하면서 깨끗히 손 씻고 살기 위해 크게 한탕하기로 결심한다. 한탕의 수단은 유괴, 대상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가진 82세의 야나가와 도시 여사, 목표액은 5천만 엔. 오랫동안 할머니 주위를 맴돌던 그들은 산행에 오른 할머니를 유괴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그들은 치밀하거나 악랄하지 않았다. 삼인조의 리더격인 겐지가 모든 범행 계획을 세우고, 마사요시와 헤이타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라갈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인 것이다.

야나가와 도시 여사는 엄청난 재력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재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고, 그녀는 그곳의 여왕이나 마찬가지였다. 뿐만아니라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녀를 신봉했다. 자연히 이 유괴사건은 여사의 집안 문제를 넘어서 도시 전체의 문제로 부상했다.  특히 이 사건의 지휘자로 지목된 이카리 또한 여사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사를 무사히 구출해 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아무리 82세의 할머니라지만 만만치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할머니는 유괴단에게 협조적이다. 아니 협조적인 것을 뛰어 넘어 도리어 유괴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은신처는 어디로 삼아야 할 것이며, 협박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까지 유괴단에게 알려주는 친절한 할머니. 게다가 자신의 몸값이 겨우 5천만 엔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버럭 화를 내며 100억 엔으로 올려 달라고까지 한다. 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손자들에게 100억 엔이라도 떼주려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이에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도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이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에게 '무지개 동자'라는 판타스틱한 이름까지 지어준다.

결국 사건은 이카리와 할머니가 주도하는 '무지개 동자'의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으로 이어지고, 다행히도 유괴는 성공하여 100억 엔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

 

왜 할머니는 '무지개 동자'에게 그토록 협조적이었을까?

사실 할머니에게는 7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전쟁 때문에 3명의 자식을 잃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식들도 할머니가 보기에는 변변치 못해 보였고, 할머니가 죽고난 후 엄청난 재산을 유지할 수 있을런지도 걱정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35kg이었던 할머니의 몸무게가 26kg으로 급격히 줄어버렸다. 보통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고들 한다. 할머니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던 것이다. 마침 그때 '무지개 동자'가 할머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는 그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로 대신할 뿐이다. '이건 신이 나를 위해 차려주신 밥상이야.' (p391)

 

소설을 읽는내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내용은 모르지만 권순분 여사 역을 맡은 나문희를 떠올리자 캐스팅 한번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미스터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절대로 어둡지 않다.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로 경쾌하고 따뜻하다. 1978년, 거의 30여 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절대 촌스럽지도 않다. 덴도 신, 그가 이미 죽은 작가라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2007/10/01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채화 쉽게 하기 - 투명 수채 기법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당연한 이유

나는 미술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엄청난 귀차니즘의 소유자라서,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이것 저것 챙겨야 하는 것도 많고 정리할 것도 많은 수채화 시간은 정말 질색이었다. 사실 귀차니즘 때문이 아니라 내 실력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그림들은 나름 그렸던 것 같은데, 사실적으로 그려야하는 수채화나 데생은 영 꽝이었다. 내 그림은 여전히 초등학생의 크레파스화 수준인데, 몇몇 친구들은 제법 수채화 티가 나게 그림을 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한번도 물감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수채화를 그리는 기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전문적으로 미술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없었고, 중학교 때는 이론만 배웠지 실기는 개인적으로 학원에서,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입시 덕분에 미술 시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미술 학원이라고는 그 근처도 가보지 못한 내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저 못난 내 손만 탓했던 것이다.

 

투명 수채화는 흰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내가 가지고 있던 수채 물감은 항상 흰색만 빨리 없어졌다. 당시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수채 물감은 하나씩 팔지 않았지만, 포스터 칼라 물감은 하나씩 팔았다. 나는 모자라는 흰색 수채 물감 대신 포스터 물감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 한가지를 발견했다. 투명 수채화에는 흰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흰색 물감을 사용하면 그림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흰색이 필요한 부분은 하얀 종이로 대신해야 한단다. 게다가 나는 수채 물감도 부족해서 불투명한 포스터 물감까지 사용했으니, 가뜩이나 솜씨가 없어 엉망인 그림이 더 볼품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맹세코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전에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예체능 수업은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진작 알았더라면 스스로가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포기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나의 마지막 미술 선생님

김충원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용기를 주신다. 10년 넘도록 잡아본 적이 없는 스케치북과 4B 연필을 사게 해주었고, 그저 선 하나 긋는 것도 두려워했던 나에게 마음껏 스케치라는 것을 할 수 있게끔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30년 전 선생님께서 처음 수채화를 배우실 때 그리셨던 정물화가 실려있다. 본인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는 그림일텐데,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 선생님도 처음 시작하셨을 때는 이 정도였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조만간 콧노래를 부르며 수채 물감과 도구들을 사러 갈 것 같다.

 

2007/10/01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싱글은 스타일이다
전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싱글만 스타일인가?

최근 일,이년 사이에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여자 친구들을 세 부류로 나눠 볼 수 있게 되었다.

첫번째는 일찌감치 결혼해서 착실하게 살고 있는 그녀들, 그러나 그 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두번째는 사귀는 사람이 없으면 못 견딜 정도로 끊이없이 남자를 만나는 그녀들, 보통은 100일을 넘기기가 힘들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저 빈 자리가 있는게 싫어서였을까. 아님 이 나이가 되면 갓 스물살이 되었을 때처럼 가슴 설레도록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호감만 가면 되는 것일까. 세번째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번도 누군가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그녀들이다. 분명 주변에는 많은 남자들이 포진되어 있고, 새로운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팅'자 돌림의 것들을 시도하지만 성공 확률은 제로.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울려주는 내 휴대전화와 술타령. 그렇다고 그녀들이 애인보다는 친구로 지내는게 더 좋을 정도로 좋은 성격의 소유자들도 아니다.

아직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들은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화려한 싱글'이라 못 박을 수 있는 부류들은 없다. 게다가 오랫동안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있는 부류도 없다. 너무나도 달라보이지만, 내 주변에 존재하는 이 세 부류의 그녀들은 공통점을 한가지 가지고 있다. 만나기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오직 '남자' 이야기뿐. 첫인사는 무조건 '남자 친구 생겼니?'. 세상에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을까. 정말 그녀들은 '남자' 빼면 시체일까.  

사실 나는 '남자'라는 것에 있어서 거의 무념무상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남자들을 만나서 통달한 경지는 절대 아니다. 나도 한때는 가슴 속에 반짝 반짝 빛나는 누군가를 품고 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나이 탓일까. 지금은 어느 누가 옆구리를 콕콕 찔러도 무반응 상태, 그래서 무념무상의 경지이다. 그녀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덕분에 '남자'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녀들을 만나면 반가움보다는 스트레스가 쌓일 정도이다. 아무리 자리를 박차고 다른 소재로 대화를 이끌어 보지만 남자들은 왜 항상 삼천포에 있는 것인지. 게다가 천성적으로 수다스러움을 싫어한다. 남자든 여자든 말 많은 사람은 딱 질색이다. 그런 이유들로 그녀들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고, 아무 이유없이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함께 해야한다는 것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의 그들도 멀리하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그 '처음'의 벽만 넘는다면, 얼마든지 혼자서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닐 수 있으며, 조용한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혼자놀기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혼자 밥 먹기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 경지에 오르는 날이 내가 진정한 '싱글'이 되는 날이 되겠지.

『싱글은 스타일이다』의 글과 그림을 그린 작가 전지영은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싱글'이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가 편했나보다. 남자나 결혼에 대한 이렇다할 고민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화려한 싱글'을 꿈꾸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작가에게 다소 미안하지만, 아직 그 나이가 되도록 경제적인 개념이 없이 그저 비싼 화장품을 사고 디자이너의 옷을 입으며 명품 구두를 모으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한때 논란이 되었던 '된장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신의 화장대며 옷장이며 신발장을 모두 공개했을텐데, 그런 그녀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저렇게 '화려한 싱글'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이 부분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책이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이질감 같은 것이 들었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스타일이라는 것은 각자가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취향이다. 따라서 싱글이든 더블이든 누군가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 물론 '화려하다', '초라하다'의 수식어도 어느 곳이든 붙을 수 있다. 스타일은 자신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고유의 것이다. 나는 혹은 당신은 어떤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가.

 

2007/09/30 by 뒷북소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7-10-2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리뷰 좋은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1 | 112 | 11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