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들려주는 빨간 모자 이야기 내 얘기 좀 들어 봐 2
트리샤 스피드 샤스칸 글, 제럴드 게럴스 그림, 강형복 옮김 / 키즈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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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집에서 주에 한 권 책을 들려보낸다. 가끔, 이런 어이없는 책을 가져오면 내가 이상한가, 싶어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준다. 다 읽은 남편이 한 말이다.

'쓴 사람이 여자네?'

'그래? 몰랐네.'

늑대에 잡아먹히는 할머니나 빨간 모자를 거울만 들여다보는 멍청이로 묘사한 그림책의 저자가 여자인 줄 몰랐다.

 

나는, 늑대가 빨간모자를 잡아먹는 게 나빠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빨간모자가 늑대에 잡아먹혔다고 해서, 또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늑대와 빨간모자 이야기를 늑대이야기로 하면, 도대체 할 말이 하나도 없는 거다.

그러니, 책이 살짝은 궁금했던 거다. 그런데, 정말이지 할 얘기가 하나도 없이 이루어진 그림책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쓰러진 나무들과 이 책을 실어나를 사람들, 그걸 읽은 아이들까지 할 말 없게 만든다.

 

이야기는, 원래 채식주의자였던 늑대가 일주일도 넘게 굶어서 빨간 사과같은 빨간모자와 파란 사과같은 할머니를 잡아먹었단다. 그런 정도였어도, 도대체, 이 말들이 책이 되려면 도대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어이없는 묘사로 가득찬다. 빨간 모자를 쓴 빨간 모자는 빨간 사과처럼 동그래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거울에 비춰보는 그런 존재로 묘사된다. 할머니도 마찬가지고. 이런 책을 도대체 왜 만든 걸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늑대가 채식주의자였을 필요도 없고, 늑대가 빨간모자나 할머니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 둘이 멍청이처럼 거울만 쳐다보는 한심한 존재일 필요도 없는데, 뒤집어보자면서 왜 그런 식으로 묘사해야 했던 걸까, 싶은 거다. '야수가 들려주는 미녀와 야수'이야기도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랑,이라는 면-그러니까, 야수는 죽지 않으면서, 미녀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죽은 체한다-에서 좋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이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늑대에게 먹힌 사람들이 멍청했다,였던 걸까. 그런 이야기를 왜 하고 싶은 걸까. 자신이 하는 말이 그다지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책이 번역되어 아이 손에 들려온 걸 보면 나같은 사람보다 '늑대에 잡아먹히는 멍청한 존재들'을 묘사하는 게 그래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걸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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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다, 이것은
위험한 마음 -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호우원용 지음, 한정은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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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건, 노동조합이 들고 선 피켓 때문이었다.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조합 간부가 정부청사 앞에 들고 선 피켓에는 여덟살 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뚱한 표정으로 '성과연봉제? 그럼 엄마, 아빠는 몇 점이고 몇 등이야?'라고 묻고 있었다. 투쟁소식을 알리는 메일에서 그 피켓을 보는 순간, 나는 죄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지금 내가 반대하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는 그걸, 나의 아이는 학교에 들어선 순간 매일, 매일 받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그 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교육을 바꾸자고. 그런데,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그 많은 이유 그대로, 가르치고 기르는 게 교육이라면 지금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살아가는 법도, 살아가는 힘도 가르치지 못하는 그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해 줄까 하고 서점에서 새로 나온 노작가의 책을 펼쳐 봤었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기도 전에, 여성혐오를 만나는 바람에 그 책에 실망해서, 오래 전 이 책을 다시 펼친 거다. 심지어 여성혐오와 교육문제는 함께 나온 문제라고 까지 생각했다. 짱구를 봤을 때 뒷걸음치게 하던 여성혐오적 묘사까지 떠오르면서, 위계적이고 강압적인 동아시아의 교육이 문제다,라는 식으로까지.

 

이 소설은 고등학교 입시가 있는 대만에서 중3인 아이가 화자로 등장한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도 안다. 위계적인 권력을 용인하고 입시만이 제일 중요한 교육제도 안에서 교사나 학생이나 학부모나 누구라도 공범이 된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입시성과가 가장 좋은 선생의 반에 저자세로 아이를 밀어넣었던 엄마는, 싸움의 과정에서 아들의 성장을 본다. 늘 아이로 생각하던 아버지조차, 아들이 자랐다는 걸 깨닫는다. 승리할 수 없는 공범이 아주 많은 싸움의 끝에 아이는 말을 잃는다. 그렇지만 이건 성공이나 실패의 이야기는 아니다. 살아있고 살아간다. 교육은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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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어드벤처 8 : 워싱턴 D.C - 쿠키들의 신나는 세계여행 쿠키런 어드벤처 8
송도수 글, 서정은 그림 / 서울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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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게임으로 쿠키런을 열심으로 하고 있을 때, 출장 길에 터미널 책방에서 1권을 보고 사왔다. 출장가게 되면 또 사 줄께,라고 말하면서 주는 바람에, 책장 하나를 차지하고 하염없이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집 책장에서 그렇게 쌓이기 시작한 쿠키런 어드벤처의 8권이고, 기억을 잃은 왕자인 용감한 쿠키군 브브가 명랑한 쿠키양 콜드와 함께 함정에 빠뜨린 자신의 적을 알아내면서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한 모험 중에 미국의 워싱턴 DC가 배경인 이야기다. 나는 인디언의 문명을 파괴하고 세워진 개척이민의 나라, 미국의 수도라는 짧은 역사의 땅에 무슨 명승지가 있다고,라는 삐딱한 태도로 읽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브브가 만나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의 미국 주류일 백인이 아니라 인디언들이다. 미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 땅의 원 주인인 인디언들의 설화,를 빌어, 브브가 힘을 구하는 거다.

거의 말미에 포토맥 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디언의 설화,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내가 인디언 사회를 자연과 공존하는 이상적인 철학을 가진 공동체,로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그 설화는 인디언들이 두려워한 괴물 웬디고에 대한 것이었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두 남자가 배고픔에 지쳐 쓰러질 즈음, 죽지 않겠다는 강경한 욕망을 가진 사람의 귓가에 '눈 앞에 먹이를 먹으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에 굴복하면서 웬디고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 웬디고가 포토맥 강의 안개 속에서 브브를 부르면서, 말하는 거다. '사냥을 참 많이도 했지, 물을 긷는 여자와, 조개줍는 아이를'이런 식으로. 북미 인디언들이 가장 무서워한 괴물이었다고 주석이 짧게 붙은 웬디고,는 나에게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도륙하는 현대의 사이코패쓰 살인자,를 연상시켰다. 나는  아, 그런 거였어. 어디라도, 문화나 철학이 훌륭하다고 해도-자연과 공존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도록 고양시키는 문화를 가졌다고 해도-, 그런 존재를, 피할 수는 없는 거였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 안도했다.

인간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악도, 아무리 열심히 문화를 고양시킨다고 해도,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 존재를, 설화의 영역에 두고 두려워하도록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인디언 사회를 지금의 기술문명에 대척점으로 이상적이라고 상상한 것도 사실과는 다를지도 모르고,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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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채현국
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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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이렇다는 걸 잘 봐두어라'라고 일갈하신 채현국,이란 어른을 인터뷰한 책이다. 인터뷰집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 독서였다. 대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장이고, 사람이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은 알려주는 사람만큼 듣는 사람도 중요하다. 자신의 관점이 강경한 기자가 명예와 부를 한때 누렸으나,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그 사람을 그런 관점에서 궁금해 하는 인터뷰라는 인상을 받았다. 대화가 자연스럽지도, 풍성해지지도 않는, 무언가 어긋나는 말들의 잔치였다. 그래도, 이 어른이, 어른이라는 건 알겠다. 내가 만난다고 해서, 내가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그 깊이나 생각을 나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른이 아마도 신나서 이야기하셨을 거 같은 우리나라의 옛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고조선,이 이 땅의 첫나라라는 설명을 듣고, -그게 중학생도 되기 전이라고 했다-선생님께 고조선은 한자말인데, 우리말 이름은 뭔가요,라고 질문하셨는데, 선생님이 내내 말을 못하셨다면서 나중에 여쭤봐도 모르겠다고 하셨을 때,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나는 그제야, 아 그러네, 그랬다. 그래, 우리 나라 이름이 고조선,인 건 이상하지. 고를 떼더라도 조선,인 건 역시 이상하지. 그건 가지를 쳐서는, 한자 자체가 표의문자니까, 뜻으로 읽고, 음으로 읽을 수 있다면서 말하는 대목이 또 알겠더라. 한자를 뜻으로도 음으로도 읽는 일본학자가 신라의 향가를 처음으로 해독했다는 말 같은 게 그럴 수 있겠다,싶고. 아, 역시 한자를 알아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문자,라는 태도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자,로 여전히 남아 있는 표의문자,로의 한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의문조차 품지 못한 이상한 것들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지, 아 궁금해,라는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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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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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에, 먼저 아이를 낳은 엄마가 '뱃속에 있을 때, 아이가 무언가 잘못되었을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둘째는 못 낳을 거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두려움보다 큰 다른 것들 때문에 아이를 낳고 낳고 낳으니, 막 아빠가 된 직장의 후배가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키우나요?'라고 물었다.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 부모가 변해서 가능해요. 하나일 때는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깨질 것 같아 보고만 있어도 조마조마한데, 둘이 되면, 아이도 그저 사람이란 거, 어린 사람이라서, 이 정도는 괜찮다 뭐 이런 태도가 생기거든요' 라고 대답했다. 두려움은 나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나갈 아이의 미래만큼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까, 라는 두려움도 물론 있다. 그래도, 나는 두려워서 물러서는 대신, 미지의 존재를 미지인 상태로 맞아들이기로 한 거고 지금이다. 여전히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알 수 없다. 뭐, 나 자신도 어떤 사람이 될 지 모르는 판에, 아예 다른 존재인 아이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화자가 살인자라서 어쩔 수 없이 이입한 건지, 나는 여전히 '그래도 믿어줬다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에게 행사하는 부모의 절대적인 권력에 대해 생각하고, 세월이 흘러 뒤집힌 힘의 우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심리학이나 의학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더하여, 삶을 구성하는 것들에 대하여도, 부당한 권력 행사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믿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에 대하여도 생각한다. 더럽고 치사해서, 감당할 수 없어서, 부당한 권력행사로부터 달아날 수 있으려면,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무엇이 필요할까. 그런 절대적인 권력행사,를 참아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같은 것들. 엄마 없이도 내가 살 수 있다고 믿었다면, 아이는 약을 끊고 집을 나올 수 있을까, 같은 것. 엄마인 내가, 지나치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가 두렵고, 아이가 나 없이 살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나치게 순종할까봐 두렵다. 작가의 말 그대로, 인간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채로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면 도대체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 요구되는 만큼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그 생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라고도 생각한다.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두려움에 먹히기 전에, 사는 데 사실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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