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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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요괴담의 달인이라네. '우부메'는 産苦로 죽은 사람의 願念이랜다. 怨念이 아닌 것은 누구에게도 원망할 것이 아니라서라고. 아이를 밴 채 20개월을 견디고 있는 여자 이야기. 박학다식하여 엄청 말이 많고 따라서 굉장히 잘난 척하는 고서점 주인이자 신사의 신주이며 주술사이기까지 한 교고쿠도가 주인공. 어젯밤에 읽다가 무서워서 일단 덮었다. 요괴흡혈고양이 얘기가 註에 붙어 있었는데 그거 읽다가 일전에 유행했던 입찢어진 여자가 생각나서 너무 무서워지고 말았다. 이 책은 그래서 주로 대낮용이 될 것이다. 흐흐.. 왜 손안의 책에서 나왔는지. 이 출판사에서는 주로 야오이소설이 나온다. '우부메의 여름'은 '백귀야행'을 쓴 작가의 책. (이마 이치코의 만화 '백귀야행' 이 아니다.) 야오이도 아닌데...낸들, 알 수 없어요. ^^;  현재까지로 봐서는 상당히 재미있을 듯하다. 호사가도 이런 호사가가 없으니 이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은 언제나 즐거웠다.


다 읽고나서는...


영화를 기다린다. 올해 일본에서 츠츠미 신이치 주연으로 영화화된다. 영화로라면 충분히 무섭겠고나.. -_- 다행히 츠츠미 신이치는 좋은 배우. 대사 많은 교코쿠도 역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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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다 - 하이꾸 이야기
전이정 지음 / 창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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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한마디 나 한마디 가을 깊어가는구나



かれいちご それいちご        あきふか
  彼一語     我一語       秋深みかも



 



                                                  -타까하마 쿄시(1874~1959), 『六百五十句』



*키고 秋深し(가을)      키레 秋深みかも     키레지 みかも


 



그가 한마디 던지면 나도 한마디 던진다. 주위엔 정적만이 있을 뿐이다. 잠시 후 그가 다시 한마디를 던진다. 나도 한마디의 말로 응수한다. 또 다시 주위는 정적에 휩싸인다. 깊어져 버린 가을, 삶의 애상을 느끼게 한다. (중략)


대화를 나누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내던지는 한마디 한마디 사이의 정적을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이다. 배경이 되는 이미지는 드러나 있지 않고, 분명하게 그려진 것은 '그가 한마디 나 한마디'이다. 그밖의 다른 모든 것은 일체 생략되어 있다. (하략)



 -<순간 속에 영원을 담는다>에서 발췌



 



2. 한 마디


로 줄이고 줄이려면 거기 생략된 것을 알아들어 주는 벗이 필요하다. 그 者가 아니면 한 마디 한 마디 사이의 정적을 누릴 수가 없다. 설명해야 되고 설득까지 해야 되면 다 귀찮아진다. 너와 내가 다르므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다름을 즐기는 걸로 할 일을 다하는 거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도, 그의 한 마디를 알아들어야  다름도 눈치챌 수 있지 않은가. 


많은 시간을 같이 쌓아서 결국 그 한 마디의 깊이를 알게 된다면 그 사이 정적이 아무리 오래되도 거기는 따땃한 물 속이거나 시원한 바람 속이거나, 둥둥 즐거운 뭉게구름 속일 것이다. 그런 情景에 들려면....  


어렵겠다. 생활도 생활이거니와 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면 이쪽 머리털이 뽑히니까, 좀 쿠울하게, 거리를 약간 두고, 새뜻한 반투명막을 쓰고, 그냥 건들, 저는 이렇지요. 그대는 그러하네요. 그런 거네요. 뭐 상관없어요. 그래, 이것들도 한 마디는 한 마디다.  


3. 무언가 한 마디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나 부다. 왕가위. <2046>에서 그는 [사랑은 타이밍이다]라고 말한다. 그거 참 진부하고녀~.


 어제 <2046>을 봤다. 愛끓는 영화. [아비정전]에서 이젠 많이 흘러 왔음을, 그동안 보여준 것들이 2004년, 여기에 다다라 있다는 것을, 그러나 다른 버전은 조금 또는 아주  다를 수도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그의 얘기를 듣고 왔다. 그동안 안고 지냈던 자기 캐릭터들을 하나도 못 버리고, '이 애를 어쩌면 좋아', 하나 하나, 십수년 후의 그들을 <2046>에 풀어 놓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난 그의 영화들이 <2046>에 침범하는 것을 지켜봤다.


동시에 이미 죽어버린 나의 캐릭터들도 꿈틀거렸다. 그들은 이미 다 죽어버린 줄 알았는데 <2046>에서 돌아다니는 미미와 리첸과 징웬, 탁과 차오를 바라보는 동안 아직 그들이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줄줄이 그들이, 시냇물처럼 졸졸졸, 내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버릴 수 없는 것일까? 그들도 혹시 자라고 또 늙고 있었을까? 어떤 한 마디를 하려고 아직까지 좀비처럼 기필코 일어나는 것일까.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게 어긋나서 할 수 없이 산 속 깊은 곳에 들어가 나무 한 그루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다 얘기를 쏟아놓고 꼭꼭 막아두고 산을 내려온다. 구멍 속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2046>은 그 구멍이며 앙코르와트 사원의 그 구멍, 아직 따지 않은 유통기한 만년인 통조림캔이다. 나는 이때 갑자기 탁 떠오른 시 하나를 적는다.  


4. 이 한 마디 


 


토막말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 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심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 정양, 『눈 내리는 마을』(모아드림 刊, 2001) 中



누구는 사라지지 않게, 변하지 않게 구멍 속에 소곤소곤 파묻고, 누구는 금방 지워질 모래밭에다 대고 크게크게 쓴다. 이것도 스타일일까. 나는 어떤 스타일일까. 누구라도 몸이 저린 말이란, 그 한 마디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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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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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북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burnout'을 예방하는 책. 

사람들의 성격은 모두 다르다. 물론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긴 하다.

그 유형들 중, 자기 유형에 딱 들어맞는 번아웃 예방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세상에 나와 있는 리더쉽 관련 책이나 워크샵 들이 만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는 욕지기가 튀어 나올 수도 있고

또 누구는 은근히 책 속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그에 따라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살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구는 그러나 그 다이어리를 결국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책의 결과는 프랭클린 다이어리의 적극적이고도 적확한 활용이다.

이 책을 읽고 권하는 대로 평생 이 다이어리를 사용한다면

후에 자신의 생을 자신이 직접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 있게 되리라.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이 속의 '영향력'이라는 것의 개념에만은 수긍할 수 없다.

현재의 내 위치가 내 영향력이라는 것.

그 위치란 절대적으로 사회 속에서의 위치다.

인간으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조직 속에서 내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부품으로서의 위치다.

그 조직이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많이 벌어들이는가, 얼마나 많은 파워를 생산하는가에

내 일차적 영향력이 결정되고

그 조직 안에서 나라는 부품이, 어느 때라도 대체될 수 있다는 숙명을 지닌 이 부품이

어느 정도의 조직 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에 내 이차적 영향력이 결정된다는 점.

그리하여 결국은 협잡도 불사할 수밖에 없는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회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의 영향력을 zero로 놓을 수 없고,

누군가 자기 조직에서 이탈되었다고 해서 그의 영향력이 zero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숲 속에서 약초 캐고 채소 심어 먹으며 혼자 사는 사람의 영향력이 zero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람을 속물화시키는 위험성을 안고 있으니 미리 조심하며 활용하는 것이 좋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는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워크북 정도로 사용하고, 반드시 1년에 한번 다시 읽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앞의, 3가지 습관 부분을.

언제나 저 '영향력'에만은 주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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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ee 2004-12-2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왜 다들 '성공'에만 목숨을거는지 모르겠습니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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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탄다, 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고난이도의 작업을 작품 전체를 통해 끝끝내 표현해낸 작가의 패기에 매료됐다”     -심사를 맡은 작가 야마다 에이미

겨우 이십세의 여자아이가 쓴 소설. 이강주 만화 같다. 번역후기 읽다가 깜짝 놀랐다. 허허, 똑같이 이강주를 생각해냈다, 허헛, 끔찍. 실은 이강주 만화를 다 사모을 정도로 나는 이강주를 좋아한다. 

읽는 데 한 시간이 안 걸리는 작품. 일본문학계도 어쩌면 자기들 하는 짓이 굉장히 지겨워졌나 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정만화 같은 이 이야기가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걸 보면 참..., 신기하군, 하다가 심사한 작가 얘기를 들어 보니, 그래, 모든 게 한 길로 통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딸내미에게 읽으라 던져 줬더니 하루를 안 넘겨 바로 읽고는 재미있다 한다. 이 소설, 깨끗하고 순진하고 두근거리는 작품이다. 어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없어? 하고 물었더니 딸은, 가끔 있지, 한다. 나에게도 있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찾아내고 나니 오히려 내가 행복하다, 이쁜 그 등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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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도둑
수잔 올린 지음, 김영신 외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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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난초를 볼 줄도 기를 줄도 모른다. 선물로 들어오는 난분이란 난분은 모두 죽였다. 대학 강사로 가계가 어렵던 선배가 큰맘먹고 사준 난분을 죽였을 때는 속도 많이 상했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으나 난은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랜다. 선배가 우리집에 와서는 꽤 섭섭해 했다. 마치 내가 쌓은 인격이 허물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식물을 선물할 때는 돈을 꾸어줄 때와 똑같이 어떤 기대도 상대에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잃기 십상이다. 여튼 난이란 익히 알기로는 군자의 도락물인데 물론 그것도 나와는 다른 한 개의 개채라서 어떤 곳에서는 열정의 대상, 집착의 대상인가 보다. 거기서는 사람을 홀리고, 미치게 하고, 죽이기도 한단다.   


기자가 쓴 논픽션. 배경인 플로리다의 모습은 정말 끈적거리고 위험하다. 마이애미비치의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끔찍한 습지.


후텁지근하고 축축하며 벌레투성이에다 늪살모사, 방울뱀, 악어, 자라 비슷한 거북이, 유독식물, 멧돼지, 몸에 달라붙고 코나 눈 또는 몸 안으로 마구 날아들어오는 것들이 우글거린다. 늪지에는 7피트 정도의 물이 괴어 있으며, 주변 공기는 물에 젖어 축 늘어진 벨벳 휘장처럼 무겁다. 나무둥치는 땀으로 범벅된 것처럼 보인다. 잎사귀들은 습기로 인해서 미끈미끈하다. 진창에 한번 발이 빠지면 여간해서는 발을 빼기가 힘들다. 발을 빼더라도 진흙이 신발에 찐득찐득 달라붙어서 발을 빼기가 힘들다. 축축하지 않은 것은 모두 시들어 죽어버린 것이다. (63p.)


플로리다에서 몇 달 살아본 신랑에게 이 비슷한 얘기는 들었어도 이 정도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열대는 어디나 그러할 것인즉슨 도시민이라서 그것이 끔찍한 것일 뿐 아니겠는가. 


거기에 라로슈라는 난초, 그것도 부르는 게 값인 '유령난초'를 찾아 헤매는 채취꾼이자 재배자가 나온다. 그를 취재하며 난초, 그러니까 우리는 양난이라 부르며 한편으로는 업신여기는 그 난초와 그의 재배역사, 거기에 얽힌 피비린내 나는 사람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 '난초도둑'이다. 사람도 얘기도 모두 실화다. 오지에서 만난 원주민들이나 야생 동물보다는 또다른 난초 탐색꾼을 경계해야하는 상황과 금광을 찾으러 달려갔던 사람들의 욕망이 난초에 투사되어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2000포기 난초를 들고 말레이시아에 은둔한 일본항공 창립자 미치히로 후카시마, 야생 난초 불법 채취 혐의로 네차례나 법정에 선 중국의 젊은 수집가, 3000포기의 난초를 잃어버린 뒤 이웃에게 총을 난사한 청년 등 난초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는 수도 없다. 역사 속의 난초 수집가들은 난초를 위해 죽음도 불사했다. 1901년에는 난초채취꾼 7명이 필리핀에서 몰살당했고, 무명의 수집가 수십명은 원주민과 풍토병에 목숨을 빼앗겼다. 난초가 자란다는 습지란 습지는 모든 생물이 위협 대상이었고 그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난초채취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난초 사업가 프레데릭 샌더는 10여명의 채취꾼을 브라질과 인도, 멕시코, 버마 등지에 파견해 난초를 싹쓸이해 왔다.  


채취꾼들은 더없이 거칠었고 그들간의 분쟁도 끊이질 않았다. 서로 죽이고 서로 가로챘다. 난초는 돈이었고 온실을 가질수 있는 부자들은 채취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어떤 난초는 한 줄기에 5000불이 넘는 것도 있었다. 대량으로 인공배양, 재배가 가능한 지금도 새로운 자연 품종의 난초를 얻으려는 채취꾼이나 수집가들에게는 더없는 열정과 집착의 대상이다. 세상에 돈 아닌 것이 없다. 그 돈은 대개 사람의 품위를 좌우한다. 그렇게 해서 난초에 대한 열정과 집착은 아주 속물적이 되어버리지만 그들의 기이한 열정과 집착은 기자로 하여금 삶에 필요한 열정의 대상을 궁금하게 만들고 또한 찾아 다니게 한다.  


나는 수없이 많은 공터를 지나쳤고 그 공터들 너머로 그보다 더 많은 공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뒤로 텅 빈 도로를 쳐다보았고, 눈을 들어 텅 비어 있는 하늘도 바라보았다. 이 세상이 이토록 크다는 사실로 인해 뼛속 깊이 고독감이 스며들었다. 이 세상은 무한히 크고, 사람들은 늘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너무나 많은 생각들과 사물들과 사람들이 있고, 나가야 할 방향 또한 무수히 갈라져 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뭔가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이 거대한 세상이 좀더 다루기 쉬운 크기로 깎아 다듬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무한하거나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난초채취꾼이었다면, 이곳(플로리다의 거의 전부분인 습지들과 언제든 야생상태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플로리다의 개발지들-shosha)이 이토록 슬프게 보이거나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176p.) 


기자는 난초채취꾼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유령난초'가 그래서 보고 싶다. 그것은 무엇인가.  


1844년에 식물학자 장 쥘 린덴은 쿠바에서 눈처럼 흰, 아주 흥미로운 난초를 발견했다. 그 난초는 잎이 없이 뿌리덩어리만 달고 있었기 때문에 '린덴에 의해 발견된 뿌리가 많은 식물'이라는 뜻의 폴리리자 린데니라고 명명되었다. 1880년에는 커티스라는 탐험가가 파카하치 스트랜드(플로리다의 한 지역. 이 책의 주된 배경이자 주인공뻘-shosha) 근처의 콜리어 카운티에서 쿠바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종을 발견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폴리리자 린데니였다. 그 후로 플로리다에서는 그 난초를 속칭 '유령난초'라 불렀다. (127p.) 


오른쪽 사진이 바로 유령난초, Ghost Orchid다. 찾기도 힘들고 아주 잠깐 동안만 나타나고 마음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매료시키고 재배하기도 불가능한 유령난초. 단지 전설에 불과한 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진짜 유령인지도 모른다. 유령난초를 보지 못한 저자는 이 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이 끔찍한 플로리다에 계속 오겠다 결심한다. 


흰색 난초는 있지만 검은색 난초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원히 검은색 난초를 찾아 헤맨다. (78p.) 


이 문장을 보면서 어쩌면 난초 아닌 그 무엇이래도 열정과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미 우리는 그 대상을 각기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영화 <어댑테이션>의 여주인공처럼,  


내 인생을 돌려줘. 망가지기 전으로 되돌려 줘. 아기 때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래. 새로 살고 싶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덤.  영화도 있다  


  어댑테이션(2002, Adaptation)


감독-스파이크 존즈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 메릴 스트립 / 크리스 쿠퍼
각본- 찰리 카우프만 
 


라로슈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태도는 거칠고 무뚝뚝한 기질에 도발적이고 역겨운 유머감각을 지녔고 약속을 남발하고 그마저도 항상 늦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이 있다. 그에게 난초에 대해 물어보면 자상하고 열정적으로 그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 자신감은 전염된다. 그를 사람들이 좋아한다. 아마 이 이야기를 영화로 각색하려고 책상 앞에 앉은 카우프만의 머리 속에 그 비슷한 사람 하나가 떠올랐음직하다. 세상에는 없는, 그리고 그가 나였으면 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쌍동이였을 것이다. 열정의 대상을 찾는 기자 수잔 올린과 그의 취재 대상인 라로슈는 쌍동이 형제 극작가로 변주된 것. 이 기이한 변주를 이해 하는 데 그의 <존 말코비치 되기>가 들먹거려지는 것은 전혀 엉뚱한 일이 아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내 보기에 '열정을 가진 존재와 그의 대상'이다. 논픽션으로 픽션을 만들어낸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감흥이었지만 상당히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엔딩 부분의 노래 '해피투게더'와 노란 小菊과 도시의 매일 아침 풍경이다. 사람들의 아침이 매일 시작되고 그들의 열정이 매일 어딘가로 향하는,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감지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누군가 사는 것에 힘이 부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언젠가 열정의 대상을 찾았고 그를 향해 매진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나 그가 열정을 품고 집착했던 것을 풀어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현재의 상황. 어쩌면 라로슈처럼, 그와 비슷한 채취꾼들처럼, 그들을 고용했던 난초수집가들처럼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열정은 우리 삶에는 끼어들 필요가 없는 것이었을까?


지난달 30일(작년 6월의 일이다) 오후 7시25분쯤 서울 관악구 봉천7동 야산에서 유명 S대 시간강사 P(34)씨가 소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동료강사 이모(34)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P씨가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아 실종신고를 낸 뒤 P씨가 사용한 핸드폰 기지국을 조회, 야산 근방을 경찰과 수색해 보니 P씨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P씨가 2년 전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시간강사로 재직하다 최근 교수 임용에 실패, 몇개월 전부터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다는 유족들 진술에 따라 이를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이 기사가, 이 사건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너무 이르진 않았을까? 어쩌면 이 세상이 죽인 것이지. 어쩌면 잘못 찾은 열정이었던 거야. 아니, 잘못 태어난 걸지도 몰라. 아직도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 세상이란 건 아무래도 인정하고 끄덕여야 할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난초도둑'을 읽으면서 또 다른 책 하나가 계속 떠올랐다. 읽는 중에는 도무지 확연하지 않아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읽었던 소설.


식민지 전시회 L'exposition coloniale


에릭 오르세나 저/김병욱 역 | 예하출판 | 1994년 12월
ISBN : 897385254X, 8973852558 | 페이지 : 682



난초채집과 더불어 유럽에서는 이국 식물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식물 세밀화는 지금도 많이 돌아다니거니와 그들의 식물전시회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이는 귀족취미와 맞물려 상당한 전성기를 누렸던 모양. 서양에는 왜 이렇게 식물 세밀화가 많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식물전시회가 왜 이리 성황이었는지도.


이걸 읽은 시기는 뒤져보니 10년 전이다. 당시 그들의 풍조를 몰라서 그저 읽기만도 지쳤는데 '난초도둑'을 읽어가다 보니 이 책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유럽의 식물수집가들과 그들이 채집꾼들을 내몰아 전세계에서 그곳의 자생식물들을 뿌리채 뽑아 배에 실어 나르는 풍경이, 그걸 콜렉션이라 하여 전시회를 하고 거기에 모여드는 유럽인들의 모습이 이 책에 잔뜩 실려 있다. 남미로 가는 유럽인들과 그 곳의 모습 또한 그려져 있다. 정작 읽을 때는 그 모습을 알 수 없었으니 이제는 다시 들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유머까지도 즐겨야겠다. 이 소설은 1988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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