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배운 적도 없고, 기초 상식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릇된 말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이런 황당한 주장은 상식에 비추어서 내 머리로 판단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혹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쓴 이 글에서 나의 가치관이 아니라, 제가 적어 놓은 사실과 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안해에게 먼저 물어봐야하는데, 잠들었네요. ^^;;

 

   평소엔 거의 보지 않는 심야토론을 조금 전까지 보게 되었다. '세금 감면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것이었는데-중간부터 보게 되어 정확한 제목은 잘 모르겠다-, 토론자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펼치는 모습이 그럭저럭 괜찮아서 보게 되었다. (물론 토론 자체가 매끄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좀 겉돌다가 만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부 약간 발을 빼는 듯한 분위기였다고 할까?) 오늘 있었던 토론에 덧보태고 싶은 점이 있어서, 늦은 밤, 짧게 나마 글을 쓴다.

   유리알처럼 투명하다는 봉급을 받는 나에게 '소득세 감면' 보다 더 듣기 좋은 정책이 있을까? 그러나 혹할 수 밖에 없는 주장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이번 소득세 감면을 비롯한 감세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론 중에 감세에 대한 여러가지 쟁점이 나왔지만, 중요한 점 몇 가지만 추려보면, 첫 번째 감세해야한다는 측에서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측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출이 감세보다 경기 부양의 효과가 직접적이고 크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감세의 효과는 장기적이고, 재정지출의 효과는 즉시적이라는 이론에는 모두 동의하는 편이었다.)

   두 번째, 감세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감세가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면서 소득세 뿐만 아니라, 유류세, 중소기업 법인세, 택시용 엘피지 면세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부 관계자는 십 조원 (십 조원이라는 단어를 다시 글로 쓸 일이 있을까 싶다.)감세안의 가장 큰 덩치는 소득세인데, 우리 나라에서 소득세를 내고 있는 사람은 봉급 소득자의 상위 50%이고, 그 상위 50%를 다시 세 등분 했을 때 하위 1/3이 내는 소득세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금의 소득세 감세는 서민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푼돈을 덜어주고, 고소득자에게 큰 돈을 쥐어줄 뿐이라고 비판했다.(여기서 나는 클린턴이 자기처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의 소득세를 깎아주는 부시의 감세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세 번째, 감세한 이후에 발생하는 부족한 세수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감세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일단 감세한 후에 국회에서 의논해 보자는 것이었고, 정부측은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방법은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이거나, 적자 재정을 편성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정부 측의 거듭된 질문에도 감세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구체적인 방안 없이 중언부언 하더니 결국 국회에서 의논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이미 기존에 편성된 예산을 삭감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다른 방법은 부족한 재원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서 채우는 방법이 있다.-물론 국채의 발행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그러나 국채 발행을 통한 적자 재정 편성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일이라 논란이 크다. 사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엄청나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내 판단으로는 아무래도 감세를 하고 난 후에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정부의 예산 삭감을 하게 될 것 같다. 왜냐 하면 최근에 재정 적자가 꽤 늘어난 편이기 때문에 재정 적자 정책을 계속하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결국 재정 적자 정책은 정부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 것이고, 미래 세대에 부담감을 지운다는 명분에서도 밀릴 것이고,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결국 쓸 돈은 다 쓰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예산을 돈 댈 것이냐가 결국 문제인데 결론은 뻔하다. (사실, 토론회에서 이 이야기가 안 나와서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싶었다. 민감한 이야기는 서로 피하는 분위기라고나 해야할까?)

   감세안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방만하다고 지적하고, 이런 불요불급한 예산안을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지금까지의 예산안 통과 과정을 볼 때 정부든 국회든 사회적으로, 지역적으로 힘 있는 이해 당사자의 예산은 절대로 손대지 못한다. 예를 들면 국방 예산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IMF 이전까지의 예산안 심의에서 국방 예산은 거의 원안대로 통과였다.) 따라서 특히, 국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없는 계층이나 집단의 예산이 가장 먼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내가 서민의 대변자라는 감세하자는 측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처음으로 오십 조원 넘었다는 복지 예산에 제일 먼저 칼을 댈 것이다. (이 사람들이 진짜 서민 아닌가? 서민들을 위한 감세가 결국 서민들에게 갈 예산을 깎는 경우가 분명 생길 것이다.)

   감세하자는 측은 정부의 방만한 예산 편성과 대규모 사회 간접 시설 공사(SOC)를 문제 삼을 듯 말하고 있지만, 그런 예산은 이해 당사자의 집단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시늉만 내다가 그칠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지금껏 보인 행태가 그랬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 행정수도 건설과 관련된 예산 확보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만약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그 날로 난리가 날 것이다. 만약 감세를 주장하면서 꽤 많이 늘어난 국방 예산을 팍 깎자고 덤빌 국회의원이 있을까? 신물나게 보아온 그 집단들의 행태를 보건데 없을 것 같다.

   감세는 우선 듣기에 달콤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물론, 정부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택도 없는 소득액만 신고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률을 높여야 하고, 편법으로 탈세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세 제도의 그물망을 조금 더 꼼꼼하게 쳐야할 것이다.(이번 삼성의 '전환사채도 결국 편법 증여 형식이지 않았나?)

   내가 감세 정책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마도 감세를 통해서 복지 예산이 깎이는 것이 되는데... 더구나 서민층인 나에게 돌아오는 감세의 효과는 아주 미미한 수준일테고, 가만히 앉아 있는 부자들에겐 감세 혜택이 더 클텐데, 바로 그 돈을 깎아서 사회안전망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아 볼 수도 없는 이런 복지 불모 사회의 복지예산을 깎겠다고?

   나에게 돈 몇 푼 더 쥐어주겠다는 당신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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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 2005-10-0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나도 됐거든"

심상이최고야 2005-10-0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지적! 날카로운 판단력!! 느티나무 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서민의 삶을 어쩌고... 이런말 하지 말고 그냥 까놓고 '우리가 더 부자 되려고 감세 정책 주장한다' 하면 역겹지는 않겠지요!
미국의 Reasonable Wealth라는 단체도 생각나고, 소프트웨어 백만장자인 미셀 맥거이가 한 말도 생각납니다.
"나는 주식 가격 오르는 것을 쳐다보는 일로 돈을 벌 때 다른 사람은 교사로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왜 내 세율이 더 낮아져야 하는가? 그런 조치는 경제적으로는 내게 이들이 될지 모르지만,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족은 공동선을 위해 행동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BRINY 2005-10-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후기 수취제도를 개편하여 지주의 부담을 늘이고 소작농의 부담을 덜려고 했지만, 결국 부담은 다 소작농에게 전가되었다' -> 요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네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으니 아마 내 생의 첫 DVD지 싶다. 예전에 교육용으로 비디오 테입은 몇 개 산 적은 있지만 DVD를 어제 처음 샀다. 물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예전에도 보여주려고 주문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못 샀다. (안 샀나?)

   여섯 개의 시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가슴이 먹먹했었다. 재미있는 발상과 감독마다의 다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도 좋았고, 특히,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보았을 때의 답답한 느낌은 꽤 오래 갔었다. 그리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들린 노래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십시일반이라는 책이 먼저였나, 이 영화가 먼저였나 가물가물거리지만, 아무튼 이 때쯤에 '십시일반'이라는 책의 리뷰도 쓰고 그랬다.

   한참 후에 '말해요, 찬드라'라는,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화를 적은 책을 읽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야만적인 상황이 늘 벌어지고 있는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슴에서 울컥해서 이 책도 꼭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아직도 너무 많은 책들이 나의 리뷰를 기다리는 탓에 아직 순서를 못 잡고 있는 상태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토요일에 나는 수업이 든 두 반 학생들에게 여섯 개의 시선 중, 찬드라의 경우를 보여줄 예정이다. 그래서 DVD를 샀다. 어제 혼자서 컴퓨터로 이 영화를 봤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도 흥얼거리며 들었다. [노래는 이주노동자 뮤직프로젝트 앨범 What is life 중 'someday' 였다.]

   아직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한 번 읽어주십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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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10-07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별 이야기도 보고 싶어요..

느티나무 2005-10-0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재미있어요? 우리 동네 극장에서 하던데... 그냥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잘 없으니. 볼 수 있으려나? ㅋ 내일은 우리반 점심 먹고, 등산 가는 날이니 어렵겠고 ㅠㅠ
 

   깨달은 게 많다. 내가 해 보는 건 차치하고라도 수업 짜투리 시간에 활용해 보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진단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데 아주 효과가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저 비슷한 걸 해 본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땐 그냥 '자기 자랑 몇 가지' 이런 거였는데, 좀 시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저렇게 해도 부담스러운 녀석들이 있을테지만, 오히려 선수치고 나가는 게 재미있겠다. 여러 가지로 알라딘에서 많이 배운다.

   근데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교사가 자신의 것을 제시하면 가장 효과가 클까나, 반감만 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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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7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5-10-0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겠죠? ㅎㅎ 내친 김에 당장 해 볼까요? 학생들은 좋은 모델이 없으면 갈피를 잘 못 잡지요. 그래서 수업 모형에서 '시범 보이기' 단계가 중요합니다. 시범을 소화해서 '창조'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비로그인 2005-10-07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도 들려 주세요! 늘 겸손하시기 때문에 튀는 모습도 보고 싶다구요!

▶◀소굼 2005-10-07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것을 제시하되 역시 알라딘분들처럼 유머가 적절히 섞여줘야 할 것 같아요;아이들이 바라보는 교사는 좀더 느낌이 틀릴테니까요;

느티나무 2005-10-0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sa1t님, 아무래도 제가 하는 건 좀 그렇네요. ^^;; 어렵네요
 


내 방의 책과 잡동사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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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10-0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을 공간이 부럽습니다;

물만두 2005-10-0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깔끔하네요^^

이매지 2005-10-0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깔끔하네요 ! ^-^
저 아래 보이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일부가 ! +ㅁ+
역시 나란히 놓으면 예쁘군요. 흐음. (불타는 수집욕 ㅋ)

아라 2005-10-0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방과 참 대조적이네요, 여러가지 의미로요. 무엇보다 깨끗하다는 것이 제일...^^;;

푸른나무 2005-10-04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런하게 정리도 잘하셨군요. 저 책이 전부라면 우리집에 있는 책과 비슷한 양인데 어딘가에 더 있겠지요? 빌려보고 싶다.. ^^ 어제는 '건축을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그 책이 갑자기 생각나 알라딘에 주문하기엔 늦고 빌려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니까요. 이웃에 있으면 저 책을 다 빌려보는건데... ^^

느티나무 2005-10-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1t님 - 저렇게 놓으면 발 디딜 공간도 별로 없다는 ㅠㅠ
물만두님 - 저희 집엔 책장만 비교적 깔끔하답니다. 다른 건 엉망인데요.
이매지님 - 민음사 문학전집은 모두 9권이네요. 민음사 전집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라님 - 대조적이라시면 무엇을? 깨끗이요? 먼지만 쌓이고 있는데... 사진은 먼지를 잘 잡지 못하죠 ^^

느티나무 2005-10-07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나무님 - 저것보다는 조금 더 있어요. 아, 그 책, 건축가 서현님의 쓰신 책이죠. 예전에 우종호 학생이 건축과를 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종호어머니를 통해서 종호에게 추천해 준 책이죠. 집에 있는데... ㅠㅠ
 

 9월 우리 반은……

느티나무


넋두리

   좋은 계절입니다. 놀기엔 아까운 날씨지요? 아까운 시간인데도, 저는 요즘 마냥 놀고 있습니다. 요 며칠 동안은 이런 안락함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어제 문득 뒤적여 본 잡지에서 저의 딱딱하게 굳어 껍질 같은 생각을 뚫고 들어와 시퍼런 날빛을 번뜩이고 있는, 비수 같은 구절을 읽었습니다. -교사는 자신의 이상을 강고하게 추구하지 않는 그 순간부터 퇴보한다. 아, 무서운 말이지요? 정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향해 전진하지 않으면 뒷걸음질 친다고 하시더군요. 이 글을 읽은 순간 교사로서 저의 꿈과 이상은 무엇이었던지 갑자기 까마득해지더군요.   처음부터 커다란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을까요? 지금 떠올려보니 저에게 아직까지 그런 게 남아있는지, 이렇게 마냥 넋두리를 늘어놓게 만드는 이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벌써부터 현실을 너무 많이 인정하게 된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 제가 교사로서 해 온 여러 가지 일들이 방향을 잃고 바람에 따라 우쭐대기만 하던 ‘허수아비’ 모양은 아니었던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 2학기의 우리 반

   예전부터 방학을 지내고 오면 아이들이 부쩍 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더군요. 2학기에 만나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은 대하기가 한결 편해지고, 이야기도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1학기에 신상파악을 위해 했던 개인 면담을 2학기에 들어 다시 한 번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천천히 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우리 반 학급 ‘날적이’는 요즘 잘 나가고 있습니다. 개인마다 편차는 조금씩 있지만 그래도 진솔한 내용도 제법 실리고, 무엇보다도 ‘날적이’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 야간 자습의 갈등 상황 중심 잡기

   2학기 들어서는 야자 쿠폰제와 ‘학부모 동의서’ 제도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꼭 야자 쿠폰이 아니더라도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이와 비슷하게 긍정적인 보상 제도를 도입해 보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예전에 지각생을 대상으로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학급 행사에 적극적인 참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꼭 그 쿠폰을 받아가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것 같아서 씁쓸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우리 반 녀석들은 이제 시작 단계라 아직은 조심스럽고 신기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스스로 꼭 필요한 경우에 알아서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이들은, 이번 이종격투기 중계해 주는 날 많이 사용하더군요.]

   야자 쿠폰과 함께 아울러서 서서히 야간 학습의 갈등 상황에 대한 제 생각의 중심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방과 후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원할 경우엔 꼭 학교가 아니어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곳에 가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온당할 것 같습니다.[이런 당연한 결론이 왜 그렇게 어렵게 내려질까요?] 그래서 우리 카페에 의주샘이 올려놓은 학부모 동의서를 내려 받아 필요한 학생들에게 주었고, 열 서너 명은 정기적으로 집이나, 독서실, 학원에 가서 공부하며, 교실에는 스물다섯 명 내외의 아이들이 앉아서 자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야간자습에 대해 혼란스럽던 제 생각이 조금씩 정리가 되고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 깨끗한 교실 만들기

   사실 제가 집에서는 그리 깔끔한 편이 못 됩니다. 그러나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반 교실은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약간 퀴퀴한 냄새도 납니다. 학교 건물 자체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치더라도, 자기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선생님처럼 먼저 쓰레기를 주우면서 ‘같이 줍자’고 이야기하기엔 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청소를 용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위[이것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할 논란거리기도 합니다.]는 지금 당장은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저는 아이들에게 청소시간만큼은 함께 청소하자고 강조[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명령, 협박쯤 될까요?]합니다. 일단 깨끗해진 교실이 다시 더러워지는 데는 하루도 안 걸리지만, 얼마 동안이라도 깨끗한 환경을 누릴 수 있다면 청소시간엔 모두가 청소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늘 교실에 있을 생각입니다. [청소 시간에 땡땡이치는 녀석들을 보면 다른 아이들이 힘들게 청소하고 있는 것과 겹쳐져서 정의감에 불탈 때도 가끔 있습니다.]


  • 추억이 있는 우리 반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이 녀석들은 2005년의 고등학교 1학년을 어떻게 기억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있으니 쳇바퀴 속에 갇힌 다람쥐를 떠올릴까요? 어쩌다 혹시, 학교에서의 좋은 기억을 떠올린다고 해도 그 기억에 담임인 저는 없을 게 분명합니다. 아이들이 떠올릴 행복한 기억은 대부분 친구들과의 우정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7년차 담임인 제가 욕심을 좀 부려본다면 아이들의 행복한 기억, 어느 한 틈에 나도 끼어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는 주 토요일에 아이들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고기 구워 먹자는 녀석들도 좀 있는데, 저도 물론 고기 먹는 걸 좋아합니다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학교 사정도 사정이지만, 토요일에는 빨리 점심을 먹고 등산을 가려고 계획 중이거든요. [몇 년 전에 담임을 할 때는 강제로 데려갔던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되, 함께 가는 학생들과는 확실하게 친해지려고 노력할까 합니다.[아이들과 가장 친해지는 방법은 쿠폰일까요?] 시험이 끝난 주말이니, 아이들은 근처의 어느 피시방과 노래방을 전전하거나, 친구들끼리 어울려 근처의 배회하겠지요?[제 시각이 아이들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가요?] 그 날 하루만이라도 저와 함께 산에 오를 수 있는 녀석들이 우리 반에 좀 있었으면 합니다. 그냥, 그 날 산에 오른 게 아이들의 즐거운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예전에 밧줄을 타고 내려온 금정산 파리봉 근처로 가려고 합니다.]


․ 그리고 남은 문제들

 - 아이들의 성적표, 어떻게 전해주어야 할까요?


 - 담임이 물렁하다는 주변의 시선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 아세요?


 - 청소시간에 빠지고도 미안한 기색이 없는 녀석들, 어쩌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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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9-3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아시거든 꼬옥 공유해주세요.
저도 야자에 대해서는 학부모 동의서를 활용하는데, 문제는 그것조차도 한달이 지나도록 못 가져오는 애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로 집에 일일이 전화하는 거 고자질하는 거 같고, 또 그 부모들도 학기초에 전화해본 경험으로 보면 학교에서 전화오는 거 귀찮아하는 거 같고, 애들 내버려두는 거 같고...학년 부장은 담임이 애들한테 끌려다닌다고 하고...어떡하면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