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재는 결국 이렇게 밖에 기록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과거와 현재가, 현실과 환상이, 이곳과 저곳이 뒤섞이고, 무언가 논리적인 걸 기대할 수 없는 '소설'로 밖에 기록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논리적이기에는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 

이해하기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이야기. 

이입하기에는 지나치게 초현실적이라서 이런 식의 묘사만이 겨우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이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언제나 늘 잊지 않으려 하지만, 역시 그래도 그런 자들이 권력을 쥐고 행하는 일들은 놀라워서, 그 속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괴로움은 또 역시 놀라워서 이입하기도 물러서기도 애매한 지경이 되는 것이다. 

칼처럼 자를 수 없는 사람의 삶에서 나라와 나와 가족이, 결국 가족이 무너지고, 병들어버리는 그 역사는 결국 소설로밖에 묘사할 수가 없는 거라는 생각.


만만치 않은 기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독재자에 대한 흠모가 결국 독재자의 딸을 권력의 정점에 앉힌 여전히 현재형인 우리나라에서 이게 지금 나와 내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3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이 책을 산 건, 아직도 그 영상이 생생해서다.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지명된 유시민이 섰던 국회의 청문회에서 지금의 새누리당인 그때의 한나라당은 그가 내지 않은 적십자회비 5천원을 말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빡빡한 도덕의 잣대를 들어 사람들을 난도질하던 언론과 정치는 그렇게 결국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 뻔뻔함에 할 말을 잃게 했던 것이 언제적 일이라고 당장 정권이 바뀌고 청문회장에 섰던 그 많은 인사들은, 법적으로도 불법인 행위들을 '선물'이거나, '관례'라고 말했다.

 

내 자신이 그리 흠결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아는 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저렇게 순전한 태도로  그토록 도덕적인 가치를 말하는 것에 어떤 진심은 있는 게 아닌가, 정말 잘못은 잘못이 아닌가, 하며 그리 모호한 태도로 그 십년을 보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난파선에 탄 것처럼 잠 못 자는 날들이 쌓이면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익숙한 심리학 실험들이 나온다.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도덕성을 상기하고 자신의 손을 씻은 남들보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더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또래집단을 모방하고, 힘센 사람을 모방하고, 그러면서 사회에 속하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권력이 없는 나는, 그래서 언제나 순종을 요구받은 나는, 결국 그런 사회에 속했던 거다.

강자인 저들은, 권력을 가진 저들은, 그래서 언제나 그런 모든 것들을 당연히 누렸던 그들은, 결국 그런 사회에 속했던 거다. 전혀 다른 도덕률로 작동하면서, 그런 행동들을 용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사회는 나와 저들로 결국 구성되고, 나는 결국은 타인을 위해서만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결국 다른 세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금숙, 오멸 원작 / 서해문집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편은 제주도사람이다. 아이의 시리즈물이 출간되어 책을 사노라고 알렸더니 이 책도 사라며 알려줬다. 영화가 궁금했으나 보지 못한 나는 책을 펼쳐 읽었다. 수묵화로 펼쳐진 제주의 사람들이 먹먹했다.

도망쳐 동굴에 숨은 제주의 사람들만큼 조직에 속한 개인인 나는 군인에도 이입한다.

부당한 명령을 받는 군인에 대해서. 부당한 명령을 하는 국가에 대해서, 그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금 나는, 계속 생각한다.

굉장히 정치적인 인간인 나는, 지금의 사건과 겹쳐서는 국가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국가가 정말 국민의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는 것, 구조작업을 하는 해경이 최고의 구조전문가이기를 기대하는 것, 그런 것들이 부당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실종자의 부모가 민간 잠수사들을 외려 더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지금의 정부에는 당연한 게 아닌가도 생각하고.

국가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인 건데, 책 속의 국가와 지금의 국가가 종잇장만큼도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도 싶고.

그래서, 괴롭고 슬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거래할 수 없다.

수많은 제국의 약탈이 선한 얼굴로 거래로 포장되었음을 나는 안다. 값어치가 무한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가격으로 거래된 북미 인디언의 땅들, 처럼.

이 책 속의 이누이트 소녀가 다니는 나쁜 학교,는 아이들을 잡아 자신들의 가치를 가르친다. 추위를 견디는 자신들의 옷 대신, 신 대신, 그들의 물건을 입히고 신긴 사람은 종교의 이름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돈이 없이도 구할 수 있었던 옷과 신, 음식 대신 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 옷과 신, 음식을 주고, 그들의 터전에서 자신이 필요한 걸 가져가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가르친다.

나는 좀 더 나쁜 학교를 상상했다. 아이들을 납치해 가르치는 학교, 착취하고 비하하는 학교.

그런데, 올레마운은 글을 배우려고 스스로 그 학교에 간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의 처사를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왜 올레마운의 아버지는 올레마운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또는 그 사촌언니는 글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올레마운이 단지 글을 배우고 싶었던 거라면, 그런 나쁜 학교에는 안 가도 되잖아, 그런 생각. 엄마도 아빠도 그 학교가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추위에 떨게 한다는 걸 알면서, 왜 올레마운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지 의심이 들었다. 글 자체가 이미 그런 '가치'였던 걸까. 모르겠다.

말미에 붙은 그 당시 기숙학교의 목적에 대해 읽으면서는, 지금의 학교는 그런 학교와 얼마나 다를까 생각했다. 지금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공정하며 관대한지, 비뚤어진 가치들을 심어주지는 않는지, 이런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인 딸이 봤으면 했지만, 지금의 학교도 다르지 않다고 말할까 걱정되어 또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의 시 - 하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는 한참 이 소설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이 소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너무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 나도 샀을 거다. 그런데, 사서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나는 그렇게 재미있지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라며 내팽개쳤다. 그리고, 지금에야 겨우 다 읽었다. 그 친구만큼은 아니겠지만 재미있는 책이다. 

인도와 영국 런던을 주요 배경으로 꿈과 환상이 현실과 뒤섞인다.

이토록 순전한 소설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덴마크인가, 북구의 폭탄테러범이 읽지 않는 책으로 소설을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순전한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러니까 노래부르며 추락해서 살아남은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천사가 되고, 한 사람은 악마가 되고, 또 그 천사가 자신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 도시만큼 거대해졌지만 결국 이미 사악한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했더라,라는 이런 거대한 뻥을 읽고 있으면,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단정함을 원하지는 않을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뒤죽박죽인 헛소리가 그대로 사람사는 거라는 느낌이 드니, 신들의 이야기조차, 신에 대한 믿음조차, 혹은 예언자의 꿈조차, 그대로 사람사는 거라는 느낌이 드니, 인생이란 그런 거니, 받아들이자,가 된다. 천사를 파멸시키는 질투를 보고 있자면, 뭐 별 거 있나,라는 생각. 나의 사명감이나 분노나 그 어떤 거라도, 아 사람사는 세상이란 그런 건데, 뭐. 라는 초연함을 불러일으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