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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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녀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
   헬렌 한프는 뉴욕에서 평생 글을 썼지만 "나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154쪽)라고 자평할 정도로 그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작가였던 그녀는 한 평론지에 실린 '희귀 고서점' 광고를 보고 런던 채링크로스 가 84번지에 있는 마크스 서점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절박하게 구하는 책들이 있는데, 만약 5달러가 넘지 않는다면 보내달라고 말이죠. 얼마 후 서점 담당자 프랭크 도엘로부터 그녀가 원하는 책과 함께 편지가 날라옵니다. 그렇게 그들의 편지는 시작되었습니다.

   1949년 10월 5일에 시작된 그들의 편지는, 1969년 1월 8일 도엘이 죽었다는 편지가 날아올 때까지 20년 동안이나 계속됩니다. 그들이 주고받은 것은 단순히 주문서와 청구서뿐만이 아닙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호황을 맞이한 뉴욕은 물자가 풍부했지만, 런던은 한달에 달걀 하나를 배급받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헬렌은 뉴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달걀이나 햄 같은 것들을 편지와 함께 보내주고, 서점 사람들도 사진이나 직접 짠 테이블보 등을 선물로 보내줍니다. 그들의 우정 어린 편지들은 가슴 설레게 했고, 도엘의 소식을 전하는 마지막 편지는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 편지들을 읽고 있는 독자가 이렇게 애틋하게 느낄 정도이니, 당연히 헬렌 한프는 런던 17번가를 뉴욕 17번가보다 더 가깝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뉴욕 이스트 가와 런던 채링크로스 가가 지리적으로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여기 이 자리에서는 런던이 17번가보다 훨씬 가깝답니다. 31쪽

   그녀는 항상 런던 채링크로스 가로 휴가를 떠나길 고대하지만, 서점 사람들이 잠자리를 얼마든지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가난한 작가였던 그녀가 비행기 티켓 값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미루다보니 결국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서점을 떠나게 됩니다.

   나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 나는 아무데도 가지 못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154쪽

   프랭크 도엘이 죽은 후, 헬렌 한프는 그와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챙겨 출판사로 향합니다. 이 편지들 덕분에 그녀는 작가로서는 누려보지 못한 인기를 얻게 되지만, 전세계에서 날아오는 편지에 답장을 보내느라 인세로 받은 돈이 모두 우표 값으로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대로가 나을지도. 너무나 긴 세월 꿈꿔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 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 있어요." 어쩌면 그럴 테고, 또 어쩌면 아닐 테죠. 주위를 둘러보니 한가지만큼은 분명해요. 여기에 있다는 것.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큰 신세를 졌답니다. 145쪽

   그녀는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은 기념 동판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당신도 입맞춤을 보내주시겠어요?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하고 외쳤답니다. 18쪽

   여러분이 좀 덜 조심하여 카드를 쓰는 대신 속표지에다 글을 남기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행여나 책의 가치가 떨어질세라 노심초사하는, 서적상의 본분이 거기서 발휘된 거겠죠? 현재의 소유자에게는 가치를 높이는 일이었을 텐데 말이에요(그리고 미래의 소유자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 답니다). 50쪽

   나도 영국행을 감행하여 나의 친애하는 서점을 직접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나한테 그럴 배짱만 있다면 말이야. 5,000킬로미터라는 안전한 거리가 있기에 그 난폭하기 짝이 없는 편지들을 써보낸 건데, 어느 날 거기에 들어가더라도 십중팔구는 내가 누군지 말도 안 하고 그대로 나와버릴 것 같아. 71쪽

   가장 애교 넘치는 부분에서 자꾸만 펼쳐지는 것이 마치 전 주인의 유령이 내가 읽어본 적 없는 것을 짚어주는 듯하답니다. 90쪽

   갈수록 나이가 들고 바빠지지만 더 부자가 되지는 않는군요.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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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1-18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책 이야기에 공감이^^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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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단편소설 「서른」, 김애란   

   '서른'이라는 단어만 봐도 감정에 기복이 격하게 생기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아마도 서른의 날들을 앞둔 분들이거나 이제 막 지나고 있는 분들일텐데, 「서른」의 화자 '수인' 또한 서른의 날들을 불안하게 관통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2011년 겨울, 그러니까 김애란 작가가 만으로 서른 하나의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발표한 단편소설 「서른」은 어느 날 불쑥 날아온 한 통의 엽서에 답장을 하는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서른의 날들을 관통하고 있는 '수인' 앞으로 한 통의 엽서가 도착합니다. 이 엽서는 10년 전 독서실에서 함께 생활했던, 수인 보다 5살 많았던 언니로부터 온 것인데 당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언니는 시험도 합격하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인'도 지난 10년 동안의 일들을 써내려 갑니다. 언니처럼 엽서에 짧게 안부를 전해도 됐을텐데, 수인은 지난 10년 동안의 일들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편지를 씁니다. 10년동안 '수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로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요?

 

   어느 날 눈뜨고 보니 제가 다른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 이전에도 채무자, 지금도 채무자. 예나 지금이나 빚을 진 사람이라는 건 똑같은데. 좀더 나쁜 채무자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가요. (p.298)

 

   '수인'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채무자이긴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학창시절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천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고, 학교를 졸업하고 서른이 된 지금도 '수인'의 대출금은 늘어갈 뿐입니다. 열심히 살았던 '수인'의 채무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데는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 등장했던 준이 선배 보다 더 나쁜 선배가 한 몫 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소녀들은 선배 판타지를 버려야 한다니까요. ( *「너의 여름은 어떠니」 참고.)
   헤어지고 난 뒤 정말 오랜만에 말쑥한 차림으로 '수인' 앞에 나타난 선배가 "살아보니 사람이 제일 큰 재산"이라며 '수인'을 데려간 곳은 인간관계의 막장을 경험할 수 있는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 즉 다단계 회사였습니다. 초기 투자금이 필요했던 '수인'은 그곳에서 엄청난 금액의 대출을 받게 되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수인'의 인간관계는 점점 막장을 향해 가고 더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을 때 학생 시절 잠시 강사로 일했던 학원에서 만난 제자 혜미로부터 전화가 걸려 옵니다. '수인'은 선배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헤미를 불러내고 자신은 가까스로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게 됩니다. 이후 혜미로부터 걸려오던 전화를 피하기만 했던 '수인'에게 들려온 것은 혜미가 자살을 시도하고 지금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더이상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는데다가 상황이 이 정도이니 편지에라도 써야했겠죠.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p.316)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좀 더 달라지고, 나아질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수인'은 나아지기는 커녕 전혀 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전보다 더 나쁜 채무자만 되었죠. 그래서 좌절합니다. 지금의 상황에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까지도요.

 

   언니,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마흔의, 환갑의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게 될지, 어떤 말을 붙잡고 어떤 믿음을 감당하며 살지 모르겠어요. 바뀌는 건 상황이 아니라 사람일까요.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바꿀 수 없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언니는 엽서 끝자락에 그렇게 적었죠?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거 같다고. 조만간 다시 옛날이 될 오늘이, 이렇게 지금 제 앞에 우두커니 있네요. (p.317)

 

   '수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을 오가며 얼굴이 하얗게 되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열심히 살았지만 꿈 조차 가져볼 수 없었던 '수인'의 좌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있을까요.

 

   김애란 작가는 그녀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세대들의 상황을 대변해 줍니다. 그녀 자신은 어린 나이에 등단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녀 주변에는 소설 속 '수인'이나 '언니' 같은 친구들이 많을 것입니다. 동세대의 고달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걱정하려는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공감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100번쯤 눌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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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1-1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님 리뷰에 공감 100번 누르고 싶네요 ㅎㅎ
 
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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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누나, 詩누이


   『詩누이』는 시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시인 신미나가 창비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시 읽어주는 누나, 詩누이'를 엮은 시 웹툰 입니다. 시 한 편과 그것과 관련된 일화나 시인만의 해석이 담긴 웹툰 한 편을 짝지어 소개해 줍니다.
   시도 부담없이 읽고 싶은데,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시 해석법에 길들여진 탓인지 그냥 느낌대로 읽고나면 제대로 읽은게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뭔가 시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 같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싱고'는 '시는 꼭 이렇게 읽어야 돼!'가 아니라 '이렇게도 시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아니 담백한 웹툰으로 보여줍니다.

돌멩이 (오은 作)

뻥뻥 차고 다니던 것
이리 차고 저리 차던 것

날이 어둑해지면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골목대장이던 내가
길목에서
이리 채고 저리 채고 있었다

돌멩이처럼 여기저기에 있었다

날이 깜깜해지면
돌담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좁은 길로 들어서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돌멩이처럼 한곳에 가만히 있었다

돌멩이처럼 앉아
돌멩이에 대해 생각한다

돌멩이가 된다는 것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
온 마음을 다해 온몸이 된다는 것
잘 여문 알맹이가 된다는 것

불현듯 네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마침내
네 가슴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철석같은 믿음이 된다는 것

입을 다물고 통째로 말한다는 것

날이 밝으면
어제보다 단단해진 돌멩이가 있었다
내일은 더 단단해질 마음이 있었다

─ 『의자를 신고 달리는』 중

   오은 시인의 「돌멩이」는 『詩누이』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입니다. 어제보다 단단해진 돌멩이, 내일은 더 단단해질 마음이라니.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내일은 더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게 우리니까 더 와닿았나 봅니다. 이렇게 '싱고'는 잘 몰랐던 시를 발견하게 해주고, 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읽을 수 있도록 자신감을 채워줍니다.
   내일은 그동안 묵혀두었던 시집을 꺼내어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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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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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보다 깊은 연을 맺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군가가 내 삶에 개입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이해하고, 그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요?


   표제작인 「빛의 호위」는 영화잡지사 기자로 있는 '나'가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젊은 작가 '권은'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사진에 입문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친구가 준 필름 카메라를 접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실 '나'와 '그녀'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필름 카메라를 건네준 친구도 바로 '나'였습니다. 가족도 없고, 온기도 없는 가난한 방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권은의 허기와 추위를 해결해 줄 방법이 없었던 열세살 소년 '나'는 안방 장롱에서 후지사의 필름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일말의 주저도 없이 무작정 권은에게 달려가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나'의 눈에는 그 수입 카메라가 중고품으로 팔 수 있는 돈뭉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은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 카메라를 팔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였으니까.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 그런데, 셔터를 누른 직후 뷰파인더 속 그 빛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나면 권은도 알마 마이어처럼 더 외로워지고 더 쓸쓸해졌을까.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프레임 밖의 풍경처럼, 그 이야기는 이제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영역 속에 있다. 「빛의 호위」 26쪽 


   인터뷰 후 권은은 또다시 분쟁지역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권은을 말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권은은 사고를 당해 다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돌아옵니다. '나'는 그때 권은을 말리지 못했던 일 때문에 괴롭습니다. 이런 '나'에게 권은은 조용히 말합니다. 이미 '나'는 '그녀'를 한번 살린 적이 있다고 말이죠.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롱 뒤나 책상 서랍 속, 아니면 빈 병 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오는 것 같은 그 황홀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빛의 호위」 32쪽 


   동백림 사건을 모티프로 한 「동쪽 伯의 숲」은 독일인 '발터'가 한국 시인 '희수'에게 자신의 할머니가 사랑했던 '안수 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당시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던 '안수 리'는 어느 날 갑자기 독일에서 사라집니다. '안수 리'를 찾아 사방으로 헤매던 발터의 할머니 '한나' 또한 어느날 갑자기 그를 찾는 것을 중단해 버립니다.

   발터가 몇 번이나 거듭 부탁하지만 '희수'는 주저합니다. 독일을 다녀온 이후로 단 한줄의 시도 쓰지 못하고 있는데, 게다가 한나가 찾지 않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역사와 한 개인의 삶에 개입할 자격이 있는지 하고 말입니다.


   작가가 작품 이외의 다른 채널로 말을 거는 게 합당한 건지 알 수 없었고, 그리 유명하지도 않고 작품활동도 하지 않는 내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도 되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도, 심지어 뛰어들어간 뒤 적당한 자세를 잡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는 것도, 모조리 가식 같기만 했다.

   최근에 내가 택한 방법은 나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과정이 대단할 것도 없고 떳떳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이의 고통을 대변하며 잿빛 거리에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자격을 되묻는 반복은 발터, 법도 정의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이 세상 한곳에 나만의 의식적 함몰구역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은 웅덩이 같은 그곳은 안온하고 평화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웅크려앉아 있어도 되는 것이다. 「동쪽 伯의 숲」 97~98쪽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산책자의 행복」에서는 대학에서 철학과 강사로 있다가 편의점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된 '미영'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론과 내가 직접 겪는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라오슈라면 분명 이런 조언을 해주겠지요.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온 허무와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지 않은 고정된 허무는 다르다고, 일상과 감정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실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요. 라오슈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산책자의 행복」 119쪽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불행이란 진실을 사유하는 데 필요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혹은 진정한 행복을 완성하는 부속품이라고 여기던 세계는 단단하게 셔터를 내린 것이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산책자의 행복」 120~121쪽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니까, 어떤 실패와 좌절은 또다른 가능성에 가닿는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직선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산책자의 행복」 122쪽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종강 즈음이면 한 학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생으로서의 마지막 말은 존재와 신념을 모두 부인하는 배교자의 언어였다. 「산책자의 행복」 124~125쪽

   철학과가 없어져 일자리를 잃고,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빚만 잔뜩 가지고 있는 '미영'은 그녀의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와는 다른 생각으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직업에 연연해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편의점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 한다. 한때는 "죽음은 구체적인 단절이 아니라 존재를 완성하고 성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추상적인 과정"(130쪽)이라며 매혹된 적도 있었으면서, 정작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유난히 '미영'을 따랐던 학생 '메이린'에게 묻는다.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니, 메이린? 「산책자의 행복」 125쪽

   『빛의 호위』는 2013년부터 2016년 봄까지 작가 조해진이 쓴 9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것으로,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어떤 이야기도 한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 너머로 뻗어가는 지평에 수많은 문장과 생각과 감정이 흩어졌다가 모이면 하나의 작은 길이 되어가는 상상은, 언제나 두려울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작가의 말」, 266쪽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그 모든 순간들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군가의 삶을 모두 알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게 되더라도 이것만은 잊지 말아주세요.

 

2017. 03. 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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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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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양과 강철의 숲으로!


   숲 냄새가 났다.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문제는 이 근처에 숲 같은 게 없다는 것이다. 건조한 가을 냄새를 맡았는데, 옅은 어둠이 내려앉는 기색까지 느껴졌는데, 나는 고등학교 체육관 구석에 서 있었다. 방과 후, 사람 없는 체육관에서 누군가를 안내하는 심부름을 떠맡은 일개 학생이 되어 오도카니 서 있었다.

   눈앞에 크고 새까만 피아노가 있었다. 크고 새까만 피아노였을 것이다. 피아노 뚜껑은 열려 있었고 그 옆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그 사람이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피아노 건반을 몇 군데 두드리자, 뚜껑이 열린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냄새가 났다. 밤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7~8쪽)


   울긋불긋한 숲 속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곳이 『양과 강철의 숲』일까요? 책을 펼치자마자 숲 냄새가 물씬 풍겨 옵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숲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피아노 건반을 몇 군데 두드리자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숲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강철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건반은 총 여든여덟 개가 있고 각각의 건반에 한 줄부터 세 줄까지 현이 연결되어 있다. 강철 현이 똑바로 뻗고 그 현을 때리는 해머가 마치 목련 봉오리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등이 꼿꼿하게 퍼졌다. 조화를 이룬 숲은 아름답다. (25쪽)


   피아노는 양털로 만든 해머가 강철로 만든 현을 때려 내는 소리가 어우러져 음악이 되는 악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피아노 자체가 '양과 강철의 숲'인 셈인거죠.

   체육관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조율사가 낸 소리를 들은 열일곱 살 소년 도무라는 그 역시 피아노 조율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조율사 이타도리의 소개로 졸업 후 조율사 육성 전문학교에 들어간 도무라는 2년 후 이타도리가 일하는 악기점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조율 기술을 배우고 취직을 했지만 좀처럼 그의 기술은 늘지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할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타도리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초조해하면 안 됩니다. 차근차근, 차근차근입니다." (21쪽)

   "차근차근 수비하고 차근차근 히트 앤드 런입니다." (22쪽)

   "홈런을 노리면 안 됩니다." (23쪽)


   이제 막 일을 시작했는데, 몇 년을 일한 선배들처럼 조율기술이 쑥쑥 좋아질거란 기대 자체가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이타도리의 조언처럼 차근차근 때리고 달리다 보면 실력이 늘겠죠? 그런데 사실 도무라에겐 한가지 걱정이 더 있습니다.


   "전에 있던 사람도 조율사 양성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긴 했어. 역시 적성에 맞고 안 맞고는 있는 거야."

   적성이라고 간단하게 말해버리면 곤란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적성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자 두려웠다. (23쪽)


   이 소설에서도 언급하지만 흔히들 '1만시간의 법칙'이라고 해서 누구라도 같은 일에 1만시간을 투자하면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1만시간을 투자 했는데도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성이 맞지 않는데도 1만시간을 투자하면 잘 할 수 있게 될까요? 그저 잘하기만 하고 끝내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면 또 어떨까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도무라와 같은 두려움이 밀려와 한참동안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1만시간을 투자하면 재능이나 적성은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일까요?


   조율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의 기쁨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무 보장도 없으면서 갑자기 눈앞의 안개가 걷힌 것만 같은, 처음으로 내 두 발로 땅을 박차고 걷는 것과도 같은, 손으로 어떤 윤곽을 더듬는 것 같은 기쁨. 그때, 이제부터 어디까지든 걸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든 걸어서 나아가야 한다. (220쪽)


   이런 두려움들이 있지만 도무라는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조율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도 조율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답답함이 해소되었고, 기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과 강철의 숲』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율사의 역할을 소화해내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큰 사건이나 갈등없이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마치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하라 다미키의 문장처럼 말이죠.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168쪽)


   소설이 끝날 때까지 도무라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1만시간이 지난 뒤에 혹은 10년이 지난 뒤에 도무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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