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비밀 레시피 - 불영이 감춘 불영사 사찰음식 시리즈 1
일운 지음 / 담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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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에 산사음식축제와 산사음악회가 있었다. 늘 내는 입장료도 내지 않고 공연히 여기저기 구경도 잘 하고, 점심공양도 먹고는 이 책과 매실장아찌를 사들고 왔다.  

책은, 지금까지의 요리책들처럼 친절하지 않아서, 오히려 요리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첫 머리에 야채육수 내는 법과 김치양념만드는 법을 설명한 다음, 개별 요리에는 채수를 넣는다,거나, 김치양념으로 버무린다,는 식의 설명이 전부다. 간은 양에 따라 가감한다,이고. 재료의 분량을 가늠해주고, 또 그게 몇 명이 먹을 양인지도 표시해주고, 각각의 양념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또 그걸 단계마다 사진을 박아넣는 요리책을 보아오다가, 요리 사진은 달랑 하나, 설명은 이런 식이니 정말이지 요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내게 요리책은 그림책이고, 정작 그 책들을 보고 요리하는 순간은 희박해지고, 매일의 밥들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원래 매일의 밥은 그런 거라는 위안이 들었다. 매일 산사의 수많은 스님에게 밥을 내는 사람이라면, 그 밥과 반찬을 정량해서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인 거겠지 싶은 거다. 그래서, 이 스님은 '요리책'을 만들면서, 이렇게 '요리'를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거지 싶은 거다. '요리'가 권위를 얻는 어떤 행위들을 하지 않는 요리책이라니, 나의 매일의 저녁밥이 괜찮았던 거라는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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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 1
프랑크 쉐칭 지음, 박종대 옮김 / 김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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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다. 겨우 겨우 마쳤다. 바다를 얼마나 모르는지, 모르는 독자를 위해 작가는 바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설명을 하는지 영화라면 건너뛰고 말 것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현실감을 주느라고 책이 정말 두껍다. 현실감을 쌓아올린 그 상황에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나 인디펜던스 데이같은 SF물같은 폭풍전개로 넘어가서 급하다 싶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머릿 속에서 질문이 한가득이다.

인간은 과연 이러한 반격에, 대항할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까? '대항'이라는 것을 할 수는 있을까? - 월등하게 이지적인 이런 전 지구적인 존재에, 우리는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결말이 무리한 전개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인간이 생태계에 담당한 역할은 무얼까? -  요한손이 리에게 항의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모르는 '이르의 역할'을 들어 군사적 대응에 저항하는 요한손에 이입하지 못하던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태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게 모순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이르'가 '인간의 멸종'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 이미 인간의 '계'안의 역할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간은 '계'안에서 그저 유해균이나, 질병, 그렇다고 해서, 묘사 안에 '유해균'이나 '질병'은 그렇다면 '멸종', '박멸', '제거'되어야 하는 것일까?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개체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군집으로 전체를 사고할 수 있는 존재의 삶은 어떤 방식일까? - 인간인 나를 생각하는 내 삶은 인류 안의 나를 생각하는 내 삶과 얼마나 달라질까? 인간 개개인이 인류,에 대해 생각한다면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살까? 지금 인류,를 위해서,라고 행해지는 그 행위가 정말 인류,를 위하는 것일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 우월한 존재가 과연 '공격'을 택할까? 이런 상황을 '무언가'의 '적대적인 공격'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인간중심적인 게 아닐까?- 인간은 인간에 의해 파멸의 상황에 처할 거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그 와중에 그런 모든 상황에서 피해자가 누가 되는가의 문제에 맞닥뜨리면 언제나 조금은 절망스럽지만-그런데, 정말 가장 문명화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만이 살아남을까?-, 이지적이고 과거와 현재 뿐 아니라 미래까지 생각하는 전지구적인 지적 존재는 '공격'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의 끝에 '허무함'을 얻을 거라고 또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종말을 그리는 책이나 영화에서 내가 공감하는 어떤 장면은 이런 것이다.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났고, 누군가 정말 열심히 뛰고 무언가 했고, 다시 찾아온 평화의 뒤에 떠오르는 의문. 그 문제가 정말 그 행위때문에 풀린 것일까. 라는 것.  

가습기살균제,가 문제의 원인이라며 판매금지 신청이 내려진 날, 역시 답은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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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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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이유는 영화가 보기 힘든데, 보고 싶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누구라도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못 보더라도, 책은 볼 수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세 살에 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모험 가득한 인생을 사는 이야기이다. 나는 '기꺼이 길을 잃어라'라는 제목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전혀 '기꺼이 길을 잃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던 중에 늘어놓은 나의 이런 불만은-"기꺼이 길을 왜 잃어, 그럼 책은 왜 읽는데?"- 나의 성향 때문이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도, 이 책을 집어들고, 이 책을 통해 혹시 나의 성향이 달라질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아내는  이야기가 '기꺼이 길을 잃어라'라는 조언을 나같은 사람에게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은 이미 성인이 마이크 메이가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살아가는 현재와 사고가 난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교차로 짜여졌다가, 시력을 찾는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이야기가 만나 하나로 진행된다. 이 전에 '인재시교'라는 육아서를 읽은 엄마인 나는, 마이크 메이의 성장담에 내내 그의 엄마에게 이입했다. 아이가 '겁에 질린 삶'을 살지 않도록, 울면서도 허락하는 엄마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내 책을 읽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아이는 나의 어떤 태도때문에 혼자 어린이집에 안 가려는지 생각하면서 읽었다.  

이입을 마이크 메이에게 하지 않으니, 책은 내게 다른 책으로 읽혔다. 그러다가, 그의 어린시절이 지나가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그가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 흥미를 잃었다. 메이의 용기는 대단하게 와닿지 않고, 그의 조언 '기꺼이 길을 잃어라'는 공허하게 느껴지고, 그의 어떤 태도는 무모하거나 무지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그저 남자들의 무용담,처럼 들렸다는 거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시력을 잃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태도대로, 나는 그를 어쩌면 시력을 잃은 사람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다잡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미 두 아이의 아빠이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GPS를 개발 중인 마이크 메이가 고민 끝에 수술을 받기로 하는 대목에서 예의 그 불만을 터뜨리며 속도를 놓쳤다.  "도대체, 왜 기꺼이 길을 잃어! 그럼, 책은 왜 읽는데!" 나는, 이미 시력의 대부분이 뇌의 문제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고, 친구가 권한 논문들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운전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수술을 결심한 이 남자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아직 3분의 1은 남은 책의 다음 부분은 마이크 메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를 통해 한 발 전진한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마이크 메이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가 참여한 실험을 통해서 나는 시력이 형성되는 머릿 속의 과정을 소개받고, 내가 지금은 알고 있는 그 결과가 이 남자의 그 선택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게 마이크 메이라는 남자가 삶을 통해 깨닫는 것들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마이크 메이라는 사람을 통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육아서였다가 다시 시각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인간의 몸이 어떤 식으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지를 가르치는 과학책이 되었다. 음, 생각해보니 애초에 다른 기대로 집어들지 않았다면, 훨씬 괜찮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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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녀석 맛있겠다 - 별하나 그림책 4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1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백승인 옮김 / 달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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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도 모두 알고, 내용을 거의 모두 옮긴 포토리뷰도 봤으면서, 나는 이걸 왜 사서 읽은 걸까요. 공룡을 좋아하는 딸래미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긴 한데, 나는 이런 종간의 우정에 대하여, 껄끄럽게 여기는 게 있는데 말이죠.  

'폭풍우치는 밤에'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 같은 걸, '고녀석 맛있겠다'에서도 똑같이 느낄 거면서, 왜 공연히 그걸 확인하려 든 걸까요. 그런 우정에 눈물을 흘리는 마음은 '숭고'한 건가요? 왜 그런 우정을 보여주는 걸까요. 나는 인간도 가끔 너무 미운데 말이죠. 이건 지나친 사랑아닐까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적당한 게 아닐까요. 마더 테레사의 사랑이 '숭고'하다고 해서 모두 마더 테레사가 되지 못하고, 마더 테레사만큼 사랑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자체를 포기하지는 못하는 거잖아요.  

범인의 사랑이 있다면, 아이에게 오히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먹는 것처럼 중요한 걸 포기하는 사랑이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할 수 있는 만큼의 따뜻함을 나눠가지는 것으로 사랑을 묘사했으면 해요. 사랑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삶이 더 앞이지 않나요? 나를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는 그 사랑이, 온 우주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까지 그 차근차근한 쌓임이 없이, 이런 묘사는 저는 음 그저 이벤트나 해프닝으로만 보게 되네요.  

아, 그러니까, 이 책을 사서 읽힌 나는 도대체 뭐냐 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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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1-08-2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적당한 게 아닐까요. (...)할 수 있는 만큼의 따뜻함을 나눠가지는 것으로 사랑을 묘사했으면 해요. (...) 이런 묘사는 저는 음 그저 이벤트나 해프닝으로만 보게 되네요. - 저도 별족님처럼 그랬을 거 같아요. (나는 어렸을 때 어떻게 느꼈나 생각해보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래도.)

별족 2011-08-26 11:41   좋아요 0 | URL
제가 어려서 읽은 기억나는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저는 유아용 그림책이 없는 유아기를 보낸 터라- 정도예요. 사랑에 대한 깨우침은 만화들로부터였을까요. 플란더스의 개나.

감자수제비 2011-08-2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마음이에요, 저도 폭풍우치는밤에 영화관에서 봤는데 좀 후회했었음. 이것도 같은 내용일꺼라 예상했는데도 사서 읽고 말았네요;; 머랄까 그 상황이 왠지 마음에 와닫지 않다고 할까요? 먼가 뜬구름같기도 하구요; 그냥 그림구경책으로 일단 놔두려구요;

별족 2011-08-26 10:49   좋아요 0 | URL
사실, 그림을 좋아해요-_- 이런 그림체.

수수꽃다리 2011-08-2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읽고 댓글을 다는 건 처음이네요, 아후 떨려^^ 아이들과 영화를 먼저 보았어요. 개인적으로는 폭풍우치는 밤에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하구요. 별족님의 말씀에 고개를끄덕이며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토론을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별족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림책, 혹은 책을 읽히는 이유 중 하나가 책이 주는 큰 느낌,가령 사랑, 이해, 공감, 용서, 화해 같은 것을 알게 해주려는 것이아닐까요? 인류가 존재하는 근거이기도 하고요. 현실성이 없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런 대비가 이해가 쉽지요. 초등학생이 되면서 그들은 더이상이런 이야기에 감동 받지는 않겠지만 유전자처럼 몸속 어딘가에 저장되어있지않을까 간절하게 바래봅니다.

별족 2011-08-26 11:40   좋아요 0 | URL
그림책을 볼 때마다,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늘 궁금해요. 제 딸은 여섯살이라서 가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하는 거 같다고 느끼게 되더라구요.

수수꽃다리 2011-08-2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ㅎ 저 또한 아이들이 그런면에서 무서울 때가 있어요. 몹시 궁금했고요. 그건 아마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 전부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엄마의 모든 것을 익혀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저의 전략은 책에 대해 아무말도 안한다지만 조금 더 크면(현재 초3) 책 얘기를 하고 싶어요. 우연히 별족님 리뷰를 읽으면서 고맙고 놀라고 있습니다. 저의 책읽기 자세를 바꿔볼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중입니다.^^ 아줌마라고 뱃살 늘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뻔뻔함을 좀 늦추기 위한 책읽기였답니다.

토토 2011-08-30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보고 책읽어보고싶단 기분이 드는거(읽히고 싶다는 기분이 아니라) 오랜만이예요. 제가 폭풍우 치는밤에를 보고 느꼈던 불편함이 뭔지 깨닫게 해주셨네요. 아이들에게는 이런 인류를 가로지르는 공감과 화해가 팔요하다고 생각해서 씌여진 글이었겠지만 저도 이런거 잔인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존재자체를 본능을 부정하면서 이루어지는 우정이라니 ㅠㅠㅠ 사실 전 전갈과 개구리 우화가 좀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 전갈이 자기도 물어빠져죽을줄 알면서도 개구리를 찔러 죽이는거요. 그게 전갈이니까요. 많이 생각하게해주는 서평이네요. 감사합니다.
 
소크라테스를 구출하라 청소년을 위한 철학 판타지 소설 3
좌백 지음, 왕지성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감수 / 마리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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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를 격파하라,까지 끝냈다.  차곡차곡 무언가 흥미로운 지점들이 쌓이는 구조.  

'논리의 미궁을 탈출하라','소크라테스를 구출하라','제자백가를 격파하라'로 이어지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판타지소설이다. 게임시나리오와 무협소설을 쓰는 작가의 이력대로, '논리의 미궁을 탈출하라'는 게임과 같은 구성으로 아이템을 얻고 스테이지를 넘는 구조다. 무려 '청소년'대상의 이야기인데다가, 군데군데 재미있는 삽화까지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내용은 알차고 재미있기까지.  

1권이 논리학에 대한 기본을 다져서 일상의 오류들에 휘둘리지 않게 한다면, 2권은 서양철학이 시작되는 풍경을 묘사하고, 3권은 동양철학이 시작되는 풍경을 묘사한다. 나는 2권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1권부터 읽으면서 익숙해지는 게 있는 모양이다. 3권도 좋았는데, 딱 3권만 집어 잠깐 읽은 남편은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간부터 읽으면, 지누에게 이입할 수가 없다.  

게임만 하다가, 책만 있는 시골마을로 쫓겨난 지누가 어떻게 책 속의 모험을 즐기게 되었는지, 역시 1권부터 읽어야 한다. 1권을 읽고, 2권을 읽으면서, '어라, 정말 재밌네'라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서양 철학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가 배경이 되면서, 신화들과 섞이는 모험이 즐거워서일 게다. 1권에서 모험을 안내하던 펄럭이던 논리학 책은 2권에서는 아이기스에 구조되는 노예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3권에서는 허리춤의 대나무 두루마리로 등장한다.  

소크라테스를 구출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는 지누와 애지를 따라, 세상을 설명하려는 철학의 시작이 즐거웠다. 이건 '논리적이지 않아'라면서 무엇이든 벌어지는 책 속의 세계가 나도 즐거웠다. 콧물 눈물 날리며 세이렌에게 가겠다는 재미있는 삽화도 좋다. 기다리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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