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가 기억에 남아서, 게다가 너무 개인적인 거 같아서 그러나 저러나 짧은데도 서평에는 못 쓰고


1. 랑랑별 때때롱

외계인-다른 별의 다른 존재니 외계인이 맞는 말일 텐데, 동화적인 세계속이라 그저 사람이다. 먼 별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동화인데, 나는 매 끼니 같은 걸 먹는 이 사람들의 식탁 묘사에, 아 작가는 매 끼니 고민하는 수고를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고마워했다. 

정말 밥하는 게 너무 힘든 날들이 있었다. 

먹을 게 없다며 밥상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도 남편도 미운 날들에, 가난하여 단촐한 매 끼니 같은 식사에 대한 조금은 장황한 책 속의 묘사가 고마웠다. 





2, 쿠쿠스 콜링

여기서 기억에 남는 건 택시를 탈 수 없어서 걸어가는 묘사. 주머니에 남은 돈과 남은 거리를 한참을 계산하는 가난한 탐정의 묘사, 였다. 

사람은 참 신기하지, 주머니에 돈이 있고, 걸어갈 때는 그런 마음이 안 되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걸어갈 때는 다 나를 보는 것처럼 비참한 심정이 되는 게 왜 그런 걸까. 가난한 탐정이 주머니에 돈을 셈하면서 걸어가는 가난의 묘사가 꽤나 길었어서, 그 묘사가 꽤나 생생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다. 


3. 삼체

면벽자인 중국인에게 고용된 중국의 군인이 서양인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서양인은 이유를 다 알아야 하나? 나는 군인이고 시키는 일을 하는 거지. 왜 시키는지 알 필요는 없어. 뭐 이런 대사였는데, 내가 그 서양인처럼 이유를 알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서 기억에 남았다. 

복종에 대해 생각했던가. 가끔 이유를 알지 못하고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알고 한다는 게 인간에게는 오만한 일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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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삶
박진성 지음 / B612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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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인의 산문집이다. 

가끔 산문인가 싶게 짧은 글은 시인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 드러나는 사람이다. 드러나는 사람이라서, 공격에 노출된다. 

시인은 문학계 미투의 와중에 지면을 잃었다. SNS의 거짓 증언이 자신을 지목했고, 신문지면에 기사로 나가서는 출간예정의 시집들이 나오지 못했다. 3년 넘게 법정싸움을 하고도, 신문에 기사를 쓴 기자는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무고를 확인하고, 법적으로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출판사의 지면을 얻을 수 없던 시인은 텀블벅 후원을 통해 자신의 책을 냈다.

살아서, 살아 남아서 글을 써 주는 게 고마워서 책을 사서 읽었다. 


쉽게 죽음을 말하는 세상 가운데, 살아남았다. 


너무 드러내는 세상 가운데, 자아가 가득 찬 세상 가운데, 커다란 어둠을 지나오고 나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참으면서 쓴 글인지 느껴졌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나는 당신의 목적지를 모르고 당신은 나의 슬픔을 모른다.
몰라도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 P85

자아는 세상의 중심을 자처할 ‘때‘ 가증스럽다.
사실, 겸손에는 자기모욕이 없다. 심리적인 자기모욕이든 사회적인 자기모욕이든 그런 것은 겸손과 무관하다. 겸손은 그저 타자가 가장 형편없는 인간일지라도 그에게 아직도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섬세한 자각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오늘날 ‘드러내지 않기‘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의 중추는 - 아직은 그 경험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 자기증오나 자기에 대한 염려와는 무관하다. 그 중추는 순전히 타자들에게로, 대타자에게로, 피조물들에게로, 세계로 향해 있다
-피에르 자위[드러내지 않기] 중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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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인사합니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 이브닝' 영화의 마지막 대사라는데, 뭔지 아냐고 딸이 물었다. 알 것 같은데, 모르겠더라.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이다. 과장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간 짐 캐리가 바다인 줄 알았던 물에 들어가 하늘인 줄 알았던 벽으로 난 작은 문을 열면서 혹은 열기 전에 하는 말이다. 전 세계에 그가 중계되고 있고, 그는 웃으면서 작별인사한다. 숨기 위해서. 

드러낸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중이다. 드러낼 수 있으려면 권력이 있어야 해, 와 그렇다고 해도 드러낸다고 해서 권력이 있다는 건 아니야. 드러내지 말라,는 말은 억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말이기도 해. 숨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권력이기는 하지. 

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겁먹었다는 걸 들키면 안 돼'라고 딸에게 말한다. 목줄이 풀려 달려오는 하얀 개를 보고 금방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은 어린 딸에게, 지금은 안 될 거 같아도 겁먹은 거 들키면 안 되,라고 말해준다. 네가 겁 먹은 걸 알아차리는 순간, 상대는 달라져. 네 감정이 전해지거든. 처음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겁먹지 않은 걸 연기한 거였어도, 조금 더 그러다보면 정말 겁나지 않을 수도 있어. 사람은 약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해서 나보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괴롭히기도 해. 들키지 마, 너의 약함을. 그러니까 너무 드러내지 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드러내. 괜찮아. 너 자신을 보호해. 연기하라는 말처럼 들릴까. 그런 의미는 아닌데.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볼 수 있을 때 가끔 본다. 스테이지와 쉐도우, 드러나는 삶과 숨는 삶. 무언가 SNS시대의 은유처럼 보인다. SNS를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나는 단오처럼 스테이지와 쉐도우가 저렇게까지 다른 삶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여주다를 짝사랑하는 서브남주처럼 '왜 나는 쉐도우에서도 설정값을 못 벗어나지'가 차라리 좋다. 그 간극을 줄여서, 결국 스테이지를 바꾸는 것이, 단오의 목표라는 것도 안다. 지난 목요일의 단오는 심장병으로 결국 죽게 되는 자신의 스테이지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쉐도우의 마음을 좀 더 누리기로 하루를 잊지 않고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스테이지에서 연기할 수밖에 없더라도,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쉐도우를 좀 더 살기로 했다. 결국 죽는 운명이니 비극이고, 그게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 게 모든 인간이다. 스테이지와 쉐도우를 가깝도록 해야, 삶이 살 만 해진다. 마음이 버텨주고 시간을 지나가게 할 수 있다. 벌어진 스테이지와 쉐도우 사이에서 상처는 벌어져 피가 흐르고, 죽음을 당기고 마음은 무너진다.

SNS를 쓰는 누구나에게, 스테이지와 쉐도우가 가깝도록, 너무 과한 연기는 하지 말라고, 아무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니까, 더 크게 웃지 않아도 되고, 더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더 크게 화내지 않아도 되고, 더 크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만, 오직 나만,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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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SF 럭키팩 7 : 걸 크러쉬 - SciFan 제119권 SciFan 119
폴라인 애쉬웰 외 / 위즈덤커넥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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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양의 여성들이 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다. 

여성이 상상하는 미래가 궁금해서 함 읽어볼까, 이북으로 빌려 읽었는데, 실망스러웠다.  

우선, 오타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야기도, 식민지 기억이 있는 동양여성에게는 다 조금씩 껄끄러웠다. 그냥 다 재밌자고 하는 이야기야, 별 의미는 없어,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굳이 하나쯤 나의 어떤 고민과 닿았다면 (스크린사회)를 꼽겠지만, 이야기는 그저 그랬다. 스마트폰을 오래보는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가 가지는 고민이 티비속의 사람과만 사랑하는 미래사회로 구현되었구나 싶었는데, 설정만 있고 뭐야, 싶었다. 

첫 이야기가 우주문화 공학,이라서 전체의 인상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우주문화공학),(사소한 마법하나)(운명작업주식회사)는 기술을 이용해서, 과거나 동시대의 다른 별의 역사를 바꾸겠다고 나선다. 터미네이터를 좋아했으니, 나도 이야기가 괜찮다면 그 꼬인 루프들을 속아줄 수도 있으련만, 속아주고 싶지 않았다. 절박함이 없는 오락이나 대학생 조별과제 같은 묘사(우주문화공학), 서양의 문화에 대한 소양으로 채운 어지러운 묘사나(사소한 마법하나), 시간여행을 통해 수정하는 자잘한 과거에 대한 메리포핀스같은 묘사나(운명주식회사) 왜 속아줘야 하나 싶었다. 

(사라진 고양이들의 행성)은 고양이종족이 결국 종으로서 인정받는 이야기인데, 것도 식민지 조선을 환기시켰다. 


(우주문화공학) 먼 별의 대학생을 모아 다른 별에 거짓 적을 연기해서 별의 전쟁을 막고 싶어한다. 참 내, 오지랖도, 거대하구나, 싶다.그런 반갑지 않은 오지랖을 무척이나 사명감있게 실행하려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는 것도 하품나오는 일인데, 그 와중에 결말은 로맨스물과 뭐가 달라 싶게 생뚱맞았다. 

(사소한 마법 하나) 제정신일 수 없었겠지만, 확실히 제 정신은 아닌 여성이 화자인 두 번째 소설도 굉장히 읽기 힘들었다. 어지러운 극단의 옷방을 중심으로 연극을 공연하는데, 실상은 시간여행을 하면서 역사를 바꾸는 사람들이었더라,는 게 기둥 줄거리였다. 거의 막판에 설정이 마구 풀리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 설정을 위해 배치한 연극은 내게 익숙한 문화가 아니라서, 먼 미래에도 유사한 형태의 공연예술이 존재하리라는 확신이 없다. 1900년대의 극단의 형식이나 모양이 1800년대나, 2100년에나 이질감없이 섞일 수 있을까, 의심한다. 세익스피어,는 가능하려나?


좋은 이야기는 쉽지 않은 거구나, 라고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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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일하고 크게 어필하고 싶을 때 읽는 책 - 다 잘하고도 한소리 듣는 직장인을 위한 커리어 매뉴얼
김희양 지음 / 팜파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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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자마자 취직했다. 잔뜩 경계하는 태도로 들어간 회사에 같은 직군 동기 중 여자는 나 뿐이었다. 여자에게만 커피타라고 시킨다는 불퉁불퉁한 남녀차별에 대한 말들을 알고 있어서, 비약이 큰 걱정들로 다른 사람의 친절을 의심하면서 또 나의 친절을 감추면서 고슴도치처럼 지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텨서 스무해를 넘겼다. 스무해를 넘긴 지금 젊은 직원들의 태도들을 바로잡아주고 싶은 순간들을 만난다. 

이 책은 고슴도치같던 신입이던 나였어도 과연 순순히 들었을까, 싶은 책 한 권의 잔소리다. 

남자나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 워라밸을 원하지만, 다시 열정을 바칠 일을 또 원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 가깝기를 원하지만, 다시 적당한 거리를 원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끓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직장에 대한 말들이다. 아부를 하라는 말도, 거짓을 연기하라는 말도 아니다. 내가 좋아할 태도로 상대를 대하라는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건 다르지 않다. 직장 내 위계나 서열같은 게 눈을 가려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친절을 연습하는 것은, 직장이 아니더라도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역시 쉽지는 않다. 내가 지금 부드럽게 달라졌다면, 그 쌀쌀맞던 경계의 날들이 다 지나고, 주변을 둘러싼 긴장감도 풀어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지.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태도를 배우며 균형을 잡고 시간을 버틴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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