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X다 - 부디 당신은 O를 골라요
김별로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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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남자가 쓴 에세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이 남자처럼 행동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이 이 남자처럼 인생에서 고르지 말라는 것들만 골라서 결국 암에 걸렸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세상 사람 모두가 한 마디씩 입을 떼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족력이 있는데, 언제나 모범적인 선택을 하는 형을 보면서 자신은 삐딱한 선택들을 해 왔고, 그 형이 모범적인 선택을 하고도 암에 걸리고, 모든 권하는 치료를 받고도 떠나는 걸 본다면 그건 그대로, 자신의 삐딱한 선택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될 것이다. 

암에 걸리기 전에 한 선택들에도, 암에 걸리고 난 다음의 선택들에도,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하는 것에도, 그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생은 미지수고, 모든 순간의 선택들이 나의 인생이고, 내가 한 선택들이 어떤 결과가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거고, 모르는 채로 죽게 될 거다. 살아있는 순간에도, 죽은 다음에도,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온 순간들의 모든 인연들은 죽는다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기 책으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은 사람은 책으로 만난 나같은 인연까지도 남기게 되는 거다. 인생을 모른다는 것을 불안의 근거로 삼기보다,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알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뿐이고, 그 다음은 그 다음 닥친 다음에야 생각해야 하는 거다. 그대로 내 삶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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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사회,를 읽을 때, 고려시대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는데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떨어졌다고 말한다.(https://blog.aladin.co.kr/hahayo/13163847지금 내 지위가 낮은지 잘 모르겠어서, 여성의 지위가 높은 세상은 과연 어떤 사회인지 상상이 잘 안 됐다. 

드라마는 오랜만에 시작한 정통사극이었고, 진행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어쩌다 한 번씩 토막난 드라마를 보면서 나라가 되는 가문과 여성들을 본다. 고려의 마지막을 보던 공민왕의 비, 이성계의 경처였고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된 강씨, 이방원의 아내 민씨.

강씨는 이미 장성한 향처의 아들들 대신,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앉힌다. '당신을 어머니로 생각했다'는 이방원에게 핏줄에 대해 말한다. 어미없는 자식의 위치는 그런 거라면서, 자신은 너의 배경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 태도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 뒤에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고, 조선왕조 내내 극심한 서얼차별을 만들었다. 

민씨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권력을 잡은 순간, 자신의 가문이 권력을 분점할 수 있기를 바랬다. 왕이 된 남편의 신하되기를 거부한 아내는 자신의 오라비들이 죽고, 며느리의 아비가 죽는 걸 본다. 

이미 지나간 날들인 데다가, 주인공이 주인공이니만큼 나는 이방원에 이입해서 보았다. 국가도 결국 환상이지만, 이방원의 행동들에 당위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려 말에 가문이 살아남기 위해 선죽교의 살인자가 되는 순간부터,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나라의 처지를 알게 되고, 결국 왕이 되어 아버지와 형제와 전쟁을 벌일 때에도, 정치가 이방원의 행동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이고, 그 다음을 알고 있으니, 세종대왕의 아버지고. 죽임을 당한 세자가 항변했듯이 좋은 왕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거고, 혼란한 정치상황이 얼마나 피로한 지 아는 국민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거다. 무기를 숨겨 자신을 지킨 처가부터 무기를 거둬들이는 정치가 이방원을 나는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처였던 강씨가 죽고 그녀의 자녀들이 실권하는 과정이, 이방원이 권력을 잡도록 도왔던 민씨가 내처지는 과정이 여성의 지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경처와 향처의 지위에 대한 차별이 없어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세운 강씨나, 남편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가문에도 나라의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민씨는 강한 여성들이지만,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의견들이다. 강씨에 대해서는, 이미 사라진 일부다처제가 과연 남성에게만 유리한 제도였던가 의심하고 있지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충분히 부유하고 강력한 남자란 희소자원이 아닌가, 싶은 거지. 여자들은 못생긴 남자의 단 한 명의 부인보다, 잘생긴 남자의 백 번째 부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개처럼-, 다시 일부다처제인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사회적 억압 가운데, 일부일처제인 사회를 나는 선택하고 싶다. 민씨에 대해서는, 권력자 가문이 아닌 국민의 입장이 되어, 왕이 있는데, 왕의 부인까지 국가를 갖겠다고 해서 동의가 안 된다. 보면 여성 지위가 떨어진 게 맞는 것도 같은데, 그게 나쁜 방향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다행이네, 싶었다. 일개 국민의 입장에서는 국가가 된 가문이 모계든지 부계든지 하나인 편이 차라리 낫고, 현대 여자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위해 결탁하는 결혼의 선택지가 하나 뿐인 일부일처제가 다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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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책이 새 옷을 입고 있는데, 나는 구판이 더 좋다. 


1. 인재시교(https://blog.aladin.co.kr/hahayo/9371196)














단 한 권의 육아서를 읽는다면 인재시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권으로 묶였던 책이 인성편과 공부편으로 나뉘어서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는 제목의 두 권만 살 수 있는 상태다. 

자질에 맞추어 가르침을 베푼다,라는 제목의 육아서는 직접적인 제목으로 분책되었다.

같은 내용인 데도 아이를 키우는 철학서 같던 책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실용서처럼 보인다. 실용서는 권하기에 너무 노골적이라 일부러 구판을 찾는다. 


2. 상상의 초가교실














상상의 초가교실, 이 힘센 상상1,2 로 나뉘어져서 새로 나왔다. 

상상의 초가교실, 은 각각의 완결된 이야기들이 있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상상은 조연일 때도 주연일 때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가지는 관계는 상상의 초가교실,이라는 제목이 힘센 상상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힘센 상상1,2보다는 상상의 초가교실,이 더 좋은데 다 절판이고 재출간 계획조차 없다니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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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비슷한 것으로 우언(寓言)이라는 것이 있는데, '천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나온 "장자(壯子)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해의 천제(天帝)를 숙(儵 *)이라 하고, 북해의 천제는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천제는 혼돈(混沌이라 한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에게 놀러갔는데, 혼돈이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하고도 치밀하였다. 어느 날 숙과 홀이 어떻게 하면 혼돈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기를, '사람은 모두 다 눈,코,귀,입 등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음식을 먹고 하는데, 혼돈에게는 구멍이 하나도 없으니 뭔가 부족함이 있지. 우리가 가서 그를 위해 구멍을 몇 개 뚫어주는 게 어떨까'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둘은 도끼와 끌 등을 가지고 가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주게 되었는데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이레 만에 일곱 개의 구멍을 다 뚫게 되었다. 그러나 불쌍한 혼돈은 그의 친구들이 구멍을 뚫어주자 도리어 가엾게도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 p20, 중국신화전설 1, 위앤커, 전인초/김선자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6)


寓言 살우, 말씀언 


*儵 빠를 숙

    잿빛(靑黑繪), 남해임금(南海帝), 독화당하다(禍毒), 갑자기(忽), 빠르다(速)

    攸(바 유) + 黑(검을 흑)    

** 忽 소홀히 할 홀

      잊다, 홀연, 돌연, 문득, 다하다, 멸하다, 올(누에 입에서 나오는 실)

      勿(말 물) + 心(마음 심)

*** 混沌 섞일 혼, 어두울 돈

      混 [혼]섞이다(雜), 흐리다(濁), 합하다(合), 덩어리지다(氣末分)

         [곤]오랑캐이름(西戎名)

          水(물 수) + 昆(맏 곤, 형 곤)

      沌 [돈]어둡다(不明貇), 기운 덩어리(元氣未分), 혼돈(混沌), 엉기다(不開通貌), 물기운(水勢形容), 돌다(轉轉), 막히다(不通塞)

          水(물 수) + 屯(진칠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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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지음 / 아침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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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 전공자가 파리에서 유학경험을 쓴 쪽글들을 모은 책이다. 

발화되는 순간 사라지는 중인 말처럼, 상연되는 순간 사라지는 극예술-무용, 연극, 오페라 같은-에 대한 이야기는 애틋하다. 

그렇지만, 나는 극예술을 별로 즐긴 경험이 없는 촌사람이고, 문화라는 걸 짝짓기 춤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저자처럼 비장해지지도 애틋해지지도 아련해지지도 않는다. 살짝 물러서서 그런 감상들을 구경한다. 

극장, 극예술이 오랜 역사성을 가진 나라로 유학이라는 걸 간 사람인데, 나는 그 오랜 역사성이 자본주의와 얼마나 결합해 있는지 놀라면서 구경한다. 오페라를 소개하는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장 끌로드 아저씨)를 읽을 때는 와 극장을 잘 아는 건 표 살 때 좋겠네, 저 아저씨는 표를 얼마나 많이 사고 얼마나 많은 공연을 본 걸까, 궁금해하면서 구경했다. 돈을 받고 공연을 팔아 온 도시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돈을 내고 공연을 구경해 온 도시의 관객들이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가, 생각했다. 영화관에서 좌석배치에 따라 다른 요금을 매기겠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던 우리 나라 상황이 떠올라서, 그 섬세하고 세세한 요금의 차등을 상상하면서 그걸 수용하는 사람들의 성정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복불복이라거나 운인 여기의 삶을 나는 더 선호하고 있다.

오래 서양식으로 공부한 저자의 어떤 이원론적 태도는 충돌하는 말들이 된다. 모계에서 부계로 전환되었다는 페미니즘의 언설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내려던 노력(비극의 탄생)은 무언가 거대한 혼돈이 되어버린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물성과 여성이라는 은유적 실체를 일치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나는 그 이야기가 결국 언어로 쓰여지면서 오해를 증폭시킨다고 생각해버린다. 이원론적 방식으로 쌓아올린 서구문명의 두 갈래 길에 과학과 철학 반대편에서 복잡다단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문학과 예술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몸을 가진 실체인 극예술이 극단으로 흐른 거라고 생각한다.(극장과 테러)


무언가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거 같은 강자와 약자에 대한 말들 같아서 시학에 대한 저자의 의문을 옮겨 적는다. 

신기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래,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모두 고통인 것은 매한가지이나 인물에 대한 나의 거리가 다른 것이다. 고귀한 이의 고통에는 몰입하므로 슬퍼지고, 저급한 이의 고통에는 거리를 두므로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 원리가 나는 언제나 기이했다. 사람은 어째서 늘 당연한 듯 거룩함 쪽에 이입하는가. 윤리적 우위라는 허상에 마음을 기대는 일은 어쩌면 그리도 쉬운가 -p102, '테러와 극장'


장르로서 오페라를 받아들인 이야기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 적어 둔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정 게임의 문제다. 오페라 관객으로서 나는 그 게임에 참여하기를 오래도록 부인해왔던 것이다. 반면 수많은 이들은 자발적으로 거기 참여하기 위해 그토록 긴 세월 극장을 찾아왔다. 이 생각을 하면 코끝이 찡해지는데, 왜냐하면 누군가 '믿는 체 하려는 것'은 결국 그가 '믿고 싶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은가. 아마도 나로부터 먼 것. 멀어서 찬란한 것. 그것을 꿈꾸게 해주는 데 본디 예술의 임무가 놓여 있던 것은 아닌지. 애초에 그래서 인간은 허구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닌지. -p146- 147 '장 끌로드 아저씨'


나는 강자와 약자도 상대적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섣불리 대신 말하지도 곁에 서겠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글 속의 어떤 태도-약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혹은 결국 옳다?-가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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