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가 들려주는 백설 공주 이야기 피리 부는 카멜레온 197
제럴드 게럴스 그림, 낸시 로웬 글,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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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책이다. 이야기 속의 다른 등장인물의 관점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에-늑대가 들려주는 빨간모자 이야기와 야수가 들려주는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가지고 온 적이 있다- 하나고, 그런 과정에서 주인공에 대한 미화가 사라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다섯째 난장이 입장에서 듣고 있자니, 친구 뒷담화하는 걸 듣는 것처럼 불편했다. 세 번이나 마녀에게 속아넘어간 백설공주의 어떤 성정을 묘사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건망증이 심하다,라고 묘사하는 것은 거부감이 들었다. 백설공주는 착했던 거야, 불쌍한 할머니가 애써 방문한 그 오두막에서 그 할머니를 그냥 보내기 힘들었던 거라고, 그건 나쁜 태도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었다. 난장이가 백설공주의 그런 성정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였다고 말하지만, 왕자까지 건망증 대마왕으로 묘사되고 보니, 원래 백설공주 이야기의 교훈은 뭐였나, 이런 생각을 했다. 교훈,따위는 없는 거였어도, 원래 이야기에는 무언가 여즉 살아남을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거야,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다가, 아마도 내가 나이드는 중이라서, 이 이야기가 여즉 살아남은 것은 자명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름다움이라도, 절세의 아름다움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게 마련이라는 것. 그걸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고, 결국 악해진다는 것, 말이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권력이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다들 아는 그 자명한 것이, 이야기 속에 있기 때문에 아직도 여전히 읽히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자명한 것들을 거스르려고 행하는 무수한 노력들이 마녀가 거울을 보며 찬탄하는 태도처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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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고는 아무 것도 보지 않는 딸아이가-예능만 본다T T 아형과 런닝맨과 무도와 안녕하세요와 개콘과 다들 보는데 왜 나는 SNL을 못 보냐고 하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 예고편을 보고는 보고 싶다더니 일요일 재방을 보았다. 티비 곁을 알짱거리는 동생들이 시끄럽고 귀찮다고 툴툴거리면서, 1,2편 재방을 함께 보았다. 읽은 적 없는 원작의 제목만 본 걸, 엄마가 책을 읽은 줄 오해하는 딸과 보면서, 이야기 속의 부모들을 본다. 고2인 아이들,-찾아보니 원작에는 중2다-, 학교에서 벌어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간다.

예전에 백남기 어른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알라딘에 그 분의 자제 분과 고등학교 때 한 반이었다며 부자 아버지, 권력자 아버지를 가진 친구들은 보았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당당하게 존경하는 친구는 처음 만났다는 글을 퍼 온 걸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아, 부모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아마도 자신의 아이에게 존경받는 것일 거다,라고 생각했다. 가까이 살기 때문에 흠결조차 쉽게 드러나는 그 관계에서, 아이가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라고.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부모의 사소한 하나하나를 통해 말과 다른 행동들은 아이에게 결국 들킨다. 웃는 얼굴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자신의 부모가, 말과 다르게 하는 행동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배우고, 또 부모에 대한 경멸을 쌓는다. 

드라마 속에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을 본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꿀만큼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 덕에 유지되는 학교의 폭군, 학교재단 법무팀장인 아버지와 친구를 잃은 아들- 자신의 아버지가 친구의 죽음을 방조했음을 결국 알게 될-, 자신의 삶의 우울을 아들의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와 아들,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아버지와 딸. 어른과 눈높이를 맞출 만큼 자랐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면서도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 아이들의 삶을 본다. 꽉 막힌 입시지옥과 과장이라고 믿고 싶을만큼 괴이하게 행사되는 권력들을 보면서, 이것이 아직 이 나라에 오지 않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미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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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본방으로 써프라이즈,를 보았다. 

지금은 지구 상에서 사라진 소련이라는 나라가 미국과 냉전을 벌이던 때에, 소련에서 둠스데이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었단다. 커다란 두개의 나라가 악착같이 핵무기를 만들며 경쟁하던 그 때에 설계된 그 프로그램은 인공위성으로 적국의 핵무기 발사징후를 포착하고 포착 시 맞대응으로 핵무기를 발사하기 위한 버튼을 가지고 있었다. 인공위성 오신호로 프로그램이 작동했고, 그 때 실무자가 버튼을 눌렀으면 지구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게 이야기의 전부였다. 실무자는 왜 미국이 다섯발만 쏘았을까?라는 의문 때문에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덕분에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원자력발전소에 다니고 있고, 그래서 '야, 그 당이 탈핵이 강령인데도 지지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받았었고, 또 그래서 언제나 직업과 나의 어떤 정치적 판단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서, 그 이야기가 새삼스러웠다. 소련의 군인이, 그 버튼을 누를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괴로움 같은 것을 생각했다. 소련이란 나라에 속해서,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보다 전에 자신이 지구라는 공간에 사는 지구인이라는 자각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아마도 훌륭한 직업인이었을 아이히만,과 다른 위치에 있는 존재들,을 생각했다. 

모든 직업에는, 모순이 있지만, 모순이 충돌할 때는 항상 교과서에만 남아있다고 비웃는 바로 그, 직업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게 직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게 바로 본질이니까.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존재,로써의 조직에 속한 개인, 직업인,이 아니라,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조직과 개인으로써의 직업인 말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하는 검사, 조직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조직의 명예를 위해 항명하는 검사, 같은 거 말이다. 실망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때문이고, 큰 실망이 가끔 '해체하라'라고 표현될 지라도 그 의미는 결국, 본질에 충실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 본질조차도, 소련의 군인처럼 회의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그 때 다시 판단의 기준은 나에게 결국 마지막까지 남을 정체성,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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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거든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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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읽고 싶었는데, 이사를 해야 해서, 책짐이 무서워서 이제야 읽었다. 

너무 읽고 싶은 이유가, 책 제목 때문이었는지, 저자가 '사요나라 갱들이여'의 그 작가여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책은, 2011년 3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매달 하나씩 쓴 논평을 모아 놓았다. 2011년 3월에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사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독도문제도, 혐한시위나 반일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교육의 문제도, 비정규직의 문제도, 거의 세습되다시피하는 정치의 문제도 이야기한다. 

일본의 이야기들이라서 생소한 사건들을 토막의 쪽글로 읽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글들이 인용하는 사람도, 잡지도 알지 못할 때는 좀 바보같다고 느껴졌지만 다른 풍경은 아니었다. 

오래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진지한 선생님이 그려지는 글들이었다. 


'연민의 바다'를 향해,를 읽다가 소통에 결국 실패한 순간, 내가 느꼈던 막막함을 얼마만큼은 설명해주는 대목이라 연필을 찾아 밑줄을 쳤다. 


'난폭한 주장'따위가 아니야,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 교실에서 등수를 모두 불렀다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그건 교육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민원을 넣었다가, 시험 잘 본 딸이 자기 등수를 알려달라고 엄마가 그런 말을 해가지고 선생님이 안 알려준다며 항의하는 지경에 처한 내가 느끼는 그런 고독감,에 대한 말 같아서 작가의 말도 아닌 작가의 인용에 줄을 쳤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교육과정까지 함께 짠다는 실험적 공교육을 운영하던 사람이 한 말이었다. 


'피해자의 아량, 가해자의 신중함'에서 이 대목은 우리나라에서도 결국 절판이나 수정출판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부분도 작가가 들어 인용한 부분이다. 

인간은 논리로 세계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않다. 논리야말로 공동체를 닫아버릴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외부를 이해하는 별개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 그 탐구 끝에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깊은 생각과 충분한 논의‘가 닫아버리는 소우주의 외부에 ‘연민의 바다‘가 펼쳐지고, 네트워크와 동물성을 통해 임의의 공감이 여기저기서 발화하고 있는 그러한 모델이다. (p44 ‘연민의 바다‘를 향해)

저항이 있는 쪽은 사실 현장의 지자체나 교사나 학부모들이에요(p83 ‘난폭한 주장‘따위가 아니야)

과거는 항상 현재의 심판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p89, 피해자의 아량, 가해자의 신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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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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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옆에 한국사람 없으면, 더 잘 말할 수 있어'라고 말한 적 있다. 하고 싶은 말의 수준이라는 것이 얄팍하기 그지없는데, -이게 뷔페인가요? 나 이게 얼마인가요? 정도- 옆에 한국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품평이 무서워서 입이 안 떨어지는 내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배울만큼 배웠지만, 유창해지기 전까지 말하기보다 듣고 품평하기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영어,처럼 계급적인 언어를 입밖으로 꺼내기가 어렵다는 거지. 뭐, 더 잘 말한다고 해도 부끄러운 수준인 건 알고 있다. 다국적의 사람들이 영어로 수업받는 교육에 갔다가 '대학은 졸업했느냐'라는 질문도 받아봤다. 그건, 그 나라가 공식어로 영어를 쓰는 나라였다는 것은 차치하고, 내가 형편없는 영어 말하기를 구사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는 거지. 그때의 나는 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도대체 왜,라는 지경이다. 아이쿠, 공식어가 영어가 아니어서 나라에 말과 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어이쿠, 내가 살면서 여즉 영어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만났어도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도 싶고.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가지고는 그래 영어공부 그만하자, 가 되었다.

책은,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하다'는 서재 분의 소개 때문에 읽기로 한 거였고, 동기부여를 위한 도입부에 뚱해졌다가(일본에서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박사도 노벨상을 받거든, 그러니까, 언어가 아니라 내용이라고), 영어의 구조나, 우리말의 구조,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 등을 재미나게 읽다가, 유창해지려면, 이것저것 하라는 대목에서 더 읽기 싫어진 거다.

아, 영어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구사했던 방식이구나. 영어에 유창해진다는 것은, 그 문화에 유창해지는 거라서, 차라리, 영어를 못하는 이방인으로 나를 대할 때, 그 사람이 내게 더 관대해지는 거구나, 까지 읽은 다음이니. 아 도대체 왜 유창해지겠어,가 되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있어야 소통이 되지요,라고 묻는다면, 아, 제가 최근에 우리말로도 설득에 실패했어요. 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가 소외감을 느낀다구요. 더 많이 더 얄팍하게 말하면서, 어떤 만족감을 느낄지 알 수 없는데, 우리 말도 못하는 주제에 영어가 유창해질 때까지 어이쿠 그 공부 안 할래요,가 된 거다.

 

그 다국적 수업에서 나는 그 수업에 참여한 선배 여성들에게 묻고 싶은 말을 묻고, 대답도 들었다. 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은 발음을 품평하는 나의 태도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 나의 무심함이었지, 마구 토막나 흩어지는 엉망진창 영어단어들이 아니었다.


* 지금 막 끝까지 읽었다.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게 다른 영혼을 갖는 거라는데, 책 속에 분열된 자아가 폭발한다. 언어학이나 인문학 책으로 만들었다면, 책이 안 팔릴 거라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으나, 언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글로벌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이,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을 빠져나와 세계인을 이해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할 거라는데. 이해가 되냐고 되묻고 싶다. 언어 전쟁에 우리 말이 살아남도록, 우리 말을 더 열심히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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