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박철민 그림 / 좋은생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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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교보에 가서 일본소설집 몇 권을 사들고 왔다.

그 중에 아쿠타가와가 들어 있었다.

친절하게도 대부분의 한자에 후리가나를 쳐줘서 낭독에도 도움이 될 듯했는데

아무래도 번역문이 필요했던 터라 이 [라쇼몽]을 본 순간 바로 손이 나갔다.

읽다 보니 옛생각이 절로 난다.

음악에만이 아니라, 책에도 그걸 읽은 시기가 고스란히 내포되어 있다.

대학 2학년 때였나. 아이고.. 진짜 옛날이구나.. 헐~

 

학교 후문 쪽에 인성사랑이라는 커피집이 있었는데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꼭 그 집엘 가서  책을 읽으며 놀았다.

워낙 손님이 드문 집이라 폐를 끼치는 걸 알면서도

커피 한 잔에 늘상 두세시간을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읽었던 책 중에 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들어 있었으니

그 기억이 이렇게 덩달아 떠오른 것이다.

 

그동안 읽은 기억은 나되 읽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아

인생이란 제목만 적어넣은 歲時記가 분명하다, 생각했으니

이제는 그 내용도 한번 그려내어 기억의 圖錄을 만들어 봄직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과연 문장 하나에도 소재와 배경이 남다르다.

기품있다는 아쿠타가와의 문장을 원문으로 읽어보는 지금은

여전히 그때나 다름없이 신천지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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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30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강민 옮김 / 소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다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
재작년 일본문학동호회에서 [레몬]을 원서 읽기 재료로 채택하고서부터 신경이 쓰이던 소설이었다. 일본의 이상李箱이라 불리는 사람이라고.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그리 불렀을 터라 그에 비중을 두지 않고 읽었다.

과연 심리묘사로 줄창 사람을 괴롭혔다.
Stream of Consciousness.
젊었을 때는 동서, 노소를 안 가리고 곧잘 읽었지만 젊은이의, 서사가 충분하지 않은 의식을 그 자체로 읽는 것에는 이미 식상하여 단편 하나가 끝나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는 시점 사이의 뜸이 꽤 길었다. 대부분의 심리묘사 중 간간이 등장하는 비유 몇 개를 즐기는 걸로 이 단편집을 끝냈다.

맛이냐 색깔이냐. 둘 중 하나만을 취하고서는 레몬의 참맛을 알 도리가 없다. 왜 이상이 죽어가면서 '레몬을 다오'라고 했는지  지금도 어렴풋이 짐작이나 할 뿐이다.

 

레몬



죽는 순간에
나에게 레몬을 다오, 했다는
시인 이상의 얘길 듣고 스무살 나는
그 자리에서 웃었다
아주 크게 또한 짧게
가슴이 콱 막혔다
가혹한 천구백삼십년대에
아아, 레몬을 찾으며 죽어가다니

레몬에 대해서 생각한다
뱃속에 아이를 키우며 헛구역질에 가슴까지 상할 때
그 때 신 것이 먹고 싶었다
갈비집에서 남의 살 뜯고나서 그 때
정신이 번쩍 드는 레몬같이 신 것이 먹고 싶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살았다가 죽는 순간에
아직 죽음이 아니 와서
너무 지루해, 세상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겨우 짧은 숨에 시든 몸을 얹고 있을 때
새콤한 레몬,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온 몸 세포들이 화들짝 놀라는
레몬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그가 죽는 순간에
어쩌면 내가 죽는 순간에
정말 그리울지도 몰라

그 레몬, 죽음이라고 얘기해도 되는 시절에
본데없이 가늘고 긴 이 시절에
나는 레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 이거였을 거야, 하는 그것, 레몬. 그 레몬의 맛을 이 짧은 단편 [레몬]에서 맛볼 수 있으리라.


이젠 소설에서 감동을 얻기가 힘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전까지도 내가 감동했던 소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개가 언제나 감탄이었다는 것. 이는 순수한 독자의 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서 반성을 좀 했다.

사족인데, 실은 이 소설보다 그저 저 레몬이라는 이름 때문에 근 한 시간도 넘게 친구와 이야기한 경제학 쪽의 레몬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레몬이론. 솔직히 말해서, 레몬이론은 이 소설집 [레몬] 읽기에도 그대로 부합한다. [레몬] 읽기를 이 현상만큼 짧고 정확하게 설명하긴 곤란할 듯하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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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시집 80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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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

-이병률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비좁다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적다 하지만
햇빛은 좁은 골목에서 가루가 될 줄 안다
궂은 날이 걷히면 은종이 위에다 빨래를 펴 널고
햇빛이 들이비치는 마당에 나가 반듯하게 누워도 좋으리라
담장 밖으론 밤낮없는 시선들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바쁘고
나는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 내 몇 평의 땅에 골짜기가 생기도록 뒤척인다
남의 이사에 관심을 가진 건 폐허를 돌보는 일처럼 고마운 희망일까
사람의 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목메게 아름답다
적과 내가 한데 엉기어 층계가 되고 창문을 마주낼 수 없듯이
좋은 사람을 만나 한 시절을 바라보는 일이란
따뜻한 숲에 갇혀 황홀한 눈발을 지켜보는 일(지금은 적잖이 열망을
식히면서 살 줄도 알지만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안에 갇혀 지내기를 희망했다)
먼 훗날, 기억한다 우리가 머문 곳은 사물이 박혀 지낸 자리가 아니라
한때 그들과 마주 잡았던 손자국 같은 것이라고
내가 물이고 싶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노을이 향기로운 기척을 데려오고 있다
날마다 세상 위로 땅이 내려앉듯 녹말기 짙은 바람이 불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自整을 위해 詩를 한 수 읽기로 했다.
문득 다시 읽고 싶어진 그 시,
좋은 사람들. 어조에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읽힌다.
그래서 시 두 개를 얻은 밤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아.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모두 잘 자라.

참고로 ;


저녁의 습격 / 이병률

백화점 정문에서 나를 만나기로 한 약속, 일찍 도착하여 서 있기도 뭣해 백화점 안을 둘러보기로 하는데
미리 와 있는 당신은 혼자서 뭔가를 먹고 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자 한 약속인데 뭔가 잘못 됐나 싶지만 어엿한 정각이 되고 모르는 척 백화점 앞에서 당신을 만납니다
당신은 따뜻한 것이 먹고 싶다하고 콩깍지 밟는 소리 나는 골목을 돌아 찾아간 식당, 당신은 태연하게 백반을 먹기 시작합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우적우적 가슴 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 일은 무슨 일일까 생각합니다
그때 오래전 부터 당신이 나를 미워했었다는 사실이 자꾸 목에 걸립니다
혼자였다가 내 전생이었다가 십일월이었던 당신은 나에게 뱉어야 할 말 대신 깔때기를 입에 문채 자꾸 밥을 떠넣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문예중앙 2005 여름

 
어여쁘게 생겼다는 이병률.
이름도 꼭 음률쟁이 같아가지고 뭔가 유행가 한 자락,
슴가를 처연히 쓸고가는 노랫가락을 내지르는 듯.
우연인가, 내심 박정대 생각도 나고 윤제림 생각도 나고
실은 내가 좋아하는 시들이란 이런 것인데
이런 얘기는 아주 어려운 시를 지르고서야 받아준다는 것.
하긴... 누군들 저 마음을 모르겠는가. 그래도 저것이 아름다운 시인 이유는
그렇게도 말을 잘 부리는 사람이 딱 이것이 최선이라고 하는 것인즉
그래서 지극해지는 것이고 또한 간절한 것이 되는 거 아닌가 그 말.

그런데 말이지..
예전엔 안 이랬는데 말이야.
저 신파가 왜 이렇게 이쁘고 아픈 것이야!
늙은 건가?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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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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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썼다길래 이제서야 읽고 있다. 하루 100쪽씩. 현재는 3권째. 굉장히 빨리 읽히는 책이다. 이런 속도의 책읽기는 소설이 아닌 경우, 아주 예전에 한번 있었다. 김용호의 <와우>.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즐거움이 있는 이런 책읽기가 좋다. 김의 <몸으로 생각한다>라는 후속편을 읽을 때는 그 쾌감이 반감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저작을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다. 그간 소설도 그런 것이 드물어서 이왕의 독서가 행복하진 못했다. 

 
책의 내용 중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면, 저자가 자기가 안에 언급한 회화작품들을 실제로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 과연 그 색채와 질감을 모르면서 그 회화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반면, 정작 그 회화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 하는데. 아무래도 어딘가, 정말 2% 부족하다. 워낙이 책의 체계 자체가 팔도유람 형식이라서 그것이 큰 오점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이미 많은 저자들이 남의 책을 읽고 그걸 토대로 직접 본 것처럼 써대고 있다 하니. 읽지도 않은 책을 인터넷검색으로 알게된 몇 가지 포인트로 읽었음을 가장하는 일도 허다하다 하니. 그게 현세태라 하니. 다 밥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 테니. 그들이 밥먹는 일에 한 술 보태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기로. 호호, 새해는 좀 후덕하게 살아야지.  
 
 
 
    

 

저자의 사회적 생활에 대한 판단의 개입없이 읽고 있는 중.

롤러코스터의 기만도 예의주시하는 중.... (제발!)  -2005/1/15

 

새해를 시작했을 때 보람을 느꼈던 독서였다고나 할까.

이 여름, 더위를 잊는 데에도 쓸모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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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록 2006-01-0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보지 않앗다기보다는 못 보앗을걸요. 전 세계 도처에 흩어져잇는 그 그림을 실물로 보는건 몇년의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도판좋은 화집도 많이 나와잇으니 그걸보고 쓰는거야 뭐랄건 없다고 봅니다. 그 그림 자체를 세밀하게 분석할 거라면 당근, 그 그림이 세계의 끝 박물관에 걸려있대도 가 보고 와야겟지만요.
 
우리뿐인가
폴 데이비스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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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CONTACT>와 관련하여...


내가 자고 있을 때, 내가 세수를 하고 있을 때, 혹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한마음으로 우주를 향해 우리뿐인가를 묻고 또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작업을 'SETI: The Search for Alien Intelligence'라 하고, ET가 과학적 영역에 속한 반면 이 SETI는 종교적 영역 속에 들어 있다고 폴 데이비스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진보된 존재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고, 언젠가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에 간섭할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안식을 얻는다고. 그의 칼 세이건과 관련된 언급이 있다.  


......SETI를 가장 목청 높여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꼽을 수 있다. 세이건은 자신의 소설 <접촉Contact>에서 대규모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외계의 신호를 탐사하는 작업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것으로 묘사한다. 외계인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수신한 데 이어,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제작하여 은하의 중심으로 외계인을 만나러 떠난다. 외계인과 접촉한 결과, 인류는 우주의 본성에 대한 심원한 비밀들을 은밀하게 전해 받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우주 전체가 지성적 설계의 산물이라는 주제다. 그리고 외계인은 이러한 설계의 보증서가 어떻게 우주의 구조 속에 쓰여 있는지에 대하여 암시해 준다. 그리하여 외계인은 전통적으로 천사가 맡은 일을 한다. 천사는 우주와 인간 존재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나아갈 길을 암시적으로 가르쳐 줌으로써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계자 역할을 담당한다...... (169 p.) 


나 역시 칼 세이건이 아마도 그렇게 믿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lien Intelligence에 관해서라면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게 Alien Intelligence는 영화 <인디펜던스데이>에 등장한 외계인의 의미에 더 가깝다. 만약 그들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면, 그 신호를 우리가 해독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그야말로 가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만약 우리가 그들을 만난다면, 그것도 지구 중력이라는 우리의 환경 벗어나지 않고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바깥 어디에도 갈 수 없으며(고작 잘 부서지는 우주선에, 제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주인이다!) 혹시 지구에 가까이 닿은 에일리언이 있다면, 과연 그들은 무엇 때문에 지구까지 오는 수고를 했겠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떠나와야만 했을 절박한 이유를 가지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지구를 찾았겠는가. 그들과는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러나 실은 Alien Intelligence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이미지와도 부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난다면,이라든가 해독할 수 있다면, 하는 가정들을 물리쳐 버린 것이다. 그들이 있다면 우리와는 아주 다를 것이다. 구분도, 해독도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 Intelligence라서 그들이 아낌없는 도움을 준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폴 데이비스의 <우리뿐인가?>는 과연 우리뿐인가,하는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더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정하여 말하지 않았으나 저 하늘의 별만큼 그들이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고마는 희한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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