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정희진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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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경우는 산처럼 많습니다.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기복이 심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나옵니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에도 알고 보니 참 가까이서 벌어진 일에도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랬습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지'
그런데, 그런 상황을 방조하는 게 '맞아도 싸, 그런 000'이라고 쉽사리 뱉었던 어떤 상황의 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압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데, 그토록 많은 이유를 다는 게 여지껏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부끄럽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선생님의 옷차림이 어색하다고, '어머, 사모님은 뭐하나 몰라'했던 고등학생이던 내가 떠올라 또 얼굴이 붉어집니다.

폭력의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는 여성이 얽매여 있는 것은, 결국은 나조차도 무의식중에 받아들였던 그런 신화들입니다. 아내가 이러저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화, 남편이 아내의 비행에 책임져야 한다는 신화,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더라도 가정은 깨지면 안 된다는 신화.

계속 미안해지는 것은 내가 그런 아내에 대해 '맞을 이유가 있었다'는 발언에 가끔 마음 썼기 때문입니다. 강경하게, '사람이 사람을 때렸는데, 무슨 이유야!'하고 소리지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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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M.셀리 지음 / 동림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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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책을 읽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게 원본에 충실할수록 더 심해지는 것은 옛날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거랑 비슷하다. 빠르게 변하는 화면,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 빽빽한 빌딩숲, 꼬일때로 꼬인 사건들을 보다가, 장면은 바뀌었으나 어디가 바뀐지 도무지 알아차리기 힘든 컷, 어디든 걸어가는 사람들, 단조로운 배경, 꼭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주구창창 묘사하는 대목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건 진짜 굉장한 인내 다음에나 간신히 오는 일이다.

이 책을 읽을 때 그랬다. - 그런데, 미안하게도 출판사가 맞는지 알 수가 없다. - 실험실에 부여된 음침한 공기, 가족들에 부여되는 밝은 공기, 감정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려고 그 시대의 말로 계속되는 묘사는 정말 끝까지 읽는데 굉장한 인내를 요구한다. 드레스를 입는 시대의 과학소설이란 내게 그만큼 낯설었다. 화자는 쇄빙선에서 자신의 피조물을 쫓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만난 선장이었고, 둘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사랑과 명예, 평범과 비범.

창조자로부터 배척당하는 피조물이 자신의 창조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구조는 이 후 수없이 변주되기 때문에 아주 익숙하지만, 파멸로 몰아넣는 피조물을 이토록 동정하게 하는 묘사는 익숙하지 않다. 피조물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는지, 사랑을 바라던 마음이 증오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생명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것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처하는 난처함,- 아니, 더 심한 말이 필요하다- 끔찍한 상황을 대하는 것은 '인간을 복제'하기로 하는 현실에서 더 걱정스럽다.

메리 셜리의 단지 악몽은 지금 얼마나 내게 가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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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SF 걸작선
정영목 엮어옮김 / 도솔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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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SF단편이 수록된 단편선에서 딱 두번째 단편을 읽었을 뿐이면서 무언가 써야지, 생각하는 건 순전히 아이작 아시모프 때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과학의 미래를 트랩에 갇힌 것처럼 묘사한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기억 속의 아시모프는 경쾌하였다. 발전한 과학은 미래에는 일상이 되어 있고, 지금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걸 묘사하는 것처럼 달 여행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 일상은 그리고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죽은 과거'에서는 아니다. 소설 속에서 과학은 상품이 되기 위해 작가의 손에 가공되고, 이용을 통제하지 못하기는 그걸 개발한 과학자나 행정가나 마찬가지다. 과학은 폭주하는 기관차고, 자본과 맞물려 상황은 통제불가능하다. 일상적인 묘사는 여전하지만, 그 차가움은 새삼스럽다. 암울한 미래란, 뛰어난 SF란 이런 것이다!

읽으면서 그래서 아시모프가 SF를 쓴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시모프가 묘사한 데로 미래에 새로운 직업으로 과학 작가가 등장해서 그 직업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록해야 한다면, 그건 아시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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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모른다 - 여성.여성성.여성문학
김승희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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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들이 우글우글하다.
이제, 맘에 든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으면 되겠다.

'시는 어려워서 못 읽겠어'
'그냥 좋으면 좋은 거야'
동생의 말을 믿고, 나도 이제 그렇게 읽을 거라고 맘 먹고 간만에 산 시집이었다.

시들은 좋았는데, 좋은 시 골라주신 분께 미안하게도 평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다.

여성이란 육체를 가져서, 공유되는 부분들이 시에서 뚝뚝 떨어졌다. 아들로 연결되는 구약의 구절들을 죽 읊고는 말미에 짧게 붙인 한마디 말로 충분하였다. 딸들로 연결되는 긴 고리를 '사설조로'읽으라는 긴 시에서 느끼고, '양변기 위에서'의 심상은 또 그대로 내게 전해진다.

대지인 어머니를 말하지 않아도, 거창해지지 않아도 그 느낌들 알겠다. 시들에 평을 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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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0
김미경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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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지금의 가부장제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착취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은 사회에서 남성은 가정에서 적절한 비중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면 충분하였다.

그러나, 대안이 제시되었다면 그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방법은 실천가능하여야 한다. 이 순간 길을 잃게 되는 것은 나같은 초짜 페미니스트뿐만이 아니다. 충분히 연구하고 있는 사회학도 교수님도 길을 잃기는 마찬가지여서,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보여주는 대안이나 방법은 손쉽게 조소당한다.

그 조소는 한 명의 페미니스트가 보여주는 길을 잃은 논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페미니즘'에 대한 것이 되어버린다. 안타깝지만, 어떤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문의 영역에서도 '페미니즘'의 입지는 매우 좁아서 어떤 식의 발언도 '대표자'로써 읽힌다.-'여자들에게 고함'(함인희 저)에 보면 조직 속에서 19%를 점하지 못한 소수자는 어느 경우에건 해당 소수자'대표선수'(민족이건 인종이건 성이건)로 인식된다,라는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제시한 대안은 너무 안전하였고, 대안에 이르는 방법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균형을 잡으려는 의도는 주장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시스템에 대한-무자비한 자본주의- 반성없이 도달하려는 유토피아는 세상물정모르는 이가 상상하는 미래처럼 대책없었다.

내게도 자신있는 대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라는 이 선명한 제목으로 묶인 이야기는 좀 달랐으면 하는 바램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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