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
강형기 지음 / 비봉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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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학자 A. de Tocquevill은 미국시찰을 다녀와서 미국의 Town Meeting에 대해 민주주의 학교라 칭하면서 높이 평가하였다. 지방자치란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그 지역내 사무를 자기책임하에 자주재원을 바탕으로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통하여 처리하는 과정으로 정의되는데, 이 행위의 자기책임성과 행위의 자기결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두개의 기본원리를 내포하는 지방자치의 개념은 50년대에 유럽에서 George L Langrod와 Keith Penter Brick의 유명한 논쟁이 있는 등 오랫동안 그 효용과 폐해 장점과 단점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념적∙ 행정적 측면 뿐 아니라 국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는 국제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정당성과 이로움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의 저자이신 강형기 선생님은 내가 현재 수강중인 지방자치론 과목의 담당교수이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답게 카리스마와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다. '내가 지방에 있는 것은 내가 지방자치학자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학자가 지방에 있지 않으면 어디있겠는가!'라고 웅변하는 그분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책은 일본의 여러가지 사례를 열거하면서 지방자치 성공의 조건으로 제도적 완비, 유능한 지도자, 성숙한 시민의식과 시민의 참여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여러 성공한 지방지도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무사시노시의 쓰치야 시장이다. 초선신임시장으로서 공무원노조라는 거대집단과 당당히 싸우는 용기, 자신의 초라한 아파트에 대해 '샐러리맨이 살 수 있는 집은 이정도이다'라고 말하는 청렴함, 시민의견을 최대한 시정에 반영하면서도 님비나 핌피는 단호히 배격하는 균형감각, 인구15만에 불과한 무사시노에 이상할 정도로 거대하게 건립된 시민 체육관에 대해 시민의 건강이 향상되면 병원이나 보건소에 쓰일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면서 '비용을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적극적이고 발전적인 복지관... 쓰치야야말로 현대 지방자치의 이상적인 지도로서 하나의 모범으로 삼을만하지 싶다.

이어서 책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가가 지방보다 훨씬 우월하고 우선한다고 믿는 오랜 권위주의, 또 권위주의 흐름 속에서 중앙의 지시 감독에 길들여져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방정부, 심한 인구유동과 참여에의 경험부족으로 그다지 높지않은 향토애와 시민의식, 중앙정당의 지방간섭 등 우리는 많은 불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정도 자연 해결되는 부분도 있겠으나 급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의 지방과 도시에게는 자연적 향상을 기대할 여유가 없다. 국가는 지방에 정당한 권한을 이양하고 부당한 부담은 회수해야 하며 정당은 지방자치에서 손을 빼야 한다. 그리고 지방은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주민은 권리와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 자신이 저자의 강의를 현재 수강중이라 수업과 연계한 생각하는 독서가 가능하였다. 그리고 사례 중심의 내용이라 다소 딱딱한 느낌의 교과서와는 달리 상당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해도 용이했다. <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의 주제는 한 마디로 ‘지방자치의 성공은 이론만이 아닌 열린 사고와 사람 사이의 진정한 신뢰와 교류로 이룩된다.’인 것 같다.

강형기 선생님의 말씀처럼 공무원은 특히 지방공무원은 종이와 연필로 일해서는 안 된다. 주민과 같이 호흡하며 가슴으로 일해야 한다. 나도 졸업 후 공무원을 희망하지만 이미 공무원이거나 미래의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이 주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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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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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등장한다는 것이 께름직하기는 하지만, 제법 재미있는 책이다. 시적이고 장식적 문체는 순수문학을 지향했다는 르블랑의 만만치 않은 문재를 증명해주고, 다양한 구성과 소재는 감탄할 정도이다. 뤼팽이란 캐릭터 역시 처음부터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추리소설적으로 낙제 수준이다. 이 작품에 수록된 단편들도 여느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해결하고 추론과정을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탐정이 아닌 범인을 주인공으로 하였기에 일반적인 과정인 발단→전개→해결의 순서적 고정성에서 탈피하여 그 순서를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잘 활용하여 다양한 플롯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해결의 단서를 독자에게 제시하는 데에 너무 인색하고, 트릭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추론과정에도 날카로운 맛이 없다. 불가능한 일도 뤼팽이니까 가능하다는 식의 설정도 너무 많다.

구성과 문체가 훌륭하고 뤼팽이라는 매력적 캐릭터가 있고...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거 같은데 가운데가 텅 비었다. 이렇게 된것은 아마도 지나치게 홈즈를 의식한 탓이 아닐까? 홈즈가 이성으로 나간다면 이쪽은 감성으로 승부한다는 컨셉에 너무 얽매이는 듯하다. 영국의 홈즈에 대항할 만한 우리의 영웅이 있어야 한다는 다소 치기섞인 발상에서 탄생한 뤼팽의 태생적 한계일까? 영국대 프랑스, 명탐정대 괴도, 이성대 감성, 추리대 활극... 이런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훨씬더 멋진 작품이 되었을 것인데, 르블랑은 도일을 너무 의식하여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 꼴이다.

하지만 아무리 홈즈를 끌어와 뤼팽에게 패하는 모습을 연출해도(이 작품에서 홈즈가 심한 꼴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암성에서 홈즈는 아주 엉망이 된다. 능력 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도일을 읽은 사람은 도일의 홈즈와 뤼팽의 홈즈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 르블랑의 작가적 양식만 훼손될 뿐이다. 홈즈와 뤼팽을 추리소설의 양대산맥이라 하는 사람도 있으나, 공허한 말이다. (추리소설에 무지한 사람이거나 르블랑의 팬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소리를 할 것인가!) 홈즈라는 튼튼한 산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 굳건히 설 수 있으나 거기에 기대고 있던 뤼팽이라는 기형산은 홈즈가 떠나가면 힘없이 무너진다.

첫작품을 낼 때까지 도일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작자나 셜록 홈즈를 헐록 쇼메즈로 바꾼 것에 대해 프랑스적 기지 운운하는 역자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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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레드메인즈 동서 미스터리 북스 32
이든 필포츠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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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포츠라...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작가다. 크리스티가 스승이라 불렀다는 작가이고 오래된 미스터리 베스트텐에 작품을 두개나 올리는 요란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소리>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빈약한 트릭,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결말, 섬세하지도 않고 날카로운 맛이 없는 밋밋한 추론... 반다인, 크리스티, 퀸 등에 한참 뒤진다고 생각했다. 필포츠 정도에게도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오겠냐며 <빨강머리 레드메인즈>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별로 아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빨강머리 레드메인즈>를 실제로 읽고나니 그간의 나의 필포츠를 비롯한 제이황금기 초반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혹하고 건방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제일황금기의 단순 추리퀴즈같은 단편추리소설의 약점을 극복하고 문학으로서의 추리소설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또한 이들과 반다인, 크리스티, 퀸 등 3대 장편미스터리 거장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매우 짦으나 이들이 3대 거장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빨강머리 레드메인즈>역시 그 시기 뛰어난 작품들의 미덕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짜임새있는 구성에 강렬하지는 않지만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전개와 설득력 있는 추론.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보다 진지한 탐구와 뛰어난 묘사... 특히 이작품은 범인과 탐정의 치열한 심리적 대결구도가 잘 짜여져 있다. 탐정소설이라 불리는 여타의 작품과는 다르게 탐정과 범인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탐정이 아닌 범인 쪽에 감정이입하여 읽는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그런데 수수께끼를 구성하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진상을 숨기는 재주가 3대거장에 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인가! 머리가 좋은 독자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중간 쯤에서 범인을 알아맞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용의자수도 극소수이고 반전의 강도도 약한 편이다.

<빨강머리 레드메인즈>는 몇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을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장점을 외면하고 단점만을 확대해서 보아왔던 내가 이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은 미스터리 독자로서 분명한 즐거움이고 이 작품을 읽을 수 있게 해준 동서에 고마움을 느낀다(녹스의 <육교살인사건>과 부시의<완전살인사건>도 출판해주면 더욱 감사하겠다). <어둠의 소리>와 <빨간집의 비밀>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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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독방의 문제 동서 미스터리 북스 55
잭 푸트렐 지음, 김우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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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대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나오는 명작 단편집이다. 특히 트릭의 퀄러티는 제일황금기 작품중에서 홈즈, 브라운 신부와 더불어 최상이다. 그리고 딕슨카를 연상시키는 불가능과 기괴한 설정도 매우 매력적이다. 해결부분도 깔끔한 편이다. 기괴한 발단과 기발한 트릭 그리고 이어지는 명쾌한 해명... 실로 황금시대 걸작 단편의 교과서적인 모습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건조한 문체에 너무 트릭위주로 쓰여졌다는 것. 이점은 주인공 반도젠 박사가 홈즈같은 매력적인 케릭터가 아니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소재는 다양하고 훌륭하나 그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크리스티나 딕슨카 등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이러한 아쉬움은 작가가 작품을 계속 써나감에 따라 작풍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당부분 극복될 수 있을 터인데, 아쉽게도 푸트렐은 타이타닉 참사로 너무도 때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미스터리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실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푸트렐에게 좀더 많은 작품을 집필할 기회가 있었다면 도일과 체스터튼에 이어 또한사람의 제일황금기 출신 거장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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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노인 사건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63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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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하나! 추리소설 속의 탐정들 중 가장 전형적인 '안락의자형'은? 추리소설에 문외한이라면 '안락의자형? 그게 몬데ㅡㅡ?'라고 반문할 테고, 추리소설을 제법 읽은 사람 중에는 구석의 노인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꽤 많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 해당한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대단한 매니아는 못된다.

'안락의자형'이란 발자국이나 지문 따위를 조사하거나 용의자를 심문하고 주변인물들을 탐문하는 등의 일체의 몸을 움직이는 수사활동을 배제하고 오로지 이성적인 추리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마치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퀴즈를 풀듯이, 유형의 탐정이다. 홈즈를 비롯한 고전시대의 탐정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 유형에 속한다 할 수 있고 해미트 챈들러류의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이들의 비현실성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그러나 전형적이라 할 만큼 '안락의자형'의 의미에 충실한 탐정은 극히 드물다. 있다면 맥스 캐더러스나 네로 울프 정도(이들은 육체적 활동을 하기에 치명적인 약점 가졌다. 맥스는 장님 네로는 걷기 어려울 정도의 비만)... 고백하면, 나역시 이 책을 실제로 읽기전까지는 막연하게 구석의 노인이 전형적인 안락의자형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기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신문기사만으로 수수께끼에 휘둘린 사건들을 척척 해결해내는 신비스러운 노인'... 이런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실상 구석의 노인의 행동력은 고전시대 탐정들 중에서 아주 높은 편에 속한다. 이 괴상한 노인네는 재판방청을 열심히 하고 용의자 사진도 찍고 어디서 그렇게 많은 자료를 모았는지 사건관련인물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에서 전개 이후 결론까지 일사천리로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여기자 폴리는 가만히 듣고있을 뿐이다.(폴리의 존재이유는 심히 의심스럽다)

읽기전에 가졌던 이미지와 많이 다른 구석의 노인은 지나치게 일인독백식의 대사 중심이라 현장감과 긴장감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주인공이 경찰에 관계하기 싫어한다는 설정이고 물리적 증거에 의존하는 바가 미미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그가 제시하는 추론은 완전하게 증명되지 못한다(마치 반다인의 카나리아 살인사건 처럼). 뒷맛이 깔끔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슷한 트릭과 패턴이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의외성의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도 분명한 미덕이 있으니, 우선 작품들이 비슷비슷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하나는 매우 우수한 편이고(그중에서도 <엘리어트 사건>과 <트레먼 사건>은 확실한 A급 명작이다), 고전시대 작품답지 않게 동기를 중요하게 다루고 심리적 요소를 강조하였다는 것은 이후 등장하는 반다인 등의 장편미스터리 거장들의 작풍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구석의 노인은 여러면에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개개의 작품수준이 훌륭하고 제이황금기 장편추리소설 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제일황금기의 명작단편집이다. 홈즈나 브라운 신부에 비하면 손색이 있으나 매니아의 필독서로서 부족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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