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채화 쉽게 하기 - 투명 수채 기법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8월
평점 :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당연한 이유
나는 미술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엄청난 귀차니즘의 소유자라서,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이것 저것 챙겨야 하는 것도 많고 정리할 것도 많은 수채화 시간은 정말 질색이었다. 사실 귀차니즘 때문이 아니라 내 실력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그림들은 나름 그렸던 것 같은데, 사실적으로 그려야하는 수채화나 데생은 영 꽝이었다. 내 그림은 여전히 초등학생의 크레파스화 수준인데, 몇몇 친구들은 제법 수채화 티가 나게 그림을 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한번도 물감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수채화를 그리는 기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전문적으로 미술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없었고, 중학교 때는 이론만 배웠지 실기는 개인적으로 학원에서,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입시 덕분에 미술 시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미술 학원이라고는 그 근처도 가보지 못한 내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저 못난 내 손만 탓했던 것이다.
투명 수채화는 흰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내가 가지고 있던 수채 물감은 항상 흰색만 빨리 없어졌다. 당시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수채 물감은 하나씩 팔지 않았지만, 포스터 칼라 물감은 하나씩 팔았다. 나는 모자라는 흰색 수채 물감 대신 포스터 물감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 한가지를 발견했다. 투명 수채화에는 흰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흰색 물감을 사용하면 그림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흰색이 필요한 부분은 하얀 종이로 대신해야 한단다. 게다가 나는 수채 물감도 부족해서 불투명한 포스터 물감까지 사용했으니, 가뜩이나 솜씨가 없어 엉망인 그림이 더 볼품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맹세코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이전에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예체능 수업은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진작 알았더라면 스스로가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포기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나의 마지막 미술 선생님
김충원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용기를 주신다. 10년 넘도록 잡아본 적이 없는 스케치북과 4B 연필을 사게 해주었고, 그저 선 하나 긋는 것도 두려워했던 나에게 마음껏 스케치라는 것을 할 수 있게끔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30년 전 선생님께서 처음 수채화를 배우실 때 그리셨던 정물화가 실려있다. 본인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는 그림일텐데,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 선생님도 처음 시작하셨을 때는 이 정도였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조만간 콧노래를 부르며 수채 물감과 도구들을 사러 갈 것 같다.
2007/10/01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