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배운 적도 없고, 기초 상식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릇된 말로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이런 황당한 주장은 상식에 비추어서 내 머리로 판단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혹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쓴 이 글에서 나의 가치관이 아니라, 제가 적어 놓은 사실과 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안해에게 먼저 물어봐야하는데, 잠들었네요. ^^;;

 

   평소엔 거의 보지 않는 심야토론을 조금 전까지 보게 되었다. '세금 감면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것이었는데-중간부터 보게 되어 정확한 제목은 잘 모르겠다-, 토론자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펼치는 모습이 그럭저럭 괜찮아서 보게 되었다. (물론 토론 자체가 매끄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좀 겉돌다가 만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부 약간 발을 빼는 듯한 분위기였다고 할까?) 오늘 있었던 토론에 덧보태고 싶은 점이 있어서, 늦은 밤, 짧게 나마 글을 쓴다.

   유리알처럼 투명하다는 봉급을 받는 나에게 '소득세 감면' 보다 더 듣기 좋은 정책이 있을까? 그러나 혹할 수 밖에 없는 주장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이번 소득세 감면을 비롯한 감세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론 중에 감세에 대한 여러가지 쟁점이 나왔지만, 중요한 점 몇 가지만 추려보면, 첫 번째 감세해야한다는 측에서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측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출이 감세보다 경기 부양의 효과가 직접적이고 크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감세의 효과는 장기적이고, 재정지출의 효과는 즉시적이라는 이론에는 모두 동의하는 편이었다.)

   두 번째, 감세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감세가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면서 소득세 뿐만 아니라, 유류세, 중소기업 법인세, 택시용 엘피지 면세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부 관계자는 십 조원 (십 조원이라는 단어를 다시 글로 쓸 일이 있을까 싶다.)감세안의 가장 큰 덩치는 소득세인데, 우리 나라에서 소득세를 내고 있는 사람은 봉급 소득자의 상위 50%이고, 그 상위 50%를 다시 세 등분 했을 때 하위 1/3이 내는 소득세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금의 소득세 감세는 서민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푼돈을 덜어주고, 고소득자에게 큰 돈을 쥐어줄 뿐이라고 비판했다.(여기서 나는 클린턴이 자기처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의 소득세를 깎아주는 부시의 감세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세 번째, 감세한 이후에 발생하는 부족한 세수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감세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일단 감세한 후에 국회에서 의논해 보자는 것이었고, 정부측은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방법은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이거나, 적자 재정을 편성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정부 측의 거듭된 질문에도 감세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구체적인 방안 없이 중언부언 하더니 결국 국회에서 의논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이미 기존에 편성된 예산을 삭감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다른 방법은 부족한 재원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서 채우는 방법이 있다.-물론 국채의 발행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그러나 국채 발행을 통한 적자 재정 편성은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일이라 논란이 크다. 사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엄청나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내 판단으로는 아무래도 감세를 하고 난 후에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정부의 예산 삭감을 하게 될 것 같다. 왜냐 하면 최근에 재정 적자가 꽤 늘어난 편이기 때문에 재정 적자 정책을 계속하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결국 재정 적자 정책은 정부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 것이고, 미래 세대에 부담감을 지운다는 명분에서도 밀릴 것이고,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결국 쓸 돈은 다 쓰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예산을 돈 댈 것이냐가 결국 문제인데 결론은 뻔하다. (사실, 토론회에서 이 이야기가 안 나와서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싶었다. 민감한 이야기는 서로 피하는 분위기라고나 해야할까?)

   감세안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방만하다고 지적하고, 이런 불요불급한 예산안을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지금까지의 예산안 통과 과정을 볼 때 정부든 국회든 사회적으로, 지역적으로 힘 있는 이해 당사자의 예산은 절대로 손대지 못한다. 예를 들면 국방 예산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IMF 이전까지의 예산안 심의에서 국방 예산은 거의 원안대로 통과였다.) 따라서 특히, 국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없는 계층이나 집단의 예산이 가장 먼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내가 서민의 대변자라는 감세하자는 측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처음으로 오십 조원 넘었다는 복지 예산에 제일 먼저 칼을 댈 것이다. (이 사람들이 진짜 서민 아닌가? 서민들을 위한 감세가 결국 서민들에게 갈 예산을 깎는 경우가 분명 생길 것이다.)

   감세하자는 측은 정부의 방만한 예산 편성과 대규모 사회 간접 시설 공사(SOC)를 문제 삼을 듯 말하고 있지만, 그런 예산은 이해 당사자의 집단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시늉만 내다가 그칠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지금껏 보인 행태가 그랬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 행정수도 건설과 관련된 예산 확보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만약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그 날로 난리가 날 것이다. 만약 감세를 주장하면서 꽤 많이 늘어난 국방 예산을 팍 깎자고 덤빌 국회의원이 있을까? 신물나게 보아온 그 집단들의 행태를 보건데 없을 것 같다.

   감세는 우선 듣기에 달콤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물론, 정부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택도 없는 소득액만 신고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률을 높여야 하고, 편법으로 탈세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세 제도의 그물망을 조금 더 꼼꼼하게 쳐야할 것이다.(이번 삼성의 '전환사채도 결국 편법 증여 형식이지 않았나?)

   내가 감세 정책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마도 감세를 통해서 복지 예산이 깎이는 것이 되는데... 더구나 서민층인 나에게 돌아오는 감세의 효과는 아주 미미한 수준일테고, 가만히 앉아 있는 부자들에겐 감세 혜택이 더 클텐데, 바로 그 돈을 깎아서 사회안전망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아 볼 수도 없는 이런 복지 불모 사회의 복지예산을 깎겠다고?

   나에게 돈 몇 푼 더 쥐어주겠다는 당신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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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 2005-10-0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나도 됐거든"

심상이최고야 2005-10-0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지적! 날카로운 판단력!! 느티나무 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서민의 삶을 어쩌고... 이런말 하지 말고 그냥 까놓고 '우리가 더 부자 되려고 감세 정책 주장한다' 하면 역겹지는 않겠지요!
미국의 Reasonable Wealth라는 단체도 생각나고, 소프트웨어 백만장자인 미셀 맥거이가 한 말도 생각납니다.
"나는 주식 가격 오르는 것을 쳐다보는 일로 돈을 벌 때 다른 사람은 교사로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왜 내 세율이 더 낮아져야 하는가? 그런 조치는 경제적으로는 내게 이들이 될지 모르지만,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족은 공동선을 위해 행동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BRINY 2005-10-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후기 수취제도를 개편하여 지주의 부담을 늘이고 소작농의 부담을 덜려고 했지만, 결국 부담은 다 소작농에게 전가되었다' -> 요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