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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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보다 깊은 연을 맺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군가가 내 삶에 개입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이해하고, 그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요?


   표제작인 「빛의 호위」는 영화잡지사 기자로 있는 '나'가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젊은 작가 '권은'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사진에 입문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친구가 준 필름 카메라를 접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실 '나'와 '그녀'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필름 카메라를 건네준 친구도 바로 '나'였습니다. 가족도 없고, 온기도 없는 가난한 방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권은의 허기와 추위를 해결해 줄 방법이 없었던 열세살 소년 '나'는 안방 장롱에서 후지사의 필름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일말의 주저도 없이 무작정 권은에게 달려가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나'의 눈에는 그 수입 카메라가 중고품으로 팔 수 있는 돈뭉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은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 카메라를 팔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였으니까.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 그런데, 셔터를 누른 직후 뷰파인더 속 그 빛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나면 권은도 알마 마이어처럼 더 외로워지고 더 쓸쓸해졌을까.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프레임 밖의 풍경처럼, 그 이야기는 이제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영역 속에 있다. 「빛의 호위」 26쪽 


   인터뷰 후 권은은 또다시 분쟁지역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권은을 말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권은은 사고를 당해 다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돌아옵니다. '나'는 그때 권은을 말리지 못했던 일 때문에 괴롭습니다. 이런 '나'에게 권은은 조용히 말합니다. 이미 '나'는 '그녀'를 한번 살린 적이 있다고 말이죠.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롱 뒤나 책상 서랍 속, 아니면 빈 병 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오는 것 같은 그 황홀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빛의 호위」 32쪽 


   동백림 사건을 모티프로 한 「동쪽 伯의 숲」은 독일인 '발터'가 한국 시인 '희수'에게 자신의 할머니가 사랑했던 '안수 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당시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던 '안수 리'는 어느 날 갑자기 독일에서 사라집니다. '안수 리'를 찾아 사방으로 헤매던 발터의 할머니 '한나' 또한 어느날 갑자기 그를 찾는 것을 중단해 버립니다.

   발터가 몇 번이나 거듭 부탁하지만 '희수'는 주저합니다. 독일을 다녀온 이후로 단 한줄의 시도 쓰지 못하고 있는데, 게다가 한나가 찾지 않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역사와 한 개인의 삶에 개입할 자격이 있는지 하고 말입니다.


   작가가 작품 이외의 다른 채널로 말을 거는 게 합당한 건지 알 수 없었고, 그리 유명하지도 않고 작품활동도 하지 않는 내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도 되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도, 심지어 뛰어들어간 뒤 적당한 자세를 잡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는 것도, 모조리 가식 같기만 했다.

   최근에 내가 택한 방법은 나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과정이 대단할 것도 없고 떳떳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이의 고통을 대변하며 잿빛 거리에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자격을 되묻는 반복은 발터, 법도 정의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이 세상 한곳에 나만의 의식적 함몰구역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은 웅덩이 같은 그곳은 안온하고 평화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웅크려앉아 있어도 되는 것이다. 「동쪽 伯의 숲」 97~98쪽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산책자의 행복」에서는 대학에서 철학과 강사로 있다가 편의점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된 '미영'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론과 내가 직접 겪는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라오슈라면 분명 이런 조언을 해주겠지요.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온 허무와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지 않은 고정된 허무는 다르다고, 일상과 감정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실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요. 라오슈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산책자의 행복」 119쪽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불행이란 진실을 사유하는 데 필요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혹은 진정한 행복을 완성하는 부속품이라고 여기던 세계는 단단하게 셔터를 내린 것이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산책자의 행복」 120~121쪽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니까, 어떤 실패와 좌절은 또다른 가능성에 가닿는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직선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산책자의 행복」 122쪽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종강 즈음이면 한 학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생으로서의 마지막 말은 존재와 신념을 모두 부인하는 배교자의 언어였다. 「산책자의 행복」 124~125쪽

   철학과가 없어져 일자리를 잃고,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빚만 잔뜩 가지고 있는 '미영'은 그녀의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와는 다른 생각으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직업에 연연해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편의점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 한다. 한때는 "죽음은 구체적인 단절이 아니라 존재를 완성하고 성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추상적인 과정"(130쪽)이라며 매혹된 적도 있었으면서, 정작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유난히 '미영'을 따랐던 학생 '메이린'에게 묻는다.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니, 메이린? 「산책자의 행복」 125쪽

   『빛의 호위』는 2013년부터 2016년 봄까지 작가 조해진이 쓴 9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것으로,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어떤 이야기도 한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 너머로 뻗어가는 지평에 수많은 문장과 생각과 감정이 흩어졌다가 모이면 하나의 작은 길이 되어가는 상상은, 언제나 두려울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작가의 말」, 266쪽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그 모든 순간들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군가의 삶을 모두 알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게 되더라도 이것만은 잊지 말아주세요.

 

2017. 03. 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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