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시교 - 전 세계 학부모를 열광시킨 동양식 자녀교육법
인젠리 지음, 김락준 옮김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아직 셋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중이라, 복잡한 와중에 운영위원이란 걸 하게 되었다. 세대차이도 있고, 입장 차이도 있고 결국 젊은 엄마들과 싸우기나 한다. 예전에 막 직장내 여직원회를 인계받았을 때도, '직장어린이집을 24시간 운영해서, 아이 걱정 없이 직장에 헌신하게 하자'는 요구가 있어서 끔찍했었다. 다 늦은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도, 다 늦게 이 책에 대해 쓸 마음이 되는 것도 지금 내 상황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의 엄마가 쓴 육아서다. 완전 좋은 책인데, 너무 두꺼워서 분책되어 이상한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는 거대한 나라 중국에서 교육한 전공자인 저자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아이를 키운 경험, 다른 엄마의 사례들, 가끔은 언론에 보도된 이야기들도 있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르고, 다 다른 아이를 그 각각의 아이의 성정에 맞게 때를 기다려 가르치는 이 엄마의 태도를 존경한다.

 

가족이 축소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상황이 다르지 않아서, 많은 엄마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묘사되고, 양육의 어려움 때문에 정작 아이와 자신의 관계를 망치는 선택들, 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시누(정확하지 않다, 책이 동생네 가 있다)의 아이는 봐주면서, 자신의 아이를 안 봐주면 억울할 거 같아서' 아이를 시골의 할머니에게 보내 키우는 엄마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데려온 아이는, 잘 적응하지도 못하고, 엄마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이라고 해도, 역시 막 만난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고, 켜켜이 쌓이는 시간과 수고 속에서, 관계는 변하는 거다. 아이도 사람이라서,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을 안다. 엄마라고 해서, 아빠라고 해서, 쉽게 엄마나 아빠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아이라고 해도, 자신과 다른 존재임을 존중해야, 그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최소한 들으려고 노력해야, 오래 지속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큰 기쁨이 된다. 수고로운 것 없이 좋은 것만 취하는 방법은 없다.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건 모두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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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를 키우는 마음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20-11-12 06:09 
    아이를 키우는 데 딱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나는 인재시교,를 읽겠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371196) 인재시교,에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어서, 인재시교가 언급하는 수호믈린스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우화를 좋아하는 나의 성정을 보태어, 교육학자라는 저자의 우화집을 골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받아본 책은 굳이 정의하자면, 공산주의자의 교육서다. 교육의 태도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변변이 선배에게 결혼인턴제,를 브리핑하는 모습을 주말에 재방송으로 보았다. 

나도 '동거가 뭐가 나빠요?'나, '살아보고 결혼하겠다'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결혼 십수년차의 감회는 '그래봤자',라는 거다. 

동거할 때 친절한 남자가 결혼 후에 괴팍해지거나, 둘만 지낼 때는 문제없던 남자가 아이가 생긴 순간 꼴도 보기 싫은 이기주의자처럼 느껴지는 걸 1년의 인턴기간은 드러내지 못한다. 

 

지금은 차라리, '모든 도는 부부에서 비롯된다'라는 말이 진리같다. 


어디로부터도 강제되지 않는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그 남녀의 관계가 모든 도의 시작이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거다. 서로의 노력이 없으면 쉽게 무화되는 그 관계가 바로 모든 관계의 출발이다. 관계라는 인생의 숙제들을 그저 나름의 방식으로 대하면서, 다시 또 새로운 관계들을 만든다. 남편의 가족들과 나의 가족들이 새로이 가족이 되고, 다시 우리의 아이들이 더해진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그런 관계들에서, 나는 확장되고 결혼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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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다니다가, 이런 글을 보고 마음에 남았다가 이런 글이 되었습니다. 댓글에 링크가 깨져서, 인용페이지를 포함해서 옮겨놓습니다.

https://ygmh.skku.edu/ygmh/tradition/comment.do

 

 

<명구>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해석>
군자의 길은 부부에서 시작한다.

<내용>
왜 군자의 길이 부부에서 시작된다고 할까? 해답은 『주역(周易)』에서 찾을 수 있다.
“천지가 있은 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후에 남녀가 있고, 남녀가 있은 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후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후에 상하가 있고, 상하가 있은 후에 예의가 있어 처신할 방도가 있게 된다[有天地然後有萬物, 有萬物然後有男女, 有男女然後有夫婦, 有夫婦然後有父子, 有父子然後有君臣, 有君臣然後有上下, 有上下然後禮義有所錯].”
사람은 애초에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가족이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로 맺어진 끈끈한 혈연관계, 곧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가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가 부부로 결합함으로써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의 근원적인 출발점은 부부라고 할 수 있다.
『중용』에서 “군자의 길은 부부에서 시작된다[君子之道 造端乎夫婦].”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녀가 부부로 만나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음식에 대한 취향, 잠자는 시간,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 매사에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게다가 부부로 맺어지면, 두 집안이 결합되면서 부부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비롯하여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흔히 어렵다고 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관계 뿐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배우자의 형제, 자매, 친인척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다.
부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맞추어 가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주역』의 구절 다음에 “부부의 길은 오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항괘로 표현된다. 항이란 오래 간다는 말이다[夫婦之道不可以不久也, 故受之以恒. 恒者, 久也].”라는 구절이 이어짐은 당연한 듯하다. 결혼은 그저 부부생활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부부는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 맞추어가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원만한 부부관계는 오랜 세월의 노력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출전> : 『중용(中庸)』

<집필자> : 강중기/ 인하대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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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5-3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ㅠㅠ 모든 도는 부부에서 비롯되고 자식에서 완성되는 것 같아요.

별족 2017-05-30 10:06   좋아요 0 | URL
http://ygmh.skku.edu/ygmh/menu4/sub_04_01.jsp?mode=view&article_no=315600&board_wrapper=%2Fygmh%2Fmenu4%2Fsub_04_01.jsp&pager.offset=0&board_no=63
저도 여기서 보고 쓴 말이라서 제 말은 많이 부족하죠. 원문을 링크해두겠습니다.

hnine 2017-05-30 11:56   좋아요 0 | URL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아, 감사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사자소학 따라쓰기 어린이를 위한 따라쓰기
HRS 학습센터 기획.엮음 / 루돌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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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교육을 받고 동양식으로 양육되다가, 다 늦게 동양식 교육/공부에 대한 관심으로 쓰고 있다. 오래 전에 대학/중용,은 내가 쓰고 사자소학은 아이보고 쓰라고 산 건데, 결국 쓰지 않길래, 가끔은 아이가 삐뚤빼뚤 따라쓰기한 위로 그냥 내가 다시 쓰고 있다. 아직 다 쓰지 못했지만, 이것이 '학문'이고 '배움'이구나 싶은 대목들을 만난다. 어제 쓴 부분은 몸가짐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배움과 삶이 나뉘지 않는 배움, 말이다. 이런 공부를 정진하는 아이를 보는 부모는 기쁠 것이다. 어린이의 첫 배움 책인 '사자소학'에서 '내가 공부를 하면 부모가 기뻐하신다'라는 말을 만나는 것은, 지금의 공부를 상상하면 안 되는 거다. 바르게 서고, 단정하게 차리고, 콩 한쪽도 형제와 나눠먹고, 형제를 부모의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며 공경하는 것을 가르치는 바로 그 공부에 대한 것이다.

사는 것에 대해 배우고 있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여전히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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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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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아, 기독교적이야. 악을 묘사하기 위한 인용과 악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들이 '기독교적'이라고 느꼈다. 관계를 결여한 공허 속에서 악이 창궐한다는 이야기 자체에는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그 모든 맥락이나 설명들이 나의 무언가와 충돌한다고 느꼈다. 예전에 '악'을 병으로 묘사한 책을 본 적도 있었고-'거짓의 사람들'-, 기독교의 어떤 태도에 경계하는 심정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걸 예전에 생각해봤던 적이 있는데, 싶어 묵은 일기를 뒤적였다. 


'15년 4월의 일기에 이런 질문들,이라고 끄적여 논 게 있더라. 

맥락은 다르지만, 붙여놓는다. 


약함이라는 악함,

- 삼척 나갔다가 시온성교회,의 전단지를 보았다. 자신의 주인을 '자기자신'이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주인의 자리에 '주예수'를 앉히면 인생이 삶이 편안할 거라는 설득.

- 예전에 장에 가서, 집에 자꾸 쌓이는 비닐봉다리주면서 담아달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돈내고 사가면서, 새 거에 담아달라고 하라'며, 얕잡아보일 거라고 하심. 그런 건가 싶어서.

- 자신을 약하다,고 정의하는 순간 어떤 '악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기나 뭐 이런 생각을 함


인간은 약하다,는 말도 진실이고, 인간이 강하다,는 말도 진실이다. 전자의 인간이 관계성을 결여한 인간이라면 후자의 인간은 관계를 회복했을 때다. 스스로를 약하다거나 강하다거나 하는 믿음은 나 자신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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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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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하게 재밌다는 평이 있어서, 궁금했다. 

읽으면서 그렇게 재미있지 않고 심지어 싫어서 계속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 동양과 서양, 부자와 가난한 자, 같은 것. 비열하고 잔인하고, 뻔뻔스러운 그런 존재인 인간. 그런데, 소설로 그런 사실이 전시되는 걸 보고 있으니,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설은 전쟁이 끝난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두 건의 사기사건, 각 사건에 엮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는 역사적인 실제 사건이 소재가 되었고, 다른 사건은 작가의 창작이라고 했다. 전쟁영웅으로 전쟁 중에 가매장한 시체들을 이장하는 국가의 공공사업권을 통해 한 몫 단단히 잡으려는 몰락한 귀족과, 전쟁 중에 살아 돌아온 것이 그저 다행인 두 젊은이가 전국적인 기념비건립사업에 사기를 친다.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있지만, 인물들을 대하는 작가의 묘사는 쓸쓸하고, 각각의 인물 뿐 아니라, 대중들에 대한 묘사도 차갑다. 그나마 다행인 존재, 자신을 매수하려던 거금을 한장한장 보고서에 붙이는 말단 공무원조차  더럽고 구질구질하게 묘사한다. 그 사람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는 진실이겠지만, 아 싫다고, 하는 심정이었다.  

사업이라고 묘사되는 상류층의 사기와 그냥 사기. 그래도 둘 중 하나가 성공하길 바랬다면 후자이지만, 그보다 나는 전쟁이 싫고, 뻔뻔함이 싫고, 이런 존재가 인간이라는 게 싫었다. 인간은 동물이다.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성교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두를 통으로 전시해놓는 걸 내가 보고 싶은가. 아니라고, 나는 그걸 보고 싶지 않았다. 소설 속 어떤 등장인물에게도 이입하지 않는 작가의 냉소가, 어떤 인물에게도 영웅적 묘사는 없는 작가의 태도가, 그래, 싫었다. 인간이 등장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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