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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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었다. '한국이 싫어서'가 끔찍했는데도, 작가의 커리어의 시작인데다가 '한겨레 문학상'수상작으로 책장에 이미 꽂혀있어서 읽어보았다. 무언가 다를까,하고. 역시 기분 나쁘게 마쳤다. 그러고는 한참을 그 기분나쁜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마이뉴스 오연호기자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다가 알게 되었다. 왜, 무엇이 그렇게 기분나빴는지. 


사는 건,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거고, 나는 특별하지 않다. 

살기 위해서 특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동등한 만큼의 특별함, 생명이 가지는 무게만큼의 특별함이 있다면 있는 거고. 

특별함이라는 게 두드러지는 영웅적 업적, 만고에 길이 남을 이름,?따위라면 없는 거다. 


나는, 아예 책속의 화자와 아예 똑같은 세대인데도, 책속의 말들이 내내 의아했다. 


체제는 고착되었고, 변화의 여지는 없다? 정말? 

이미 전 세대가 일궈놓았고, 우리 세대가 할 일은 없다? 정말?

삶의 정점에서 삶의 무의미성을 죽음으로 웅변하겠다? 엥?

그 삶의 정점이라는 게 면허시험 합격? MBA수석졸업? 취업?이야?

이걸 삶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죽음이, 무언가 연결된 또 다른 죽음이, 연쇄적인 죽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무슨 말? 

원래 태어났으니 사는 거고, 나는 특별하지 않은데?


나는, 자기가 특별하지 않아 아예 못 살 지경인 사람을 살면서 만났었을까? 

 

읽는 동안 내내 거슬렸던 건 남자들의 환상을 응축해놓은 것 같은 여성 캐릭터였고, 책을 덮으면서는 이 기분나쁜 감정을 설명하고 싶었다. 

아예 다른 세대라면 '한국이 싫어서'를 읽을 때처럼 구경이라도 하겠는데, 나의 세대라고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이 되었다. 이 한심한 세대가 나?의 또래집단이라고? 

작가가 겪은 결과 내가 겪은 결이 얼마나 다른지 우선 놀라고, 이야기가 전부 욕처럼 읽힌다. 도대체, 무얼 읽으라고 이 이야기에 한겨레는 '문학상'씩이나 준 거냐고 묻고도 싶었다. 


나의 이십대는 저렇지 않았고, 나의 사십대도 저렇지 않다.  


굳이 교훈이라면, 아이에게 개인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건, 정말이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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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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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직업을 회의하고 있을 때, 영화일을 하던 친구가 '티티테인먼트'라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티티테인먼트'는 정치적 불만이 가득 찬 대중에게 젖을 물려 달래는 오락을 부르는 말이다. 

친구의 그 말에 나는 모든 직업에 그러한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 먹고 살고 있는 모든 상황에서 그런 식의 괴로움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농부라고 해서, 작가라고 해서, 기자라고 해서, 교사라고 해서, 활동가라고 해서, 가수라고 해서, 세상 어떤 직업을 택한다고 해도 그런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질문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질문을 하고, 그런 질문들 안에서 자신의 일을 고민하면서 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 책은, 현직교사가 교육현장에서 그렇게 고민하면서 깨닫는 이야기이다. 노예로 살며 노예를 키우는 학교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그러니까 자기 직업 안에서 고민하며 무엇인가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이야기이다. 

사실, 나는 실제로 읽지는 않고 주워들은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이 선생님이 벼락에라도 맞은 듯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와닿지는 않았다. 공교육은 공동체의 시민을 키우는 교육이고, 사교육은 '너 혼자 잘 나서 잘 살도록'하는 교육이라고 한 말을 들은 적 있다. 학원 다닌 아이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공교육이 황폐해지는 게 아니라, 다들 자기 아이가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 갔으면 해서, 공교육이 황폐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으니, 이 선생님이 뒤늦게 깨달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각성시키려고 쓴 글들은 그렇게 잘 읽히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가르치는 걸 현실이 되게 하려고 애쓰다가 부딪치는 교육현장의 좌절감에 공감했다. 반대하는 교사에게 다른 교사의 '침묵은 제 의견에 대한 동조로 봅니다'라고 말하는 교장 앞에서 동조해주지 않는 다른 교사들에게 갖는 원망이나, 아이들을 공부기계처럼 대하는 부모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 같은 걸 알겠더라. 

그런 답답한 마음, 애써 말하는데도 아무도 동조하지 않아 외로운 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의 말과 현실을 연결시키지 않는 태도를 만나면, 입을 옷을 고르듯 정치적 입장을 고르고 현실의 삶에서 깜짝 놀랄 만큼 권위적이거나 체제 순응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무섭다. 

책을 쓰고 싶을 만큼 답답한 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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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다. 드문드문. 만화가 그대로 콘티로라도 쓰인 양, 기시감이 있다.
송곳 명대사를 모아놓은 다음 기사 아래 첫번째 댓글이 신경쓰인다.
'그런 노동조합은 지지한다. 그렇지만 자동차랑 항만 해운노조는 쓰레기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어때야 하는가, 마음이 무겁다.
이 나라 법으로 묶인 강경한 행동의 제약,에 마음이 무겁다.
노동조합,이 하는 것은 언제나 정치고, 개별 노동조합을 개별 사업장에 묶어놓는 것은 언제나 사용자가 원하는 거고, 그래서 우리나라 법에서 언제나 연대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법 안에 묶인 노동조합이 가지는 한정된 상상력은 언제나 외부자의 시선 앞에 부끄럽다.

노동자이고, 조합원이고, 언제나 노동조합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사안에서 나의 노동조합이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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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3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논어를 읽다 - 공자와 그의 말을 공부하는 법 유유 동양고전강의 3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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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자님,이 훌륭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 끝도 내지 못하면서, 그저 세계 4대 성인, 중에 자신을 숭배하라고 하지 않은 유일한 분이라서, 정말 훌륭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 거다. 모두 자신이 하는 말을 훌륭하다고 해주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셀 수 없이 많고, 또 그렇게 자신의 이름이 높은 데도, '교주'따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훌륭한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한 거다. 늘 읽으려고 해도, 언제나 그놈의 한자와, 너무나도 지당하신 말씀이라서, 잘 나아가지지 않는데도 그랬다.

이 책은, 아마도 아무개,님의 서평을 보고 골랐을 거다. 그리고, 참으로 얇다며 깜짝 놀라면서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눈물이 났다.

3년의 상례가 지나치지 않냐고 물어보는 제자,에게 너는 부모를 잃고 1년이 지난 다음에, 좋은 옷을 입고, 편안하게 지내며,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느냐, 라고 묻는 선생님. 그렇다는 단호한 대답에 그렇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는 선생님이 공자다. 대답을 그렇게 하고, 그 대답에 의기양양 나섰을 제자의 뒤에서 다른 제자들에게 태어나서 3년은 조건없는 보살핌을 받아야 했고, 그런 사랑을 부모가 또 했을 텐데, 어떻게 마음이 편하다고 할 수 있지, 라며 '그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했던 건가'라고 묻는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내게도 유교는 제사와 어머니의 희생으로 떠받쳐지는 여성착취의 어떤 것처럼 -호주제 폐지 결정에 시위를 하는 유림들처럼-, 지나친 형식들로 삶이 사라지는 어떤 것처럼 고리타분한 어떤 것의 이미지가 물론 있다. 하지만, 공자의 말이 수천년을 지나서 여전히 살아남는 이유는 어쩌면, 마음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고, 공자는 자신의 마음이 형식과 일치하도록 노력했던 사람이었고,  마음이 그게 아니라면 굳이 형식을 주장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과거의 문명을 그리워한 사람이었지만, 귀족의 제왕학을 차별없이 가르칠 생각을 한 스승이었고, 서로 다른 제자를 말할 때 서로 다른 수사를 사용하고, 신중한 제자에게는 격려를 무모한 제자에게는 신중함을 독려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스승이었다. 그런 스승이라서, 아마도 제자들이 그를 위해 말씀을 남기고, 또 그 말씀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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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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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이런 제도라면, 원칙이라면, 범법자도 될 수 있겠어,라고 깨닫게 되었다.

여즉 모범적이랄 수 있는 국민,으로 살아온 지난 날을 되짚어볼 때, 내가 가졌던 어떤 태도는 참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더 억울할 태도였구나, 싶다.

대개의 법이란, 소득을 드러나게 해서 세금을 거둘 목적이고-합법화,란 그런 게 아닌가-

그런 법들이 정의하는 개인이란, 얼마나 못 되어 쳐먹었는지 현실을 사는 나는, 그런 법 따위, 무시하고 싶은 순간들이 닥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다 늦게 읽었다. 나는, 이 책을 뭐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대중에게 조리돌림당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굳이 읽을 필요를 못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카타리나 블룸,이 겪는 사건들이 그녀가 살아내는 공간이 지금 여기,같다.

사실여부가 상관없는 만능칼-여기서는 '종북'이고 저기서는 '빨갱이'-우리도 최근까지 썼던-다-이 있고, 또 역시 사실여부가 상관없는 쓰레기 언론이 있다. 

'종북'이라는 새로운 말이 '빨갱이'를 대체하는 세상에서, 지금껏 누리던 자유도 다시 제한하려는 시도를 맞닦뜨리고는 답답한 마음이 된다.

 

자존심,이라면, 자신 안의 규칙을 지키는 거고 그게 법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이 이상적인 여성,이 지키려던 그 자존심,을 알겠다. '정확성'을 견지하는 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 그 두려움,을 알겠다.

 

지금 여기에서, 눈 밝은 국민, 쉽게 휘둘리지 않는 대중,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런,데, 아, 무엇부터 해야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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