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봄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시다가 학교아저씨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도, 결혼하면서 딸들도 가르치겠다는 약속을 받으셨던 어머니 덕에, 약속을 무던히 지키시던 아버지 덕에, 혹은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성취했던 자식들 덕에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모두 대학 졸업시키셨다. 대학,에서 '에, 집이 '리'야?'라는 반문을 듣던 나는, 다행히도 IMF 직전에 그래도 취업을 해서, 무난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리뷰 창을 펼쳐놓고,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나의 삶이 나를 제약하는 한계를 내가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몇십억을 호가하는 아파트에서 그 삶을 내려놓지 못해 죽기로 결심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죽을만큼 가난한 삶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것도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지만, 용케 교육받아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도의 삶을 겨우 이해한다. 다른 삶이 궁금해,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지만, 그 다른 지점이 너무 크게 닥쳐서 몰입이 안 될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그랬다.  


똑같이 부르주아 여성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인 '봄에 나는 없었다'를 무척이나 공감하면서 읽었으면서, '딸은 딸이다'와 '장미와 주목', '인생의 양식'까지 읽어가면서, 차츰 그 공감이 옅어졌다. '인생의 양식'에서도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는 한데, 이번 책에서는 그들의 삶이 풍경이 계속 걸렸다. 한 여성이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죽음까지 결심했다가 다시 새로이 살기로 하는 시점까지의 이야기다. 그녀의 삶이나 성향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녀의 결혼 이전의 삶은, 아 제국인 영국에서 부르주아지의 삶이 저랬구나, 라는 자각이 닥쳐서 공연히 식민지 국민이던 역사를 떠올리며 억울해했다. 남겨진 재산을 쓰면서, 부자 남편을 만나기 위해 멋진 옷을 차려입고 파티에 나가는 삶, 하녀와 요리사를 부리는 삶. 남편이 바람을 피울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배부른 고민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놀라는 거다. 역사 속에서 아마도 그녀가 부자인 이유는 식민지를 착취했던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문이었을 텐데. 그녀의 그런 식의 삶이 참 좋아보인다는 건, 그 착취를 모른 척해야 가능할 텐데. '언제까지고 아름다워 주시오'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해대는 남성에게 자신을 맞추는 수고를 감수해야 가능할 텐데. 그 모든 골치아픈 배경들에 머리가 들끓다가도, 장기간 해외에 나가서는 당나귀를 타고 트레킹을 하는 가족의 모습, 호텔에서 다른 방의 다른 나라의 아이와 친구가 되는 아이의 모습, 호텔에 장기투숙하며 아이를 위한 현지어 개인 교사를 붙여주는 모습, 이 순전히 부러운 순간이 생겨서 부끄러웠다. 

모두가, 저런 삶을 원한다는 건 탐욕일 텐데, 저런 삶도 공허로 가득 차 버리는데, 그 삶이 참 편해 보였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편안함이나 안락함에 길든다면, 언제라도, 못 본 체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부유함,을 동경하는 마음,이 닥칠 때마다 생기는 심란함 때문에 감성적인 그녀가 현실적인 남편과 결국은 헤어지는 이야기에 충분히 몰입할 수 없었다. 그 시대의 통속극이고 충분히 재미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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