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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삶
박진성 지음 / B612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시인의 산문집이다.
가끔 산문인가 싶게 짧은 글은 시인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 드러나는 사람이다. 드러나는 사람이라서, 공격에 노출된다.
시인은 문학계 미투의 와중에 지면을 잃었다. SNS의 거짓 증언이 자신을 지목했고, 신문지면에 기사로 나가서는 출간예정의 시집들이 나오지 못했다. 3년 넘게 법정싸움을 하고도, 신문에 기사를 쓴 기자는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무고를 확인하고, 법적으로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출판사의 지면을 얻을 수 없던 시인은 텀블벅 후원을 통해 자신의 책을 냈다.
살아서, 살아 남아서 글을 써 주는 게 고마워서 책을 사서 읽었다.
쉽게 죽음을 말하는 세상 가운데, 살아남았다.
너무 드러내는 세상 가운데, 자아가 가득 찬 세상 가운데, 커다란 어둠을 지나오고 나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참으면서 쓴 글인지 느껴졌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나는 당신의 목적지를 모르고 당신은 나의 슬픔을 모른다. 몰라도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 P85
자아는 세상의 중심을 자처할 ‘때‘ 가증스럽다. 사실, 겸손에는 자기모욕이 없다. 심리적인 자기모욕이든 사회적인 자기모욕이든 그런 것은 겸손과 무관하다. 겸손은 그저 타자가 가장 형편없는 인간일지라도 그에게 아직도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섬세한 자각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오늘날 ‘드러내지 않기‘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의 중추는 - 아직은 그 경험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 자기증오나 자기에 대한 염려와는 무관하다. 그 중추는 순전히 타자들에게로, 대타자에게로, 피조물들에게로, 세계로 향해 있다 -피에르 자위[드러내지 않기] 중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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