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월간 말, 2003

   "반대자에게는 감동을 주는 겸허한 삶으로, 불의한 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정의로운 삶으로, 무관심한 이에게는 자극을 주는 투신의 삶으로, 무엇보다도 약자의 벗이 되고 친구가 되는, 예수님과 같은 실천적 삶을 다짐하며, 모든 법과 규정을 능가하는, 사람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고 확인한 인간이 우뚝 선 삶, 인간이 중심이 된 친교 공동체를 지향하고 고백한다"

   '인간의 확인이 참된 신앙'인 명제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자, 이제 우리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하지 않은가.

-226쪽, 종교 읽기 | 민중 속으로 중에서

 

   큰따옴표 속에 있는 저 말씀은 함세웅신부님의 말씀이다. 말씀 하나하나의 삶이 凡人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고 두려운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겸허한 삶, 정의로운 삶, 투신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지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한 문제이다. 다행히도 人福은 있어서 내 주변에는 자기 삶을 기꺼이 던져 무관심한 나에게 항상 자극을 주는 몇 사람이 있다. 그 분들의 삶이야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책은 왜 읽는가? 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러면, 바른 생각은 왜 하는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아닌가? 제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시, 너는 왜 책을 읽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섣달 그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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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1-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섣달 그믐 밤에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늘 진지하고자 하는 느티나무님의 사색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우뚝 선 삶'을 지향하는 신부님 말씀에 공감입니다. 제대로 사는 삶이란 그런 삶이겠지요? 방향은 그러한대,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어떻게 열려야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산다는 것! 새해를 여는 아침에 곰곰히 생각해 볼 좋은 숙제네요.
 

하이타니 겐지로/오석윤(옮김), 양철북, 2003

   '태양의 아이'는 후짱이라는 한 소녀가 오늘날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성실하게 찾아내고, 그로 인한 괴로움에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늠름하게 성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의 괴로움을 진실로 고민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5쪽, 한국어판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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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1-2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제가 책을 읽다가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옮길 예정입니다. 단순히 글만 옮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에서 받은 느낌, 생각 등도 덧붙여 쓰겠습니다. 결국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기억일까요? 아니면 기록일까요?

느티나무 2004-01-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의 아이' 서문을 읽고 든 제 느낌을 쓰려고 하는데, 알라딘의 '수정'하기가 문제가 있네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 시간이 날 때 이 구절에서 받은 제 느낌을 짧게 나마 써야겠네요!
 

   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냥 종이 울리면 교실에 들어가서(사실, 가끔씩은 아주 빨리, 쉬는 시간에 다른 반에서 주로 놀다가 종소리와 함께 들어가는 경우도 좀 있었다.-참고로 아이들이 무지 싫어한다.) 혼자서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반갑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책을 꺼내려고 사물함으로 달려가거나, 친구와 다하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실, 몇 년동안 아이들에게 '차렷, 경례'를 시켜본 적이 없다.(어떤 반의 반장은 그게 불만이다.ㅋㅋ) 그런 인사의식이 수업을 시작하는 신호가 될 수는 있겠지만(반장이 큰소리로 차렷-경례로 구령을 붙이면 잠시 조용해진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게 싫기 때문이다. 뭐, 선생님들에 따라서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기는 싫다.

   그래서 작년 2학기부터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읽기로 했다.(물론 내가 처음 시작한 방법은 아니고 같이 모임에 참여하고 계신 '이영두' 선생님의 방법을 배운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 이해인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균형을 유지하면서 쉽게 타오르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겸손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낮은 자리와 낮은 목소리를 즐거워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패배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귀하고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관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한 장씩 이 시를 나눠주고, 책 속 표지에 붙이라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내가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자~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내 말을 이어받아서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을 읽는다. 욕심에는 수업시간마다 읽다보면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외울 수도 있겠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직은 욕심에 그친 것 같다.

   나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신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 시가 자기 암시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발휘했으면 좋겠다. 아니, 학교에서의 생활이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전부가 아닐까? (그러나 내가 수업시간에 그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직은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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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교사 2004-01-2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달의 시'를 읽고 있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한달쯤 지나면 저절로 외우더라구요. 그리고 달이 넘어갈 때마다 은근히 새로운 시가 뭘까 궁금해하구요.
근데 위 시 내용이 너무 좋네요. 정말 아이들에게 자기 암시가 될 수도 있을 것같기도 하고. 주문을 걸듯이! 저도 위의 시를 한 번 읽혀 보아야겠어요.

느티나무 2004-01-2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시를 읽힌다? 멋진 병아리선생님이시네요. 근데 다음 주에 언제 시간납니까? 가능하면 저녁에요...병아리님 발령 받고, 우리(장김준호,느티나무, 병아리교사님)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2004-01-26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te 2015-08-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학창시절 담임선생님과 함께 이 시를 읽었던 한 명의 제자입니다. 문득 이 시가 생각나 검색하다 댓글까지 쓰게 되네요. 아마 제가 선생님께서 만났던 학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저는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혹은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려 마음으로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마음이, 칼처럼 날카로운 그의 글끝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장자이야기(장일순/이현주 목사의 대담)를 읽다가 약간 느려지는 것 같아서, 틈틈이 보려고 손석춘의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을 꺼내 읽었다. 장자이야기는 어려운 한자에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자취를 좇아 가려면 연필 꽉 쥐고 밑줄 긋고, 모르는 건 물음표를 그려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적어도 내 수순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은 그래도 명색이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나에게도 낯선 우리말들이 무척 많이 나와서 당혹스럽다. 대충 앞뒤 구절의 문맥적 의미를 살펴서 대강의 뜻이야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한 뜻을 짚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짧은 단문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칼럼은 읽는내내 사람을 긴장시키고 흥분시킨다.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고, 생각을 집중시키기를 요구한다.

   어떤 사람은 논리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유치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고, '일방적인 주장'만 강요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또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보다는 낱말이나 글자를 가져와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타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곧은 역사의식이 뚝뚝 묻어나는 글들을 읽으면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넌 어떻게 살고 있니?' 세상 어떤 것에도 주눅들지 않고, 해야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의 용기 앞에 나는 옷깃을 여미며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제대로 살고 있니? 손석춘의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언론개혁'을 위해 싸워온 사람인가를... 그의 글들에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는가를...

   예전에 그가 쓴 소설 '아름다운 집'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 그 소설을 읽기 전에 '아이~! 기자가 무슨 소설이야? 소설은 아무나 쓰는가 보지?' 이런 가소로운 생각을 했다가, 어쩌다가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 그 때의 짧았던 생각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집'도 멋진 소설이다. 그러나 '조/중/동'에서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없었다고 한다. 저간의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옹근 20년 동안의 기자생활 동안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올곧게 살아온 '손석춘'의 존재 자체가 무척 부담스러우리라는 사실만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제 곧 '손석춘'의 "혁명" 시리즈를 리스트로 만들까 한다. 여러 친구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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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9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1-19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nrim 2004-01-1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다닐 때, 민언련에서 하는 언론학교에 참석했다가 손석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답니다. (그때 신영복님의 특강도 들었었지요..) 그때 그 강의에 무척 감명받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니 손석춘님의 책은 읽어본게 몇 권 안되는군요. 신문읽기의 혁명도 개정판이 나왔던데... 시간을 내어서 한번 손석춘님의 책들을 쭈욱 읽어봐야겠어요.

느티나무 2004-01-1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집'이 제일 좋았습니다. 안 읽어 보셨다면 꼭 권해드립니다.

모래언덕 2004-01-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업무시작하기 전에 느티나무님께서 남겨주신글에 답글을 달다가 이벤트에 당첨되었답니다.
느티나무님과 관련되어 두번째~~ ★ 웬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집'과 '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는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옮겼고 '혁명' 시리즈 중에 느낌이 오는 책을 더 보야야 겠지만 며칠전에 또 사고를 쳐서 이 책들의 구입은 한달 후쯤이 될 것 같네요.
선생님 행복하고 기쁜 설날 보내세요.
 

함께 젖다 1

- 윤제림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이 아닌 것들과.

   오늘, 따뜻한 이곳에는 폭설 대신 빗방울만 약간 비쳤다. 그 시간에 나는 내원사 뜰앞을 서성거렸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천성산 자락에 싸여 다부지게 들어앉은 절의 품새가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그 절의 기운이 모두가 어리석다고,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싸움을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해오고 있는 저력이지 싶다. 빗방울 후둑거리는 절집을 바쁘게 오가는 저 비구니 스님들은 저렇게 가녀리고 앳되어 보이는데, 저들 중에 한 무리로 선방을 지키고 있는 지율스님은 어떤 에너지로 그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까?

   읽어본 시집도, 그래서 아는 시인도 몇 없지만, 내 마음에 좋아하는 시인과 시를 떠올리라면 이 분과 이 시를 빼놓을 수는 없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내원사 경내에서 나도 이 시와 함께 젖었다.


소/나/무

세월의, 역사의, 사랑의, 삶의 상처는 나에게 저리도 깊은 자국을 남기는가?

 


내원사 경내 입구의 오솔길

늘씬한 소나무들이 소담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길 옆에 늘어서 있다.

 

 


소박한 소원?

중창불사 기왓장에 써진 흰 이름들. 그 이름들의 소원이 비에 젖고 있다. '토요일에 학교 안 가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 앞에 교사인 나는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원사의 소리를 찍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풍경에서 참 맑은 소리가 내원사 위 하늘로, 산으로 퍼진다.

 

 


內院寺 전경

눈 덮인 천성산을 머리에 지고 수행하는 비구니들의 삶의 터전, 내원사 全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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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1-1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원사면... 통도사에서 양산 가는 길에 있는 그 내원사 맞지요??
중학교때 한번 소풍을 간 적이 있는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앞까지만 갔지, 경내에 들어가 본 적은 한번도 없군요;;;

느티나무 2004-01-1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울산이 고향이라고 하셨죠? ㅋ 그럼 통도사, 운문사, 표충사, 석남사, 내원사, 홍룡사... 영남알프스의 그 아름다운 절들을 아시겠네요. 그러고 보면 부산은 참 좋은 곳이란 느낌이 들어요. 바다도 있고, 경주도 가깝고, 지리산도 좋고, 영남알프스도 너무 좋으니까요.

nrim 2004-01-1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제 고향이 울산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언양이라고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답니다. 몇해전 울산광역시에 통합되었지만... 제가 살던 시절은 통합되기 전이라.. 울산이라고 말하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사람들에게 언양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울산이라고 말하고 난뒤.. 울산에서 언양이라고 덧붙이지요... 그러면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아.. 불고기 유명한 곳.. 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요.^^
영남알프스는 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는데.. 서울 올라와서 영남알프스 이야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지만...) 속 상해하기도 했었죠...
통도사의 어느 암자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본 해질 무렵의 풍경과 절에서 들려오던 종 울리는 소리.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기억이랍니다..

이로운삶 2004-01-1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몇년동안 부산에서 살았던 덕에 영남 알프스 일대는 거의 다 다녀 보았지요.
진달래, 철쭉이 산을 온통 물들이던 초봄의 내원사는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꽃들이 필 때 다시 가셔서 꼭 사진에 담아 오셔서 보여 주세요...^-^

느티나무 2004-01-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rim님은 언양이 고향이시군요. 언양은 별로 크지 않은 읍이었지요. 저야 이방인인 터미널 앞에 펼쳐진 시장을 보며 신기해 하고, 수많은 소불고기집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석남사나 갈 때나, 가지산 옆으로 난 도로(운문고개인가요?)를 따라 운문사로 넘어갈 때 늘 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군대 있을 때 고향이야기만 들어도 아릿했던 것 같아요.

느티나무 2004-01-1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로운삶님 반갑습니다. 방금 님의 서재 구경하고 왔어요. 초봄의 내원사를 기억하시는군요. 제가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꼭 봄에 다시 내원사를 다녀와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장미의 이름이 책 사는 데 계속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는 말씀에 웃음~! 저 역시(지금도) 그렇거든요. 페이퍼를 보니 빨리 사서 봐야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