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푸른숲, 2002

   우리가 지식인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이 대중들의 삶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공동체에서 지식인 대중에 관심을 가지면 그들의 일상적 삶을 관찰하게 된다. 그들의 삶이 어떤지 관심조차 없다가,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것을 잣대로 예를 들고 의견을 개진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관심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다.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관심(關心)이 있어야 관찰(觀察)이 따라온다. 즉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야' '성실하게 살펴보게' 된다. 이럴 때, 관찰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성실한 관찰은 반드시 사고를 자극한다. 즉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 예리한 철학자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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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2004년 2월 1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경주에 다녀왔다. 느긋하게 출발했으나 다행스럽게도 도로가 막히지 않아 1시간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쌈밥[대릉원주변에는 아주 유명한 쌈밥집이 많다]으로 점심을 먹었다. 반월성-계림(내물왕릉)-대릉원(미추왕릉,천마총)-선덕여왕릉-사천왕사지-신문왕릉-진평왕릉-황복사터3층석탑-황룡사터

   오늘은 시내 중심가에 흩어진 왕릉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왔는데, 사진과 느낌을 적어두고 역사적 사실을 찾아서 정리해 두고 싶다.


[13대 미추왕릉]

   미추왕릉은 대릉원 안에 있다. 대릉원 안에는 유명한 '천마총'도 있는데, '천마총'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미추왕릉은 담을 세워두고 문을 굳게 잠궈두어서 그런지, 둘러보려는 사람조차 없는 한적한 왕릉이다. 아마도 '무지덧널무덤'일 것 같은 이 릉은 다른 무덤들보다 조금 더 커보였다. 그러나 신라 초기답게 특별한 장식은 없고, 봉분만 둥그렇게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왕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그랬을까?

 


[17대 내물왕릉]

   김씨 성으로는 미추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내물왕. 대릉원을 지나 박물관쪽으로 가다 보면 첨성대가 나오는데, 첨성대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계림이 보인다. 내물왕릉은 계림 안에 있다. 계림 안의 숲은 여러가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물왕릉을 비추는 겨울 햇살이 따가웠다. 내물왕릉도 특별한 장식 없이 소박하게 꾸며져 있고, 봉분 아래에 드문드문 호석이 드러나 있는 것이 초기의 형식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26대 진평왕릉]

   참으로 소박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신라왕릉의 백미다. 진평왕은 재위기간이 54년이었으니 위세도 대단했겠지만, 아주 소박하고 단아한 무덤을 남겼을 뿐이다. 진평왕의 세 딸도 모두 유명한데 첫째딸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선덕여왕이다. 둘째딸은 뒷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의 어머니이다. 셋째딸은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훗날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화공주이다. 논두렁 한 가운데, 아무런 장식 없이 아담하게 서 있는 진평왕릉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27대 선덕여왕릉]

   선뎍여왕릉은 누에고치처럼 길쭉하게 생긴 낭산 남쪽에 있다. 낭산 아래는 그 옛날 신라의 수도, 경주 사람들의 베드타운이었을 배반들-왕굴을 세우려다 용이 발견되어 절로 바꾼 황룡사터가 있는 곳이다-이 펼쳐져 있다. 진평왕과 선덕여왕릉은 가까운 곳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한편, 선덕여왕릉 들어가는 길은 구불구불 자유롭게 자란 소나무들이 장관이다. 숲이 우거지니 당연히 새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하늘로 웃자란 뒤틀린 소나무들을 보니 세상 풍파의 흔적이 고스란히 읽힌다.

   선덕여왕릉은 자연석을 밑에 두르고 봉분을 세웠다. 초석들은 가지런하고, 봉분의 모양도 무척이나 단정하다. 낭산 제일 꼭대기에 있으니, 언제나 햇살이 가득하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봉분을 바라보고 있으니 속(俗)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

 


[31대 신문왕릉]

   늘씬한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신문왕릉. 선덕여왕릉과 신문왕릉은 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널찍한 터에 잘 가꾸어진 주변과 어울리게 신문왕릉은 화려함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자연석을 잘 다듬어서 호석을 두었으며, 이 호석을 받치기 위해서 장판석을 사용하고 있다. 터가 넓고, 평지라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찬찬히 봉분 주위를 둘러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아쉽게도 큰 나무가 몇 그루 밑둥이 잘려나가긴 했지만, 넉넉함이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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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1월이 후딱 지나가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랐던가! 드디어 1월이 가는구나.

   오늘은 내가 특기적성을 빙자한 보충수업을 끝내는 날, 그래서 나에게 진정한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다. 뭐 다른 직장인들은 하루 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방학 없이 살아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아, 군대 있을 땐 방학대신 휴가가 있었구나!- 나는 방학이 없는 1년은 죽을 것 같다. 며칠 동안 게으름을 피우며 살기는 힘들 것 같고, 여행 한 번 다녀오고 난 다음... 나머지 묵은 일들을 해치워야겠다.

   아무튼, 오늘은,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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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1-3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서 지금까지 방학 없이 살아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 아.. 너무 부러워요... ㅜㅜ
그러고보니 정말 1월이 다 갔군요... 얼릉 여름휴가나 와라;;;

비발~* 2004-01-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군대를...? 그럼 남자,,, 선생님? 암튼 여행 즐겁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느티나무 2004-01-3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그럼 제가 여자인줄...허걱! 당황스럽네요.
 

   제목에 혹해서 들어온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별내용 없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안 읽고 지금 돌아가셔도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설 전에 구입한 책 중에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었다. 금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진집인데, 사진이 너무 정감 있고, 책도 정말 예뻐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책을 묶은 안쪽을 '마감(?)'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특별한 방식에다가 책 표지는 책과 분리하면 그대로 포장지보다 튼튼한 종이 위에 '금산' 사람들이 사진이 찍혀 있는 신기한 책이 있다.

   그러나 그 책은 아쉽게도 파본이었다. 무엇이 문제냐 하면 그 책 231쪽에서 239쪽까지가 페이지 숫자만 있고, 글이나 사진이 하나도 없는 백지였다. 알라딘에 전화를 걸어 파본 교환을 요구했더니 흔쾌히 받아줬다. 보면 볼수록 갖고 싶은 책이라 더 아쉬움이 컸다. 교환할 책이니까 더 이상을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 내 방 구석에 챙겨두었었다.

   그리고 설이 있어서 오늘에야 새 책이 배달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쳐들고 보니, 어라? 또 파본이 난 책이었다. 그래서 알라딘에 전화할까 하다가, 출판사에 직접 물어보고-사실은 따져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출판사에 전화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파본된 책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더니-그래도 점잖게 얘기했기에 망정이지- 그 책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란다. 뒤에 읽어보면 설명도 나온다고 했다.

   책을 하나하나 뒤져서 그 여백에 대한 설명해 놓은 구절을 찾았다.

   "시골에서는 3,40대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금산도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들을 위해 빈자리를 마련해 놓는다. 어머니처럼 고향은 너그럽다."(281쪽)

   여러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알라딘, 도서출판 연장통, 무엇보다도 고향사람들을 위해 넉넉한 공간까지 마련해 둔-틀림없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셨을- 저자이자 사진작가인 '양해남'님... 모두에게 너그러운 이해를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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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1-3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이었군요... 갑자기 어떤 책인지 궁금해집니다.

병아리교사 2004-01-3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글은 제가 1,2,3학년을 따라 다니며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졸업하던 그 날-결코 올 것 같지 않았던 바로 그 날!- 제가 아이들에게 읽어준 '종례' 글입니다. 아직도 내 마음에 박혀 있는 그 아이들, 녀석들은 새까맣게 내 당부를 잊었겠지만 내 말보다도 씩씩하고 당당한 삶이 더욱 빛나게 살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부신 청년들!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우리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여러분들은 이 가사를 보면 노래의 가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학급회시간이나 조·종례시간에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준 노래 중에 하납니다. 우리는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배우기도 했고,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도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기억이 납니다. 제가 왜 여러분들에게 이런 '노래방에도 없는 노래'를 가르쳤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겐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혹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나쁜 시간이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그 기억의 한 자리를 제가 차지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지나오고 보니 여러분들과 함께 했던 지난 3년간의 시간들이 저에게는 무척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학교가 요구하는 여러분의 모습에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고민했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얻지 못해 실패로 끝난 학급활동 때문에 혼자 잠 못 들고 고민하기도 했던 날도 많았고, 그래도 또 다른 시도를 할 때는 새로운 설렘으로 무척 맘이 들뜨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호응에 크게 기뻐하고, 여러분의 서툰-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말에 쉽게 맘이 상하기도 하는, 여러분은 이런 저를 보고 '삐돌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쉽게 감추지 못 하는, 여러분을 너무 사랑한, 담임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과 함께 한 대부분의 시간은 제겐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고, 첫사랑의 열병처럼 여러분들의 알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져서 보낸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제게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준 여러분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젠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종례를 해야할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했던 저의 수많은 잔소리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진정으로 여러분의 맑은 눈빛을 사랑했고, 자기의 마음과는 다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여러분의 거친 말도 이해하고자 했던 이 담임이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더 배워야 합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마음만큼 행동도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도록 마음도 더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얽혀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이 불행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구조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공동체 정신이라고 제 믿음은 확고합니다. 내 주변의 작은 행복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노래에 나오는 '바위'처럼 '절망하지 않고 시련에도 꿋꿋하며 세상의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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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30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