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8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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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황인숙이라는 이름이 목구멍에 걸렸다.

황인숙을 읽어야겠다.

황인숙을.

 

뭐랄까, 황인숙에게서 위로받고 싶었나 봐, 라고 하기엔 좀 염치없기는 한데

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도 어쩌지 못하고 뒤로 한 그 길을

혹시 곁눈질으로나마 엿보면...

어쩌면 내게 힘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황인숙만큼은 정말 가까운 느낌이었으니까.

 

해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몇 날을 빈손으로 보낸 것은

내 얄팍함에 대한 뻔뻔한 자기기만일 거라는 생각이 함께 들어서였는데

막상 집어들고 첫 페이지를 열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긴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제대로 얻어터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방에.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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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6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만 해도 별점에 꽤나 인색했구나 내가. 이 시집이야말로 나한테는 별 백 갠데.
 
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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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변변한 동화책 한 권이 없어서 거의 빌려다 읽고

대학 때까지도 없으면 안될 교과서 외에는 모조리 빌려 읽고 만 것이 한이 되어

취직 이후 지금까지도 아귀처럼 책을 샀는데

신간이 아닌 경우는 대부분 이미 읽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쌓아 놓고 세월이 흘러

그 책들도 이젠 누렇게 바랜, 개미만큼 작은 활자의 구간들이 되었다.

나중에 읽어야지, 한가할 때, 그래 나이 들면 읽어야지...

이제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읽어야 할 것들이 되어 있다.

지금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고, 대중교양소설, 게다가 글 좀 하고 책 좀 읽는다 하는 분들이면

그예 그 따위, 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갈기는 소설이 완역되어 나와 있어서

그걸 또 다 샀다.

어렸을 때 계림문고로도 읽고, 조금 더 자라서는 그보다는 좀 더 두툼한 거로 읽고,

영화로도 보고, 그걸 빌려 만든 드라마도 보고 했는데

여전히 흥미롭다.

 

다섯권이나 되니 총 오만원, 할인을 받았어도 꽤 값이 나갔다.

완역에 대한 욕심으로 사서 읽는 책은 아니어서 그런가.

너무 오래 전에 읽은 터라 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서 그런가.

값이야 어찌됐든 앞뒤가 짝짝 맞는 이야기를 읽으며 흥겨워 하는 중이다.

그래서 다시 읽기라기보다는 새로 읽기가 지금의 읽기에 어울리는 말이다. 

 

지금의 내게는 이러한 새로 읽을거리가 가득 있다.

감동받은 소설이 없다는 말을 얼마 전에 했는데

새로 읽으려고 둘러 보니 흐르는 마음이 그 앞에서 멈추는 소설들이 꽤 있다.

제대로 감동할 차례가 된 듯싶다. 이 역시 행운.

 

-필요함과 부족함은 동의어이기는 하지만 그 두 낱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메르세데스, 카탈로니아의. 5권, 260p.)

 

-흥분이란 감격과 비슷하다. 그리고 감격이란 지상의 사물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메르세데스, 생제르맹데프레가의 셋집에서의. 5권, 261p.)

근래 들어 이 복수극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척 다양해졌으니....

이미 즐기며 흥겨웠던 것이 바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이전에 제임스 카비젤 주연의 영화 <몬테크리스토>가 있었으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휴고 위빙의 브이는 참으로 좋았는데

이 브이가 즐겨보는 영화가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

널 쓰러뜨린 건 내가 아니라 네 과거다. 후후후...

 
그리고 또 하나, 일본 애니메이션 <암굴왕>.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이 암굴왕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었다.

그 추억과 함께 섬세한 일러스트로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취향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어떤가.
살 만한 세상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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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랜덤 시선 9
안현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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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 안현미
 
 
주름진 동굴에서 백 일 동안 마늘만 먹었다지?
여자가 되겠다고?
 
백 일 동안 마늘만 먹을 때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니?
 
 
 
 
 
 
 
 
이 불편한 곰.
 
남자들의 남자 얘기만큼이나
 
난 여자들의 여자 얘기가 정말 듣기 싫다.
 
여자가 불편하다.
 
어쩌나....
 
 
 진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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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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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5개.

책가격  9500원

대여점 대여료 1000원

 

옛날 10여편의 단편을 싣고도 300원이었던 삼중당문고를 생각하면 안습이다.

실제로 일본 문고본으로 사면 한 450엔에서 500엔 정도 할 듯. 아직 확인 안했음.

제발 우리도 문고판 좀 안되겠니?

 

책의 표지에 쓰인 문구들을 읽고 있으면

문학사상사에 대해 자꾸 실망하게 된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목매단 듯 써갈려도 되나...

이렇게도 자긍심을 잃은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도달하는 걸

나 스스로 막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속이 쓰리다.

뭐 비양심적인 타출판사들 때문이겠지요, 하지만서도.

 

내용은...

 

기담집이다.

그리고 그동안 기담 아닌 게 하루키에게 있었던가 했다.

어느 면에서는 폴 오스터 냄새도 나고.

근래 들어, 아니 해변의 카프카 때도 그랬으니 벌써 사오년은 지난 얘기지만

왜 이렇게 하루키 이외의 냄새가 맡아지는 건지.

하루키 스스로 번역을 좋아해서 이렇게 된 건지.

좀 아쉽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래도 하루키에겐 재미있고 발랄한 묘사취미가 있다.

나는 그걸 바라고 읽으니 이 책도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기담애호가다. ^^

 

덧붙여, 뒤에 붙은 우리나라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후기.

그런 글은 후기도 아니고 감상도 아니니 치워버렷.

창피하지도 않나봐. 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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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09-0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이에요. 하루키에게 기담 아닌 작품이 있었나? 하하;; 그래서 하루키가 더 좋아요 ^^

2007-10-17 20:40   좋아요 0 | URL
저도요.^^ 하루키 기담이야 이미 익숙한 거지요.
아이.. 댓글 진짜 늦었죠? ^^;;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 시인선 288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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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시

         

              갑자기 입 속이 가득해지는 것이었다
              이빨을 악물었는데 자꾸 차오는 것이었다
              양볼이 미어지게 쳐들어오는 그것을
              악문 이빨이 씹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목구멍까지 차서 숨을 쉬기 어려운 것이었다
              금세 토할 것 같은 것이었다
              씹지도
              삼키지도
              토하지도 못할 그것이
              입구덩에서 나오길 싫어하는 것이었다

              오래된 냉장고 속에서
              이미 많이 익었고
              이제 더는 썩어지지 않을
              새파랗고 새빨간 그 중늙은이가
              아주 달콤하게 아주 부드럽게
              입 안에 들어와 나가기를 거부했다
              오직 토하는 것이 싫은
              악문 이빨이 미어진 볼이 막힌 목구멍이 간신히
              욕을 삼켰다

              처녀같은 늙은이의 살점이 위장에 들러붙어서
              피를 빨고 다시 자란다
              트림도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소화불량의 겨우살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 늙었으나 늙지 않는 그 여자의 시와 마주쳤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우연을 가장하고 달겨들어서 껍데기는 물론이요
속알맹이까지 파간다, 그 거머리같은 중늙은이여자는.
나는 매년 겨우살이가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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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시`는 김혜순의 시가 아니라 내 시다.
시집을 읽고 시를 썼다면 그 시집은 괜찮은 것이 되는 거라고나 ㅋㅋ
작자를 넣지 않아서 혹시 김의 시라고 오해하실까봐서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