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1,2,3학년을 따라 다니며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졸업하던 그 날-결코 올 것 같지 않았던 바로 그 날!- 제가 아이들에게 읽어준 '종례' 글입니다. 아직도 내 마음에 박혀 있는 그 아이들, 녀석들은 새까맣게 내 당부를 잊었겠지만 내 말보다도 씩씩하고 당당한 삶이 더욱 빛나게 살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부신 청년들!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우리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여러분들은 이 가사를 보면 노래의 가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학급회시간이나 조·종례시간에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준 노래 중에 하납니다. 우리는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배우기도 했고,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도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기억이 납니다. 제가 왜 여러분들에게 이런 '노래방에도 없는 노래'를 가르쳤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겐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혹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나쁜 시간이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그 기억의 한 자리를 제가 차지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지나오고 보니 여러분들과 함께 했던 지난 3년간의 시간들이 저에게는 무척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학교가 요구하는 여러분의 모습에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고민했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얻지 못해 실패로 끝난 학급활동 때문에 혼자 잠 못 들고 고민하기도 했던 날도 많았고, 그래도 또 다른 시도를 할 때는 새로운 설렘으로 무척 맘이 들뜨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호응에 크게 기뻐하고, 여러분의 서툰-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말에 쉽게 맘이 상하기도 하는, 여러분은 이런 저를 보고 '삐돌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쉽게 감추지 못 하는, 여러분을 너무 사랑한, 담임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과 함께 한 대부분의 시간은 제겐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고, 첫사랑의 열병처럼 여러분들의 알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져서 보낸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제게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준 여러분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젠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종례를 해야할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했던 저의 수많은 잔소리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진정으로 여러분의 맑은 눈빛을 사랑했고, 자기의 마음과는 다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여러분의 거친 말도 이해하고자 했던 이 담임이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더 배워야 합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마음만큼 행동도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도록 마음도 더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얽혀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이 불행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구조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공동체 정신이라고 제 믿음은 확고합니다. 내 주변의 작은 행복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노래에 나오는 '바위'처럼 '절망하지 않고 시련에도 꿋꿋하며 세상의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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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30 0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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