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성 vs LG, 그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박승엽.박원규 지음 / 미래의창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에서 언론과 광고를 전공한 나는 과제로 기획서를 만들어야 할 기회가 많았다. 기업 자체나 브랜드, 개별 제품 등 다양한 주제의 기획서를 만들었고, 그럴때마다 경쟁사나 경쟁 제품에 대한 분석을 빠뜨리지 않고 보태야만 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지 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삼성'과 'LG'였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히트를 치고 있던 삼성의 기업이미지 광고를 분석할 때는 '사랑해요, LG'를 외치는 LG의 이미지광고를 함께 비교해야만 했다. 당시 주부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디오스' 냉장고에 대한 광고를 만들 때도 경쟁제품인 '지펠'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우리집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온 집안이 삼성 브랜드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간혹 '에어컨은 휘센'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세트로 나오는 가전제품 중에서 에어컨만 LG 제품을 구매한다던가, 'CD-RW는 LG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삼성 컴퓨터에 그것만 LG 제품으로 장착을 하긴 했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삼성 제품을 사곤 한다. 게다가 충성도 또한 뛰어나서 휴대전화가 100만원을 웃돌던 시절 샀던 애니콜 덕분에 재구매를 해야할 때마다 여전히 애니콜만 고집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굳이 삼성의 경쟁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LG 말고 또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그렇지 않다면 LG가 삼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전자, 통신, 화학, 금융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두 기업의 경쟁 이야기. 비록 전공 때문에 관심은 많았지만 경제나 시장 상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생활 깊숙이 삼성과 LG가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소한 기술 이야기가 나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그들의 경쟁 구도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조금씩 접해 왔던 것이었고, 이전에 우리가 접한 것이 작은 나무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 큰 숲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기술 개발 측면에서의 그들의 경쟁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제품 이미지나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삼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 측면에서도 삼성의 승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술 개발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크기 전쟁, VCR과 광디스크 시장에서의 속도 전쟁은 유치할 정도로 심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유치한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맞불 작전으로 부딪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우의 '공기방울 세탁기'가 히트를 쳤을 때처럼 자신들을 위협하는 제3자가 등장하면 합세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아들과 딸을 교환한 사돈지간이었다. 초창기에 뛰어들었던 방송 사업에서는 함께 출자하여 TV,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기도 했다.
좋은 라이벌은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서로의 장점들을 모방하며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전세계 1위라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던 '소니'를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은 '소니'를 견제할만한 경쟁 상대가 없었고 그로인해 '소니'를 자만에 빠지게 만든 '소니' 자신이었다. 반면에 삼성과 LG는 서로를 견제하며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추구하였고, 덕분에 오늘날은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지나친 경쟁으로 제 살들을 깎아먹는 과오를 범하며 함께 추락해 갔다. 삼성과 LG는 함께 경쟁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2007/10/07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