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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양장본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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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교에 다닐 때, 함께 공부하던 모임에서 아는 언니가 자살에 대해 '모두 한 번쯤 생각해봤잖아'라고 당연한 듯 말해서 놀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 자리에서 나는 안 해봤어,라고 말하는 게 무언가 멋대가리 없어 보이는 거 같아서 그런 적 없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들어 넘겼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아이가 '살기 싫어하는' 거다. 살면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다치고 아플 수도 있지만, 살기 싫다고 하면, 나는 아이에게 무슨 이유로 살라고 설득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내 삶에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을 알기 때문에, 아이의 삶을 쥐고 흔드는 부모들을 보면, '너 때문에 내가 살고' '너 잘 되라고' 그런다는 부모들을 보면, 아, 무섭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문명인으로 살면서, 내 삶의 주인을 온전히 자기자신이라고 느끼기는 아주 힘들다. 그래서, 책 속의 피다한 부족의 삶은 어쩌면 이상적이다.
피다한 부족은 아무도 때리지 않는다. 옳은 것에 대한 강박도 죄책감도 금기도 없는 부족 안에서 젖을 뗀 아이는 어른과 똑같이 존중받는다. 아이에게만 존재하는 금기란 없다. 어른이 겪어야 하는 위험이라면, 아이도 겪어야 한다고, 피다한 부족의 어른은 아이에게 술도 담배도 준다. 무엇도 쌓아두지 않는 사람들은 삶에 결핍을 느끼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미안하다는, 고맙다는 말도 없고, 그저 삶의 어떤 순간 다시 되갚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자가 피다한 부족에게 선교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사-가난한 노동자 집안, 어머니의 자살 같은 것-를 증언할 때, 자신의 불행을 신이 어떻게 개선했는지 설명하는 대목에 부족민이 웃는 이유를 어쩌면 알겠더라. 부족민의 눈에, 매일 매일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살하는 문명인'은 우스울 거다. '왜? 자비로운 자연이 너만 죽이지 않을까봐, 스스로를 죽여?'라는 웃음이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는 자체로 받아들이고-창조신화가 없다고, '누군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단다-, 본 것만 믿는 이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단순성이 삶을 오히려 살 만하게 하는 거라는 생각도 한다.
아이들과 있으면서도 이야기책을 읽는 나는, 피다한 부족의 만족,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삶,도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지도 듣지도 않는데도, 직접 경험한 이야기만으로, 꿈꾼 이야기만으로,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만드는 말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그 삶이 정말이지 꿈,같다.
안온한 문명 안에서 자라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불만에 가득찬, 아이를 때리는 기독교도,가 되고 싶은 부족민은 없었고, 편애하지 않는 자연 안에서 서로에게 관대한, 삶에 만족하는 부족민을 보고 저자는 종교를 버린다.
배울 수 없는 나면서부터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삶을 지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