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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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한 소설가의 산문집이다. 나와 다른 삶을 구경한다. 그 삶들 가운데, 공감하기도 의아하기도 하다. 나는 왜 쓰고, 또 왜 읽을까. 사람들은 왜 쓰고, 또 왜 읽을까. 


나는, 도시에서 살지 않았다. 내 평생에 도시에서의 삶은 4년, 그 4년조차 가장 외곽에서 외출없이 학생으로 살았다. 우선 순위들을 사는 것에 두는 나는, 보이는 것을 언제나 후순위에 두는 촌년인 거다.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을 읽을 때, 나는 나의 이런 감수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는 걸 구구절절 토로한 적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2463427) 나는 내가 촌년인 게 좋다. 


나는, 엄마를 좋아한다. 아빠를 이해하는 만큼 엄마를 이해하고 또 좋아한다. 작가는 왜 엄마를 심지어 미워했을까, 궁금하구나. 작가라고 해도, 책을 내면서도, 결국 숨기고 싶은 말은 숨긴다. 나는 한권이 다 끝나도록 알 수 없다. 엄마를 미워하면서 엄마가 되는 마음은 어떤 걸까. 


무언가 작은 것에 전력하며 시간을 버틴다,는 대목을 따오고 싶었는데, 못 찾고 있다. 그 때 기록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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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포 매거진 POPOPO Magazine No.01 - LOVE YOURSELF
포포포 편집부 지음 / 포포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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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생일선물로 보내줬다. 엄마인 나에게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합니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읽으면서 나는 애 셋을 낳고 복직해서 참석한 모유수유 교육 생각이 났다. 강사 분은 모유수유에 실패했다는 간호사 분이었다. 나는 모유수유 다 했는데, 그 교육을 듣고 있자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나는 교육생이고 저 분은 강사고, 그 자리가 다 재미없었다. 

언제는 안 그랬겠냐마는, 이제 나는 교육을 받기 보다, 말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도 말하고 싶어서 책을 만들었을 텐데, 나보다 좀 더 젊은 엄마들에게 소구하는 책이다. 나같은 옛날 사람은 표지로 뽑은 영어 제목도, 부제로 깔린 영어도 지나치게 작은 편집 글꼴 사이즈도 거슬린다. 표지에 한글은 가장 작은 폰트로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합니다' 뿐이고, 책 이름 popopo 는 connecting people with potential possiblities의 약어다. 한글이 이렇게나 부족한 표지도 거슬리는데, 내용은 또 어떠한가?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책인지는 책에 대해 쓴 첫번째 꼭지에서 나도 읽고 서평을 남긴 두권(고녀석 참 맛있겠다https://blog.aladin.co.kr/hahayo/5025827 , 사자왕 형제의 모험https://blog.aladin.co.kr/hahayo/9922625 )의 책에 대한 말들에서 느꼈다. 용기라고 부르는 것들,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와 얼마나 다른가. 

글들은 과잉된 자아가 넘치고, 적응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마음들이 넘친다. 

외계인이세요?라는 말을 들었던 어떤 날처럼 나는 이 엄마들의 고민과 엄마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걱정스럽다. 잔소리를 마구 하고 싶다. 결국 당신의 삶이니 어쩌겠는가, 싶지만. 산다는 건 능동형이기보다 수동형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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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635호 : 2019.11.19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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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화나 예술이 짝짓기 춤,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서른 셋 넘어가면 더 이상 찾아서 노래를 듣지 않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주억거리고, 나의 어떤 문화적 열광이 십대, 이십대에 고착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문화나 예술을 더 많이 누리는 데 어떤 지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게 한심하다. 

세계의 더 많은 곳을 여행했다는 것에도, 맛있는 걸 많이 먹어봤다는 것에도 그렇다. 

그 자체가 만족스럽다면, 나한테 저렇게 자랑하고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라고도.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이렇게 쓰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복잡한 욕망으로 복잡하게 살고 있구나, 한심해한다. 


이번 호 시사인에서 내가 뭔가 화를 내고 싶은 글은 학교의 속살,이다. '진짜 '도농 격차'가 뭔지 아세요?'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글이다. 

아이들에게 '심심한 게 인생이야, 버텨'라고 말하는 나는, 도시화된 젊은 교사가 아이들을 이렇게 판단하는 게 싫다. 교사가 이렇게 판단하고 있어서, 아마도 아이들은 더 많이 결핍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글이, 선의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상을 알린다고, 농촌에 문화적 혜택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개선하려는 의도라고. 나는 선의라고 해서, 그 글이 용납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규모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문화가 생존 다음이고, 짝짓기 춤처럼 젊은 한 때의 열광일 뿐인 나에게 도시의 삶은 필수가 아니지만, 문화가 생존만큼 중요하고 사람의 교양을 구성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교사에게 도시의 삶은 '필수'가 되어버린다. 도시의 삶을 지적으로 우월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이 젊은 교사의 눈에, 시골의 아이들은 '불쌍한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도시화된 젊은 교사가 한갖 짝짓기 춤을 보고 문화라고 지적 우월을 과시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불쌍하다고 지면을 통해 말할 때, 어린 학생들은 도시화된 젊은 교사가 그런 마음으로 자기 앞에 서 있는 걸 그대로 느끼면서 자기도 그 교사도 '패배자'라고 인식하거나-도시에 살고 싶으나, 도시에 살지 못하는-, 자기 마음 속 들끓는 부당함을 말할 곳이 없다고 생각할 거다. 

도시화는 소용돌이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규모가 필요한 모든 일들이 도시라면 더 많이 가능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도시는 삶을 구성하는 일차적인 것들, 단순한 요소들을 무시하게 하는 문화를 강화시킨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절박함 가운데, 도시는 더 편리해지고, 부는 더욱 집중되고, 삶의 과정들은 무시된다. 아이를 낳는 일, 기르는 일, 먹이고 입히는 일을 하찮다고 하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를 아는 일들을 또 그렇게 여기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발언은 또 이런 지면을 통해 공개된다. 

이게 바로, 앞서 지방소멸에 대해 기사를 냈던 시사인의 감수성이다.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런 말들이 가지는 차별이나 혐오에 대해서는 아예 자각하지도 못한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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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가지가 기억에 남아서, 게다가 너무 개인적인 거 같아서 그러나 저러나 짧은데도 서평에는 못 쓰고


1. 랑랑별 때때롱

외계인-다른 별의 다른 존재니 외계인이 맞는 말일 텐데, 동화적인 세계속이라 그저 사람이다. 먼 별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동화인데, 나는 매 끼니 같은 걸 먹는 이 사람들의 식탁 묘사에, 아 작가는 매 끼니 고민하는 수고를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고마워했다. 

정말 밥하는 게 너무 힘든 날들이 있었다. 

먹을 게 없다며 밥상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도 남편도 미운 날들에, 가난하여 단촐한 매 끼니 같은 식사에 대한 조금은 장황한 책 속의 묘사가 고마웠다. 





2, 쿠쿠스 콜링

여기서 기억에 남는 건 택시를 탈 수 없어서 걸어가는 묘사. 주머니에 남은 돈과 남은 거리를 한참을 계산하는 가난한 탐정의 묘사, 였다. 

사람은 참 신기하지, 주머니에 돈이 있고, 걸어갈 때는 그런 마음이 안 되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걸어갈 때는 다 나를 보는 것처럼 비참한 심정이 되는 게 왜 그런 걸까. 가난한 탐정이 주머니에 돈을 셈하면서 걸어가는 가난의 묘사가 꽤나 길었어서, 그 묘사가 꽤나 생생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다. 


3. 삼체

면벽자인 중국인에게 고용된 중국의 군인이 서양인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서양인은 이유를 다 알아야 하나? 나는 군인이고 시키는 일을 하는 거지. 왜 시키는지 알 필요는 없어. 뭐 이런 대사였는데, 내가 그 서양인처럼 이유를 알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서 기억에 남았다. 

복종에 대해 생각했던가. 가끔 이유를 알지 못하고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알고 한다는 게 인간에게는 오만한 일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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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삶
박진성 지음 / B612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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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집이다. 

가끔 산문인가 싶게 짧은 글은 시인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 드러나는 사람이다. 드러나는 사람이라서, 공격에 노출된다. 

시인은 문학계 미투의 와중에 지면을 잃었다. SNS의 거짓 증언이 자신을 지목했고, 신문지면에 기사로 나가서는 출간예정의 시집들이 나오지 못했다. 3년 넘게 법정싸움을 하고도, 신문에 기사를 쓴 기자는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무고를 확인하고, 법적으로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출판사의 지면을 얻을 수 없던 시인은 텀블벅 후원을 통해 자신의 책을 냈다.

살아서, 살아 남아서 글을 써 주는 게 고마워서 책을 사서 읽었다. 


쉽게 죽음을 말하는 세상 가운데, 살아남았다. 


너무 드러내는 세상 가운데, 자아가 가득 찬 세상 가운데, 커다란 어둠을 지나오고 나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참으면서 쓴 글인지 느껴졌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나는 당신의 목적지를 모르고 당신은 나의 슬픔을 모른다.
몰라도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 P85

자아는 세상의 중심을 자처할 ‘때‘ 가증스럽다.
사실, 겸손에는 자기모욕이 없다. 심리적인 자기모욕이든 사회적인 자기모욕이든 그런 것은 겸손과 무관하다. 겸손은 그저 타자가 가장 형편없는 인간일지라도 그에게 아직도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섬세한 자각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오늘날 ‘드러내지 않기‘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의 중추는 - 아직은 그 경험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 자기증오나 자기에 대한 염려와는 무관하다. 그 중추는 순전히 타자들에게로, 대타자에게로, 피조물들에게로, 세계로 향해 있다
-피에르 자위[드러내지 않기] 중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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