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불편한 민낯
일의 발견
조안 B. 시울라 지음, 안재진 옮김 / 다우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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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문은 거기에 가 닿게 마련이다. 

일과 삶은 분리하기 어렵다. 

가족의 빨래를 돌리고 밥을 만드는 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삶을 꾸리고 있는가. 

 

먼댓글 링크의 밑줄긋기가 나의 고민들과 닿아 있어서, 절판된 책을 구해 읽었다. 막 구했을 때는 화다닥 읽어낼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양의 기독교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한참이다. 기독교가 규범을 형성하는 중세 교회에서 창녀가 장인조합처럼 스테인드글라스를 기부하려 하는 에피소드는 신기했다. 장인이 아닌 급여생활자,를 타인의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에 대해 가지는 종교적 죄책감같은 것에 대한 묘사를 읽었다. 그렇지만, 현대로 넘어가면, 빠르게 읽어낼 수 있다. 미국의 경영학책이 빠르게 수입되는 나라에서, 직원들에게 으랏차차 교육같은 걸 시키는, 온갖 뒤죽박죽 리더십이 뒤섞인, 결국 배신하는 기업의 실상을 느끼고 있으니까.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시간을 파는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원자력에 대해 말하고 싶은 나는 나의 일 때문인지 나의 믿음 때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운이 좋게도 IMF 눈 앞에 취업을 해서 내 뒤로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이십년이 되어가고,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그런데도 여전히 일할 수 있으니, 일도 회사도 고맙다. 

그런데도, '회사가 어려워 지난 한 달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설명하던 관리본부장이나, 가까운 장들이 자신의 먹는 밥이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모두 회사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IMF를 앞두고 같이 입사한 동기가 '이런 세상에 잘리지 않은 사람은 한번도 휴가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회사 밖의 삶이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이런 두려움에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나름 취약한 지위라서 회사가 정말 나를 원한다는 자신만만함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도 따라붙는다. 

끊임없이 배신하면서, 헌신을 요구하는 거대한 회사라는 조직 앞에서, 조직에 속한 나는 내 안의 균형조차 잡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모호하고, 헌신하기 어려운 채로, 기묘하게 조직 안에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존재할 생각이다. 역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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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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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은 여자였을 때,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에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을 거다. 

세상의 부조리함이나, 세상의 악함에 내 책임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가끔 젊은 내가 무슨 말을 했었던지 다 늦게 후회한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며, 나의 선택들이 가끔은 더 나쁜 세상에 일조했다는 걸 안다. 


소설은, 대개 젊은 여자가 화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력하고, 무해하고, 무책임하다. 

대개는 피해자고, 가끔은 가해자면서도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선량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 사람, 관계를 악착같이 붙들지 않는 사람, 그저 먼 과거로 추억하는 사람. 

관계를 바로잡기보다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 사람의 무해함이나 책임이 없다는 자기변명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배경이 외국이거나, 외국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내가 가지는 2,30대 젊은 여성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나보다, 세계화된 세대라는 생각도 하지만, 역시 촌년인 나는 먼 곳을 선망하는 마음은 현재, 이곳의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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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516호 : 2017.08.05
시사IN 편집부 지음 / 참언론(잡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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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들은 두렵다. 

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격렬한 반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이게 그럴만한 일인가, 생각했다. 


낯선 기술이 두렵지 않으려면, 그 기술을 인지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많던가(자동차나 비행기처럼), 그 기술 자체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던가,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원자력발전소 안에서도, 실제 원자력,이라 부를 만한 것, 혹은 방사선에 관해 오해없이 이해하는 사람들은 한 줌이 안 된다. 이해조차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 무서운 거야? 뭐, 그래도 편리하니까 쓰겠어, 라고 생각할 만큼, 인지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원자력은 에너지 밀도가 높다.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것 때문에 실제 이해하거나 종사하는 사람이 작다. 게다가, 그 최종 산물은 아무런 구분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화력이나 수력이 전통적이고, 가스가 집집마다 요리에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원자력은 익숙해질 수가 없는 에너지원이다.  

원자력이 익숙해지는 방법은, 양동이원자로-정말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신문같은 데서 양동이크기에 모든 기능을 구현하고, 오랜 기간 전력을 생산하고, 생산이 끝나면 그대로 파묻으면 된다고 한, 배터리 같은-같은 걸 집집마다 구비하는 정도는 되어야 익숙해지려나, 싶은 생각도 한다. 지금 신고리 5,6이 오랜 숙의를 거쳐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감소로 돌아서야 할 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원자로나, 발전소를 중지하고 해체하더라도, 연료봉은 거기 두지 뭐,라고 쉽게 생각하고 마는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하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곁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이번호 시사인,은 조선업 특집이다. 그런데, 확 펼쳐지는 사진 한 장이 걸려서 심난한 거다. 

먼 바다 뒤로 송전철탑과 원자로 돔이 흐릿한 배경으로 잡히는 바다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사진이다. '"니 원전 마피아라 카는 거 아나?"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주변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곳 앞바다에서 여름을 난다. 아이들은 인공 조형물인 원전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어제가 그랬고, 오늘이 그렇듯, 내일도 원전은 가동되는 줄 알고 자란다. 고리 원전 1호기가 가동을 멈췄다. 새 원전 공사도 일시 중단되었다. 아이들에게 진짜 안전한 자연을 돌려줄 날은 언제일까?'가 사진에 달린 글이다.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고 쓰여진 글이다. 

탈원전을 반대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팽개쳐서 그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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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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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바로 입사했다. 1년, 3년, 그 모든 직장인이 심난해 한다는 때에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만두고 싶은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경제적 독립말고 다른 걸 내가 회사에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또, 어디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여기 존재하지 않는 걸 다른 곳에서 찾지 않는 태도도, 여전히 회사 밖 친구들과 꾸리는 모임과, 취미로라도 쓸 수 있는 글이 있었다. 

누운 배는 회사의 이야기다. 사람이 모여서, 일을 도모하는 조직 내부에서 사람이 느끼는 이야기.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회사의 위계대로 또 평판이 갈리는 가장 말단의 이야기. 어쩌면 배가 눕고, 책임을 이리도 저리도 밀어내는 조직의 모습은 그래, 그런 모습을 나도 알지,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중반 이후, 평가지표에 대한 이야기나, 공정률이나 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가 어쩌면 이상적인 리더로 그리려고 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의 묘사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생각했다. 섬김의 리더십처럼, 리더십을 묘사하기 위해, 소설의 얼개를 쓰는 일과 이 소설은 얼마나 다른 질문을 가지고 있나, 이런 생각을 했다. 자기 삶의 어떤 부분, 살면서 느끼는 불일치, 지금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인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소설 속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준 이 결과 다음에 작가는 어떤 소설을 또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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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513호 : 2017.07.15
시사IN 편집부 지음 / 참언론(잡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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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말해야 하나, 싶다. 

노동조합은 이사회를 저지한다고 회의장을 막아섰다. 

그렇다. 내가 가진 노조는 성과연봉제를 통과시키는 이사회를 저지하려고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을 결정하는 이사회에는 비상을 선포하고 모든 노동조합 간부를 소집하고 응하지 않을 시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대의원대회에서 '시민으로서 생각해보자'나 '시민을 설득할 명분을 논의해보자'는 수준의 말을 동지의 일자리를 내팽개치는 파렴치한의 말로 중계하고 축출하려 든다. 결국 나의 노동조합이니, 시민들의 눈에는 나의 말로 보일 것이다. 신고리 5,6 중단을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바라보고 저항하는 노동자, 말이다. 


나는, 원자력에 대한 공포가 과장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원자력의 기여가 분명히 있으며, 에너지 안보를 정치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더하여, 나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전환을 바라고, 새로 짓기보다는 운영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선호한다. 고리 1호기의 중지 결정이 그래서 아쉽다. 신규 허가를 기대하고 돈푼깨나 있는 지역의 명망가들이 빈 땅에 빈 집을 마구 짓는 것을 보아 온 처지라, 땅조차 사놓지 않은 공사는 안 해도 된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신고리 5,6은 그런가,라는 생각을 한다. 

매몰비용을 감수할 만큼, 공포는 합리적인가. 

이게 그렇게 긴급한 문제인가. 

숙의민주주의는 잘 작동할 것인가.

도대체, 누가 시민배심원단이 될 것인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원자력노동자가 되어, 이승만의 선견지명과 박정희의 추진력을 그리워하는 선배들 가운데서 일했다. 과학은 어쩌면 그런 식으로 보수적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에어컨을 팡팡 트는 싱가포르를 들어, 전기를 마구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복지라는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가치의 문제로 끌어올린 다음에 우리는 상대를 비난하는 것 말고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내가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어쩌면 무지의 산물이 아닌가. 그저 과거를 통해 추측하면서, 지금까지 이만큼 무탈하게 운영하고 있으니, 이 정도로는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특별히 가혹하다 할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마주할 때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는 게 아닌가요,라고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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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7-07-14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뤈자력은 두렵습니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전기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더 오래된 미래를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요.

별족 2017-07-14 10:30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기 때문에, 지금의 결단이 심난한 게 있는 거 같아요. 대부분은 무심할 테고 무심한 많은 사람들은 그저 시끄럽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현대인은 안전하고 편리하길 바라지만, 그런 게 없다는 걸 또 아니까, 원자력은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