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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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도 하나도 낯설지 않고, 열심히 걷고 있는 데 새로운 풍경은 없고, 걷고 있다는 것이 '초라함'을 연상시키는 어느 도시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찬탄이 가득한 소개를 받고 간 어느 곳에서 별다른 감흥없이 돌아서던 기억이 있다. 낯선 도시에서 보고 싶은 것들을 다 못 보고 걷고 있던 거리가 갑갑해서는 내겐 왜 차가 없을까, 면허조차 못 땄을까, 자책하던 기억이 있다. 주로 서울에 대한 기억들로 채워진 거리 이야기는 우리 나라 어느 곳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뒤틀린 역사의 기억, 성장만을 최선으로 삼던 기억, 문화를 상품으로 평가하는 태도, 그 모든 것은 우리 사고방식에 녹아 있는 것처럼 거리에도 녹아 있다.

사람보다 차가, 빠른 것이 아름답고 튼튼한 것보다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보다 화려하고 비싼 게 더 중요하고, 욕 먹어 마땅하다던 어떤 사고방식은 그대로 집이 되고 거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함께 가는 것이다. 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자라는 것도. 살고 있는 우리가 사회가 성숙하지 않은데, 도시가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서로를 배려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사람들이 손잡는 아름다움을 모르는데, 거리에 그런 아름다움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팔려야 아름다운 거라고 비싸야 좋은 거라고 판단하는 가운데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또 모순이다.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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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학교 4 - 나는 그대 눈동자 속에 있으리 ㅣ 고양이 학교 1부 4
김진경 지음,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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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우리 가까이에서 마법을 부릴 만한 동물을 상상해보자. 요사를 부릴 만 하고, 인간에 대항할 만 하고, 아주 우리 가까이에 있는. 그렇다, 고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맥고나걸 여사가 고양이로 둔갑했을 것이가?

여우는 너무 멀고, 개는 너무 착한 이미지다. 왜 영화에서도 인간에 대항하는 고양이에 맞서는 개들의 무리가 그려진 적 있지 않은가. 사실, 개는 충직한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요사를 부린데도 악한 이미지를 부여하기가 힘들다. 뭐, 인간에 대항하는 것은 악이다,란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밤에 집 밖에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갓난 아기의 울음소리로 착각한 적 있고, 길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무섭고, 고양이를 안 그래도 '소름끼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더 실감나겠지만 더 무서워질 것이다.

초반에 해리 포터랑 비슷하군, 하면서 실망하던 마음이 잠깐 들었고, 너무 많이 설명한다는 아쉬움도 또 잠깐 들었다-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중국의 창조설화들을 알 것인가-. 고양이에 아주 많이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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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아나키즘
엠마 골드만 지음, 김시완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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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장점으로 비치는 것이 내게는 단점으로 보였다. 기대없이 읽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나키즘에 대한 나의 무지를 타파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골랐고, 나의 머리는 기존의 편견을 일정정도 학습하고 있었다. 나는 선언 이상을 원했으나, 그 이상을 얻지 못했고 칭찬 일색의 서평에 부담스러워한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신념, 새로운 공동체의 상이 구현되었기를 원했다. 상상력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는 선언 말고. 지금 지구상에서 맥없이 깨어진 평화라는 허상을, 자국민의 안전에 분노하여 자신이 행한 행위를 정당하다고 믿는 우습지만 어쩌지 못한 횡포를 당신의 입장에서는 어찌할 것인지 책에 묻고 있었나보다.

한없이 선량한 한 아나키스트의 저항에 동조하고 눈물짓는 헌사대신에, 그 저항의 바탕과 방향과 미래까지를 나는 원했다.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어디에 소용되는지 모를 그런 말들에 난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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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유미리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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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의 소설에 별로 감동받지 못한 네가 이 수필집을 산 것은, 먼저 읽은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가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상상을 하는, '비어있는 주머니가 속이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는지, 아이를 낳고도 그런 태도 여전한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다 읽은 지금은 그녀의 젊은 날 언제쯤과 어머니가 된 지금이 만나서 오래된 친구하나를 모두 기억해낸 기분이 되었다. 사람은 자라고, 변하고, 그러나 변하지 않는 부분 또 여전하고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실재보다 과장되게 자기자신을 '무책임하다', '대책없다'고 자책하고- 말미에 '임신과 출산, 간병과 양육의 와중에 소설과 이 책을 내고'라고 쓰여있는 대목에서 난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내 '큰일이다'그러고 있다.-, 아이에 대해 간절하면서도 후레이크와 군것질거리들로 연명하는 무심한 사람이다. 한 생명의 죽음에 직면하고 생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외로 낳기로 결심하는 모습이나, '공원데뷔'를 걱정하는 모습은 너무 그녀다워서 사실 웃음이 났다.

그런 담백한 고백들이 사실 너무 은밀해서는 꼭 내게만 하는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참 씩씩한 그녀가 -미혼모가 임산부 교실에 참석할 생각을 하거나, 관공서에서 화내는 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유사 가족을 구성하는 거나- 토로하는 걱정거리들은 참 살갑고, 내게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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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팰리스
폴 오스터 / 열린책들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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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오래 전 학생일 때 배운 근대소설의 결함- 유정이니 무정이니, 소설형식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나친 우연의 결합이라는.-이었다. 이 잘 짜여진 소설이 기대고 있는 이 놀라운 우연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하고 말이다. 내가 도달한 결론이란 건 인생은 어차피 우연의 연속, 소설이 우연에 기대고 있다면 이건 소설이 비추는 인생때문이지 소설의 미숙함이 아니다. 알지 못했으나, 만나게 된 세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한꺼번에 풀린, 게다가 너무 많이, 실타래에 잠깐 말을 잃기도 하고. 인생의 어딘가 내가 만든 인연, 또 다른 어느 지점에서 내게 나타나는 거라고 의미심장한 교훈을 취하려고도 하고. 이들 셋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습니다'로 끝낼 수 없는 출렁이고 복잡다단한 나머지 인생을 또 여전히 살아갈 거라고 상상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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