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딜레마 - 원자력 르네상스의 미래
김명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단 숙의결과가 나왔다. 

신고리 5,6 건설재개, 원전 축소 권고다.  

애초에 공론화위원회로 공을 넘긴 것이 잘못이고,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거라는 분개도 보인다. 

나는, 공론화위원회,라는 형식이 있어 다행이다, 싶다.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도, 수긍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다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특별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많이 기대를 져버렸었다. 임기 말 한미 FTA에 대한 실망은 둘째치고, 원자력에 대해서는 특히 태도변화가 컸었다. 

재작년 말 쯤, 정부의 입장,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폐기물처분장으로 격렬한 갈등이 불거졌을 당시 환경부장관이었던 분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안보에 대한 위정자들의 관점을 이해할 마음이 없었다. 좁은 국토에서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에너지 믹스며, 70년대 오일 쇼크에 대해 듣지만, 안보가 무언지 정말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계를 꾸리고, 살림을 하면서 겨우, 안보가 집에 쌀을 들여놓는 거 같은 거라고 이해했다. 바닷길이 막혔을 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같은 거. 원자력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한달치를 비축할 수 있어요, 같은 거. 

부피의 문제, 공급의 문제, 자원의 문제. 정권을 잡기 전까지 반대자의 입장이었다가, 위정자가 되는 순간 다시 생각하게 되는 문제.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전원이라는 거다. 책임자가 되었을 때, 고려할 다른 문제들로 이전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서 이런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와 의견이 다른 결정을 했더라도,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고민을 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내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설명했어도 내가 이해할 맘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대통령이나 산자부장관이, 탈핵입장을 천명하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가스관의 미래를 천명했음에도, 시민참여단의 숙의결과가 재개인 것도 좋다. 숙의결과가 재개지만 다시, 줄여가자고 말하는 것도 좋다. 에너지의 문제가 삶의 문제, 우리 삶의 낭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축소할 수 있을 만큼이 되면 좋겠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7-10-2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치, 행정(정부)를 고려할 때,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신고리 5,6 건설재개, 원전 축소 이외의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별족 2017-10-21 15:34   좋아요 0 | URL
축소권고는 공론화위원회의 논의범주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마립간 2017-10-21 15:41   좋아요 0 | URL
제 직장 동료는 신고리 5,6 건설 재개도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범주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보다 기본적으로 전문가의 의견과 여론의 의견이 어떤 범주에 어떤 비율로 작용해냐의 문제인데,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정부의 책임을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여론으로 넘기는 역활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이 정부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별족 2017-10-23 14:53   좋아요 0 | URL
그 동료분은 공론화위원회 자체에 회의적인 게 아닌가요?

마립간 2017-10-23 15:2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도 (전문가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자료가 없기 때문에 판단 보류입니다.

전문가의 입장이 더 반영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국민 여론이 더 반영되어야 하는지. 과학기술 분야와 인문 사회분야의 균형도 결정하기 어렵고, 과학기술 분야라고 해도 각 위원이 원자력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아직 미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해서 특히 폐기물 재처리에 관해서는 전문가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렵죠.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별족 2017-10-24 08:58   좋아요 0 | URL
4대강 이슈 때, 동료랑 논쟁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저도 비전문가인 채로 반대하고 있었거든요.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할 수 없다던 동료와 이야기했었죠. 전문가가 아닌 채로도, 논쟁의 와중에 구경하면서, 판단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마립간 2017-10-24 11:44   좋아요 0 | URL
저는 (예를 들면 지난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을 강의하는) 수학강의가 떠올랐습니다. 비전문가가 강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할 수 있지만, 강의의 내용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4대강 개발이나 원자력 발전소 설치가 극도의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하냐, 아니면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판단 할 수 있느냐겠죠.

‘원전 축소‘와 ‘4대강 개발‘의 차이를 저는 모르겠군요. 왜 원전 축소는 공론화위원회의 범위를 넘었다고 생각하시죠?

별족 2017-10-24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목적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범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주제를 좁게 잡은 이유가 있는데 주제를 벗어난 권고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마립간 2017-10-24 19:33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을 생각해봤습니다만.

예전에 ‘민노총‘에서 노동문제와 관련 없는 시국선언을 할 때, 그것이 주제를 벗어난 것인가,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애초의 목적을 벗어났다는 것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번 결정이 정부의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죠. 암묵적인 공론화위원회의 목적이 신고리가 아니라 차후의 원전 축소 권고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별족 2017-10-25 11:10   좋아요 1 | URL
정부의 결정,을 거기 넣는다는 게, 공론화위원회를 퇴색시켰다고 생각하는 거죠. 노무현대통령이 많은 기대를 져버렸을 때, 저는 제가 바랐던 게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내 마음처럼 해주는 독재,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내가 바라는 게, 민주주의라면, 나는, 내 마음과 다른 결정에 좀 더 열려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했구요.

지금의 공론화위원회에서 제가 좋았던 점은,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를 참 원없이 해봤어,라는 거 거든요. 사람들이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듣고, 성의껏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신고리 5,6 공론화위원회‘에서 ‘원전축소‘라는 모호한 사족-제가 모호하다는 이유는,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원전은 축소할 수 있거든요. 전체 소비를 줄여나간다거나,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구형원전을 연장하면서도 축소할 수도 있거든요, 지금 신규원전을 모두 지어도, 수요량예측이 이전 정부대로라면, 원전비율은 축소되는 거라서, 그 말은 해석의 결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이 붙어서, 사람들이 공론화위원회를 정부의 꼭둑각시였고, 무가치한 돈낭비였다고 생각하면 억울한 거죠.

마립간 2017-10-25 12:14   좋아요 0 | URL
지금의 공론화위원회에서 제가 좋았던 점은,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를 참 원없이 해봤어,라는 거 거든요. 사람들이 열심히 말하고 열심히 듣고, 성의껏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도 하고요. ; 이 부분에 관해서 제가 아는 것이 없어 별족 님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전체 소비를 줄여나간다거나 ; 겨울에 내복을 입고, 여름에 에어컨을 들지 않으면서 전력 소비를 줄인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 특히 한국 사람)의 욕망에 미뤄볼 때, 전력 수요량은 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줄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죠.
 
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에 다닐 때, 선배가 좌파가 나쁜 놈이 되면 이건 정말 나쁜 놈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좌파가 될 때 기존의 도덕률을 체제에 복무하는 것으로 거부하기 때문에, 좌파의 무언가 선량함이 탈색되고 나면 진공의 공간이 펼쳐진다고 했었던가. 

젊었을 때 좌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 젊었을 때는 좌파였다가 늙으면 우파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무엇 때문일까도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누가 옮겨놓은 '우파는 자기 양심하나 건사하면 건전하지만, 좌파는 타인의 양심까지 지켜야 건전하다'는 김규항의 글을 보았다. . 

젊은 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이 자신만큼 부지런하지 않다고 두드려팼던 기억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를 읽은 참인 나는 젊은이가 좌파가 되는 이유가 그러니까, 자신의 관점을 타인에게 실행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나, 이런 생각도 한다. 김규항의 말은 아마도 제도나 시스템을 통해 타인의 양심까지도 건전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겠지만, 제도나 시스템 이전에 인간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말에서 나의 양심뿐 아니라, 타인의 양심까지 지키겠다는 태도의 용맹함을, 젊음을, 보는 거다. 


그 전에 세 여자,를 마치고 마지막에 마음 깊은 곳에 남은 감상이 '야, 이 박헌영 나쁜 놈'이어서, 이걸 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좌파니 우파니 도덕률이니 양심이니, 젊음이니,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된다. 1910년부터 90년까지 조선공산당의 역사와 함께 한 세 여자의 이야기를 덮으면서, 나의 감상이 이것 뿐이면 정말이지, 망한 독서가 아닌가, 그러는 거다. 


1권에는 1920년부터 39년까지 세여자가 만나고, 공산주의자가 되고, 혁명과 해방을 위해 움직이는 이야기들이다. 같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만나고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상해와 모스크바까지 펼쳐진다. 2권에서는 세 여자의 1939년부터 1959년까지가 펼쳐진다. 박헌영이 감옥에 있는 동안 김단야와 소련에서 결혼한 주세죽은 김단야가 일본의 간첩으로 처형된 뒤에 중앙아시아 크질오르다에서 강제노역에 처해진다. 혁명가의 자녀 국가보육원에 다니는 딸이, 밀정혐의로 죽은 김단야나 밀정의 가족이 되어 강제노역형에 처해진 자신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딸 곁이 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해방의 공간에 자유의 몸이 되어!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일정정도 지위까지 복권된! 박헌영은, 그녀의 청원이 소련을 거쳐 북으로 왔는데도 그녀를 방치한다! 심!지!어! 젊은 여비서와 결혼도 한다! 에이 나쁜 놈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해방의 희망을 견지했던 유일한 존재 조선공산당이 분단과 전쟁으로 남쪽에서는 뿌리뽑히고, 북쪽에서는 말하기도 민망한 세습왕조로 변질되어 버린 것과 겹쳐지는, 세 여자의 젊음과 늙음, 죽음이 허무하고 쓸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사IN 제522호 : 2017.09.16
시사IN 편집부 지음 / 참언론(잡지)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삶에 불안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불안을 무진장 키우지 않고, 적당히 꾹꾹 눌러가며 살아내는 것은, 그런 불안을 키우는 것이 삶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균, 바이러스, 발암물질,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이지도, 코로 냄새맡지도 못하는 물질들이 나를 병들고 아프게 한다고들 한다. 깨끗해보이지만 세균이 있으니 일회용 행주를, 살균제를, 쓰라고 하고, 미세먼지가 있으니 창문을 꼭 닫은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리라고 하고, 여기에는 발암물질이 있으니 이걸 쓰라고도 한다.


정말 필요한 건 돈 주고 살 수가 없어, 정말 필요한 건 광고도 안 하지. 라고 딸에게 말하는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조마조마 사느니, 어차피 죽을 거 늙으면 아프겠지, 살던 대로 살란다, 그런다. 나 하나 잘 살자고, 그걸 다 쓰면, 나 지나간 뒤에 무언가 잔뜩 쌓여있을 텐데, 쓰레기 내다 버리는 죄책감도 장난 아니야, 그러면서. 


안전한 생리대는 없다,라는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한 교수의 어떤 태도가,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화학물질 염려증에 대한 교수의 우려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며 공감이 되었다.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는 두려움을 불식시키기보다 훨씬 쉽다. 죽음에 이르는 수준,이라는 것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준,이란 것도 있지만,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그저 존재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모호하면 모호한 채로도 작동한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원초적 감정이라서 대중에게 강하게 전해질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그걸 방법으로 택한 접근에 나는 언제나 뒤로 물러서고, 의심한다. 누구라도, 그래야 한다. 두려움으로 나를 설득하려는 상대는 위험하다.  


인터뷰한 교수는 편리함 때문에 탐폰을 쓴다고 했다. -탐폰에는 독성쇼크사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나는, 깔창 생리대 뉴스가 나온 다음에,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좀 더 경제적인 관점에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생리컵을 쓰고 있다. 딸아이에게 권할 수 있을만큼 좋다. 할 수 있는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지만, 아직은 해외직구만 가능한 물건이라 쉽게 권하지는 못한다.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는 것이 정말 큰 장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의 불편한 민낯
일의 발견
조안 B. 시울라 지음, 안재진 옮김 / 다우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결국 질문은 거기에 가 닿게 마련이다. 

일과 삶은 분리하기 어렵다. 

가족의 빨래를 돌리고 밥을 만드는 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삶을 꾸리고 있는가. 

 

먼댓글 링크의 밑줄긋기가 나의 고민들과 닿아 있어서, 절판된 책을 구해 읽었다. 막 구했을 때는 화다닥 읽어낼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양의 기독교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한참이다. 기독교가 규범을 형성하는 중세 교회에서 창녀가 장인조합처럼 스테인드글라스를 기부하려 하는 에피소드는 신기했다. 장인이 아닌 급여생활자,를 타인의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에 대해 가지는 종교적 죄책감같은 것에 대한 묘사를 읽었다. 그렇지만, 현대로 넘어가면, 빠르게 읽어낼 수 있다. 미국의 경영학책이 빠르게 수입되는 나라에서, 직원들에게 으랏차차 교육같은 걸 시키는, 온갖 뒤죽박죽 리더십이 뒤섞인, 결국 배신하는 기업의 실상을 느끼고 있으니까.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시간을 파는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원자력에 대해 말하고 싶은 나는 나의 일 때문인지 나의 믿음 때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운이 좋게도 IMF 눈 앞에 취업을 해서 내 뒤로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이십년이 되어가고,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그런데도 여전히 일할 수 있으니, 일도 회사도 고맙다. 

그런데도, '회사가 어려워 지난 한 달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설명하던 관리본부장이나, 가까운 장들이 자신의 먹는 밥이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모두 회사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IMF를 앞두고 같이 입사한 동기가 '이런 세상에 잘리지 않은 사람은 한번도 휴가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회사 밖의 삶이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이런 두려움에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나름 취약한 지위라서 회사가 정말 나를 원한다는 자신만만함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도 따라붙는다. 

끊임없이 배신하면서, 헌신을 요구하는 거대한 회사라는 조직 앞에서, 조직에 속한 나는 내 안의 균형조차 잡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모호하고, 헌신하기 어려운 채로, 기묘하게 조직 안에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존재할 생각이다. 역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젊은 여자였을 때,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에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을 거다. 

세상의 부조리함이나, 세상의 악함에 내 책임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가끔 젊은 내가 무슨 말을 했었던지 다 늦게 후회한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며, 나의 선택들이 가끔은 더 나쁜 세상에 일조했다는 걸 안다. 


소설은, 대개 젊은 여자가 화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력하고, 무해하고, 무책임하다. 

대개는 피해자고, 가끔은 가해자면서도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선량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 사람, 관계를 악착같이 붙들지 않는 사람, 그저 먼 과거로 추억하는 사람. 

관계를 바로잡기보다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 사람의 무해함이나 책임이 없다는 자기변명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배경이 외국이거나, 외국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내가 가지는 2,30대 젊은 여성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나보다, 세계화된 세대라는 생각도 하지만, 역시 촌년인 나는 먼 곳을 선망하는 마음은 현재, 이곳의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