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유괴단에게 납치된 노인이 스스로 유괴단의 리더가 돼서, 범인들을 자기 수족처럼 조종하여 막대한 몸값을 자기 자식들한테 빼앗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요." (p380)
 

워낙 심약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완전히 물러갈 때까지는 절대 극장가를 서성이지 않는다. 덕분에 개봉한지 꽤 된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이라는 영화를 책에 둘러져 있는 띠지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통 유괴라고 하면 당연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의 제목으로 추측을 해보면 유괴의 대상은 권순분 '여사', 즉 어린이가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유괴'가 아닌 '납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소설 속 유괴의 대상도 어린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도대체 어떤 인물을 유괴했길래 '대유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일까.

 

큰집 동기동창인 겐지와 마사요시, 그리고 헤이타는 같은 시기에 출소를 하면서 깨끗히 손 씻고 살기 위해 크게 한탕하기로 결심한다. 한탕의 수단은 유괴, 대상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가진 82세의 야나가와 도시 여사, 목표액은 5천만 엔. 오랫동안 할머니 주위를 맴돌던 그들은 산행에 오른 할머니를 유괴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그들은 치밀하거나 악랄하지 않았다. 삼인조의 리더격인 겐지가 모든 범행 계획을 세우고, 마사요시와 헤이타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라갈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인 것이다.

야나가와 도시 여사는 엄청난 재력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재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고, 그녀는 그곳의 여왕이나 마찬가지였다. 뿐만아니라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녀를 신봉했다. 자연히 이 유괴사건은 여사의 집안 문제를 넘어서 도시 전체의 문제로 부상했다.  특히 이 사건의 지휘자로 지목된 이카리 또한 여사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사를 무사히 구출해 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아무리 82세의 할머니라지만 만만치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할머니는 유괴단에게 협조적이다. 아니 협조적인 것을 뛰어 넘어 도리어 유괴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은신처는 어디로 삼아야 할 것이며, 협박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까지 유괴단에게 알려주는 친절한 할머니. 게다가 자신의 몸값이 겨우 5천만 엔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버럭 화를 내며 100억 엔으로 올려 달라고까지 한다. 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손자들에게 100억 엔이라도 떼주려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이에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도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이 '어리버리 삼인조 유괴단'에게 '무지개 동자'라는 판타스틱한 이름까지 지어준다.

결국 사건은 이카리와 할머니가 주도하는 '무지개 동자'의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으로 이어지고, 다행히도 유괴는 성공하여 100억 엔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

 

왜 할머니는 '무지개 동자'에게 그토록 협조적이었을까?

사실 할머니에게는 7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전쟁 때문에 3명의 자식을 잃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식들도 할머니가 보기에는 변변치 못해 보였고, 할머니가 죽고난 후 엄청난 재산을 유지할 수 있을런지도 걱정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35kg이었던 할머니의 몸무게가 26kg으로 급격히 줄어버렸다. 보통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고들 한다. 할머니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던 것이다. 마침 그때 '무지개 동자'가 할머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는 그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로 대신할 뿐이다. '이건 신이 나를 위해 차려주신 밥상이야.' (p391)

 

소설을 읽는내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내용은 모르지만 권순분 여사 역을 맡은 나문희를 떠올리자 캐스팅 한번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미스터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절대로 어둡지 않다.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로 경쾌하고 따뜻하다. 1978년, 거의 30여 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절대 촌스럽지도 않다. 덴도 신, 그가 이미 죽은 작가라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2007/10/0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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