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진흙 ㅣ 창비청소년문학 71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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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야 읽었다. 남편이 딸 읽으라고 사준 책인데, 내내 뚱하다가, 읽기 시작한 이유는 작가가 구덩이의 루이스 쌔커였기 때문이다. 새벽에 깨어 책을 읽는데, 딸이 깨어 컴퓨터로 웹툰을 본다. 나는 책을 딸은 웹툰을 중계하면서 정말 재밌다고 보라고 한다.

 

읽으면서, 요며칠 회사 익명게시판에 불붙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논쟁이 생각났다. 어린이집에서부터 난폭했던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는 글이었다. 글의 시작이 그 아이 부모의 소속을 가까운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게 적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지, 알아볼까?'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에, 그 글에 달린 누군가의 '이게 초등학교 1학년 그 아이를 두고 회사게시판에서 할 짓이냐'라는 댓글에 공감했다. 그러나, 익명의 인터넷 공간의 말들이 수렴하는 방식 그대로 극단의 말들만이 살아남았다. 그 여덟살 어쩌면 부모에게 상처받아 또래를 괴롭힐 그 아이는, 이미 끝장나서,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중대 범죄자로 자랄 예정이고, 그렇게 자신의 아이가 상처받으면, 당장 상대아이의 부모에게 달려가 반쯤 죽여버리는 부모들이 추천을 받고, 이 방식도 똑같이 폭력적이라는 말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말이 되어 비추천이 가득찼다. 단 한 명의 어른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자신이 바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변할 수 있다. 싸움에서 피해자의 자리를 선점한 다음, 가해자를 징벌하는 데 총력을 모으자고 말하는 대신, 함께 아이를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 수 있을 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였다.  

 

채드는 마셜을 괴롭힌다. 채드는 가해자고, 마셜은 피해자다. 그렇지만, 마셜은 한 번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맞서지 못했고, 채드는 아버지에게 '너의 생일을 왜 우리가 축하해야 하지?'라는 답을 듣는 아이다. 두 아이는 모두 안타깝다. 자신을 괴롭혔다고 해서, 숲 속에 방치되어 있는 채드에 대해 말하지 않는 마셜은 또 그렇게 피해자지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삶은 한 단면을 끊어 낼 수도 없고, 그렇게 단순해지지도 않는다. 규칙들 속을 겨우 움직이는 타마라 덕분에, 사건들 가운데서 아이들은 친구가 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해결할 힘이 있고, 아이들의 세상에 어른들의 영향력은 정말이지 우!습!다!

이건 아이들만이 존재하는 세상, 루이스 쌔커의 이야기고, 아이도 어른도 실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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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2 - 가을.겨울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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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 갔다가, 책정리 중인 친구가 건넨 책이다. 읽으면서, 무언가 기시감을 느끼고, 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이야기를 안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내가 이 책을 먼저 읽었거나, 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는, 저자의 다른 책을 검색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저자의 다른 책이 99년 즈음에 다른 제목('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다')으로 번역되었다가 절판된 바로 이 책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이 책 구판이 서평이 너무 좋아서, 그 구판 서평을 모두 다 읽고는 중고 책방에서 1권은 결국 못 구하고 2권만 사서는 읽어야지,하고 있었던 책인 거다. 읽었는지는 아, 정말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내내, 나는 이 책이 미국이 추억하는 어떤 시대-카에서 추억하던 쇠락한 작은 마을,이나 캐빈은 열두살,에서의 그런 마을, 이티를 쫓아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런 마을이 존재하는-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기시감이 너무 커서,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열두살 소년의 이 꽉 짜여진 좋은 이야기가 조금은 전형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99년의 소설이고, 베스트셀러다 보니, 어떤 영화나 드라마로 변주되었을 가능성도 물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그러니까, 아직도 내가 이 책을 이미 읽은 서평들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지, 2권밖에 안 샀으면서, 그 책을 읽었던 건지, 아니면 영화나 다른 매체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부모라서 책 속의 소년의 마을이나, 소년의 부모가 보여주는-말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소년이 자라는 데 필요한 것들,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는 소년을 믿어주는 부모,를 본다. 무언가 밖에 큰 권위를 구하지 않는 작은 마을, 소년이 경험하게 되는 작은 세계 안에서 용기를 보여주는 부모,에 대해서 생각한다. 재미있다. 

 

참, 이건, 아버지와 아들, 결국 소년과 소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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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쓰레기다 - 열심히 노력하는 당신이 항상 실패하는 이유
스콧 애덤스 지음, 고유라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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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를 정부가 드라이브하면서, 사내 익명게시판에서 논쟁이 붙어서,  

이 책에서 읽은 대목이 떠올랐다.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이니 책속의 이야기는 조직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성공을 위해 열정 대신 습관(저자의 말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목표 체중 대신 매일 한시간 운동같은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더하여 에너지 투입의 우선순위와 긍정적인 선순환에 대하여 말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 우선순위를 두고 귀찮은 일들은 고정시켜도 괜찮다고. 성공하면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이런 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하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선순환을 만들라고 하는 거다. 

개인에 대한 말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비약이 심하고 결국 조직에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연결시킨다.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퇴출제를 말할 때 언제나 월급도둑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걸러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이런 식인 거지. 우리는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선택해야 하는 거라고. 그런 제도 안에서는 그런 식의 일이 생긴다. 게다가 그런 평가-퇴출까지도 가능한- 안에서는 피평가자 뿐 아니라 평가자도 괴롭다. 내가 누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는 기쁘지만, 누가 놀고 있나,를 감시해야 할 때는 괴로운 거 아닌가. 긍정적인 에너지,들로 고양시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게 사람이고 조직인데, 부정적인 에너지,들로 고양시키는 방식인 거다. 저성과자퇴출제는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성과연봉제만 시행되는 조직에서도 부정적인 에너지는 차고 넘친다. 왜 내가 저사람보다 평가가 나쁜지에 대한 억울함같은 것들, 함께 팀워크를 발휘하자면서, 알고 보니 차별했다는 배신감도. 


그래서,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려고. 월급이나 연봉을 기계적으로 고정해놓은 회사나, 전 직원  연봉을 통일한 회사가 등장하는 거다. 


퇴직할 때까지 회사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저자의 삶에 삐딱해지지만, '성공'을 자신의 삶에 만족할 만한 상태라고 정의하고-그런 면에서 나는 뭐, 성공했지- 거기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습관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두 공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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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등급 국민 - 우리시대 강도 만난 사람들
김철호.임태영.김옥연 지음 / 대장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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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를 볼 때 들던 그 위태로운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버나드 콘웰의 아더왕연대기에서 결국은 기독교로 개종한 화자가 개종 전에 기독교를 묘사했던 게 다시 생각난다. 

인간인 나는, 나면서부터 가지는 감각 그대로 내가 혼자서 독립적으로 설 수 있기를 최소한 나 자신만은 그래도 보호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문명 안에서 약한 존재임을 그대로 또 자각하고 만다. 


종교적 언어로 묘사하는 활동은 지나치게 시혜적이고, 피해자의 증언은 그러니까 지나치게 비굴하다. 언론과 여론에 난도질당하는 피해자의 위치에서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방어적인 태도라 감안해서 듣는다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파산과 면책권에 대해 조언하는 단체의 태도는 지나치게 시혜적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차라리, 욕을 하라고,라는 심정이 되는 거다. 

아 썅, 내가 백만원을 빌려서, 이자만 천만원을 갚았는데, 파산 면책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욕을 해줬으면 하고 바랐던 거다. 그래, 내가 그 조건 알고도 빌린다고 쓰긴 썼어, 그래, 내가 그걸 갚을 수 있을 줄 알고 그러기는 했어. 그래 그런데, 내가 그걸 갚다가 이 지경이 되었으면, 그래 네가 심판이라며, 그 종이쪼가리가 중요해, 내가 중요해,라고 차라리 따졌으면 하고 바라는 거다. 

'맘몬,이니 희년이니' 말고. 목숨이 중요해, 종이쪼가리가 중요해,라고.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앞으로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말고, 그 정도 뜯어먹었으면 떨어지라고, 라고. 이 상황에서 그래도 빚을 갚으라는 그래 너 법원, 정부, 언론,은 제 정신인 거냐고. 

이 책 대신, 화차를 읽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하겠다.  

자기 자신을 먼저 보호하는 강경한 태도,를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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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양장본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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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 함께 공부하던 모임에서 아는 언니가 자살에 대해 '모두 한 번쯤 생각해봤잖아'라고 당연한 듯 말해서 놀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 자리에서 나는 안 해봤어,라고 말하는 게 무언가 멋대가리 없어 보이는 거 같아서 그런 적 없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들어 넘겼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아이가 '살기 싫어하는' 거다. 살면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다치고 아플 수도 있지만, 살기 싫다고 하면, 나는 아이에게 무슨 이유로 살라고 설득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내 삶에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을 알기 때문에, 아이의 삶을 쥐고 흔드는 부모들을 보면, '너 때문에 내가 살고' '너 잘 되라고' 그런다는 부모들을 보면, 아, 무섭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문명인으로 살면서, 내 삶의 주인을 온전히 자기자신이라고 느끼기는 아주 힘들다. 그래서, 책 속의 피다한 부족의 삶은 어쩌면 이상적이다. 


피다한 부족은 아무도 때리지 않는다. 옳은 것에 대한 강박도 죄책감도 금기도 없는 부족 안에서 젖을 뗀 아이는 어른과 똑같이 존중받는다. 아이에게만 존재하는 금기란 없다. 어른이 겪어야 하는 위험이라면, 아이도 겪어야 한다고, 피다한 부족의 어른은 아이에게 술도 담배도 준다. 무엇도 쌓아두지 않는 사람들은 삶에 결핍을 느끼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미안하다는, 고맙다는 말도 없고, 그저 삶의 어떤 순간 다시 되갚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자가 피다한 부족에게 선교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사-가난한 노동자 집안, 어머니의 자살 같은 것-를 증언할 때, 자신의 불행을 신이 어떻게 개선했는지 설명하는 대목에 부족민이 웃는 이유를 어쩌면 알겠더라. 부족민의 눈에, 매일 매일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살하는 문명인'은 우스울 거다. '왜? 자비로운 자연이 너만 죽이지 않을까봐, 스스로를 죽여?'라는 웃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는 자체로 받아들이고-창조신화가 없다고, '누군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단다-, 본 것만 믿는 이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단순성이 삶을 오히려 살 만하게 하는 거라는 생각도 한다. 

아이들과 있으면서도 이야기책을 읽는 나는, 피다한 부족의 만족,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삶,도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지도 듣지도 않는데도, 직접 경험한 이야기만으로, 꿈꾼 이야기만으로,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만드는 말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그 삶이 정말이지 꿈,같다. 


안온한 문명 안에서 자라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불만에 가득찬, 아이를 때리는 기독교도,가 되고 싶은 부족민은 없었고, 편애하지 않는 자연 안에서 서로에게 관대한, 삶에 만족하는 부족민을 보고 저자는 종교를 버린다. 

 

배울 수 없는 나면서부터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삶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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