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의 눈
최용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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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왔는지 모른 채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다고 남편이랑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한 마디도 안 보탠 것은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책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모두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해지지가 않아서 그랬나보다. 지금 다 늦게서야 뭐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흥미진진한 요즘의 뉴스가 내가 재미나게 읽었던 책 속 이야기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있는 여덟개의 이야기 중에 혜원거사 창종기,가 있다. 사기꾼 백부달,이 교도소의 귀인을 만나 교계(그러니까 종교계)에 의탁하게 되는 이 이야기는 낄낄거리면서 읽지만, 씁쓸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귀인의 말 중에 기억에 남은 말을 옮겨 적으려고 책을 펼쳤다. 

'믿고 따르는 사람 셋만 있으면 일단 굶지 않고 헐벗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 사람이 한 사람을 거두어 먹이기로 결심을 하면 그 한사람은 나머지 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수천 년을 이어 온 이 사업의 불변의 법칙이자 비밀이다.'


찾다가, 오히려 지금 상황에 더 적확할 다른 말을 찾았다. 

'사기를 치려거든 사기를 당하면서도 오히려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라'


선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국선언을 듣거나, 시국선언에 정파적 발언을 포함해서 결국 총학을 불신임하겠다는 뉴스를 듣고 있으면, 결국 믿는 동안 행복했던 건가, 싶다. 

한정된 자원 때문에 선 협상의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수고로와서, 그저 결정권을 가진 권력자가 내 편이기를 원하는 태도를 본다. 저 힘없는 상대방을 설득하느라 내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고, 대단한 분을, 믿고 따를 만한 분, 그리고 내 편인 그 분에게 권력을 주고 싶어하는 그 바쁜 성정. 먹고 살기에 바빠서 궁금해 하지 않는 사이, 언론과 언론을 독점한 기업과 큰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을 따라 목소리를 내고, 정책과 제도에서 우리의 시간은 계속 사라진다. 

지금, 이 엄청나게 어이없이 부끄러운 상황 다음에 스스로 무언가를 좀 더 감당해서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을 알아볼 눈이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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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어, 버나뎃
마리아 셈플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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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버나뎃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거다. 멋지게 차려입고 이상하게 입는 사람은 깔본다는 이사한 지 십년도 넘었으면서, 나랑은 놀지 않을 버나뎃, 살림도 하지 않고,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버나뎃. 


이야기는, 지나치게 말이 많은 이메일, 팩스, 보고서, 기사, 초청장 등으로 구성된다. 지역적인 특성, 그러니까,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이사간 듯한, 혹은 그 반대인 듯한 묘사들이 가득하다. 버나뎃은 남편의 일로 이주한 십수년 째 적응하지 못한 아내이고, 세 번의 유산 끝에 병약했던 딸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다. 엄마지만, 살림은 하지 않는다. 엄마지만, 엄마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엄마들을 '각다귀떼들'이라고 부르고,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튄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버나뎃이 스스로를 학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면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태도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였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데도, 딸아이의 건강을 빌면서 자신의 어쩌면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했을 창조적 욕구를 거래하는 것이나, 그래서 더 이상 눈을 빛내며 스스로 몰두할 것을 잃은 채로 지내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래 가장 몰두했었고 그래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 사람을 지탱하는 허영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그렇게 뛰어났었어,를 기억하는 마음, 그렇게 뛰어났었다는 걸 인정받았기 때문에 되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 말이다. 타인의 기대 안에서, 어쩌면 커진 기대만큼 커진 시기와 질투 안에서 버나뎃이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기로 했는지 그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이 기댄 허영심,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책 속의 버나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극의 추운 날들이 버나뎃을 변화시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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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지구의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 - 기후변화 Climate Change 아주 특별한 상식 NN 16
디냐르 고드레지 지음, 김민정 옮김 / 이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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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을 나오자마자 열권을 모두 질렀다. 그러고는, 지금에사 느적느적 읽어나가면서, 다 읽고는 노조사무실에 버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노조사무실에 두고 다른 사람들도 읽으라고 해야지, 했던 거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아 열권을 딱 정렬해서 두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겠어, 싶은 거다.

 

올 여름의 폭염과 늦게 까지 가시지 않는 더위 덕에, 이미 몸으로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니, 아주 조금만 설득한다면 와다다 달려나갈 수도 있었는데, 글들이, 글들이, 글들이. 에휴. 번역이, 번역이, 번역이, 꼭 내가 해 놓은 거 같았다.

 

책에 대해 말하려고, 그러니까 번역이 그렇더라고 말하려고 들어갔더니, 다행히 새로 번역한 책이 올라와 있다. 나름 최신의 자료들도 보충했다니 다행이다. 이 책은, 어떡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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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내려간 시댁은 정규방송 화질만 깨끗했기 때문에 내내 틀어놓는 만화채널을 오랜만에 벗어나 연휴에 방송하는 파일럿 예능을 볼 수 있었다. 

아이돌 요리왕 본선에서 처음 탈락한 산들과 유아,의 요리를 시식하고 품평하는 시간이었다. 심사위원 자리에 앉은 식당의 전문 셰프 세 명이 시식을 하고 이야기한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서 독설로 이름을 날린 요리사께서, '이걸 우리 먹으라고 준 거냐, 개도 못 줄 쓰레기'-아, 정확하지 않다-라고 품평했다. 차례차례 악평들 끝에, 연예인 판정단 중에 한 명이-성대현,이었다- 쭈뼛쭈뼛 '아, 저는 제일 제 입맛이예요. 다 먹고 양념에 밥도 비벼 먹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니까, 이 독자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다고 겨우 말하는 게 그 말이 거기 들어가는 게 낯설었다. 그런 장면은 다음에도 한 번 쯤 더 나온다. 페이가 만든 등갈비튀김을 그 요리사는 책상에 치면서 '돌덩이'라고 품평했고, 이국주는 '아, 완전 좋아요'라고 했던가. 

권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어떤 독설이든 고개를 떨구고 듣고 복종해야 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방송을 보아왔던가, 독설 뒤에 오려붙인 그 장면이 어색했다. 그런 독설 뒤에 그런 상찬이 붙으면서 권위는 살짝 일그러졌다. 


권위는 물론 있어야 하지만, 권위에 항상 복종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게,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거,라면 개인의 기준으로 자기 안을 탐색해야 하는 거다. 티비는 결국, 기준을 통일하는 꽤나 폭력적인 매체고, 최근에는 요리나 책이나 그게 무엇이든 굉장히 취향을 타는 것들에까지 취향을 전시하고 안내하는 노릇을 하고 있다. 그게, 티비라고 티비에서 프로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 사람의 취향이 만인의 취향으로 확산되기 쉬운 영향력 큰 매체,라는 걸 안다면, 저런 장면은 생소하다. 생소하다고 해도, 결국 여섯 중에 다섯이 맛있는 걸로 요리'왕'이 뽑히겠지만, 산들이나 유아가 성대현같은 사람의 요리사라면 뭐 그 사람에게는 요리'왕'이 될 게 아닌가, 싶었다. 삶에서 '왕'을 뽑아야 하는 순간은 얼마나 올까, 언제나 순위를 매기는 프로들을 보면서, 심사위원에 이입하여 구경하는 시청자인 나는, 그런 짓의 쓸모없음이 드러난 장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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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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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남편이 가장 미웠던 때는 첫 아이를 가지고, 낳아 기르던 그 몇 해였다. 임신으로 무거워진 몸을 하고는 돌아나오면 오줌이 마려운 나를 이해 못하는 남편, 아이를 낳기 전 후로 내 일상은 확 달라졌는데 여전히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보이는 남편,을 나는 그래, 미워했다. 뱃 속에 열달을 품고, 그렇게 낳아서, 기르는 나도 아이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남편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고, 나보다 남편이 더 큰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걸-그래, 남편의 기여는 추상적이니- 이해할 만큼 나는 넉넉하지 못했던 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개인적인 체험 안에서 책 속의 남자를 미워하며 읽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고 돌본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묘사했다는 책 소개에, 그래, 나는 무언가 애틋한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은 산통을 하는 아내를 두고 나와 아프리카 지도를 사는 남자를 시작으로 거리에서 십대와 싸움질을 하는 남자, 아이의 장애를 알고 아이를 죽일지 살릴지 심난한 와중에 술을 퍼먹는 남자, 술을 먹으러 자신이 강간했던 남편이 자살한 대학 동기 여자를 찾아가는 남자, 술을 퍼먹고 직장에서 토해가지고는 직장에서 짤리는 남자, 수술을 할 수 없을 만큼 아이를 허약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남자, 아이가 약해져서 죽었다는 전화를 이제는 애인이 된 대학동기 여자 집에서 기다리는 남자, 결국 실패했다는 전화에 아이를 죽여줄 다른 의사를 물색해서 차를 몰고 가는 남자, 그러다가 그러다가. 시간은 점프해서, 의젓한 아이의 아빠인 남자를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사건들을 이야기들을 그 남자의 시점으로 읽으면서, 산통하는 아내에 이입하면서 분개하는 거다. 아, 썅, 죽을 똥 살 똥 아기를 낳고 있는 아내도 있는데, 지금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자기 젊음? 자유는 끝났다고 앓는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아이가 죽으면 결혼은 끝이라고 말한 아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지금 병실에 있는데, 지금 술 퍼먹고 여자랑 저런다고, 아우, 이러면서. 자기를 다 이해한다고, 자기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그래 애인이 된 여자를 묘사하는 데는, 아, 미치겠다. 그래, 여자들이 다 그랬으면 좋겠냐, 이러면서. 내가 일본의 문인들의 여성혐오를 열거한 책을 봤는데, 이 작가도 틀림없이 있을 거야, 이러면서. 

작가의 결국, '개인적인' 체험이고, 모든 사람들은 결국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체험한다지만, 이런 '남성'의 이야기가 그 당시 대중적으로 꽤나 성공했다는 데 놀란다. 

명절에 엄마한테 줄거리를 중계했더니, 엄마가 '그래, 세상에 미친 놈들 쎘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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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9-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체험이 저런 내용이었군요;......
저도 애절한 내용으로 생각햇는데요...고난과 희생, 인간적인 고뇌, 인간의 나약함...감동도 있고........그런거 말이죠...
스포 덕분에 책을 안 읽어도 되는 돼지...ㅋㅋㅋ
설마 오에의 개인적인 체험은 아니겠죠????

별족 2016-09-23 12:56   좋아요 0 | URL
소설이니, 소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런 상상을 하기는 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